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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사무엘상_천국을 다스리는 자

삼상 27:1-12(2)

by 우루사야 2023. 5. 11.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제 살펴본 사무엘상 27장은 한번에 보기에 좋은 본문이라 큐티집 본문과 상이했던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다시 한번 27장을 살펴보며 좀 더 깊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본문에서 다윗은 블레셋에 망명하게 됩니다. 특히 가드, 다윗이 물리친 골리앗의 고향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하루 아침에 적군이 아군이 되고, 아군이 적군이 되기 마련이지요. 왜 그렇습니까? "나의 유익"때문에 그러합니다. 내 유익을 위해서라면 원수도 친구가 되고, 친구가 원수가 되지요. 그러나 성경은 시종일관 이렇게 말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렇습니다.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그런 점에서 사울은 이웃 다윗을 죽이려 했지만, 다윗은 사울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며 존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지만, 그 사랑을 받아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때때로 믿음이 좋은 자가 신앙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신앙생활 오래한 자가 때때로 너무나도 작은 것에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한계가 있는 자로써 우리를 항상 돌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1절과 12절을 보겠습니다. 

1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12아기스가 다윗을 믿고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심히 미움을 받게 되었으니 그는 영원히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

"다윗이 마음에 생각하기를"이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도 "그는 내 부하가 되리라고 생각하니라" 27장은 생각으로 시작해서 생각으로 끝나는 장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생각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네, 어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 이 본문에서 하나님과 다윗의 관계, 사울과 사무엘의 관계, 다윗과 아기스의 관계. 모든 관계가 다 뒤틀리고야 맙니다. 그나마 지금까지 다윗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붙들고 있으니 흘러왔습니다만, 다윗조차도 하나님의 약속을 떠나니 온갖 관계들이 뒤틀리고야 맙니다. 

여러분,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의인 10명"이 있다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이 내려오니 온 인류의 구원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순종과 하나님 나라 질서로의 참여는 여러분의 공동체를 더 순결하게 합니다. 더 신실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쳐서 복종케 하는 성숙한 영성"으로 인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유대광야로 들어오라는 명령과 약속을 떠난 것에 대한 의미를 지금은 놓치고 있는듯이 보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나라에서 "다윗의 나라"를 세우고자 하셨기 때문인데, 지금 다윗은 아기스의 신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5-10절을 보겠습니다.  

5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바라건대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지방 성읍 가운데 한 곳을 내게 주어 내가 살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 하니

10아기스가 이르되 너희가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하니 다윗이 이르되 유다 네겝과 여라무엘 사람의 네겝과 겐 사람의 네겝이니이다 하였더라

다윗은 지금 아기스 왕에게 단순하게 피신한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아예 아기스 왕의 신하로 들어가 용병처럼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이방민족의 수하에 들어간 모욕적인 일인 것입니다. 5절을 보면 다윗은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도에 살리이까"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지금 자신이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사실보다, 살아남는 것을 더 우선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10절에 보면 아기스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물을 때에 다윗은 보고를 합니다. 용병신하가 되어있는 것이지요. 지금 성경은 다윗 한 사람이 아기스에게 망명했다는 사실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진 것이 아기스 아래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다윗은 자기자신의 위치에 대해 잊고 있고, 그만큼 현실과 타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가장 우리가 유의해야 하는 것이 정치이야기와 경제논리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보다 큽니다. 하나님 나라 질서 공동체이기에 교회는 하나님나라 질서를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 세상경제논리로 교회를 논하려고 합니다. 돈을 모아두어야 한다거나, 효율성이 떨어진다거나, 재정투자 대비 효과가 없다는 식의 논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말들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더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지금 이 사역에 대해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 "하나님 나라 질서에 유익하고 어울리는 일인가?" 이 질문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정치 문제도 그러합니다. 한 정당이나 한 정치인의 범위보다 교회는 훨씬 더 넓습니다. 현재 한국의 정당이 가지고 있는 이념과 성향이 있습니다. 거기에 모두를 포함할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반대하고 또 질타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모든 자들을 품어내는 범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담때로부터 마지막날 태어나 믿음을 가지게 될 어린아이까지 믿는 모두가 교회입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내가 다니는 교회는 결코 한 정당이나 정치인에 속해 있을 수 없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다윗이 아기스 왕 아래 수하에 들어가서는 안되었던 것입니다. 혹시나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교회가 세상논리에 속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영혼을 바라보고 태초와 종말을 바라보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7절입니다. 

7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결국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블레셋 지방에서 다시금 꺼내오십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결코 스스로 왕이 되려 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하나님이 사울을 심판하시어 왕의 자리에서 내려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간 하나님은 다윗이 이새가문에서 장자노릇을 할 수 있도록 왕실에서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하셨고, 유다지파에서 유력한 자로 설 수 있도록 아비가일을 맞이하게 하셨고, 이번에는 사울을 전쟁터에서 죽게 하심으로써 자연스럽게 왕위에 오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광야에 있었거나 블레셋에 있었거나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상관없이 일하고 계셨고, 그리고 약속대로 성취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일하십니다. 우리의 순종과 불순종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런 우리보다 더 먼저 우리와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세계"를 주시기 위해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서 오늘도 일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며 매 순간 발걸음마다 순종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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