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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갈라디아서_다른 복음은 없나니

갈 4:12-20

by 우루사야 2023. 1. 17.

12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16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17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18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20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바울의 강론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바울은 잠시 쉬어가며 그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자 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따라 오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복음사역을 막고자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유대교인뿐만 아니라 복음과 율법을 혼합시켜 할례와 같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유사기독교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계속 따라다니며 핍박하고 괴롭혔습니다. 갈라디아교회에 복음을 전했을 때와 그 후에도 그들은 바울과 이 교회를 괴롭혔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항변하는 편지를 써서 교회를 지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은 강론보다는 심금을 울리는 부분이겠습니다. 12-14절입니다. 

12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13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14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바울은 갈라디아교인들과의 첫만남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순수함은 핍박받으며 사역하는 바울을 기쁘게 영접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보듯이 바울을 대해주었습니다. 우리가 바울서신 여러곳에서 알 수 있다시피, 바울의 외형적인 모습은 그리 빼어나지 않았습니다. 대머리나 육체의 가시라고 표현되는 단어들이 항상 붙어다닐만큼 바울의 모습은 준수함과 거리가 멀었죠.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14절) 그럼에도 갈라디아교인들은 바울의 복음을 환대했습니다. 그가 믿고 경험하고 전하는 복음을 그들은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순수함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복음이 더 이상 와닿지 않는 이유는 "계산하는 마음"때문이겠습니다. 복음을 들음으로써 내가 얻을 유익들을 계산합니다. 복음에 순종함으로써 나에게 다가올 유익을 계산합니다. 그러니 복음이 복음으로 들리지 않고, 신앙이 신앙으로 마음에 새겨지지 않습니다. 말씀, 복음, 진리로 표현되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향해서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아야 합니다. 계산하고 따져보고 내가 얻을 것만 취하려할 때 결코 들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교인들의 첫신앙은 순수함으로 바울을 대할 정도였습니다. 12절과 같이 서로의 모습이 서로의 모습이 되길르 바라는, 서로 가장 좋은 모습임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그런 관계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죠. 계산이, 인간의 생각이, 육체의 욕심이 틈을 타고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복음을 변질시키려 합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서 신앙을 가지려고 합니다. 결국에는 바울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15-17절입니다 .

15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16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17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율법을 전면에 내세워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고 하지만, 결국 속내는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고 하는 거짓형제들이 바울과 교인들 사이를 벌려놓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들은 바울의 복음을 비하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주장했지요. 그들도 열정과 열심을 내서 갈라디아교인들을 설득했습니다. 바울을 비난하면서 그의 복음은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치밀한 논리로 갈라디아교인들을 흔들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은 외식이었습니다. 자신이 교회에서 높아지고 했습니다. 헌신하기보다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할례를 받지 않은 자는 자신과 같이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금식하지 않는 자는 자신과 같이 금식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날과 절기들을 자신과 같이 지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로지 거짓형제들이 자신의 수준까지 올라와야 한다고만 말하는 그들의 기준만을 내세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 하나로도 충분한 이 상태가 갈라디아교인의 상태가 되기를, 그렇게 만났던 갈라디아 교인들의 영혼이 바울 자신의 영혼의 상태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며 섬기기에 "눈이라도 빼어 자신에게 줄 정도로 섬겼던 갈라디아교인들의 사랑"을 바울은 기억하며 쓰고 있습니다. 18-20절입니다. 

18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19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20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바울은 그런 순수하고 선한 관계가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며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지금도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는 마음이 있음을 밝힙니다. 그 목적은 단 한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갈라디아교인들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라고 표현된 이 표현은, 예수님의 기준, 예수님의 행하심, 예수님의 사랑하심이겠지요. 그것을 위해서 바울은 첫번째 만나 복음을 전할 때처럼, 지금 그들이 성숙해지는데 있어서 그만큼의 수고는 얼마든지 다시 결단하겠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갈라디아교회가 흔들리고 있고 다른복음을 받아들이려 한다는 의혹에 있어서 바울은 지금 얼마든지 다시 수고하겠다는 마음을 표현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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