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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베드로후서_교회 속의 세상

벧후 2:17-22

by 우루사야 2022. 12. 22.

17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20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오늘도 성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천국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구원의 이 길, 예수님이 마련해주신 죄사함의 길, 성령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사랑과 연합의 길 잘 걸어나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거짓선지자에 대한 주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편지 서두에서부터 "진리"에 대해서 강조해왔습니다.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지라도 가장 중요한 것을 유산으로 베드로는 남기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함으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겠지요. 그러나 거짓선지자들, 거짓선생은 다른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헌신하여 다른 것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그 다른 것들이 가지각색으로 나타나겠지만, 공통점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위해 신앙을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이겠지요. 오늘 베드로는 이 이야기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18절입니다. 

18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중에서 유혹하는도다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거짓선생들의 심령 안에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정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베드로는 육체의 정욕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성적인 욕구나 육체적인 배고픔에 의한 욕구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지적욕구, 성적욕구, 심적욕구 등 넓은 의미에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모든 욕구를 말합니다. 거짓선지자들은 자기자신의 욕구를 중심에 둔 자들입니다. 즉 자기자신이 중심에 있는 자이지요. 그렇다보니 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속이거나 거짓으로 가르치려 듭니다. 그러니 진실하지 못한 실체가 없는 허망하고 허탄한 것들을 가르치되, 마치 진짜인 것 마냥 진리인것 마냥 말하기 위해 자랑하듯 자신만만하게 말합니다. 결코 성령의 열매가 보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성결하고 거룩한 성품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마음을 나뉘게 만들고 덕이 없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기보다, 나약한 그들을 더 손쉽게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으십니다. 

 

 

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2삯꾼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요10장)

참목자는 생명의 확신이 있기에 목숨을 버리고 제 양들을 풍성하게 합니다. 그러나 도둑은 빈궁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빼앗으려 합니다. 자기 살길만 찾는 자입니다. 17절입니다. "17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삯꾼이자 도둑이나 베드로가 말하는 거짓선생이나 다를바가 없어 보입니다. 가진 것이 허탄한 거짓밖에 없는 물 없는 우물이요, 뿌리가 없어 서있거나 머물지 못하는 바람에 밀리는 안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으로 이리저리 사람들을 뒤흔들고 빼앗으려 하는 그들의 결국은 캄캄한 어둠일 뿐입니다. 

그들은 죄에 묶여 있는 종입니다. 죄에 이미 진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 자유를 준다고, 은혜를 준다고, 은사를 준다고 말한다 하여도 그들은 줄 수 있는 것은 죄의 속박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19절에서 "진자는 이긴자의 종"이 된다고, 거짓선생들은 죄에 이미 진 상태인데 어떻게 그들이 자유를 주겠냐고, 그들은 멸망밖에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

19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물론 그들도 처음에는 예수를 믿어서 죄에서 승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승리를 경험했으면서도, 결국 자기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고자 자신의 정욕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순간입니다. 교회에서, 성도 안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높아지고 유익함을 추구하는 정욕의 거짓선생이 된다면 더 비참한 상태로 되고 말 것입니다. 베드로는 차라리 신앙을 모르던 때가 더 낫다고까지 말해줍니다. 20-21절입니다. 

20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21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마치 가룟유다를 보는듯합니다. 예수님은 유다에게 "24b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마26)다고까지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은혜를 받고 순종한 후에 그 은혜를 저버리고 자신의 욕구를 하나님보다 높이는 자의 말로와 결말이 얼마나 처참하기에 예수님이나 베드로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인지, 우리는 이 경고를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17절에 캄캄한 어둠이라고만 표현했지요.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인생. 그 비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22절입니다. 

22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여러분, 사람은 더러운 옷을 입었다가 깨끗한 옷을 갈아입으면 더러운 옷으로 다시 입으려 하지 않습니다. 깨끗함을 아는 사람은 그렇지요. 그런데 이성이 없는 동물, 깨끗함과 거룩함을 모르는 금수들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더러운 구덩이에 눕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본성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자신을 회개하고 감사할 줄 압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이성을 잃으면, 그래서 자기자신을 더 높이고자 하는 정욕에 빠진 이성없는 자들이 된다면, 그들도 개나 돼지처럼 깨끗함과 더러움을 구분하지 못하고 여전히 더러운 상태로 자기자신을 내몹니다. 은혜를 받기 전, 죄에 속박되어 정욕을 따라 살아가던 그 때로 말이죠. 거짓선생, 거짓목사의 증거들에 대해서 베드로는 말해줍니다. 이 편지를 받는 모든 신자들이 말씀 안에서 분별하기를, 은혜 안에서 분별할 줄 알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참목자가 누구인지, 삯군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이죠.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자기 자신을 낮추고, 섬길 줄 알며, 누군가에게 얻지 않아도 살아계신 예수로 살아가기에 풍성한 목자를 만나야 한다고 말이죠. 오늘 우리 행복한교회 모든 자들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풍성해지고, 서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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