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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삼각관계 매듭짓기_십계명A

매듭짓기01. 삼각관계 매듭짓기

by 우루사야 2022. 6. 17.

본문 : 출애굽기 20장 1 - 3절
제목 : 삼각관계 매듭짓기

1. 서론
1) 어른과 어린이의 차이 : 매듭을 풀 것인가 말것인가?
제 학창시절을 기억해봅니다. 제가 워낙 김을 좋아해서 사모님께서 직접 김을 많이 구워주셨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맛난 김으로 유명할 정도로 어머님 김이 맛났는데, 많이 구우시다보니까 큰 투명비닐에 먹기 좋에 잘라 넣어두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끝에 매듭이 묶여있었습니다. 습기가 들어가면 김이 눅룩해지니 매듭을 세게 묶으셨겠지요. 그러나 저는 학교를 다녀온 뒤 맛난 김과 밥을 먹을 생각이 더 크니 그 매듭을 천천히 풀 생각보다는 가운데를 푹 찢어서 먹곤 했습니다. 그럼 다먹고 그 봉지를 다시 묶냐? 그냥 그대로 냅두다가 많이 혼났지요. 결혼하고 이제 부모가 되어서 가끔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다가 김을 먹인 후에 봉지에 넣어둘 때면 습기가 들어가지 않게끔 다시 매듭을 묶는 저 자신을 보면 그래도 어른이 되었구나 싶습니다. 지금 당장은 매듭을 푸는 것이 힘들지만, 잘 풀고 또 잘 묶어놔야 이후에 맛난 김을 그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 꼭 우리네 인생과 같은듯 싶습니다.

2) 주제
우리 인생살이를 보면 매듭을 잘 풀어야 할 것들이 있고, 또 확실하게 매듭지어놔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여 후에 두고두고 후회하는 순간들이 있지요. 우리나라는 친일청산이라는 끝맺음을 하지 못하여 아직까지도 친일의 잔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는 것을 보면, 확실한 매듭짓기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요한계시록의 표현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교회에게 질타하신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라오디게아는 터키의 한도시인데 인근지역에서 온천수가 나왔다고 합니다. 뜨거운 물이 흘러서 라오디게아로 올 동안 그 물은 정화되어서 다 식으면 식수로 사용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중간과정에서 정화되지 않고 식지 않은 물을 먹으면 배탈이 나곤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물은 뜨겁게 온천으로 쓰든지 아니면 다 식혀서 식수로 써야 했습니다. 미지근한 물은 쓰면 안되는 것이었죠.

예수님은 라오디게아교회의 신앙이 이처럼 미지근해서 이렇지도 또 저렇지도 않다고 질타하신 것이지요. 우리가 신앙에 있어서 확실하게 매듭을 풀거나 짓지 못한다면 우리도 이러한 질타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네게 배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인생을 기준으로 삼아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가 실수 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지요. 그러나 방향만큼은 예수님을 향해야 하는데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또 안따라가는 것도 아닌 그래서 엉거주춤한 반신앙인의 상태로 있지 말라는 겁니다. 미숙한 사람이 곧장 있을 미래를 보지 못하고 김봉지를 뜯어버리듯, 인생살이에 있어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살아가지 말고, 확실하게 살라는 겁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그 다음의 길, 그 다음의 자리, 그 다음의 상황을 두고 기도하며 말씀으로 묵상하며 고민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 고민 끝에 매듭을 지을 것은 짓고, 풀 것은 풀 줄 아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3) 본론들어가기
그런 점에서 십계명 1-4계명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의 매듭을 어떻게 풀며 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우상과 어떻게 매듭지어야 하는지 너무나도 분명하게 말해주는 본문입니다. 7월까지 1-4계명을 살펴보고, 8월에는 그 매듭을 하나님과 멋지게 맺어본 요나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이 여름, 하나님과의 뜨거운 관계를 향해서 나아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일대일 매듭풀기
1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본문상황 대해 설명이 필요합니다. 야곱가정이 요셉을 통해 애굽 이집트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대를 이어 성취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4세기만에 가문이 70여명에서 200만명으로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특례시로 지정되는 수원, 용인, 창원, 고양시들이 각 100만명의 도시들입니다. 야곱가문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두 도시에 꽉찰 정도의 가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로 축복을 받고 응답을 받은 상태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은 자유인으로 애굽으로 왔는데, 400년이 지나서 그들은 노예가 되었습니다. 2절에 보니 "종 되었던 집"이라고 표현하셨죠. 이들은 애굽에 있었을 때 물리적-사회적 상황에서뿐만 아니라 영적인 상태에서도 그들은 노예의 상태였습니다. 애굽의 수많은 다양한 미신들 사이에서 그들은 400년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출하실 때 10가지 재앙을 베풀어 애굽이 신성시 하는 미신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대하시고 조종하시는지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종되었던 집 애굽에서 인도"하셨습니다. 물리적, 사회적, 영적으로 모두 종노릇하던 위치에서 구출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정착할 곳인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이사를 하다가 계약 사고가 나면 어떻게 됩니까? 순식간에 모든 것이 뒤엉켜버립니다. 짐들은 아무렇게나 컨테이너 박스에 들어가서 곰팡이가 슬고, 가족들은 편안한 안식처가 아니라 단칸방 신세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바로 이사를 가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일부러 하셨습니다.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길거리 신세로 나앉게 하셨습니다. 종노릇하던 자가 자유인이 되었는데 알고보니 길거리 부랑자 신세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지요. 물, 잠자리, 옷가지, 기온, 고기, 먹거리 등 수 많은 문제들을 쏟아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하셨을까요? 아뇨. 아셨겠지요. 아시면서도 그들을 바로 정착지, 이사갈 곳인 가나안 땅이 아니라 길거리로 데려오신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바로 3절과 같은 말씀을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3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 광야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의지할 것 하나 찾을 수 없는 이곳에서 나를 바라보라, 나에게 집중하라, 나와 일대일의 관계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저 가나안 땅에 가서 너희가 삼각관계를 만들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좌우 앞뒤에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오로지 하나님께 집중하여 이 말씀을 듣게끔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한글성경이 번역될 때 이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원어 히브리어성경이나 영어성경을 보면 "before me"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다른 신을 내 앞에 두지말라는 것을 넣어서 다시 한글 성경을 읽어보면 "너는 나와 같이 있는 자리에서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쉽게 "나와 너 사이에 다른 어떤 것이 없도록 하라, 삼각관계는 절대 안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성부 하나님을 산에서 설명하실 때 '은밀히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지요. 아무도 개입되지 않고, 그 누구의 시선이나 시야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그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고 주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와 일대일로 만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눈을 감고 온전히 진심어린 태도로 나아갔을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용서와 위로, 용기, 지혜, 사랑, 긍휼, 자비를 주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십계명의 베이스가 되는 1계명을 그렇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에서 그 무엇의 방해도 받고 싶지 않고, 서로에게만 집중하고 싶으시다고 말이죠.

2) 삼각관계 매듭짓기
우리는 하나님과 일대일관계에서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합니다. 삼각관계로 꼬여버린 우상을 청산해야 합니다. 이를 "혼합주의신앙"이라 부릅니다. 혼합주의신앙의 대표적 사례로 등장했던 국회의원이 있습니다. 이분이 기독교계열 정당에 들어가 1번 공천을 받고자 하셨는데, 이력을 조사하다 문제가 있어 취소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집사로 알려져 있었던 그 분께서 일전에 불교방송에 나와 새벽예불을 일주일에 한번씩 참석한다는 인터뷰자료가 나온 것이지요. 게다가 성당에서 세례명을 받은 것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사실 정치인으로서 여러종교행사에 참여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런데 신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믿는 이유가 다른 무언가가 있기에 3종교에서 신자가 된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발현된 것일까요? 단지 이 분 한분만의 이야기일까요?

교회갱신협의회라는 곳에서 2004년 기준으로 8년 후에 기독교 신앙인들의 생각과 신앙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유일신앙, 종말, 생명복제반대와 같이 성경적 신앙에 대해서는 10%내외로 모두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혼합주의 성격을 띄는 세속신앙과 다른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론 모두 2-5% 늘었습니다. 궁합과 풍수지리를 보는 개신교인은 15퍼센트에서 30으로, 윤회설을 받아들인 교인은 10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두배가량 뛰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신앙이 혼탁해지는 가운데 국회의원을 뽑으니 어찌보면 3종교를 다 믿는다고 말하는 국회의원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조사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은 더 많은 이슈에서 더 많은 퍼센트로 많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혼탁해졌습니다. 동성애, 낙태, 안락사, 가정파괴, 간통법 폐지, 차별금지법 등이 그러합니다. 마치 지금 한국교회가 라오디게아교회처럼 질타를 받는 것은 아닌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께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우상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삼각관계에서 불투명한 셈법, 탐욕, 과거경험, 비일관적인 주장은 비일비재하게 나타납니다. 상대에 따라 옷을 바꿔 입는 것이지요. 한 사람에게 충분한 사랑을 누리지 않고 다른 옷을 입고 다른 상대를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삼각관계를 거절하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맏형이 되어주시고,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연합하여 함께 계시다는 그 사실이 충분히 우리의 소망과 기쁨, 지혜가 되어줄 수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거절하고 우리가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 것을 거절하십니다. 믿으려면 확실하게 믿어야 이런 하나님 과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양다리로는 결코 받을 수 없습니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깊이 교제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신뢰를 어떻게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이 누릴 수 있겠습니까? 앞뒤가 안맞지요.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혼탁하여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출애굽 성도들은 10가지 재앙과 홍해사건을 봤음에도 하나님 약속을 믿지 못해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습니다. 여리고성이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직접 눈 앞에서 보았음에도 아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재물을 취했습니다. 사무엘의 놀라운 사역을 봐왔음에도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왕이 다스려주길 구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병고침과 귀신 내쫓음, 죽은 자의 부활 사건을 보았음에도 이것들을 모두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귀신의 역사라고 치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예수의 구속, 성령의 내주를 믿지 못하니 눈 앞에 아무리 위대한 천국복음의 증거들이 나타나도 결국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상을 향해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하나님이 위대한 사역을 보여주셔도, 애굽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다른나라처럼 인간왕을 세우길 원하고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자 탐욕을 부리고 천국증거들을 미신적 사역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삼각관계의 가장 큰 위험성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들어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리 떨어뜨려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신앙이 혼탁해지고 더러워지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이 성장하려면 매듭지어야 할 것을 지어야 합니다. 삼각관계를 청산해야 합니다. 오로지 삼위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고, 나 자신을 포함한 다른 무엇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과 내 인생 사이에 들어오지 않게끔 해야 할 것입니다.

3) 큐티와 묵상으로 매듭짓기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충분히 들여다 보아야 하겠습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른가? 내 사고방식은 성경적인가? 내 가치판단 기준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부합하는가? 하나님과의 관계는 결코 예배의 횟수, 기도하는 문구, 성경을 읽는 시간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의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향한 진실된 태도와 마음, 진심에 달려있습니다. 은밀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우리의 진실되고 순수한 마음 속에서 성부 성자 성령을 기준으로 하여 생각하고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사이에서 매듭 풀 것들을 풀고, 또 매듭지어야 할 것들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그렇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내가 그대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의 계획이 내 인생에 흐르고 있음을 믿으며 여러분의 정신과 마음을 다스리십시오. 예수님의 죄사함과 대신 죽으심, 나의 대표되심이 있음을 기억하시며 여러분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기고 살아가십시오. 성령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과 교제하고 교통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며 여러분의 말과 행동, 선택, 판단을 용기롭게 그러나 절제하며 명예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과 일대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계속 큐티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뜻을 헤아리면서 하나님의 본심을 알아가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혼탁해지지 않습니다. 나의 생각이, 주장이, 선택이, 결정이, 고민이 하나님의 사고방식과 같은지 다른지 말씀과 그 말씀을 중심으로 고민하는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독대하게 되는 것임을 기억하시는 저와 여러분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일대일의 관계에서 가장 고귀한 영혼의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그 유일한 길이 바로 구속의 기록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방향을 알고, 또 그길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사가 담겨져 있는 성경,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이 증거되고 있는 성경, 성령 하나님이 깊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시는 성경 안에서 우리는 묵상하고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역을 15년간 하면서 갈등이 있었습니다. 바로 간접적 사역이었습니다. 청소, 교회정리 등이 그러하죠. 그런데 요즘에 그런 제마음에 명예라는 묵상을 계속 주십니다. 낮아져도 명예로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주중에는 교회 청소나 정리업무가 대부분인데 말씀을 통해 낮아지고 섬기는 것이 주님께 어떤 가치가 있는지 깨닫습니다. 동시에 명예롭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도 말이죠. 하는 일이 낮지만, 살아가는 방향은 높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교회에 오는 손님들마다 왜 이교회에는 항상 북적이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합니다. 건물 각층이, 로비에, 주차장에 말이죠. 사람구경하기 힘들다는 교회들이 많은 요즘인데 아직 세상은 누군가의 섬김을 기다리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성경을 읽는 양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진심과 본심을 가지고 성경을 보고 읽고 깨닫고, 그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소망과 지혜로 일대일의 관계를 만들어가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기도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 안에 있던 하나님과 묶여있던 매듭이 곧게 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속적이고 혼합적인 우상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매듭지어 지는 것입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첫계명으로 "너는 나외에"라고 말씀하시며 창조주와 피조물의 일대일관계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을 두지말라"고 하시며 우리가 섬겨야 할 유일한 한 분이 하나님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그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는 "섬길자가 아무도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최고의 존재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섬길 자가 없습니다. 온 우주의 피조물들이 다 우리를 우러러 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래서 천사도 인류를 흠모할 존재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성경은 곳곳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 신과 같은 자라고도 표현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과의 관계로 회복하는 것이지 무언가 추가해서 성숙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를 원하시고, 나는 위대한 존재였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 내 마음입니다. 내 마음이 삼각 관계를 청산해야 합니다. 몸을 쳐서 복종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그 자리를 꼭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거나 잠들기 전, 또는 출퇴근 버스나 운전을 하면서, 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라보고 있는 기준, 가치, 방향에 집중하십시오. 그리고 내 가치와 기준을 하나님께 맞춰보십시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열정, 지혜, 인내, 충성, 평안과 같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생명력에 집중하십시오. 결코 말씀읽거나 영상들은 것에서 끝나시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면 그약을 내 인생에 넣어봐야죠. 효능을 봐야죠. 그리할 때 어느샌가 승리하고 있는 인생을 목격하게 되실 겁니다. 이번 한주도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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