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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내 안에_요14장

내안에(5)_알리라

by 우루사야 2023. 1. 26.

제목 : 홀로서기
본문 : 요 14장 12-14절

1. 서론
1) 예화
야생동물들은 양육하는 시기가 매우 짧습니다. 팬더의 경우 새끼를 낳아 2년을 기른 후 성체에 가까운 90kg이 되면 독립을 시킵니다. 캥거루나 코알라의 경우 이보다 짧은 1년이 채 안되어서 독립을 시킵니다. 그 때부터 새끼들은 어미의 영역을 떠나 더 넓고 다양한 지역과 존재들을 만나고 거기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짝을 만나서 또 다른 새끼를 낳지요. 사람은 아기를 10개월 품는다는 것부터 시작해 20년 동안 돌보고 나서야 독립을 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매우 색다릅니다. 기간이 매우 길지요. 우선은 인간이 신체적 한계가 야생동물에 비해서 현저히 낮거나 취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이 다른 동물에 비해서 가진 특성 때문입니다. 특히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양심이라는 것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각 나라는 한 아이가 태어나면 성숙한 양심을 소유할 수 있도록 공통된 교육을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가르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양심은 매우 중요한 특이점이 됩니다. 야생동물 이야기로 돌아가보죠. 야생동물이나 인간이나 새끼나 아기를 낳으면 일정기간 돌보고 독립을 시킵니다. 야생동물이 새끼가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먹는 방법, 자는 방법을 가르친다면, 인간은 그것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양심을 가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알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지요.

2) 주제
성경에서는 이 양심의 위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기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라고까지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양심에 성령 하나님이 계셔서 일반사회보다 더 높은 수준의 양심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사랑"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양심 속에서 높은 수준의 양심과 함께 그 양심대로 순종할 수 있는 사랑의 마음, 그대로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되는 용기, 그것을 세상에서 계속 지킬 수 있도록 지혜 등을 주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동물들과 다른 삶을, 그러면서도 동물을 비롯해 일반세상을 사랑으로 섬기며 다스리며 중심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각 처소에서 신앙인의 양심을 가지고 세상과는 구별되는 높은 수준의 사랑으로 중심역할을 도맡아 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교회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 곳에서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두 번째 문제입니다. 첫번째는 우리의 일상의 자리에서 우리의 양심을 살아내는 것이 가장 먼저겠습니다.

3) 본문잇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예수를 대신 하여 일하게 될 것"이며 더 나아가 "지금보다 더 큰 일"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보다 더 뛰어난 존재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살아생전에 사람을 치유하시고,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신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있겠습니까? 이 말은 예수라는 육신과 함께 있는 제자들의 상태가 예수와 헤어짐으로써 예수가 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우리 양심에 들어오시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놀라운 존재가 되어 놀라운 일을 하게 된다는 의미죠. 일반적인 인간의 사회적 독립이나 야생동물의 독립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심으로써 우리가 어떤 놀라운 존재가 되었는지 믿으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홀로서기로 대견해지기를
어미가 가장 보람될 때에는 새끼가 홀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나가며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간으로 보자면 부모는 성공하는 것보다 사람구실할 때 가장 보람될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보실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영적영역을 구축해나가는 것을 보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12절입니다.

12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고, 더 나아가 "그보다 큰 일, 그러니까 위대한 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여기서 큰일을 제가 위대한 일이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아기가 부모의 가르침으로 대견한 일을 하게 될 때처럼, 죄인인 우리가 수준 높은 양심의 일을 하게 되는 일이기 때문에 위대한 일이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옆에 없어도 스스로 선한 일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결정하여 그것을 실천하면 부모가 대견해하듯이, 예수가 곁에 없어도 마음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그 힘과 능력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말씀을 전하고 중보기도를 하는 것. 이렇게 교회를 이루어 서로를 보듬으며, 공동체가 없어 홀로 고아와 같이 있는 이들을 초대해 함께 하며 교제하는 것. 그것을 하나님은 관심있으시며, 예수님은 큰 일이라고 여기시고, 그것 때문에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시다시피 하나님의 목적은 여러분의 세속적인 성공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계실 때보다 더 큰일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과거의 일이라서 또는 너무 초자연적인 일이라서 와닿지 않으신다구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라는 이름을 통해 모이는 신자의 수가 세계적으로 몇명입니까? 전세계 인구의 1/3인 21억명입니다. 이것보다 우리가 어떻게 더 큰일을 하게 될까요? 지금 여기서 큰일은 우리의 세속적인 규모의 기준, 힘의 기준이 아닙니다. 자녀가 독립해 대견한 일을 하듯, 죄인이 변화하여 사람을 살리는 일을 말하는 겁니다. 그 독립의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예수가 제자들을 떠나시는 겁니다.

그런데 12절에 보니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자는 누구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나를 믿는 자"라고 말해주고 계십니다. 이것은 특별히 임명받은 어떤 극소수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수가 한 약속들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실현될 것이라고 말해주십니다. 지금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 하나님이 임재해 계십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 다음 약속도 실현될 겁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한 일들이 시작될 것입니다. 고아와 같이 계시지 마십시오. 여러분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십시오.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심과 하나님이 심겨두신 구원의 약속이 깨달아질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 자가 되시면, 하나님 보시기에 대견한 일, 위대한 일을 시작하실 겁니다. 그래서 1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여러분의 홀로서기는 하나님의 자랑이 됩니다. 마치 아들의 자립이 부모의 자랑이 되듯, 여러분의 양심을 가지고 사랑하며 영적으로 구축해나가는 여러분의 가정, 일상, 직장, 교회 소그룹은 하나님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2) 눈 앞에 없으신 예수께 요청해 대견해지를
본문 13-14절입니다. "13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14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님은 반복해서 "구하면 내가 행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전제가 "내 이름"입니다. 한 때 기독교에서 열풍을 불었던 문장이 있습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입니다. 이 문장이 주는 임팩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예수에 대한 이미지를 내 마음대로 만들어서 합리화하게 됩니다. 그 앞에 수 많은 "~~한 예수"라는 인식이 올바로 있어야,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수준 높은 양심을 가지고 기독교인답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A의 예수, B의 예수, C의 예수…가 있습니다. 그 예수를 알아가며 예수의 이름을 명확하게 불러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특히 오늘 예수님은 명확히 제자들을 "떠나가시며 성령을 주신 예수"라는 사실과 함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행하실 예수"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는 전자를 잊어버리고, 무엇이든지 구하면 행하실 예수만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내 눈 앞에 계시지는 않은 예수, 그럼에도 나에게 역사하실 수 있는 예수, 특히 내 양심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는 예수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무엇이든지 구하면 행하실 예수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눈 앞이 아니라 하늘에 계시는 예수 : 예수는 지금 제자들을 떠나 어디로 가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바로 하늘나라로 가시겠다는 겁니다. 하늘이라는 것은 우리 가시거리에 있는 구름 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눈과 가시조건을 뛰어넘는 초자연적 세계를 말합니다. 영적세계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예수를 제대로 부를 수 없겠지요. 마음의 존재에 대해서 많은 과학자들의 가시적인 위치를 찾으려고 했지만 찾지 못했지요. 뇌의 어느 지점이라고 추정말 할뿐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우리의 영혼입니다. 정신이요 의지요 양심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음을 우리 자신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 앞에 없지만, 영적세계로 가신 예수를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만 있을 일이 아닌 그 밖의 위대하고 대견한 일들을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위임받은 예수 : 그렇다면 그 예수는 그곳에서 무엇을 하십니까?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는 복음을 전하다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무엇을 봅니까? "55스데반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7장) 그리고 그는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끝까지 동족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스데반은 우편에 앉으신 예수가 가진 권한을 통해 그들의 죄를 사해주실 것을 요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편에 앉으신 예수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권한과 능력을 가지신 예수를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성령 하나님을 통해 역사하시는 예수 : 사도 바울은 본래 아시아에서만 사역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니 그는 마게도냐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움을 가지게 되었고 그 길로 그들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유럽전역으로 복음이 전해질 교두보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 눈 앞에서는 예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세계에서 계획된 일들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바울에게 메시지를 주시니 그는 그곳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눈 앞에는 예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영적세계에서 권한을 가지고 여러분 마음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동역하십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은 예수의 뜻을 여러분에게 전달하십니다. 그런 예수를 고백하며 여러분이 그 길을 가는데 있어서 구하실 것이 있다면 예수는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3) 신앙을 가지려 하는 자에게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속에 놓여있는지 제가 명확하게 모두 하나하나 알 수는 없습니다. 그 상황에 대해서 가장 잘 아실 수 있고 또 알아야만 하는 분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영적세계에서는 그 지혜와 용기가 내려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받아서 이 땅에서 살아내셔야 합니다. 이 땅에 없는 예수, 하나님 우편에서 힘을 내려보내시는 예수, 성령을 통해 주실 예수. 그 예수께 구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제가 지난 주에 참 고민이 빠졌던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1년동안 고생해서 태권도를 익혀 1단을 딸 수 있는 자격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 심사가 주일에 강남 국기원에서 이뤄진다는 겁니다.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나는 주일예배를 고민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속내가 있는가? 그래서 제 양심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주일예배를 고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겉치레였고, 그 속마음에는 1년치 학원비가 아까웠던 겁니다. 그러면서 지혜를 명쾌하게 주시더군요. 예배의 자격과 태권도 1단의 자격 중 무엇이 더 소중한지 바꿔서 생각하라는 지혜였습니다. 예배의 자격이지요. 그렇게 정리하고 아들에게 물어보니, 아들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자기는 태권도 1단 필요 없다고, 예배드리겠다고 하더군요. 저는 지금 아들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자신이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살았는지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금 제 앞에 예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더 저를 잘 보고 계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예수는 너무나도 명확하게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우편에 앉으셔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마음도 만져주셔서 함께 귀한 예배의 자격을 택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삼위일체 안에서 부자지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이 관계를 예수님이 대견하다고, 큰 일을 했다고 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가정에서만 그쳐서는 안되겠습니다. 여러분의 일상과 직장에서도 이뤄지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는 곳곳에서 여러분을 통해서 선한 일을 이뤄가시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속에서 대견한 일들이 일어나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땅에 계시지 않으시지만, 하늘 우편에서 막강한 능력과 지혜를 내리셔서, 우리 양심에서 그것이 임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 세계로 들어오시길 바랍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가장 대견한 일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어린아이가 부모의 고됨과 아픔을 이해하고 도울 때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되시지는 읺으시지만 마음아파하시는 분이십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무엇을 의지해야할지 몰라 방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소망을 찾아야 할지도요. 진리를 들고 그들에게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아닐까요?

그간 요한복음 14:20을 중심으로 5주 동안 실재적인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교회의 새신자 교재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라는 나무에 젓붙임받아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나님을 볼 수 있냐고,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냐고, 어떻게 하나님 뜻을 알 수 있냐는 질문에 대답하실 수 있으셔야 합니다. 설명하실 수 있으셔야 합니다.

5주간 예수가 하나님 안에 있고, 우리가 예수 안에 있고, 예수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성령이 마침내 예수가 사라진 뒤에 오셔서 우리 모두 안에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으로 가장 큰 일 대견한 일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배웠고, 이뤄지고 있고, 누군가는 이미 이 세계에서 놀라운 대견한 일을 하고 있음을 다뤘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나의 가정에, 나의 직장에, 나의 일상에, 나의 교회에 이 진리를 설명하고 가르치며 나아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20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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