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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삼각관계 매듭짓기_십계명A

매듭짓기02. 창조자를 발견하세요.

by 우루사야 2022. 6. 24.

본문 : 출애굽기 32장 1-10절
제목 : 매듭짓기02. 창조자를 발견하세요.

1. 서론
1) 예화
100여년 전 플레밍이라는 스코틀랜드 의사는 연구 도중에 급하게 휴가를 떠났습니다. 열흘정도 휴가를 다녀 온 후에 돌아와서야, 연구를 위해 기르던 병균 한 접시가 잘못 놓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접시에 곰팡이가 피어버리고 말았죠. 그런데 플레밍은 그 접시에서 신기한 발견 하나를 했습니다. 곰팡이 주변에만 기르던 병균이 없었습니다. 이 발견으로 플레밍은 푸른곰팡이가 세균의 성장을 막아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류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을 만듭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많은 군인의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약으로 쓰인 것으로 유명하죠.
누리호 뉴스를 이번 주에 많이 접했습니다. 자체개발로 우주로켓을 발사성공 한 것이 세계에서 7번째인데,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의 미래가 밝아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로켓이 달이나 화성을 간 것이 아니라 지구의 저궤도를 돌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에 의아했습니다. 국가집단지성으로 7번째나 되면 엄청 뛰어난 것으로 보였는데, 알고보니 지구의 저궤도를 도는 것이 한계였던 것입니다. 그럼 우주강국 미국의 능력은 어느정도일까요? 1977년에 쏘아올린 보이져1호가 지구에서 우주로 보낸 물체 중 가장 멀리 갔다고 알려져있는데, 시속 140만키로미터(지구를 1시간에 35바퀴 도는 속도)로 달려 40여년이 지난 현재 보이져1호는 이제서야 태양권을 막 벗어났다고 합니다. 미국도 이제 태양계를 벗어났으니 저 큰 우주에 발 한걸음 이제 내딛은 것이지요.

2) 주제  
인간을 살렸던 항생제의 발견이나 머리 위 하늘끝을 보기 위한 시도에서나 우리는 한계를 가진 존재임을 확인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한계를 무너뜨리는 창조하는 자가 아니라 한계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를 발견하는 것으로도 벅찬 존재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계에서 우리를 왕노릇할 자로 삼겠다고 약속하셨죠. 우리를 우주상의 최고의 존재로 만드신겁니다. 우리는 창조하지 않고 발견하고 다스리는데 존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죠. 하나님만이 창조하시고, 인간만이 다스리는 최고의 듀엣이자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창조할 필요 없이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을 누리며 다스리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창조하는 존재가 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고 싶어하죠. 그 중에서도 우리는 우상을 창조하려고 합니다. 내가 뭔가 만들어내고, 내가 뭔가 이뤄내고, 내가 뭔가 성취해내고, 내가 뭔가 힘쏟을 그 무언가를 만들어 나의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탐했던 사단마귀를 닮은 우리의 모습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최고의 듀엣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3) 본문잇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똑같은 상황이 펼쳐집니다.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를 위해서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니까 우상을 만들어냅니다. 출애굽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수 많은 기적과 필요한 것들을 받아온 이스라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상을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없으면 우상을 만드려는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이들을 우리의 반면교사 삼아 우리가 우상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며, 하나님과 매듭은 풀고 우상과 매듭을 지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두려운 마음으로 만드는 이스라엘의 우상
본문 1절 전에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이라는 곳에 머무르시면서 모세를 불러들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산 주위로 사람도 동물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허락한 모세를 제외하고는 하나님을 배반한 인간이나 배반함으로 죄 아래에 있던 동물은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자유인이 된 이스라엘 진영 안에 함께 하기 위한 하나님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은 모세를 만나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사이가 깨어져버린 하나님과 인간이었지만, 자비의 하나님은 만나려고 또 같이 있으려고 하십니다. 그 절정이 바로 예수가 땅에 인간으로 온 것이고, 죽은 후 영으로 다시 우리 안에 온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해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그런 노력 중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본심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세의 형 아론, 그러니까 2인자에게 자신들을 안심시킬 조치를 취해달라고, "우리를 위하여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2계명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출2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를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 우상으로 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쉽게말해 불안하고 염려된다고 다른 방법을 의지하지 말라, 네 감각과 느낌, 직관을 의지하지 말고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가려고 일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고 기다리라고 십계명을 미리 주셨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선함을 창조해가시는 하나님을 발견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우리를 위하여 신을 만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계신 것은 인정하는데, 지금 눈앞에 안보이고 또 모세도 안보이니 자신들의 눈에 성이 차게, 자신들의 마음에 들게, 자신들의 본능에 가깝게 채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이럴 줄 아시고 미리 그러지 말라고 십계명을 주셨던 겁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죠.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두고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하나님과의 관계와 우리의 영혼은 엉망진창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장 탁월한 방법은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 하나님을 따라 관계해야 하는데, 우리의 미숙하고 어리숙한 감각을 따라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1절 하반절을 다시 볼까요?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결국 백성은 눈에 모세가 보이지 않으니 불안했고, 그 불안감을 채우기 위한, 그러니까 자기 자신의 마음의 안정을 위한 신을 만들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신뢰관계가 아니라 불안감과 불신에 근거해서 만들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7절에서 "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수준낮은 자신의 방법대로 대하려고 하니, 자기 중심성을 보고 얼마나 부패했는지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게다가 9절에서는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라고까지 질타하십니다.
자신의 어리숙한 수준을 최고의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어기는 이 백성의 마음이 얼마나 뻣뻣하고 부패했는지 성경은 낱낱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즘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설명하시는 이유에서도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아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최고로 여기며 우상화하는 사람들에게 결단코 복음을 깨닫게 하지 못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겸손한 자들은 깨닫게 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과 공기가 보이시나요? 여러분의 계좌에 있는 돈은 내 눈 앞에 있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이 의지하고 또는 사용하는 것들이 이리도 많은데 내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일하고 심을 왜 믿지는 않으십니까? 우리가 이런 마음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2) 내 생각으로 만드는 아론의 우상
부패하고 목이 뻣뻣한 백성들의 요구를 들은 아론은 2-4절과 같이 행동으로 옮깁니다. 자신의 감각과 직관을 가지고 조각하여 우상을 만들어냅니다. 애굽에서 구출해주신 하나님을 자신의 관점과 생각, 주장, 경험을 가지고 만들어냅니다. 자신의 생각을 어떤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낸 것이지요. 그래서 소의 모습으로 조각합니다. 그 재료로 아론은 백성에게 금고리 장신구를 빼어 가져오게끔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 입장에서 통탄할 일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갈 때는 자유인이었지만, 400년이 흐른 후에는 노예가 되어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무리 선조 야곱이 재산을 나누어주었다고 해서 이들에게 금이 있을리가 만무합니다. 노예가 돈을 벌어서 금장신구를 산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됩니다. 이것은 출애굽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10번째 마지막 재장이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출11:2-3) 그들이 나올 때 애굽사람들이 준 것들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은혜를 받게 하셨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신처럼 된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세상이 보기에 신처럼, 특별하게, 신성시되는 존재가 되는.겁니다. 그래서 우상을 만들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이 이렇게.높이시는데 왜 우상을 만듭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장신구들을 추후에 모으셔서 "이스라엘과 함께 있을 공간인 성막"을 짓는데 사용하시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론은 이것을 가지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이 애굽에서 자신들을 구출해준 신이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론은 나중에 이스라엘의 초대 대제사장이 되지만, 지금 그는 금이라는 재물과 소라는 고대번영의 상징을 합쳐 최고의 우상을 만든 것이죠. 그가 생각하기에 최고의 신은 이런 것들을 다스리는 자라고 생각했던 신앙이라고는 엉망진창인 사람이었죠.

10가지 재앙은 애굽신들의 몰락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피, 개구리, 이, 파리, 병균, 우박 등 이들이 신성시 하는 것들의 몰락입니다. 아론은 생각하기에 신성시 할 만한 애굽의 신들은 패배했으니, 이번에는 다른 신성시 할만한 소형상을 두고 우상화한 것입니다. 여기서 십계명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계명입니다. "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그 어떤 것으로도 형상을 만들어 우상으로 삼지 말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을 표현할 수도 없고 또 하나님을 대신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애굽의 신들이 패배하고, 하나님이 형상으로 우상을 삼지 말라고 하심을 기억하며 "보이지 않지만 강력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할지 고민했어야 했습니다. 자신의 이성과 경험을 뛰어넘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떻게 그 분을 대할지 생각했어야 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줍니다. 코로나 이후에 한국개신교는 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과연 신자는 교회에 나오지 못할 때 자신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한국교회 전체가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하나님은 주일 예배당에만 갇혀계신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동일하게 여러분의 현장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십니까?

더 나아가 두 번째로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하나님을 만들어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정치인이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다들 말합니다. 가정에서는 "내 자녀가 이 대학에 합격하고 이 시험에 붙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기도합니다. 그 밖에도 많은 영역에서 우리는 나를 뛰어넘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만든 하나님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기도하고 거기에 헌금하고 거기에 몰두합니다. 그런 우리야말로 마음이 부패하고 목이 뻣뻣한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주일 예배당에 가둬서는 안되겠습니다. 또한 내 현실에서 제멋대로 하나님은 이러실꺼야라고 재단해서도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나의 생활과 구원을 위해 일하고 계시는 삼위하나님을 발견하며 내가 만든 우상에 매듭지을 수 있길 소망합니다.


3) 매듭짓기
그럼 우상을 발견하는 좋은 팁을 한가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의 시간과 에너지, 재정을 어디에 많이 쓰고 있는지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판단해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만이 스스로 고민하셔야 되는 문제입니다. 저의 경우 오랫동안 제 인생의 성공이라는 우상에 잡혀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매일 경주마처럼 달렸습니다. 열심히 했습니다. 정열적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공허함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큰 교회에 가서 열심히 사역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행사는 성공하지만 한영혼이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없으니 가슴이 허했습니다. 작은 교회에 가서 다들 실패했던 부서에서 숫자를 배로 늘려놨습니다. 그런데 교사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허망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거기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역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 안에 있던 우상으로 인해 만족과 확신이 없었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미 나의 인생을 명예롭고 가치가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것을 모른채 명예로와지기 위해서 동분서주 하니 허망할 수 밖에 없지요. 제가 아무리 시간과 에너지, 재정을 교회와 사역을 위해서 썼다고 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었지 결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의도를 가진 저의 섬김을 가지고 다른 이들의 영혼을 구할 수 있도록 쓰신 하나님이 더 놀랍고 위대하시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밖에 없겠습니다. 저의 생각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신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의 신은 일하고 있습니다.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장 강력하게 내 인생을 이끌고 있습니다. 그 신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나시기 위해서 지금도 일하고 계시고 문들 두드리고 계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여는 자마다 내가 그로 말미암아 먹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디에 여러분의 귀를 대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에너지와 시간을 어디에 대부분 쓰고 계십니까?

첫번째,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로 나아가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두 번째, 여러분이 회사와 가정, 지역에서 만나는 이들 또한 하나님의 형상임을 기억하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들을 만드시고 그 인생들에게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나와 이웃에게서 하나님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상을 만들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들을 사랑하고 섬길 때 우리 하나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 안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러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의 형상으로 볼 줄 아는 "하나님의 눈"을 가지시길 기도하십시오.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과 매듭이 풀리고, 우상과 매듭이 지어져 성숙해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줄 믿습니다.


3. 결론
이번 미사리로 나들이를 나갈 때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육상을 하셨다는 권사님의 이야기도 알게 되었고, 주영이가 족구를 잘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보물찾기도 했으면 좋았을텐데, 다음번에는 꼭 보물찾기도 했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보물찾기 장소를 가게 되면 이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보물찾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가면 보물쪽지는 그냥 쪽지입니다. 그런데 보물찾기가 시작이 되면 그 쪽지들은 보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에 보물들을 발견하라고 하십니다. 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습니다. 마음으로 느끼고, 인생으로 살아내며, 통찰해나가며 얻어가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천국이라는 보물이 어느샌가 내 인생에 임하고, 나의 가정에 임하고, 나의 일상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번 한주 내가 만드는 우상과 매듭을 지으시고, 하나님을 발견하시면서 천국을 만들어가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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