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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삼각관계 매듭짓기_십계명A

매듭짓기04. 사라지는 이름, 살아지는 이름

by 우루사야 2022. 7. 8.

본문 : 출애굽기 3 10-15

제목 : 사라지는 이름, 살아지는 이름

 

1. 서론
목사님께서 자신의 동생 일화를 소개하신 들었습니다. 동생에게 이단이 다가와 질문을 하는데 대답을 못했다는 겁니다. 질문이 "하나님의 이름이 뭡니까?"였습니다. 동생분은 평생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단이 자신이 하는 이야기를 해놓고 나중에는 정답이라고 "여호와"라고 했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굳이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름에 하나님을 가둬놓을 있기 때문이죠. 

 

이사랑 집사를 생각해볼까요. 처음에 이사랑하면 여자일꺼라고들 생각하지만, 이사랑 집사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이사랑 집사 손을 한번 보십시오. 솥뚜껑같습니다. 사랑이라는 부드럽고 따스한 이미지와 이사랑 집사의 외면은 너무 다릅니다. 그리고 이사랑 집사를 알면 내면이 사랑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존재를 이름으로 규정해놓으면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가 잘못 인식할 있기에 ,성경은 하나님의 이름을 알려주기보다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소개해주려고 합니다. 그래서 기존교단에서 양육받으 신분들이 여호와의 이름하면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게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지칭하는 단어보다 "하나님이 하신 "입니다. 분이 하신 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십계명 3계명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계명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분이 하신 일에 걸맞게 불러야 함을 말합니다. 아론의 금송아지를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잘못 만들고, 잘못 지칭하고, 잘못 선포했죠. 이유는 자기자신을 우상화시키려 하나님을 이용했기에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알려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론은 이사건 한참 후에 모세를 만납니다. 아론은 모세에게 들은 하나님의 이름, 모세가 받아온 십계명 속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따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아론이 직접 하나님의 열가지 재앙, 홍해, 만나 등의 사건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자신을 우상화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과 십계명 모두를 버리고 자기 멋대로의 종교를 만들었던 것이죠.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나라는 우상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제멋대로 하나님을 써먹는 그것을 막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세가지를 알려주십니다. 첫번째는 불붙은 떨기나무로 나타나십니다. 그리고서 자리에서 하나님의 이름 2가지를 알려주십니다. 첫번째가 스스로 있는 , 번째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세가지를 통해서 하나님은 모세가 하나님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기를 원하셨습니다. 다른 이름으로 망령되게 하나님을 지칭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혹시 여러분이 마음대로 그리고 있는 하나님은 아니십니까?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생각과 전통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기 위해, 하나님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의 속에 하나님을 똑바로 알고 하나님께 걸맞는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며 하나님과 묶인 매듭이 풀리길 소망합니다.

 

 

2. 본문
1)
하신 일로 소개하시는 하나님

오늘 성경이야기 배경은 애굽에서 나올 때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기 전에 모세를 먼저 만나십니다. 10-12절입니다. 10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11모세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후에 너희가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모세는 애굽 왕가에 입양된 아들로 호화롭게 살아가고 있다가, 자신의 출생의 고민 속에서 왕가에서 나와 광야에서 가장 낮은수준의 직업인 양치는 목자로 살아가고 있었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 이스라엘을 인도할 대표자가 되라고 하시죠. 모세는 자신이 없다고 거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약속을 주시며 다시 설득하시죠. 무언가 내키지 않았던 모세는 처음 뵙는 하나님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집니다. 특히 자신이 결정한다해도 처음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뭐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말합니다. 13-14절입니다. "13모세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14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초면에 통성명을 하기 마련이죠.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이름을 말하십니다. 그런데 보통 우리가 쓰는 이름이 아니라, 하고 있는 일로 소개하십니다. 스스로 있는 ! 그리고 말씀하시는데 15절입니다. "15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아브라함 하나님, 이삭 하나님, 야곱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여기서는 직접적으로 나의 이름, 나의 칭호라고 말씀하시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십니다. 이름이라고 말하기 힘든 같습니다. 이미 죽은 선조들의 하나님이라고 스스로 소개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세가지 때에 하신 일로 자신을 소개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먼저 스스로 있는 분이라는게 무슨 말일까요? 세상의 출발점이라고 하시는 겁니다. 과학자들 중에 오히려 기독교인 비율이 높다고 하죠.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역에 있어서 종교의 존재의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가장 과거를 아는 유일한 자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누군가 만들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하는 자이니 그때로부터 모든 것을 아는 분이시죠. 번째로 하나님은 지금 너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하십니다. 모세가 자기 자신을 판단하기에 "내가 뭐라고 애굽왕에게 갑니까"라고 생각할 있지만, 애굽이 만들어지기 시작 전부터 계셨던 하나님이 함께라면 말이 달라집니다. 과거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 지금 함께 계시니 가장 좋은 전략과 방법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세번째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이들이 복의 근원이 것이라 약속하셨고, 이들이 복을 받아 죽음을 너머 부활의 현장에 있으며, 이것을 이루셨다고 예수님은 마태복음 22장에서 "32나는 아브라함 하나님이요 이삭 하나님이요 야곱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있어서 나보다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계획하시고, 계획을 지금 현재 이루고 계시며, 인생을 완전하게 하셔서 천국의 기둥으로 삼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스스로를 소개하시며, 자신의 이름이라고, 이렇게 기억해달라고 하십니다. 

 

2) 불붙은 떨기나무
하나님께서는 교보재를 사용하십니다. 가시나무에 불을 내리셔서 모세에게 보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4 읽어드립니다. 2여호와의 사자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3이에 모세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때에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 모세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모세에게 소개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가장 크신 분이심을 설명하기 위해 "불붙은 떨기나무" 소개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조금 생각해볼까요? 불이 붙을 필요한 3 조건이 있습니다. 처음 불을 붙일 열에너지, 그리고 열에너지를 유지할 있게 해줄 불탈 재료, 그리고 불이 계속 유지할 있게 해줄 공기 산소입니다. 그런데 불붙은 떨기나무를 보니 이상합니다. 불은 붙었지만 나무가 타지 않는 것입니다. 불은 불태워줘야 재료가 있어야 유지됩니다. 그런데 나무가 타지 않고 있습니다. 반대로 나무는 살려면 수분과 공기가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보여주신 나무는 불때문에 수분과 공기가 사라졌을텐데도 그대로 서있습니다. 불은 나무를 태워야 살고, 나무는 불이 사라져야 수분과 공기를 유지하며 살아 있을 있습니다. 가지는 서로 잡아먹어야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하나님은 두가지가 서로 잡아먹지 않아도 그대로 있게 하실 있는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 인간세상에 있을 수많은 모순과 오류, 문제 속에서도, 약육강식의 원리 속에서, 인과응보의 세계에서 하나님은 그것을 초월하여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약속하고 계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께 오신 예수님, 그리고 지금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함께 계시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은 모세를 계획하시고 이스라엘 사람으로 그리고 애굽왕가로 입양되게끔 하셨습니다. 모세가 과거에 히브리인이면서 애굽왕가에서 교육받은 이유가 실현될 있게 지금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부르고 세우고 계십니다. 모세는 자신의 인생을 양치기인생으로 포기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모세를 부르고 계십니다. 모세의 미래를 볼까요? 모세는 자신의 인생을 양치기 인생이자 이방민족에 흡수되어 살아갈 자로, 그러니까 족보에서 끊어질 자로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이스라엘의 최고의 지도자로 세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과거, 현재, 미래에서 자기의 규모를 규정짓는 것보다  명확하고 정확하게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십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멋대로 규정짓고,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며, 미래에 대해서 소망이 없다고 말할 지언정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끝까지 붙들고 불붙은 나무처럼 모든 문제를 극복하여 인생을 신비한 인생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란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과 욕구에 끼워맞춰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망령되게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인생의 전부를 책임지고 인도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불이나 나무나 사라집니다. 우리의 인생도 사라지는 인생, 사라지는 이름입니다. 아무리 후대가 기억한다 하더라도 결국 인생은 잊혀지는 인생, 사라지는 이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생을 붙드시고 인생을 사용하시고 인생을 쓰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살아지는 인생,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니 놀랍게 살아지는 인생"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말씀을 읽으며 마음의 분주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확신으로 채워야 합니다. 속에서 판단하고 결정하십시오. 그렇게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십시오. 과거, 현재, 미래보다 크시고 놀라우신 하나님과 함께 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난제, 양립할 없는 갈등, 도저히 답안내려지는 미래를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다는 확신을 주실 믿습니다. 

 

3) 적용

사람이 꾸역꾸역 살때가 있고 신나게 살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가지다 모두 힘이 아니라 어떤 힘으로 살아진다는 것입니다. 꾸역꾸역 때에도 정말 포기하고 싶고 집어치우고 싶은데 마음 한켠에 어떤 무거운 책임감때문에 세상짐을 지고 꾸역꾸역 살아내게 됩니다. 신날 때는 말할 것도 없지요. 마음의 동기부여와 목표가 분명하니 지점을 향해 헌신과 생명을 다하게 됩니다. 그런데 책임감과 동기부여가 어디로부터 누가 준것인지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욕심입니까? 그렇다면 사라지는 인생이 것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을 살아지게 하는 인생이 되게끔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사라지는 이름을 위해서 살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만들어낸 망령된 하나님의 잘못된 이름으로 신앙생활하지 마십시오. 모두다 무너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진짜 우리가 저절로 살아지게 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정말 힘들고 지치는데 눈을 감고 부르면 나를 사랑한다고 깨닫게 해주십니다. 모두 포기하고 싶은데 처음부터 인생에 계획과 이룰 것이 있다고 말씀해주십니다. 혼자인것 같고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는 같은데 지금 가장 깊은 곳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고 나와 함께 하고 있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으로 살아가십시오. 분이 지금 여러분께 하시는 일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분의 이름입니다. 

 

요즘 우리교회도 저절로 살아지고 있는 같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공간이 텅텅 비어있고, 공간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어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교회 예배당 전체가 정말 많은 이들을 위해 쓰여지고 있음에, 그렇게 예배당이 저절로 사용되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우리 교회 앞에서 분이 장사를 하십니다. 보니까 5시간 정도 계시더라구요. 여기서 장사하다가 가게 막는다고 쫓겨나고, 저기서 장사하다가 업종 겹친다고 쫓겨나고, 거기서 장사하다가 냄새나니까 쫓겨나고 그러다가 우리 교회 앞까지 오신 같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흔쾌히 분께 장사를 허락하셨더라구요. 밖에도 지나가는 주민들이 우리교회에 화장실을 많이들 찾으십니다. 어떤 분은 매일 우리 교회 주차장에 있는 원목의자에 한참 앉아있다가 가십니다. 아이들이 교회에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내내 휘젓고 다닙니다. 3층과 4층은 어르신을 위해 사용되어지고 있지요. 주일은 말할 것도 없이 성도님들의 활동공간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행복한교회 우리끼리만의 이름을 위한 공간이라면 공간은 이미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이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며, 만민 누구나 찾아올 있는 곳이라면 하나님때문에 공간은 저절로 쓰여지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때문에 있는 공간이라면 무너지지만, 하나님때문이라면 저절로 견고해지는 공간, 행복한교회, 우리 공동체가 믿습니다. 여러분의 인생과 가정,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을 위해서라면 무너지고 사라지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의 미래처럼 말이죠. 그러나 하나님때문이라면 하나님이 그것들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꾸역꾸역 하나님때문에 살아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용기, 소망으로 저절로 살아지는 인생으로 우리 모두가 매듭풀린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요즘 편견을 배우가 있습니다. 문상훈씨라는 분인데요. 요즘 화제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자폐인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분이 매번 맡아온 역할이나 캐릭터가 어리숙하거나 미숙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주변지인들에게 편지들이 화제가 되어서 읽어보았는데 분에 대한 편견이 많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대목을 소개해드리죠. 

 

대표님 안녕하세요. 대표님이 저에 대해서 " 친구 재밌더라고요"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저는 한마디를 훈장으로 안고 지금까지 계속 버티게 되는 용기로 삼습니다. 보이지 않는 꿈을 찾아 불안한 물장구를 치고 있는 수많은 청춘들에게 대표님은 하얀부표 같습니다. 부표근처까지 가면 돌릴 있겠다는 용기가 생기거든요. 

 

여기서 대표는 개그우먼 송은이씨를 말합니다. 송은이씨가 편지를 직접 읽으면서 너무 감동이 되었는지 손이 떨릴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우린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알려 하기보단 사람이 해온 , 살고 있는 인격, 바라보고 있는 가치로 사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서도 내가 어떤 일을, 어떤 인격을, 어떤 가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돌아볼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한주 우상이라는 내가 만들어 놓은 모든 편견을 깨고 매듭을 짓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서, 맏형 예수를 향해서, 동행자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살아지는 인생, 가슴떨리며 소망이 넘치고 용기가 샘솟는 저절로 살아지는 인생을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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