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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하나님의 윤곽_가정과 삼위일체

공동체설교01. 하나님의 윤곽

by 우루사야 2022. 4. 29.

 

 

1. 서론 

코로나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힘든시기였지만 한편 생각하게끔 멈춰서도록 해주신 시기였다 생각합니다. 교회가 높아지기를 멈추고 낮아지고자 할 때 주님께서 높여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정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낮아지는 교회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본문입니다. 4절을 볼까요?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자니라" 
천국에서는 낮은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대우받는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당연히 어른에게 양보하고, 어른을 대접해야 하는 어린아이와 같이 섬겼던 자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너무나도 똑 부러지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럼 천국의 모형이라 불리우는 교회는 어떠해야 할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높아지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주력해야 하는 것은, 힘써야 하는 것은 낮아지는 겁니다. 내 안에 예수가 있으니, 예수처럼 낮아지는건 너무나도 당연한 겁니다. 예수가 없으면 높아지려 합니다. 
오늘 본문은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어린이"처럼 되라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어린이로 굴러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좀 더 정중하게 말씀드리자면 어린이 같은 자로 천국은 구성되고 운영되어진다는 겁니다. 때문에 우리가 진정 코로나 국면을 마무리 짓고, 교회다운 교회를 다시 시작하려면, 그리고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의 가정이 진정 부흥하기 원한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어린이 원리"로 어떻게 살 것인지 준비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제 가정의 달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가정, 부부, 자녀에 대해서 다루게 것입니다. 나아가 스승, 제자, 가르침을 주고 받는 교회가 무엇인지, 그래서 과연 기독교인에게 공동체가 무엇인지 다뤄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지는 나를 통해 내가 가는 곳곳이 천국이 되는 역사의 한주를 보낼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 본론
1) 나의 것에서 돌이키라

오늘 본문 1절을 볼까요? "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신은 죽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것이다." 이런 말씀을 가버나움에서 하실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죽든지, 아니면 다시 살아나시든지제자들이 그것을 믿든 안믿었든 그들은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상황이 일어나면 서열정리를 해야 하는구나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누가 가장 서열이 높은지에 대해서 따지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마가는 사건을 기록하기를 예수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냐 물으니까 제자들이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서 드러내놓고 질문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뒤에서 자기들끼리 서로 눈치싸움하며 기싸움하고 파워게임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물으시니 자신들이 옳은 처신을 한것이 아닌 것은 알았는지 대답을 하지는 못하기에, 그제서야 예수님께서 가르침을 주시는 것이죠. 2-3절입니다.  "예수께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서 예수님은 처신정도의 문제로 말하지 않으시죠. "구원"까지, 그러니까 천국에 가느냐 마느냐까지 영향이 미칠 것이라고 말하십니다.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정말 중요한 문제지요. 제자들은 분명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완벽한 믿음은 아니더라도 그래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예수님을 통해서 천국에 있는 것임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천국 가는 길을 멋대로 정하고 있었던 겁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천국에 있다고, 자신의 세속적 성공을 지닌채 천국에 있다고 말이죠. 이에 예수님은 브레이크를 거신 것이죠. 나의 것을 가지려는 것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다고 말이죠.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돌이켜"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인데 돌이킬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만 믿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고쳐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단어입니다. 높은 자리에 가려는 심성을 고쳐먹어야 천국에 있다는 질타였던 것이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돌이키라고 말하셨습니다. 잘못되었다는 것이지요. "나의 것, 나의 자리"를 만들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지난 번에 서울시에서 전기차충전소 사업을 지원한는 현수막을 보고 교회부지에 신청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개방이 조건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리가 멈췄습니다. 왜냐하면 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더 많이 충전하러 들어왔다 나왔다 생각하니 골치가 아팠기때문입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이걸 할까 말까. 그런데 결국 이것도 제 잘못된 주인의식이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지 제것, 또는 특정 교인의 것, 특정 부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지역사회의 공공재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민은 접어두고 바로 신청했습니다. 그리고 실사를 나오셨고 여러가지를 처리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또 교회를 특정부류의 사유화된 것으로 만들뻔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기도하는 집,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예수처럼 섬기는 자여야 합니다. 낮은 자리로 섬기더라도, 쓰레기를 항상 두고가서 치우는 한이 있더라도, 주차장을 쓰더라도 주차요원처럼 때론 청소부처럼 섬겨야 하는 것이 우리교회가 보여야 할 모습임을 깨닫고 돌이키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예배당, 주차장, 화장실을 모두 오픈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당 교회건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그렇게 쓰여야 합니다. 예수가 그렇게 사셨으니까요. 내 인생 내 것이 아니라 예수의 것이고 내 안에 예수가 주인으로 살아계시다면, 나는 예수처럼 당연히 어린아이가 섬김의 자리를 가듯 우리가 그래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치셨는대도 예수 몰래 더 높이 올라가려는 내 모습이 보인다면, 우리는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면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과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내 안에 예수가 없으면 천국 못가는 것이지요. 내 안에 예수가 있다면 예수처럼 당연히 섬김의 자리를 가는 것이구요. 그래서 우리는 돌아봐야 합니다. 내 심령에 예수가 있는가. 

 

 

2) 대변자, 어린이

어쨌든 예수님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럼 제자들은 그럼 어디로 돌아가야 하겠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2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4절에서는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앉으시며" 이야기를 시작하십니다. 고대사회에서 전통적으로 권위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가르침을  때의 상황입니다. 보통하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지요.  "예수께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어린아이를 제자들  가운데로 오라 하십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위에 세웁니다. 모두가  어린아이를 주목합니다. 바라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이 어린아이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이죠. 

요즘 정치권에서 유행하는 것이 "윤심, 이심" 아닙니까? 누가  정치인을 대변할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서로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두고 "예심"이 누구에게 있는지 다투고 있는 겁니다. 교회의 반석이자 열쇠가 있다는 고백을 했던 베드로입니까? 우뢰의 아들이라고 지칭을 받은 야고보와 요한입니까? 이스라엘 독립을 위해 열심이 특별했던 셀롯인 유다입니까? 누가 예심을 대변할  있다는 겁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서 앉히시고 공식적으로 너희는 모두 나와 하나님 나라를 대변할 수 없다, 이 어린아이가 당연히 어른들을 섬기고 양보하고 좋은 것들을 내놓은 이 자세가 대변한다. 자기를 낮추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가 대변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거에요. " 어린아이가 나를 대변한다, 천국을 대변한다, 하나님을 대변한다." 

여러분이 교회에서 자꾸 높아지려 하신다면 지금 내 얼굴이 예수와 닮았는지 부터 보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대변할 얼굴은 제자들 가운데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간 살펴봐온 대로 예수님이 칭찬한 믿음은 이방 백부장이거나 이방 수로보니게 여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공식적으로 제자들을 다 거절하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스스로 섬기려 낮아지는 자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가지고 교회의 얼굴이 되려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히려 신자인 우리까지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는 "낮아지는 사람"을 통해   있습니다. 건물이 아닌 성도의 모임인 교회는 낮아지고자 하는 무리를 통해 교회라고   있습니다. 죽어야   있는 천국이라는 곳을 서로 낮아져서 섬기는 공동체를 통해 천국을 경험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곳에서,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지고 낮아져서 이루는 곳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천국을 닮은 교회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이 있는 곳입니다. 기준이 어린아이라는 기준입니다. 영적세계가 돌아가는 원리나 중심은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겠죠. 
세상에서 여러분이 잘나갈 수도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트레이드마크는 "어린이"입니다. 낮은 자입니다. 힘이 있어도 없어도 섬기는 자, 높은 자리에 있든지 낮은 자리에 있든지 그래도 당연히 섬기려는 자. 그게 교회의 마크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럼 교회가 믿는 신도 그러합니까? 성부 하나님을 보십시오. 스스로 계실 수 있는 분이라 소개하시지만 창조하셨습니다. 같이 있으려구요. 피조물과 같이 있으려 창조하신 행위자체가 내려오신 낮아지신 행위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를 구하기 위해 낮아지려 신이 인간이 되신 분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신 분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가 뭐라고, 우리를 위해 낮아지시고 섬기십니까? 그 분이 본래 그런 분이시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할 때는 "지성,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그 분의 성품으로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 분은 낮아지는 섬김의 하나님이자 교제하고 싶어하시는 교통의 하나님으로 삼위 하나님이 서로에게 그렇게 관계하시고 섬기고 계셔서 일체로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교제와 연합"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예배시간에만 앉았다 가서는 결코 천국을 경험하실 수가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경험하실  없습니다. 교제의 현장에 앉아계셔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섬기려고 발버둥치려 했던 싸움, 내가 하나님을 닮으려고 몸부림치던 일상, 높아지고 싶은 나를 끌어당기려고 애썼던 묵상과 기도의 시간, 성공보다 하나님 앞에 서려고 했던 말씀 앞에 낮아졌던  시간. 그것들을 우리가 서로 나누며 낮아지고 은혜로 섬겼을  그곳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속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없는 사랑이라는 실체를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이  사랑이신지 깨닫게 됩니다. 

기독교를 말해주는 신의 모습, 기독교 공동체를 말해주는 교회의 모습, 기독교의 내세를 말해주는 천국의 모습은 이렇게 "자기를 낮추는 어린이"의 모습이 대변해줍니다, 대신 보여줍니다. 요한은 이걸 한 단어로 더 축약을 했습니다. 요한일서에서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정리했습니다그렇습니다. 낮아지는 사랑헌신하는 사랑희생하는 사랑입니다사랑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오고사랑으로 천국은 운영됩니다그럼 교회는 어떠해야 맞겠습니까사랑해야 합니다낮아지더라도섬기는게 힘들더라도 낮아져서 사랑해야 합니다권리가 없고힘이 없는 자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3) 천국을 만듭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을 따라 어린아이와 같이 서로 높여주기 위해 낮아지고 섬기는 그곳이 하나님을 닮은 이들이 있는 , 하나님이 계신 천국과 같은 곳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5-6 동안 우리의 교회과 가정을 천국만들기를 시도해보고자 합니다. 

천도교 출신이긴 하지만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를 향한 생각은 우리가 보고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900년대 초반만 해도 아이들을 정중하게는 소년소녀. 그러니까 작은 존재라 불렀고 직접적으로는 애새끼, 딸년, 아들놈이라고 불렀죠. 순우리말로는 어린이라고 불렀는데 이말 또한 어리석다에서 나온 말로 부정적인 말이었습니다. 방정환은 일제치하에서 아이들이 조국의 미래라 생각하여 "어린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였고, 이를 통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어린이라는 말을 높임말로 쓰게끔 운동한 결과 지금은 어린이가 긍정적인 단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한사람이 작은 존재를 귀하게 봄으로써 사회가 바뀌게 결과였습니다. 

사회에서도 이런데 우리는 작은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다루고 있나요? 저는 몇개월 이내로 11 예배가 주일학교 아이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중물을 쓰면 어떻게 되지요? . 밭에 물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우리교회 마중물이 무엇이겠습니까? . 학부모 교인들입니다. 학부모 교인들이 자신의 자녀와 예배를 함께 드리며 자녀에게 예배가 무엇인지 바로 옆에서 알려주고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교회들이 섬김이로 씁니다. 새신자영접반으로, 밴드로, 교사로 씁니다. 정작 자기 자녀는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지 수가 없습니다. 저도 10년동안 그랬으니까요. 한국교회는 그간 당연한 새신자라고 여겼던 신자의 자녀, 그들이 성인이 되면 당연히 교회에 정착할 줄 알았던 착각으로 인해 미래가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새신자를 두고 또 다른 새신자를 찾아가는 어리석음으로 너무나도 아픈 현실을 겪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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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조금 어수선하고, 악기 치고, 매끄럽더라도 작은 존재이지만 우리교회의 미래를 책임지는 마중물이 되는 부모들을 우리 아이들과 예배드릴 있도록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어른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찬양하며, 진심으로 기도하며, 말씀을 어떻게 듣는 것인지 살아있는 신앙교육현장이 되길 소망합니다. 조금 시끄럽고, 어수선하더라도, 여러분 함께 아이들과 학부모들과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낮은 자를 섬기기 위해 낮은 자리로 가는 그곳이 천국이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임재하시는 천국이 믿습니다. 

이것은 예배의 현장에서 뿐만이 아닙니다. 예배 밖에서도 그러해야 합니다. 평일에 저는 하교시간이 되면 교회문을 활짝 엽니다. 본당문도 열어놓습니다. 그럼 아이들이 모여듭니다. 일단 시원해서 들어옵니다. 그리고 와이파이가 되니 머뭅니다. 친구들이 교회를 수도 있고 안올수도 있지요. 그건 시간이 지난 후의 문제이고, 일단 섬기는 겁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머물고 자리에는 항상 쓰레기, 너저분함, 흘리고 물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도 짜증이 나더라구요. 그런데 사역을 생각하면 수록, 그냥 섬겨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영혼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고, 나는 그냥 낮은 자리로 가면 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직장, 일상,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영혼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은 "낮은 자를 높이기 위해 내가 낮은 자가 되는 "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지는게 이기는 "이라는 격언이 성경적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수준낮은 예배에 져주십시오. 힘들어하여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교인에게 져주시고 들어주십시오. 열불나 있는 가족 구성원에게 져주십시오. 어린이처럼 당연한 것처럼 말이죠. 우리 예수님은 당연하듯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어주셨습니다. 묵묵히 입을 다무시고 당연히 죽어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높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높은 자리로 높여주셨습니다. 우리의 낮아짐에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나의 작정기도도 아니고, 나의 금식도 아니고, 나의 일천번제 헌금도 아니고 "나의 낮아지는 사랑과 헌신"에 응답해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이번 5-6월 동안 낮아져 부흥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3. 결론

여러분. 앞의 그림을 한번 보실까요? 아이가 낙서비슷한 그림을 그립니다. 그럼 실력이 좋은 부모화가가 아이의 그림에 물감을 덧입혀서 놀라운 그림으로 재탄생시킵니다. 부모는 아이가 그리든 그리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이와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천국을 만들어가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하늘에서 천국이 떨어지게끔 하지 않으십니다. 태초에 모든 것을 만드셨고, 사람을 가장 귀한 자리에 두셔서 사람으로 하여금 천국이 만들어가지게끔 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의 가정, 직장, 교회, 사회에서의 모든 활동은 낙서처럼 보이는 서툴은 것이겠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놀라운 지혜와 능력으로 멋진 작품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멋진 그림이 아니라 여러분과 함께 그리는 것이니까요. 

제가 오늘 제목을 하나님의 윤곽이라고 드렸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사회나 모두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곳들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 내가 가는 곳곳이 하나님의 모습,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윤곽들이 점점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마지막날에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절대 하늘에서 뚝떨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살아오고 살아낸 현장을 재료로 하나님이 놀라운 지혜와 능력으로 천국을 만드십니다. 이번 한주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과 살아가십시오. 섬기고 낮아지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살아가십시오. 어린아이 원리를 통해 여러분의 속에서 천국의 재료들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명예로운 삶을 살아내실 있는 저와 여러분되시길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mVUpK4hhKg&t=4406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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