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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YAMEMORY
구속사 설교_F/가나안을 에덴으로_창세기(1-11장)

가나안을 에덴으로(5)_구별이라는 은혜

by 우루사야 2022. 2. 6.

본문 : 창 7장 17-24절
제목 : 구별이라는 은혜

 

1. 서론 

1) 예화 

1945년 8월 15일에 한 남성의 목소리가 4분여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동아시아 전역에 퍼져나갑니다. 어떤 중요한 메시지였는지 한반도에서는 하루가 지나도록 알지 못합니다. 그러는 사이 금새 이 라디오 방송은 전국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그것은 이내 일본천황 히로히토의 항복선언이라는 사실이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다음날 16일이 되어서야 한반도에는 "대한독립 만세"가 물결을 치며 울려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장기에 태극기를 덧그리기도 했고, 형무소에 있던 자들이 대거 풀려나왔으며, 치안을 담당하던 이들이 자국민으로 교체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급변하시는 시대를 맞이하는 것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일본군은 히로히토 천황의 방송직전까지도 중국 곳곳과 동남아시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방송으로 하여금 그들은 곧장 싸워 이길 기세가 꺾이게 되었고, 자신들이 처분할 수 있는 것들을 헐값에 처분하거나 나중에 찾으러 오기 위해 숨겨두기 급급했습니다. 한 순간에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광복이라는 전환점을, 그리고 일본은 패망이라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서 전세계는 경제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말해줍니다. 극단적으로 부한 자들이 더 큰 부를 가지게 되었고, 빈궁한 자들이 더 빈궁한 자가 되었다고 말해줍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19년까지 꾸준히 상위 10%와 하위10%의 소득을 비교한 지니계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계속해서 간극이 좁혀지고 소득불평등도가 해소되고 있는 국면이었지만, 코로나19가 시작된 19년도부터는 다시 양극화가 시작되는 전환점을 맞이한 것입니다. 

 

2) 주제 

우리 인생을 살다보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 전환점은 대부분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를 살아가게끔 합니다. 어떤 이는 이 전환점을 통해서 더 나은 현실을 살게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이 전환점을 통해서 정말 암울한 현실을 살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한 사건이 지금 나에게 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래서 내가 어떤 대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고민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전환점이 꼭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누구나에게 있을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 전환점을 오히려 준비하라고까지 말해줍니다. 그것을 "심판의 날, 또는 그 날, 마지막 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날에 대해서 내가 어떤 위치에 서있는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전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전환점을 미리 준비하라고, 이 날은 도둑같이 올 것이기 때문에 예의주시하고 있어야 한다고 성경과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말해줍니다. 

 

3) 본문잇기
그것은 모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세는 창세기 초반부 11장 중에 노아시대의 마지막 날에 대해서 4장을 할애할 만큼 "전환점"에 대해서 진중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아가 맞이한 전환점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모세가 말해주면서 무엇을 알려주고자 하는지, 그래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시사해주는지 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더욱이 코로나가 마무리되는 또 다른 현실적인 전환점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오늘 이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노아시대의 마지막 날은 3가지 숫자로 본문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홍수비가 땅에 내린 40일이 첫번째입니다. 그리고 그 홍수비가 얼마나 왔는지를 말해주는 20절에서 말하는 15규빗이 두번째입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그 홍수비가 빠지지 않고 땅 위에 머물렀던 150일이 세번째입니다.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는 "심판의 세기, 목적, 의미"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이런 심판의 의미는 오늘 우리가 마지막 날 심판을 기다리는 자로써 어떻게 살아가게끔 해야하는지 알려줍니다. 한 구절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17-18절입니다.

 

1) 40일 동안 내린 비 - 땅에서 떠오르는 방주, 세상과 거리가 생기는 우리

17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모세는 노아의 홍수사건을 이렇게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이 본문을 해석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몇 가지가 있습니다. 2주간 계속 말씀드리고 있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물의 쓰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땅의 인간뿐만 아니라 물의 인간이 되어서 "믿음, 기도, 성령과 함께하는 영의 세계"까지 다스리는 본래 아담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모습을 이루고자 하셨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목표와 뜻을 거절하는 자들은 믿음이 없고, 기도하지 않으며, 성령과 동행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물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이 본래 악하고 하나님을 거절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0일동안 물이 많아지는 심판을 내리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한번에 물이 많아지게 하지 않으시고 40일동안 내리게 하셨습니다. 그 40일동안의 비가 내리는 상황을 본문은 어떻게 말해주고 있습니까? 17절 하반절을 보니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라고 말해줍니다. 더 나아가 18절에서는 물이 더 많아지니까 "땅에서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다"라고 말해줍니다. 제가 강조한 두 구절의 공통점을 아시겠습니까? 

 

먼저는 땅에서 떠오르다, 두번째는 땅에 넘쳐서 떠 다니다입니다. 두가지 표현 모두 "방주를 땅에서 떨어뜨리는 표현"들을 쓰고 있습니다. 노아가 탄 방주를 땅에서 떨어뜨리는 "전환점이자 구분점"을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에게는 절망적인 전환점이지만, 신자에게는 "땅과 구분될 수 있는 땅은 물론이거니와 땅을 덮어버린 물 위를 운행할 수 있는"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듯 운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초월적인 존재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다시피 노아가 탄 방주박스는 에덴동산의 모형이었습니다. 동물 한쌍씩이 종류대로 질서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생명의 기운이 있는 것들이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이 그 문을 닫아주시는 초월적인 개입이 함께 하였습니다. 그것이 에덴의 모형이었습니다. 이것이 땅을 너머 물 위를 운행하는 자의 모습이고, 우리가 지금 우리 땅에서 이뤄내야 할 모습입니다. 우리의 환경이 종류대로 질서가 잡혀 세속에 휘둘리지 않게 되고, 우리를 만나는 자들이 생명과 소망을 얻게 되며, 우리를 보는 자들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삶을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 안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방주가 땅에서 떠올라 물 위를 떠다니는 것의 참 의미인 것을 모세가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말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40일이라는 숫자는 정확하게 무얼 의미하는지 성경은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이 40일 동안 방주는 점점 땅에서 떠올랐다고 말해줍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생애를 이 40일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점점 이 땅에서 떨어져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개입, 은혜, 구원, 믿음과 같은 "구분되어지는 은혜"로 우리는 이 땅의 세속과 구분되어져야 합니다. 떨어져야 합니다. 천국 소망으로 점점 채워져야 합니다. 결코 이 땅과 같아져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함께 이 땅보다 더 지혜로와져야 합니다. 이 땅보다 더 복되야 합니다. 이 땅보다 더 힘이 강해야 합니다. 이 땅이 감당할 수 없는 방법과 원리, 가치로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방법,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순리대로 살아내는 것을 우리가 확인해야 하고 세상이 확인하게끔 해줘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40일 심판을 통해 노아의 방주를 띄우셨듯이,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우리가 땅에서 떠오를 수 있도록 땅과 구분될 수 있도록 구속의 십자가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케 해주셨음을 팔복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팔복은 앞에 "나보다 주님때문에"를 붙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한번 해볼까요? 마태복음 5장입니다. 

 

3나보다 주님때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나보다 주님때문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나보다 주님때문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나보다 주님때문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나보다 주님때문에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나보다 주님때문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것임이요

9나보다 주님때문에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것임이요

10나보다 주님때문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그렇습니다. 땅에서 살아가는 나의 생애를 위해서보다 주님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이렇게 살아가는 자들에게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천국을, 위로를, 땅을 기업으로, 배부름을, 긍휼을, 하나님을 볼 것을, 하나님의 상속자요 자녀가 되는 것을. 그래서 세상이 미련하다고 왜 그렇게 사냐고 말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오히려 복이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것이 상을 받을 증거라고 말해줍니다. 땅과 구분되십시오. 하늘의 존재가 되십시오. 천국을 만드십시오. 여러분에게 상이 있습니다. 

 

 

 

2) 15규빗 - 천하의 산보다 높아지는 방주, 세상과 떨어지게끔 하시는 하나님

두 번째는 19-20절입니다. 19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본문에서 모세는 이 홍수의 높이의 기준을 어디로 잡고 있습니까? "천하의 높은 산"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산은 무엇입니까? 땅입니다. 높은 땅을 산이라고 부르죠. 그 땅보다 15규빗 더 높이 물이 가득찼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방주에 태워 초월적인 존재로 만들어가는 노아와 그 가족들은 이 땅의 그 어떤 높음보다 높아졌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21-23절입니다. 

 

21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23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가족들만 남기시기 위해서 가장 높은 산보다 15규빗 더 높게, 1규빗이 팔꿈치에서 손끝까지니까 대충 45~50센치미터가 됩니다. 계산이 쉽게 50센티미터라고 하면 15규빗은 7미터50센티미터가 됩니다. 아파트 2층보다 더 높은 위치지요. 하나님은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셨을까요? 사람이 땅을 다스리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땅 모두를 심판하시는 물로 채우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가장 높은 산의 꼭대기보다 7미터 50센티미터를 높이신 이유는 방주가 산 봉우리에 걸리지 않고 이 홍수를 견디게끔 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과 떨어져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주십니다. 물론 막연하지요. 그런데 우리의 삶을 돌아볼까요? 여러분이 드린 주일의 시간과 십일조라는 재정. 그것의 있고 없고의 차이가 과연 여러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습니까?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땅의 삶과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줍니다. 모든 육체가 떨어질 영광으로 살아가지만,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원한 삶의 질을 바꾸게 됩니다. 육체로 썩어질 것을 심고 거두는 우리가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영생의 힘으로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게 해주십니다. 돈이 없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고, 뚜렷한 결과물이 없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사는 인생이 인정받지 못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의 씨앗을 뿌리세요. 하나님이 거두게 하실 줄 믿습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를 낮추시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의 원리를 믿으시는 저와 여러분되시길 소망합니다. 

 

 

3) 150일 - 심판의 시간동안 물 위를 운행하는 방주, 새로운 시대의 왕으로 세워지는 시간

마지막으로 150일 동안 하나님께서는 물이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24절부터 8장 3절입니다. 

 

24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1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성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2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3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하나님은 150일동안 일부러 물이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방주에 있는 사람과 가축"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라고 말씀하시며, 땅의 심판을 거둬들이시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땅위의 호흡들은 심판하셨지만, 택한 노아와 가축들을 기억하시사 방주만큼의 에덴의 공간을 이제 다시 온 지구의 영역으로 더 넓혀주십니다. 그리고 그 노아의 후손은 하나님의 뜻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150일동안 땅의 모든 악한 것들과 불경건한 것, 불순한 것들을 심판하시고 없애셨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땅에서 우리는 충만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이 옵니다. 그 땅에서 우리는 다시금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같이 온전한 부활체가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땅의 심판의 시간을 하늘 위에서 겪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보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넓은 광활한 온 우주의 왕으로 노아와 같이 세워질 것입니다. 그 심판의 시간 동안 우리는 영광을 받고 높임을 받고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결말부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3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장)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의 인생의 모든 아픔을 씻어내주시고 우리를 새로운 시대의 왕과 권세자로 삼아주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계셔주셔서 우리에게 다시는 사망과 애통, 곡하는 것, 아픈 것이 없게끔 해주십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전환점에는 "구분되어지는 사람, 구분되어지는 영역"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곳에서 왕으로 세워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욕심이 지배하는 지옥이 될 곳에 있습니까? 에덴에 있습니까 아니면 가나안의 욕정 속에 있습니까? 모세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가나안의 왕으로 서라고 말이죠. 저와 여러분, 이번 한주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여러분의 가정, 직장, 이웃, 경제, 정치, 사회와 나라 모든 영역에서 여러분이 천국을 만들어가시는 에덴의 왕으로 세워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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