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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하나님의 윤곽_가정과 삼위일체

공동체03. 하나님의 윤곽, 부부

by 우루사야 2022. 5. 14.

본문 : 창세기 2 18-25                          

제목 : 하나님의 윤곽, 부부 

1.  서론

1) 예화 

요즘 예능에 출연하는 부부 하나가 배우 소이현씨입니다. 인터뷰에서 부부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군요. "누구나 치부는 있고, 언젠가는 치부를 드러내야 때를 누구나 가지게 되는 같습니다. 부모님이나 자녀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를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사람은 아마 저의 남편일 겁니다." 말에 많이 공감을 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늙어가 힘이 사라질 때도 있고 사고나 지병으로 하나를 간수할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의지해야 사람을 찾는다면 부모님, 자식, 형제도 아닌 배우자라는 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마음은 공감하지만 선뜻 그런지 답을 내릴 없는 같습니다. 

부모자식간을 두고 천륜이라고 하죠. 그럼 천륜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누굴까요? . 부부죠. 그런 점에서 성경은 부모자식간보다 부부에 대해 직접적으로 천륜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첫번째로 하신 것이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하시며 "부부사이"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부부야 말로 천륜 중의 천륜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부부사이를 두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이라고, 게다가 "사람이 나누지 못할 "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들 수도 없는 천륜이고, 인위적으로 갈라섰다 해도 없앨 없는 것이 부부사이라는 겁니다. 인위적으로 부부가 되어도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져 있고, 인위적으로 깨어졌어도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존재할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신앙인의 결혼생활 두고 "선넘지말기"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밖에도 , 담배, 혼전순결, 주일성수, 십일조, 자살과 같은 경우를 우리는 "미션수행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지 못하면 벌하신다"라는 선을 그어버리고 매주 미션수행하기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안하면 죄고, 저렇게 했으니까 죄가 아니다? 이런 단순한 논리로 많은 한국교회의 성인남녀가 상처를 받고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을 그어놓고 이대로 해라가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하는지, 그러면 안되는지 섬세하게 약속해주시고 가르쳐주시고 알려주셨습니다. 결혼에 대해서도, 부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기에 오늘 본문은 왜 부부라는 사이가 중요한지 알려주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고 내치셨습니까? 아니요.  끌어안으시고,  가까이 가시고,  함께 하고자 독생자 예수를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셨죠.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볼까요? 자녀가 있지만 부부사이가 어려운 가정, 자녀가 없는 가정, 자녀를 가지지 않으려 하는 가정, 한부모 가정, 많은 상처를 가진 가정. 어찌보면 가정 모두는 하나같이 아픔이 있고, 말못할 사정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죄라고 정죄하시고 내치십니까? 아니라는 것이지요. 오히려 그 가정을 더 끌어안으시고, 더 가까이 가시고,  그 가정을 돌보시는 것이 우리 하나님이시며 그것을 교회는 가르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5 2주간 동안 천국을 대변해주는 어린아이와 부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부부는 어떤 것을 의미하길래, 천륜이라고까지 부부에 대해 말하는 성경은 무엇이라 설명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모는 하나님의 나라를 번성케 하는 유일한 통로인 것을 믿는다면 나의 자녀에게 부모가 되는 나의 부부관계는 나의 의사결정을 통해서 지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라는 것을 먼저 직시하게 됩니다. 부모자식 사이에서 부부관계를 생각해야 성경이 말하는 가정관에 대해서 이애할 있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은 시야를 충분히 제공해줍니다. 오늘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부부가 무엇인지 알아갈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본문 

뉴스였습니다. 남편이 무호흡증으로 숨이 멈추는데 아내가 심폐소생술로 살립니다. 한번이 아니라 두번이었습니다. 첫번째 불안하여 CCTV 방에 설치해놓았는데, 남편에게 그런 증상이 나타나 재빠르게 다시 심폐소생술로 남편을 살린 것이죠. 다른 뉴스가 나왔습니다. 여성이 강도를 간밤에 잡았다는 뉴스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다 잡게 되었냐 하니 술먹고 밤늦게 들어오는 남편인 알고 사정없이 팼는데, 알고봤더니 강도였다는 겁니다. 부부라 함은 서로에게 생명의 은인이 되기도 하고, 집안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주기도 하는, 정말 인생고락을 함께 하는 연인보다 전우가 어울리는 사이같습니다.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전우를 단지 나의 이성적 호감으로만 만들어졌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듯 합니다. 성경은 뭐라 합니까?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창조 말씀하셨습니다. "18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뒤에 보면 아담은 " 생물을 부르는 것이 이름이" 만큼 자신의 뜻을 가지고 충분히 살아가던 존재였습니다.(19) 게다가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까지 하셨습니다. 아담은 심히 좋았다고까지 하셨죠. 그런 그에게 "부족한 한가지" 있는데 이것은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욕구이며 아담이 채울 것이 아니라 "내가 그를 위하여 지으리라!" 천륜으로 하나님이 해결해야만 하는 것임을 밝히십니다. 그것이 바로 "배필", 배우자인 것이지요.

생물의 이름을 지으며 아담은 각각의 것들이 짝이 있음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도 "함께 하고자 하는 욕구" 하나님이 주셨음도 깨달았겠죠. 하여 하나님은 잠든 아담의 갈빗대를 가지고 하와를 만들어 만나게 해주십니다. 천륜으로 부부를 만드셨죠. 과정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흙으로 아담을 만들고, 아담의 뼈로 하와를 만들고, 하와에게서 자녀가 만들어 지게끔 하셨고, 하와를 "돕는 배필"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돕는(에제르) 시편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쓰입니다. 하나님은 먼지같은 흙이 하나님의 도움이 되게끔 하셨고, 그것이 여성인 것이지요. 여성은 하나님의 가장 완벽한 창조물입니다. 그리고 여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 만드는데 있어서 중요한 통로역할을 하게 하셨습니다. 사역을 하나님과 아담이 이뤄가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돕는 역할로 두셨다는 겁니다. 이렇게 우리의 영적전우가 서로 만나고 함께 살아가게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지를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남성은 결코 여성이 없이는 하나님의 나라 번성을 위해 무엇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을 보고 보기 좋았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담 홀로 있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아니하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성은 여성배우자를 보며 단순한 성적 파트너, 비지니스 상대, 동거인 수준의 관계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결정적인 동역자입니다. 번째로 여성은 남성을 바라보며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하와가 들어와 삼각관계가 것이 아니라, 아담과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진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물론 하와도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라를 세우시고 역사하시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남자를 통해 역사하시고, 여성은 남자 안에서 함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보여주는 것이 하나님과 예수님, 교회의 관계입니다. 교회는 결코 예수님을 제외하고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를 가질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간의 대표가 되셔서 인류가 예수님께 소속되게끔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위치로 만나게 되는 겁니다.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두고 그래서 성경은 신랑과 신부로 많이 표현을 하는 것이고, 이것이 부부의 모델링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부장적인 가정의 모습을 제시했고, 목사를 남성에게만 허락되었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 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23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여성은 하나님과 일대일의 인격적인 관계는 맺을 있으나, 하나님 나라 사역을 위해서 남성 "안에서"라는 하나님의 원리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선넘지말기 식으로 무작정 남성우월주의를 주장하려 해서도 안되며, 가부장적 폭압적 가정모델을 제시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순리와 원리 안에서 말하며 나아가 이런 원리 때문에 여성의 순종과 함께 남성의 전적인 희생이라는 균형을 유지할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부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권으로 만들어졌기에 천륜이라고 우리는 말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입니다.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 깊이 들게 하시니 들매 그가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대로 여자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을 잠들게 하신 것도, 여자를 만드신 것도, 남자와 여자가 만나게 하신 것도 모두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부는 여러분의 이성적 이끌림으로 것이라면 금방 콩깍지는 벗어집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천륜임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 부끄러움

그런데 문제는 다음에 생깁니다. 24-25절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몸을 이룰지니라 아담과 그의 아내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둘이 합하여 한몸으로 건강한 부부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뒤에 보니까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부끄러워할 상황이 온다고 미리 암시를 줍니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분이 아시는 바와 같이 사이에 마귀 뱀이 끼어들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려고 시도했습니다. 결국 속아 넘어가 아담은 하와를 탓하고, 하와는 하나님을 탓하며 관계가 엉망진창이 됩니다. 이렇게 죄가 세상에 들어와 아들에게도 전해져 장남이 차남을 죽이게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부부생활에 문제가 있고, 결혼생활에 아픔이 있으며, 가정이 깨어져 있는 . 성경은 그것을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이 1200 정도 되는데, 첫장을 빼고는 두번째장부터 끝까지 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가정이라고 온전할 있습니까? 아프고 힘든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서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메시지들은 너무나도 단순하게 이혼을 죄라고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혼가정들이 참으로 교회와 신앙생활 속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찌보면 한국교회가 정말 많이 애써야 하는 것이 가정이라면, 중에서 가장 힘써야 하는 것이 안아줘야 가정이어야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에 관심이 없으니 가정이 어떤 형태로 아프고 문제가 생기고 힘든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혼은 죄라고 밖에 설명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진심을 왜곡시키는 것이지요. 

누구나 아플 있습니다. 어떤 누구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혼을 선넘지 말기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선을 넘어서 정죄당하고 벌받는다면 세상에 살아있을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죄를 짓는 우리에게 용서와 사랑을 주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방향으로 살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어떤 형태의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큐티본문인 마태복음을 보신 분은 아시겠습니다. 1 예수님의 족보를 보십시오. 족보는 남성중심으로 기록이 되는데 마태는 사이에 여성 5명을 집어넣습니다. 못된 의도를 가지고 며느리를 버리려는 시아버지 유다로 말미암아 자식을 낳게 다말, 여리고성의 이방인이자 기생이었던 라합, 영적혼란의 시기에 이방인 며느리들로 그나마 이스라엘의 영성이 유지되었는데 한명인 , 충신 충신이었던 우리야의 아내가 탐나 우리야를 죽이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들입니다. 마태는 이렇게 부끄러움의 인류가 만든 부부의 역사를 먼저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박혁거세나 고주몽처럼 신비로운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로마 제국을 세운 형제가 늑대의 젖을 야생에서 먹고 자랐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인간적인 존재로, 가장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가장 부끄러운 환경을 가지고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태어나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5번째 여성으로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1:16) 태어났다고 마태는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해줍니다. 동시에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겁니다. 

결국 우리의 관심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그러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향으로 부부와 가정을 돌보고 있는지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결과를 가지고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과정과 의지, 우리의 마음과 신앙을 보고 기뻐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특히 가정의 중심이 되는 부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할 있어야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가정의 깨어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19)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말씀교사들은 제멋대로 말씀을 적용해 남성중심으로 아내버리기를 허락했습니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남편이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온갖 꼼수를 써서 결국에는 이혼증서를 받아내 아내를 버리고 재혼하려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못된 의도를 가지고 결혼을 깨는 것과 이후에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재혼하는 것은 "간음"이라고 말씀하시며, 너희가 가장 계명인 십계명 7번째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우리의 완악한 마음의 근본문제를 예수님은 건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결혼상태를 유지한다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혼이 결코 성경에서 좌시할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문제의 근원은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이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음의 완악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부부를 하나님이 기뻐하실런지, 아니면 이혼을 했다 하더라도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다시금 부부와 부모라는 영적축복의 고리를 가져가기 위해 힘쓰는 자를 하나님이 기뻐하실런지에 대해 우리는 고민할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어떻게 것인가. 

우리는 그간 어린자녀를 보며 당연히 섬기는 자가 천국시민이라는 것을 보고 배울 있었습니다. 또한 부모님을 공경하며 낮아지는 것이 천국의 운영원리인 것을 배웠습니다. 이번에는 부부가 결국 천국의 기둥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지난 번에 어린이주일에 어린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분이 한국교회의 앞길을 있었다고, 탈출구가 보인다고 말씀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분은 정기적으로 이렇게 예배드리면 좋겠다고 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건강한 가정을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만들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주일 11 예배, 이곳에서 천국을 대변하는 어린이, 부모, 부부가 함께 모여 예배할 이곳이 천국을 대변하는 곳이 믿습니다.
그런 가운데 분과 자모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자모실이 영성떨어지는데 최고의 장소라는 겁니다. 예배의 현장과 분리되어서 아이와 예배를 도저히 드릴 없는 공간으로 어머니들과 아이들이 모여있습니다. 그래서 자모실이 예배본당에 함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목사님의 예배현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규모였습니다. 신발을 벗는 공간에서 카페의자와 탁자공간을 빌려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이들은 낮은 탁자에 앉아서 색칠하다가 같이 찬양하다가, 친구랑 이야기하다가 같이 목사님 말씀에 대답하다가, 화장실 가기 위해서 이리저리 다니기도 했습니다. 반주는 유튜브로 했습니다. 전혀 문제가 없더군요. 저는 모습이 오히려 우리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배순서, 예배의 모습, 예배의 질서 세우느라 어린영혼을 가두고, 어머니 영혼을 자모실에 박아두며, 가족이 예배때만 되면 이산가족이 되는 모습.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기준과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듯 합니다. 우리의 완악함과 부끄러운 현실에서 다시 돌아갈 있는 길은 "섬김" 것입니다. 다음세대를 섬기기 위한 11 예배, 어머니들을 섬기기 위한 예배공간, 예배의 질과 디테일을 포기하더라도 함께 하며 섬기기 위한 예배의 구조가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방향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건강한 가정, 건강한 부부, 건강한 자녀양육" 향해 나아갈 있길 소망합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께서는 "19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20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2)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부부의 관계로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신약은 예수님을 신자들이 "신랑"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하나가 되어주셔서, 우리가 예수님이 누리는 , 축복, 영광을 함께 누릴 있게끔 신비롭게 하나가 되어주셨는데, 그것을 표현할 온전한 연합체가 "부부"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부부관계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대변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연합과 교통, 사랑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부의 관계로 나아갈 있어야 하겠습니다. 청년 여러분, 결혼은 말그대로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그대로 전쟁일 있습니다. 어찌보면 포기하는게 마음편할 있습니다. 그러나 선물을 풀기 힘들다는 이유로 선물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일 밖에 없습니다. 묶인 리본을 하나하나 풀어나갈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우리는 그간 정말 많은 성경의 약속들에서 배워왔습니다. 믿음의 전진을 이룰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3. 결론

지금 한국교회가 이렇게 힘을 잃었을까요? 성경과 복음,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토록 강력하신데 이리 교회는 약해졌을까요? 하나님을 잃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는 ~하지 말라만 외쳤습니다. 술먹지 말고 담배피우지 말고 문신하지 말고, 이혼하지 말고, 동성애 하지 말고, 자살하지 말라. 압니다. 세상도 아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과학적 증거들로 강력하게 말해줍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길들을 택하기도 합니다. 오히려 길을 반대하는 교회의 목소리를 줄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요? 오은영 박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 하지 말라고 말하지 마세요. 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하고 이해할 있게 해주세요. 생각이 아니라 아이의 생각이 되게 해주세요. 라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유에 대해서 너무나도 친절하게 설명해줍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놓쳤고, 하나님의 본심을 왜곡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성경은 너무나도 친절하게 가정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이라고, 천국의 모습이라고, 예수님의 모습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넘어지고 쓰러지고 실수할 있다고 해주십니다. 그런 우리를 내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일어나서 가면 된다고, 그래서 너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다시 일어나서 가정을 섬겨주십시오. 나의 부모님을, 나의 자녀를, 나의 배우자를 섬기셔서 예배의 현장으로 나아와 천국을 함께 만들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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