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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설교_F/가나안을 에덴으로_창세기(1-11장)

가나안을 에덴으로(7)_에덴의 무지개

by 우루사야 2022. 2. 20.

 

 

본문 : 창세기 9장 8-17절
제목 : 에덴의 무지개 

 

1. 서론 

1)지난주 잇기
우주로부터의 귀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주비행을 경험한 비행사들과의 인터뷰 모음집이라고 말할 있는데, 슈와이카트라는 비행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주체험을 뒤에 전과 똑같을 없다" 넓은 시야를 경험한 사람이기에 이전의 삶의 방식이 바뀐다는 말이겠죠. 그래서인지 비행사들은 우주를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넘쳐나는 생동감을, 그리고서 자신의 나약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요한 것을 알아가는 사람이 성숙한 삶과 진중한 매일을 살아가게 됩니다. 

 

2) 주제 

우리는 1-2 동안 계속해서 창세기 서두를 살펴보며 "하나님의 계획" 대해서 배웠습니다. 구속사라는 하나님이 그림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내가 어떻게 믿고 어떻게 신자로 살아가야 할지 있기 때문입니다. 땅의 계산법, 땅의 가치, 땅의 철학을 끊어내고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는 위에서 "하나님의 계산법, 하나님의 가치, 하나님의 생각"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을 , 내가 가는 곳곳이 천국이 되고 평안이 찾아오며 화평이 깃들고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에서는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옴으로 잔치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지구에 에덴동산을 세우시겠다는 계획은 여러분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3) 본문 들어가기 

이제 몇주간 살펴본 노아의 홍수사건의 마지막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보여주시며 노아에게 홍수사건의 결말을 말씀하시고자 합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노아에게 "무지개" 보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내가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다시금 세상에 비가 내리고 비가 그친 무지개가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 기억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다시 시작하십니다.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여 지옥에 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행복한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삶을 우리에게 주셔서 함께 누리게끔 하시고자 하시는 "행복한 하나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지개를 주시면서 노아와 새롭게 시작하는 오늘 본문은 우리가 오늘 어떻게 살아가야 할런지에 대해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말할 있겠습니다. 그럼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론

1) 인간을 신적존재로! 계획을 끌고 가시는 하나님

본문 11절을 보실까요? "11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심판 뒤에 "약속" 하십니다. 여기서 의문점이 한가지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으로 호흡이 있는 모든 것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을 종말시키시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끝내시지 않으셨을까요? 약속을 다시 하시는 것일까요? 어떤 목적과 이유로 다시 시작하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본래 세우셨던 계획은 이러합니다.  " 1: 31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지으신 것들과 "심히 좋은, 선하고, 아름답고, 질서있으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최소한의 인류와 동물을 남기시어 다시금 계획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은혜를 입히시고 노아와 방주를 통해 동물들을 살려내십니다. 그리고 심판하신 후에 노아를 다시금 땅으로 끌고 오시고 다시 시작하는 은혜를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13절입니다. 


"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땅을 직접적으로 이제 심판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물론 지금 우리 주변에는 비가 많이 와서 홍수도 일어나고, 쓰나미나 태풍으로 수십만명의 이재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홍수" 하나님이 직접 일으키시는 심판의 성격을 가지는 홍수로 "땅을 침몰할, 그러니까 흙으로 만든 사람과 동물을 심판할 홍수" 일으키지 않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은 이제 인간이 무슨 짓을 하던 내버려두시겠다는 겁니까? 그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은 상태란 "생명을 멸시하고 죄를 향하는 것은 심판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와 용납으로 함께 하나님의 영광으로 나아가는 " 말하는 겁니다. 인류와 전지구적인 생명체에 대한 심판은 번으로 족합니다.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드러났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심판은 "질서를 세우는 " 족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범죄때로부터 지금까지 온세계의 심판을 한번 표하신 것과 같이 온세계의 구원을 한번 표하십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다시 있지 않는다, "용서와 사랑"으로 너희를 품고 나아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전세계에 홍수로 죄에 대한 단호함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긍휼을, 마침내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임재하시어 우리를 "신적존재" 만들어주신 겁니다. 그래서 신약시대의 성도가 가장 확실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축복을 받은 겁니다. 

2) 죄심판 속에 담긴 사랑, 무지개

부모님의 훈계에 고통과 사랑이 함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홍수심판에도 고통과 사랑이 함께 있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16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하나님과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하나님이 인류의 실수, 죄악, 넘어짐이 있었지만 사랑으로 그들을 끌고 가십니다. 심판의 상징이었던 , 구름 속에 무지개를 넣어놓으십니다. 그래서 땅의 무릇 혈기 있는 모든 생물들은 구름을 보며 땅의 심판을 기억하지만, 속에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과 사랑을 깨닫고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3번이나 계속 등장하는 것이 "구름 속에"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계속 반복적으로 썼을까요? 우리의 죄가 계속 반복되고 우리의 실수가 계속 이어지는 것에 대해서 성경은 좌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속에서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 인류의 대표가 되신 예수의 사랑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그것만이 살길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래 계획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땅을 다스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께 받는 성부, 하나님께 받는 축복, 하나님께 받는 은사. 이런 것이 무슨 필요가 있다는 겁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에서 땅에 매여 살아가는 자들과 전혀 다른 하나님이 내재해계시는 신적존재가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되어 "하나님의 손과 " 되어 땅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제가 서두에 소개해드린 책에서 문구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서로 목적을 달리한다는 것만으로 전세계의 불행한 모든 사람들을 구하고도 남을 거액의 자금을 들여 서로 살육할 준비를 무한히 거듭하고 있는 현상은 슬퍼해야 사실이다. 신의 메시지는 사랑하라는 한마디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의 존재로 만들어가시려 하시는지,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안되는지 너무나도 이해되는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여지없이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서로의 결정이 나라와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라 단죄하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싸움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신자들은 이번 대선을 어떤 자세로 치뤄야 할까요? 나의 투표권을 어떤 기준과 관점을 가지고 행사하는지, 막연한 비난과 무책임한 정죄로 행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받을 심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의 죄를 해결했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셔서 성부 하나님의 계획을 지금도 우리 안에서 깨닫게 하고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비가 무지개를 보듯, 우리가 죄를 기억할 때마다 예수의 십자가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3) 원수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의 오늘

이제 적극적인 메시지로 나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수도원적 은둔생활이 아니라 원수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일을 기꺼워하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살려하지 않고, 친구들 가운데서 장미와 백합이 만발한 곳에 앉아 악한 자들이 아닌 경건한 자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하나님은 없지만 종교성 가득한 유토피아" 만족하는 바리새인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내시기 위해 창조, 전지구의 홍수, 예수의 십자가, 성령의 임재의 사역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없습니다. 하나님의 정성은 뒤로 하고, 교회와 신자, 예배를 이용하는 교만방자한 처사인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제 사랑하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아니 조금 직접적으로 "희생"하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요즘 계속해서 우리가 여호수아서를 살펴보고 있지요. 묵상할수록 깨닫는 것이 하나님이 출애굽 2세대들이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셨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여리고성에서는 전적인 하나님의 기적으로 이뤄내는 승리를, 아이성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이기는 법을, 남부연합군에서는 하나님의 기적과 함께 하는 인간의 동역을, 북부연합군과의 전투에서는 사람의 힘을 빼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는지를. 하나하나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그에 합당한 힘과 능력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요즘 기도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기 자양2동에서 산지 이제 1년이 넘어서는 시점입니다. 기도하는 분들이 6분이 생겼습니다. 혼자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여호수아처럼 바라봅니다.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하게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말고 나아가라 하신 것처럼, 그에 맞는 능력을 주셨던 것처럼 이곳에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분들을 감당할 만한 능력을 주시기를 말이죠. 그분들을 사랑할 있도록 하나님이 인도해주시고 미리 앞서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신앙은 명사가 아닙니다. 동사입니다. 예배당, 직분, 헌금 이런 것들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신앙은 "사랑하다" 표현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러 예배당에 오는 것이고, 사랑하기 때문에 직분을 감당하는 것이고, 사랑하는데 필요하니까 헌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런 구속사를 펼치셨던 것에 우리가 은혜를 받고 감격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전하러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구속사에 흠뻑 빠지셔야 합니다. 이제 3월이 되면 전통적으로 사순절을 지킨다고 하지요. 금식도 하고 죄에 대해서 집중하여 죄짓지 않기도 해보고, 핸드폰도 보기도 하고 하죠. 마찬가집니다. 필요없습니다. 주님의 구속과 사랑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데 그것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주님의 구속의 사랑을 알고 이해하고 경험하고 살아내면 자연스럽게 죄를 미워하게 되고, 나의 영혼을 위해 금식하게 되며, 알아서 헌신과 구제에 뛰어들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순절 기간동안 주일예배 본문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깊이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사랑이 무엇인지, 그래서 사랑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 그래서 오는 부활절에 우리교회 40주년을 맞이하게 될텐데 우리가 어떤 사랑을 실천해야 것인지 함께 기도로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쇼트트랙 결과만 보면 가장 많은 메달을 차지한 국가의 대표팀이 되었습니다. 중에 주목받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쇼트트랙의 곽윤기 최아랑 선수였습니다. 선소 모두 남녀 쇼트트랙 팀에서 맏이 역할을 해온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모두 그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곽윤기 선수는 이번 은메달이 올림픽 메달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최아랑 선수는 메달이 확정된 순간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기쁨으로만 표현될 없는 감정을 쏟아내었죠. 그래서 매체들은 선수가 그간 메달을 따지 못하며 고생해온 시간들을 다뤄주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선수가 공항에 입국할 때에 이전보다 많은 메달을 가져온 것은 아니지만, 따뜻함과 환영과 환대를 국민들이 보내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메달의 색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간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살아내 끝까지 완주한 그들에게 보내는 찬사같았습니다. 

 

우리의 마지막의 모습은 이러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생전 내내 우리는 빛을 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인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이해하고, 사랑을 전하는데 있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그래서 우리의 삶이 에덴이 된다면, 반드시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영예로운 금메달을 우리 목에 걸어주시고 우리를 안아주실 믿습니다. 이번 한주도 주님의 사랑을 알아가기를, 그래서 사랑으로 살아낼 있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TelVPr2S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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