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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내 안에_요14장

내안에(8) 섬김으로 만든 세상

by 우루사야 2023. 2. 19.

본문 : 요한복음 14장 30-31절
제목 : 섬김으로 만든 세상
1. 서론
1) 법 위의 법
얼마 전, 갤럽조사에서는 "미래세대는 지금 우리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설문을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5위로 긍정 56%, 부정이 27%였습니다. 그런데 이 조사에서 상위에 랭크한 나라들을 보면, 스위스, 스웨덴, 이탈리아, 일본 등과 같은 선진국들이 있었습니다. 이 결과를 보고 아시아경제신문은 "개발의 가능성이 더 있는 개발도상국의 경우보다, 고도의 발전을 이룬 선진국의 경우 미래에 대한 성장가능성의 여지를 더 낮게 보는 경향이 있기에 불행할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해석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개발이 안되면 개발이 안되서어 불편하고, 개발이 되면 이제 개발가능성이 없어서 불안하겠구나. 반대로 긍정적인 사람들은 개발이 안되면 개발될 것에 대한 희망을 보고, 발전이 되었으면 그것에 감사하며 살겠구나. 결국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데, 가진 사람일 수록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하는구나. 불평할 사람들은 계속해서 불평하게 될 것이지만, 열심히 살 사람들은 계속해서 열심히 살게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내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죠.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김태리 배우는 희도라는 역할을 연기하고, 상을 받게 되는데 이런 수상소감을 말하더군요. "배움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훔쳐먹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희도라는 배역에서 많이 훔쳐먹었습니다." 김태리라는 배우가 가진 외형, 목소리, 발음, 톤, 억양을 가지고 도희라는 배역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는 어떤 누구도 알려 줄 수 없지요. 김태리라는 사람이 고민하고 연습함으로써 스스로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배역에서 배울 수 있는 사람은 김태리라는 자신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 수상소감을 듣는데 이 구절이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 한 사람이 무언가 배우는 것도, 인생의 결과물을 꺼내는 것도, 나의 영혼의 구원을 이뤄내는 것까지도 "내가 해야한다"라고 정리가 되는 듯합니다. 그래요. 누가 챙겨줄 수 없습니다. 배우는 것도 내가 배워야 하고, 느끼는 것도 내가 느껴야 하고, 깨닫는 것도 결국 내가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주변에서 좋다고 말하고 권하고 집어 넣어도, 결국 내가 삼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죠. 천국까지도 훔쳐가는 자의 것이 됩니다.

 

 


2) 주제 및 본론잇기
배역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나라의 경제-사회 배경과 환경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 나의 신앙에 대해서 어떤 마음을 먹고 있는지에 대해서 동일합니다. 내 마음먹는 만큼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1월부터 계속해서 요한복음 14장을 통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원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보내고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해주시는 마지막 말씀이었죠. 그러면서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실 말씀도 다 하셨고,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죠. 이제 우리가 알아서 살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즉 "내가 마음먹기에 달린 인생"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마음먹는 만큼, 내가 보이는 세상만큼, 내가 하고자 하는 만큼 주어지는 인생이겠습니다. 예수님 곁에서 제자들이 홀로서기로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겠습니다. 이번 한주도 천국을 만들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예수가 오기 전
본문을 보죠. "30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31오직 내가 아버지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세상이 두번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세상 임금"이라는 방해세력때문에 말을 많이 하지 않겠지만, "오직"이라고 말하시며 이것만큼은 "세상이 알게 하려 한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간 안나오던 단어가 나왔죠. "임금" 그러니까 왕이지요. 왕은 곧 법입니다. 왕이 말하는 것이 법이 되는 세상에서 왕은 절대권력자입니다. 그런데 그 왕이 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로마군사들과 유대교 대제사장 사람들이 무리지어 오기는 합니다만, 로마황제라던지 영주격인 봉건왕들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왕"이 오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세상"이라는 것은 어떤 나라를 말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예수님은 한 나라의 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의 주도권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임금이 온지구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예수님은 그 왕이 "내게 관계할 것이 없다, 즉 나를 건드릴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서 "오직 이것을 세상이 알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무언가 엄청난 세력의 충돌을 느낄 수 있지요. 몇가지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추려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번째,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세상 임금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은 "말을 그만 하자, 이 세상의 임금이 오고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임금은 타락한 천사를 의미합니다. 창조 전에 하나님은 먼저 천사들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을 수종들게 했습니다. 그런데 천사장 하나가 하나님을 배반하여 자신이 왕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사탄이 되었고, 그를 따랐던 많은 타락한 천사가 마귀가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천지가 창조되었는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보다 사탄을 따르게 됩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졌던 지구라는 생태계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사탄의 말을 더 듣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만드셨기에 하나님의 흔적들이 생태계나 인간에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 세상 돌아가는 중심에는 사탄마귀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사탄에 빠져 예수의 구원사역을 방해하러 오는 자들이 오고 있음을 두고, "이 세상 임금이 오고 있다"고 하신 것이죠.

 


(2) 그런데 예수님은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의 임금은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라고 하셨습니다. 관계할 것이 없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제가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사탄은 하나님을 배반한 자입니다. 그래서 지구상의 존재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자신과 같이 되기를 바라고 있지요. 그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떨어진 자들에 한해서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모든 율법을 지켜내셨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를 고소하거나 고발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건드릴꺼리가 없기에 사탄은 예수를 막아설 수 없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가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지, 사탄이라는 이 세상 임금의 겁박과 심판을 받기 위함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임금은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습니다. 다만 예수가 인간의 죄짐을 맡았을 때, 그것에 대해서 관여하게 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첫번째, 이 지구는 사탄이라는 임금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어가고 있었다며 임금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그 임금이 흔들지 못하는 한 존재가 이 땅에 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자기자신이라고 소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사탄의 사형대로 향하고 계십니다. 자신의 죄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구하고자 하는 자들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사단은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예수를 십자가에서 사라지게 하고플 뿐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하나는 알았지 두개는 몰랐던 자입니다. 남은 세상 돌아가는 원리가 있기 때문이죠.
2) 세상이 오기 전 : 이 원리는 천사가 하나님을 배반하기 전부터 있던 원리라 하나님을 배반한 천사는 알지 못하는 원리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순종하는 자들이나 배우고 따를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는 자들은 따를 수 없는 원리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31오직 내가 아버지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시니라" 예수는 사랑과 순종에 대해서 말하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태초에 함께 계실 때에 서로 사랑하셔서 섬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인류를 만드셨습니다. 그럼에도 타락한 그들을 구할 대표자로써 성자 하나님이 사랑하셨고 또 순종하고자 하셨던 것이지요. 네, 지금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알려면, 위에서 말한 이 세상 임금과 그 임금이 어찌할 수 없는 예수와의 관계도 알아야 하지만, 그 이전에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한 재판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 어머니가 딸을 죽였습니다. 인천지검은 이 어머니에 대해서 12년을 구형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보통 구형량의 절반 이하로 판결이 날 경우 검찰은 항소를 합니다. 그런데 기일이 지나도 항소를 하지 않아서 이 사건이 뉴스를 통해 보도된 것이지요. 왜 검찰은 다시 항소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이 사건은 뇌병변 딸을 둔 어머니의 38년간의 간병이야기였습니다. 딸이 태어나면서부터 뇌병변 1급 중증 장애인이었는데, 사건 발생 몇개월 전부터 대장암이 생겨 딸이 굉장히 고통스러워했다고 합니다. 남편은 생계를 위해 멀리서 일을 하고 있던터였고, 홀로 너무 힘들어 '내가 아니면 누가 널 돌볼까' 하는 마음에 딸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배게로 생을 마감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수면제를 다량먹었지만, 그 후 귀가한 아들이 어머니를 보고 바로 조치를 취해 가까스로 어머니를 살려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법원은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딸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피고인은 피해자와 함께 지내며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큰 죄책감 속에서 삶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 개인의 잘못임과 동시에 국가 지원 부족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기에 오로지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판결했고, 이에 인천지검은 받아들이고 항소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사건판결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세상은 원리원칙, 공정, 정의로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누가 이 어머니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도 음행을 저지른 여인이 돌에 맞아 죽을 지경에 처하자 그녀에게 다가가 돌 던지는 자들을 막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그리고 그 후에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원리는 칼로 물을 자드릇이 할 수 없습니다. 더 큰 원리가 있습니다. 더 넓고 깊은 원리가 있는 것이죠.

 


나니아 연대기는 C.S.루이스가 손자들에게 성경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기 위해서 만든 소설로 동양에 판타지소설의 최고를 서유기로 꼽는다면, 서양은 나니아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을 꼽는데, 한 대목을 읽어드리죠. "마녀는 심오한 마법을 알긴 하지만 그보다 더 심오한 마법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지. 마녀는 태초 이후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마녀가 태초 이전의 고요와 어둠이 존재하던 때를 조금이라도 더 내다볼 수 있었다면 다른 마법이 있다는 것도 알았을 게다. 결백한 자가 반역자의 죄를 대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바치면 돌 탁자는 깨지고 죽음 그 자체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지." 바로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류의 죄를 짊어졌기에 사형을 당하는 것이 공의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다 더 심오한 마법, "죄가 생기기 전의 삼위일체 하나님이 가지고 있던 섬김의 원리"때문에 예수는 다시 부활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31절에서 예수님은 이 세상이 알기 원하는 것은 "31오직 내가 아버지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며, 아버지를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여 희생에 순종함으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 그것을 하나님보다 높아지려고 했던 사단마귀는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3) 지금 내가 사는 세상
한 신학자가 말했습니다. "예수는 높아지기 위해서 십자가로 갔다"고 말이죠. 예수는 여러분에게 각자의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각자의 배역이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쟁취하십시오. 그 배역에서 훔쳐내십시오. 그곳에서 섬김으로 높아지십시오. 이번 부활절까지 우리가 각자 섬기러 나아가기를 결단하는 영역 또는 사람을 두고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학교와 인생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가르침을 먼저 받고 시험을 치지만, 인생에서는 시험을 먼저 치고 그게 가르침을 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땅에서의 삶은 학교라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진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인생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와서 왕으로 다스릴 때가 진짜 인생이라고 말해줍니다. "29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30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 우리는 제자들 곁에서 우리가 각자 받은 영역들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속한 가정, 직장, 이웃, 사회, 교회는 우리의 학교입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곳입니다. 각 영역에서 우리는 "섬김과 희생으로 그 공동체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높아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이 원리가 진짜구나! 이 원리가 통하는구나!를 경험하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사는 세상이 끝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높아지고 싶습니다. 지금 높아지고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여기서 누려야만 됩니다. 그래서 지금 높아지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초조합니다. 높아진 사람들을 보면 열등감이 듭니다. 또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를 추월할까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지금 인정받고 싶습니다. 높아져서 내가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받고 싶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무엇을, 어떤 원리를 믿고 살아가고 계십니까? 과연 지금 내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이 마지막이고 끝인게 확실합니까? 그런데 우리는 진짜 세상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우주의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양심이 내 안에 어디에 있는 지도 모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을 다루는 투자전문가들 조차 투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심리학"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학교"입니다. 이 학교에서 진짜 배워야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원리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을 움직였던 임금 사탄, 그 임금이 어찌할 수 없었던 진짜 왕 예수, 그리고 그 이전부터 이 세상의 원재료가 되었던 "섬김과 순종"으로 이 세상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 진짜 세상입니다. 그래서 천국이라는 진짜 세상에 가서 우리가 실력발휘를 하려면, 이 땅 학교에서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교회는 점점 섬김의 재정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섬김의 소그룹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를 소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목사와 중직자를 서비스업 대하듯이 하지 마십시오. 여기는 섬기는 곳입니다. 희생하는 곳입니다. 낮아지는 곳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모른다면 섬기는 자들을 통해 배우십시오. 예수를 아는 중직자라면 섬기고 희생하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 "낮아지면 높아지는 원리"를 배워서 나아가야 합니다. 교회에서의 원리가 일상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검증하셔야 합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천국에서 제대로 살아내야 할 시간을 앞둔 자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날씨가 교통사망사고의 원인이 될 때 1순위가 무엇일까요? 낙뢰, 우박, 강풍? 아닙니다. 안개입니다. 네. 보이지 않는 길을 무작정 가는 것만큼 가장 위험한 길은 없습니다. 요즘 부동산, 주식, 투자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벌써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이렇게 걸어서는 우리는 남은 길을 걸을 수 없습니다. 삼위하나님이 이미 사셨던 길, 예수님이 순종하시며 걸으셨던 길, 우리의 수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걸었던 그길. 섬김의 그 길이 지금 우리나라를 만들었고, 한국교회를 만들었고, 여러분의 살아가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 길을 마저 함께 걸어나가는 우리 행복한교회 동역자들 동반자들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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