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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갈라디아서_다른 복음은 없나니

갈 5:19-26

by 우루사야 2023. 1. 17.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오늘도 성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바울은 율법을 넘어서서 예수의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자유인의 실생활에 대해서 말해주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죄를 승리했습니다. 그래서 율법보다 더 고차원적이고 더 거룩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살게 되는 거룩한 삶은 우리가 하나님 곁으로 가서 받게 될 성읍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교본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예수의 양심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그 구체적인 삶에 대해서 말해주고자 합니다. 어제 육체의 욕심과 성령을 따르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나의 죄성을 따를 것이냐, 예수의 양심을 따를 것이냐. 이것은 어둠과 빛입니다. 그래서 어둠의 삶과 빛의 삶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9-21절 먼저 육체의 욕심 어둠의 인생입니다.
19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20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21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바울은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즉 예수의 양심을 가지지 않는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행동양식으로써, 지금 거짓형제들의 삶을 바라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갈라디아교인들도 자신을 점검해보라는 것입니다. 예수가 안에 있어서 율법을 뛰어넘는 양심의 기준을 가진 자들은 결코 이런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라고 단호하게 기준을 내세운 것이지요. 이것들의 공통점은 제가 계속 말씀드린 바와 같이 "자기자신만을 향하는 것"입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은 성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함을 말합니다. 음행은 자기자신이 느끼는 정욕을 중심으로 하는 것, 더러운 것은, 그 정욕의 행동으로 발생되는 수 많은 음란한 것들, 호색은 자기정욕만으로 나타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그다음 우상숭배, 주술은 하나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마귀와 관계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누군가 계속 미워하여 원수맺는 것, 그 원수맺음의 결과인 분쟁, 그렇게 남을 미워하는 태도인 시기와 분냄, 그렇게 하여 타인을 원수맺는 일에 동참시키고자 하는 당짓기와 분열함,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을 아는 것보다 더 육체의 욕심을 우선시하는 교리를 만드는 이단만들기까지 오게 됩니다. 그 밖에도 남들을 향해 불평하는 투기, 정신을 잃게 만드는 술취함이나 다른 것의 중독으로 인해 사리판단을 못하는 방탕도 자기자신의 욕구만을 향하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러한 것들을 경계하라고 계속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예수의 양심이 아니라 죄를 양심에 둠으로써 결국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되지 못하고 다스리는 자가 되지 못하게 됩니다. 양심의 기준이 자기자신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반대로, 빛의 자녀, 예수를 양심에 두고 다스리는 자, 자유자, 상속자가 되는 자의 모습은 어떠하겠습니까? 22-23절입니다.

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예수의 양심을 기준으로 살고자 하는 자는 이와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이 옆에서 도우시기에 성령의 열매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율법을 넘어서는 사랑의 열매들이기에, 율법이 고소할 수 없는 고차원적이고 거룩한 삶입니다. 24절에 보니 "

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의 양심을 가진 예수의 사람들은 이미 고소고발이 다 끝났습니다. 예수가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사람들은 예수를 양심에 모심으로써, 정욕과 탐심과 그것을 고소하고자 하는 율법을 뛰어넘게 되었습니다. 예수와 성령이 주시는 의로움을 향한 욕구,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용기, 사랑할 수 있는 지혜들을 얻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예수의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십자가 앞에서 죄와의 관계를 모두 청산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제 더이상 마귀로부터의 자책, 죄로부터의 고소고발을 받지 않게 됩니다. 자유인으로써 사랑하는 자가 되어 금지할 누구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니 희락기쁨이 넘칩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이웃과 평화를 유지하게 되고, 자신이 평안으로 드어가게 됩니다. 때때로 갈등과 시기를 가진 자 앞에서 오래참음으로, 어려움 당항 자 앞에서 너그러운 자비함으로, 누구에게나 선한태도로 양선한 자가 되며, 말과 행동에 있어서 질서와 진실에 있어서 충성됨을 보여줍니다. 그런 자들은 성급하게 화내지 않는 온유, 조급하지 않는 절제를 함께 보여줍니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양심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25-26절 권면으로 바울은 이번 단락을 마칩니다.

25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26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육체의 욕심과 성령을 따르는 것은 분명합니다. 전자는 자기자신을 향하는 것이고 후자는 타인을 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극복하지 않으면 결코 이룰 수 없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구약성도보다 분명하게 죄와 약속을 깨닫고 알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심으로써 우리는 훨씬 큰 은혜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며 오늘도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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