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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하나님의 윤곽_가정과 삼위일체

공동체04. 하나님의 윤곽, 가정

by 우루사야 2022. 5. 21.

제목 : 하나님의 윤곽, 가정

본문 : 창세기 38:20-30

 

1. 서론 

가족이라함은 부부나 부모, 자녀와 같이 관계를 중심으로 뜻하는 단어입니다. 가정이라함은 이러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가 더해져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족이 사람이라면 가정은 사람들의 울타리격인 것이지요. 우리는 이제까지 어린자녀를 통해서 천국에서 자가 누구인지 배웠습니다. 부부관계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배웠죠. 부모라는 연결고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됨을 배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하나님나라의 윤곽은 가족관계를 통해서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관계들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정"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성경이 가정에 대해서 많은 사례들을 말해주지 않지만, 가정의 이야기가 유일무이하게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야곱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창세기 50 중에 스물한장에 걸쳐 야곱가정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를 말해줍니다. 그렇게 창세기가 끝나고 다음 출애굽기로 바로 한장만 넘기면, 가정은 400년이 지난 시점에서 " 나라"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향해 "겨자씨 비유" 들어주신 적이 있습니다. "31 비유 들어 이르시되 천국 마치 사람이 자기 갖다 심은 겨자 같으니32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가지에 깃들이느니라"(13) 야곱은 겨자씨만큼 미약한 존재였습니다. 에서에 비해서 힘도 약하고 차자였습니다. 장자권을 훔쳐야만 무언가 자리를 잡을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야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생각을 뛰어넘어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야곱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가정이 어떻게 커져가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있습니다. 새모이만큼 적은 겨자씨가 장차 나무가 되어 새가 깃들듯, 하나님은이 역사하시는 작은 사람이 애굽이라는 나라, 근동아시아의 많은 민족을 살려내게 되는 것이 야곱가정의 이야기입니다. 게다가 후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만드셔서 하나님나라의 예표가 되게 해주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정은 천국의 윤곽이며, 이곳에서 사람의 역량이 새의 먹이뿐인 겨자씨만큼 일지라도 새의 거처가 있는 역동적으로 성장할 있는 곳이라고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추구하고 바래야 하는 것은 가정의 건강함, 가정의 회복, 가정의 순기능이라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한국교회가 놓친 중에 정말 중요한 한가지가 가정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가정의 부흥이 따로 놀았습니다. 가정의 부흥을 근간으로 교회가 부흥했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놓친 것이 지금 현실, 한국교회의 현재를 만들어놓았습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게 시작해야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가정 속에 상처난 부모님과의 관계, 부부사이의 아픔, 자녀로 인한 걱정. 이것들에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가정을 중심으로 섬기며 우리가 나아갈 하나님께서 교회 또한 든든하게 세워나가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원리요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가정없이 교회는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을 통해서 유다의 대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사건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면서도 과연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서 우리에게 고민하게끔 해주는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됩니다. 시간을 통해서 여러분의 가정을 향해 하나님이 어떠한 관심과 섭리를 두고 계시는지 알아가시는 귀한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가정이라는 울타리
오늘 본문 20절을 살펴볼까요? "20유다가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여기에 등장하는 유다하면, 예수님의 지파가 생각나실 겁니다. . 예수님의 족보, 혈통의 조상격이 되는 유다라는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입니다.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예수님은 여타 다른 인간의 왕들과는 다르게 신격화된 이야기보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가정사가 가득한 혈통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온전함을 이뤄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부자집에서 서울대가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개천에서 용이 나듯, 우리와 같은 평민들 속에서 서울대를 가면 ", 나도 열심히 하면 있겠다"라는 소망이 생기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평민이 되신 겁니다. 그것도 가장 낮은 평민이 되셔서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죠. 유다라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깨지고 아프고 너무나도 복잡한 가정. 그것이 유다의 가정이었습니다. 가정 속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깨어진 가정 속에 임하신 예수님, 우리의 가정 속에서도 임하셔서 놀라운 역사를 행해주실 믿습니다. 8-10절입니다.

유다에게는 3아들이 있었습니다. 장남은 하나님이 보시고 너무 악해서 심판을 내려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심판을 내리시어 죽인 첫사람입니다. 그래서 장남에게 시집 다말이라는 며느리는 순간에 과부가 되었고, 대가 끊어지니 누구도 책임져줄 없는 자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씨족이 필수적이었기에 이럴 경우 다른형제가 형수를 맞이하여 계대를 이어가게끔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둘째 오난은 악한 마음을 가지고 형수가 아버지 유다의 유산을 장자집안의 자격으로 가지고가는 것이 못마땅했는지, 관계는 가져놓고 씨를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악하게 보시고 그도 죽이셨습니다. 남은 셋째 셀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마치 다말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죽은 것마냥 생각하고, 셀라에게 들어가지 못하도록 이핑계 저핑계를 대며 셀라가 클때까지 다말을 친정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셀라가 장성하였는대도 아무런 조치를 취해지지 않은 유다였습니다. 이대로라면 다말은 계대가 끊어질 것이고, 빈궁한 삶으로 노년까지 살아야 것입니다. 이에 다말은 역으로 시아버지 유다에게로 들어가야겠다고 다짐하며 창녀로 변장을 합니다. 양털을 깎는 시기는 추수하는 시기와 같이 모든 것이 풍성해집니다. 그에 따라 신전에도 풍요를 뜻하는 행음으로 가득했고, 다말은 때를 이용해 창녀로 변장해 유다와 관계를 맺어 씨를 받아 계보를 이어가려고 했던 것이죠. 아니나 다를까 유다는 문화에 취해 길거리에 있는 창녀에게로 들어가 관계를 맺었는데, 알고보니 그것이 자신의 며느리 다말이었던 겁니다. 화대로 담보물을 맡겼던 자신의 신분증인 도장, , 지팡이를 돌려받으며 유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25-26절입니다. 

 

유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결국 다말을 인정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야기를 요셉이야기 시작하는 지점에 넣어놓습니다. 요셉의 꿈을 통해서 요셉의 가족들이 요셉을 통해 살아남게 것을 말한 후에, 유다와 다말 사이에서 태어날 쌍둥이를 통해 크게 메시야 그리스도가 나실 것이고, 이를 통해 인류가 살아남게 것을 함께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형에게 맞아 죽을 뻔한 야곱을 통해서, 10명의 형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여 외국으로 팔려간 요셉을 통해, 그리고 대를 이어가기 위해 시아버지에게 들어간 이방인 출신 며느리를 통해 가정을, 가문을, 나라를 키워내셨습니다. 그리고 계보에서는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셔서 인류를 구하시게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상처투성인 겨자씨만한 연약한 가정일찌라도, 하나님 손에 있을 놀라운 축복의 통로가 된다고 말이죠. 

2) 울타리를 부시려는  

유다가 다말에게 말을 다시 한번 보시죠. 26절입니다.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모세는 사건을 기록하면서 분명하게 옳고 그름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가정을 형성하지 못하도록 유다는 틀린 것이고, 끝까지 형성하려고 했던 다말의 처신이 옳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이런 관계가 현대사회에서는 사실상 받아들여지기가 어렵지요. 그런데 고대 씨족사회가 생명권이었던 시기에서는 시아버지와의 관계까지도 있었던 것이지요. 어쨌든 성경은 생명의 유일한 존재통로인 가정의 형성이 가장 우선적이며 가장 하나님께서 귀하게 보시는 통로라는 것은 확실히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어떤 삶을 살았길래 "자신의 틀림을 인정할만큼 눈이 가려져 있었던 것일까요?" 이렇게까지 것일까요? 

 

38 1절입니다. "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유다는 아버지 가문을 떠난 첫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가나안 문화에 흠뻑 빠져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지내게 됩니다. 양털을 깎는 시기에 이방신전사람들처럼 번성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성관계를 맺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원리와 가르침에 눈을 닫고 있었는지 있습니다. 11절을 봅시다.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아버지 집에 있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유다는 눈이 닫혀서 자신의 장자가 죽었고, 차자가 죽었는지 알지를 못했습니다. 38장은 유다가 얼마나 하나님을 떠나 죄악으로 흠뻑 빠져 눈을 뜨지 못했는지에 대한 기사입니다. 모세는 유다가 며느리를 창녀로 보았던 장소를 "에나임"이라고 두번이나 언급합니다. 에나임이라는 장소의 뜻은 "눈이 열리다"입니다. 눈이 열리는 곳에서 유다는 눈이 닫혀 있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관점으로 가문을 키우려하니 자신의 아들들이 악해서 죽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엄한 다말을 탓햇고, 계보를 잇지 못하도록 했으며, 마침내 우상숭배에 빠져 며느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창녀로 보고 말았던 것입니다. 

 

유다는 다말을 향해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말했지요. 하나님은 유다의 아들들을 향해 "보시기에 "했습니다. 차이가 무엇이었습니까? 유다와 차자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다말은 가정의 울타리를 어떻게든 유지하고 지켜내려고 했습니다. 물론 방법과 과정에 있어서 논할 거리는 있습니다만, 성경은 그에 대해서 생략하고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주려고 합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느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정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떠한지 고민할 있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전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른 나라입니다. 새로운 가정이 생기지 않고 있는 나라입니다. 가정을 바라볼 "하나님의 관점" 아닌 다른 관점들이 가득하고, 결과 가정을 갖지 않는 현실이 바로 지금 나라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결코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려 한다는 단순한 해석을 내놓아서는 안됩니다. 가정은 영성의 영역입니다. 그래서 , 지원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 이들이 보기에 "가정의 놀라운 영성과 신비" 있게끔 해줘야 합니다. 가정에서 당연히 섬기는 어린아이와 같은 어른들의 모습에서 젊은이들은 천국을 봅니다. 가정에서 부모님의 부부관계를 보면서 연합의 신비를 목격합니다. 부모님이 조부모님을 공경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영적가문이 세워지는 것을 함께 목격해야 합니다. 단순히 젊은이들이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기피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리로 말미암은 것임을 책임을 통감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가정이 이렇게 세워져가는 것을 향해 전심을 다할 있어야 하겠습니다. 예배를 통해 가정이 세워질 있는 환경을 만들 있는 진정한 영성을 보일 알아야 하겠습니다. 

 

3. 적용 결론
제가 지난 주에 젊은 부부 모임에서 처음 경험한 것이 있었습니다. 결혼 생활 10 중에 처음으로 아내의 진중한 기도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사역만 했지, 아내와 함께 기도할 있는 교회 공동체에 있지 못했던 겁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의 기도소리, 민재의 찬양소리, 딸의 아멘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어른끼리 예배드리느라 10 후에 친구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것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교회가 점점 아이들의 터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차장도 많은 지역주민들이 찾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러 관계들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카페와도 관계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골목길을 들어오다가 집의 데크를 망가뜨리게 되었습니다. 확인하여 변상을 해주려고 찾아가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카페 실주인은 30 후반정도 되어보이는 남성분이 하시는 가게였습니다. 분이 말하기를 괜찮다고, 원래 여기가 차가 들어오기 좁아서 망가져있었다고 넘어가주셨습니다. 이런 호의를 받으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학자들이 하나님은 아버지라면, 교회는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누구의 어머니일까요? 신자만의 어머니일까요? 아니요. 교회 주변 비신자들의 어머니, 하나님이 작정이 있고 부르기로 작정한 자들의 어머니도 되십니다. 저는 카페의 호의를 받으면서, 교회가 넓은 마음으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지역일대를 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호의를 베풀어야 어머니가 되는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복지부에서는 가정위탁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질병, 가출, 사망, 학대 등으로 가정에서 건강하게 성장할 없는 아동을 일정기간 양육하고, 가정의 여건이 회복이 되면 복귀할 있도록 돕는 사업입니다. 이러한 대상아동은 21 기준 9500명에 달합니다. 형제자매와 같은 아동을 제하더라도 1여건에 가까운 가정이 자녀를 도저히 키울 없는 가정이라는 것이고, 신고되지 않는 가정을 포함한다면 이러한 수치는 더욱 많을 것입니다. 사회에서 진정으로 가정을 지켜내는 집단은 누구일까요? 가정을 세울 아는 영성의 어머니, 바로 교회가 사역 해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교회가 그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통해 역사하고자 창조하셨습니다. 가정을 귀하게 여기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축복을 주시는 믿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속해 있는 가정,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가정,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 만들어질 가정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면서, 가정을 위해 부단히 힘쓰실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나아가 우리 지역사회에 있는 위기의 가정들을 향해 기도하고 힘쓰는 우리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지역사회를 진정으로 품을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독교제국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천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윤곽이 나타나는 가정을 세우기 위해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섬김으로 세우십시오. 여러분을 높이고 여러분의 가정을 높이실 겁니다. 그럼 저절로 우리예배 속에서 천국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저절로 지역 사회에서 어떤 단체도 만들 없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정과 천국이 세워지는 하나님이 쓰시는 교회가 믿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여러분의 가정이 그렇게 믿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간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가정을 향한 섬김을 가질 그러한 역사가 나타날 믿습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기도

하나님. 오늘도 귀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원리를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부모라는 연결고리, 부부라는 놀라운 연합, 나의 자녀 어린아이를 바라보며 천국의 윤곽, 하나님의 윤곽을 바라 아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번 한주도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지켜내며 사랑하며 섬김으로, 우리의 가정이 위대한 신앙의 가문, 믿음의 명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에서 천국의 윤곽이 나타나게 하소서. 우리의 가정들을 통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주신 울타리 안에서 우리의 부모님과 자녀가 하나님의 사랑과 화평을 경험할 있게 도와주옵소서.
이시간 우리 성도님들 가정 곳곳에 아픔과 연약함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 아픈 가정사 속에서 태어나셨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은혜를 베푸사 회복케 해주시고 감싸주시고 안아주심을 고백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정마다 그러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 가정 모두가 회복하여 함께 예배당에 모여 천국을 이뤄낼 있게 하여주옵소서. 어떤 예배보다 위대하고 감격스러운 예배가 있도록 주여! 이시간 역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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