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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내 안에_요14장

내 안에(2)_내가 아버지 안에_하나님께로 가는 길

by 우루사야 2023. 1. 8.

제목. 아버지 안에
본문. 14: 4-7,10


1. 서론
1) 부전자전, 피는 속인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있지요. 아들의 모습과 아버지의 모습이 빼닮았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표현으로 피는 속인다고도 하지요. 보통 체육계에서 많이들 나타나는데 바람의 아들이라고 불렸던 기아 타이거즈의 이종범 선수의 아들 이정후 선수가 대표적이겠죠. 우리 신앙에서도 이러한 대를 이어 나타나는 신앙의 열심이 소개되어지기도 하는데, 디모데의 어머니 유니게 그리고 외할머니 로이스 3대가 소개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대를 이어서 기질, 성향, 신앙 등이 전수되기도 합니다. 또한 아버지 이규섭 목사님의 창조경륜과 어머니 서교자 사모님의 기도소리가 항상 심령 가운데 울림으로 존재합니다. 언젠가 제가 기도하는 소리를 아이들이 따라하더군요. 이렇게 부전자전, 모전자전이 생겨납니다. 그렇게 자녀는 부모의 현실판입니다. 1983년에 성수동에서 개척하던 청년 이규섭이 2023 이사야로 나타나듯이 말이죠.

2) 주제
성경에는 이런 부전자전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두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부전자전이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이지요. 이종범 선수의 체력이, 이규섭 목사님의 영성이 자녀에게 나타나듯, 하나님의 모습이 그의 아들 예수에게 나타나고, 예수는 우리에게도 나타나도록 계획되어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부전자전은 여기서 한발자국 나아가 신비하기까지 합니다. "7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아버지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보았느니라"(14) 예수를 것은 하나님을 것이라고, 예수를 만난 것은 하나님을 만난 것이라고까지 말하십니다. 11절에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안에 계시다고 말을 믿어라" 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없는 것에는 모순이거나 역설도 있지만, 신비도 있습니다. 신비하기에 우리가 믿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경험해보며 믿고, 믿으면서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옛날에 태양이 지구를 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나중에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알게 것처럼 말이죠. 우리는 그것을 우주에서 보지 않았지만, 그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다 보면 신비하게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3) 본문잇기
코로나로 인해서 교회가 많이들 휘청거렸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중심을 잡아야 하겠습니다. 흔들릴 진짜가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믿는 것이 무엇인지가 드러납니다. 예수를 따르면서 천국에 가까워지는 간증과 고백, 나눔이 우리교회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경륜을 삶으로 살아내면서, 구속사에 대한 도전과 확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2
동안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계신 예수를 살아내는 삶을 결단하기 소망합니다. 그래서 3월에 소그룹으로 모여서 예수를 믿어서 어떤 한주를 보냈는지를 나눌 있는 건강한 소그룹을 시작하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배부를 없지요. 그런데 이게 우리의 목회, 우리의 존재의 이유, 우리의 신앙의 이유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지난시간에 이어 살아계신 예수를 어떻게 경험하며 사는 것인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2. 본론
1) 중간과정, 연결고리
지난 본문에서처럼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죽으러 가시면서도, 근심하지 말라, 고아와 같이 절대 두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먼저 가는 길을 제자들도 따라올 있다고까지 하셨습니다. 4절입니다. "4내가 어디로 가는지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여러분. 상관관계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름달과 심장수술간의 상관관계 어떠십니까? 불현듯 떠올려지는 중간고리가 없지요. 코펜하겐 대학연구팀은 보름달이 떴을 심장수술을 사람들의 회복속도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4일이나 빠르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가운데에는 만유인력이라는 원리가 있었습니다. 달이 가까울수록 달이 끌어당기는 힘으로 인해서 바닷물이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처럼, 우리 인체에도 영향을 주는데 특히 호르몬에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수술의 성패를 가를정도인지는 연구를 해보아야 한다고는 합니다만, 만유인력의 법칙 모든 것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고리를 통해서 달과 심장수술간의 연결고리가 이해가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여러분이라는 당장에 연결고리가 없어보이는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셨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은 "내가 어디로 가는지 길을 너희가 " 정도다라고까지 하십니다. 예수님이 지금 죽어서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가시는 길인데, 길을 여러분이 스스로 있는 때가 지금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연결고리를 못찾은 도마가 이렇게 묻습니다. "5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그러자 예수님은 자신을 , 진리,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결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7절입니다. "7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보았느니라" 달과 심장수술사이에 만유인력법칙이 작용하듯,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예수라는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를 알면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 한번 거쳐서 이해되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여러분,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1-2 들어가는 경기임에도 90 내내 재미있다고 하십니다. 중간과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야구나 골프 중간과정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뜸들이는 시간들이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는 축구만 보게 되는 같습니다. 한번은 아내와 옷을 사러 갔는데, 저는 재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하나를 사는데 색감, 가지고 있는 옷과의 어울리는 정도, 방한, 무게 등을 고려하더군요. 그러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가더군요. 중간과정, 연결고리. 이것이 없으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뿐더러,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좋은 것으로 여길 없고 따분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그렇습니다. 결코 하나님을 아무리 설명해줘도 절대 여러분은 그냥 하나님을 없습니다. 중간과정, 연결고리를 알지 않는 이상 결코 하나님에 대해서 없습니다. 

여러분, 예수는 하나님을 소개하기 위한 연결고리로 오셨습니다. 교회가 예수가 없으면 교회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인데, 여러분 안에 예수가 없으면 우리는 몸이 없는 머리만 있는 교회가 됩니다. 특히 중직자, 제직자 여러분. 여러분 안에 예수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들과 연결되셔야 합니다. 고통가운데 주시는 위로로 연결되셔야 합니다. 막힌 영적상태에서 하늘이 열리도록 연결되셔야 합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열심히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은들, 예수를 알지 못하고 멋대로 하나님을 부른다고 한들 결코 하늘의 응답은 없습니다. 상관관계, 인과관계를 이해하시고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셔야 합니다. 

2) 예수를 아는 .
그럼 초월적이고 신비하며 기적이 있는 하늘로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요? 6절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한번 걸쳐서 하나님께 연결되는 것으로 , 진리,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저희 아이들하고 차를 타고 가면 탄지 5분만에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언제 도착해? 얼마나 걸려?" 자동차가 어디론가 때의 이동시간과 경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마치 우리가 천국을 가는 길에 대해서 단순하게 생각하며 착하게 살면, 교회에 다니면, 세례를 받으면 된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죠. 결코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고, 하늘로 올라가서 우리 눈앞에 없음에도 "저절로 알게 되는 예수를 따르는 " 통해 우리는 예수를 따라 천국에 다다를 있게 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6절입니다. "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길이요 진리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
천국이라는 유토피아를 마술을 부려 도착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도달하는 곳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예수의 " 따르는 것으로 도달한다고 말해주고 계십니다. 그것에 대해서 3가지 이미지를 사용하셨습니다. 첫번째로 예수라는 길을 가야 있다고 하십니다. 잠실이야 자전거를 있고, 삼성동은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가야겠고, 부산은 기차나 자동차를 타야겠지요. 천국은요? 천국은 무얼타고 가야 합니까? 예수의 등입니다. 예수께 엎혀가야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길입니다. 예수의 인생, 예수의 가르침, 예수의 결정과 판단을 따르는 것이 예수의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 예수의 섬김, 예수의 죽음에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의 길에는 돌아가는 길이 없습니다. 잠실가는 길이 잠실대교 바로 건너서 가든, 수영해서 가든, 올림픽대교로 돌아서 가든지 있지요. 그런데 천국가는 길은 "예수의 단호한 한가지 선택"밖에 없다고 말해주십니다.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없습니다. 술에 취하든 성령으로 충만하든지 입니다. 나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든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든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하십니다. 재물은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고 세상의 것으로 정신을 잃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는 죄인이고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하십니다.
두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예수께 엎혀 가는 길이며, 예수의 단호한 선택에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생명을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14:20에서 "그날" 지금 현세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현세에서 우리는 "천국의 생명"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의 등에 엎혀, 예수의 단호한 한가지 선택인 하나님을 따라 선택하며, 지금 자리에서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맛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통해 부전자전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초월적인 인생을 살게 되고, 돈으로는 결코 없는 것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빠, 언제 도착해라고 묻던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언제 도착하냐고 묻는 미숙한 신앙인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때로는 가는 길이 외롭고 힘든이의 손을 잡아줄 있는 성숙한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초월적인 인생들을 바라봅니다. 모두가 "일하지 않고 얻는 불로소득" 원합니다. 직장인이 세금으로 국가에게 빼앗길 때에, 투자자의 불로소득을 얻어서 일하지 않고도 소득을 얻는 길을 얻으라고 합니다. 세금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동체의 고백입니다. 일하는 것은 이웃의 삶의 인프라를 위해 구성원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플 일하는 의사와, 의료보험혜택과, 그럼으로써 치유되는 육신은 모두 타인의 세금과 노동의 헌신으로 인해 가능한 것인데, 우리가 바라는 초월적인 인생은 너무나도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초월적인 인생을 예수를 통해서 살아내라고 말합니다. 

3) 하고 싶은 , 봐야만 하는
고도화된 우리 사회를 경제학자들은 "소비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고도로 발전하지 못한 후진국의 경우 생산의 과정 가운데 있다고들 말합니다. 소비보다는 생산하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 재정이 쓰이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도 50 전만 해도 일하다가 한주가 끝났지요. 여가와 취미라는 것이 그다지 각광받지 못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6제였지요. 그런데 학자가 말하는 것은 모든 나라가 결국 도달하게 되는 것이 소비의 시대로 향하게 된다는 겁니다. 재화가 주어지면 내가 원하는 소비를 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종교도 소비하는 시대가 지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에서 예수님은 살아내라고 하십니다. 돈만 내서 종교적인 안정감을 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살아내라고 하십니다. 예수가 길되는 것을 발견하고, 예수밖에는 길이 없다는 진리라는 것을 경험하고, 예수를 통해서 생명을 얻다보니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깨달으라고 말하시는 겁니다. 근심하고 불안해하는 제자들이 그렇게 예수를 따라 천국으로 따라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코 신앙을 소비하려 하지 마십시오. 헌금함으로써 종교적인 욕구를 채우려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예수를 따라 사셔야 합니다. 여러분에게서 부전자전이 보여야 합니다. 피는 속인다고, 결국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정을 받아내셔야 합니다. 

 

투자계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앞선 양의 엉덩이만 보고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양떼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모두가 멀리 봐야 한다고, 투자란 사람심리에 속아넘어가서 하면 망한다고 다들 말하지만, 결국에는 바로 앞에 있는 욕심을 따라가다 망하기 마련이라는 이야기지요. 저는 말이 사람의 속성을 너무나도 말해주는듯 합니다. 성경에서 오히려 우리를 향해서 양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앞에 한발자국 앞선 양의 엉덩이만이 나의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라고 여기면서 말이죠. 나보다 앞선 선배의 성공, 나보다 일찍 결혼해서 자녀공부를 성공시킨 이의 양육, 나보다 넓은 평수의 부동산을 얻게 이의 투자. 그것이 나의 생명, 진리, 길이라고 여기지요. 그런데 넓게 멀리 숙고할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의 등에 엎히면 높은 곳을 있습니다. 헷갈리지 않고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위에서 얻게 되는 위로와 힘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예수를 따라 살아갈 있게 됩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예수님과 부전자전이며, 우리가 예수의 길을 걸을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부전자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 그날은 천국에 때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때라고 말씀해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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