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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YAMEMORY
구속사 설교_F/가나안을 에덴으로_창세기(1-11장)

가나안을 에덴으로(1)_하나님의 의미부여

by 우루사야 2022. 1. 8.

본문 : 창세기 2장 4-7절
제목 : 하나님의 의미부여 


1. 서론
1) 예화
여러분, 전쟁에 대한 참고서하면 동양에서는 "손자병법"이 가장 널리 알려져있지요. 140여개의 나라가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서 많이도 싸웠던 춘추전국시대에, 손자는 가장 탁월한 전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쓴 책이라 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구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일 겁니다. 적과 나를 알면 이긴다는 문구인데, 이 문구가 실은 조금 각색된 것이라 합니다. 본래 손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하더군요. "지피지기 백전불태" 적과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입니다. 그 뒤에 손자는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한번은 이기고 한번은 진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움에서 위태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손자가 살던 시대에는 전쟁이 워낙 많다보니 한 번의 전쟁을 이겼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 다음 싸움이 또 일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피해로 전쟁을 승리함으로써, 다음 전쟁을 준비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의 정보"를 가지고 최소한의 병력으로 전쟁을 이김으로써 나라가 위기에 빠지지 않고 위태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던 겁니다.

손자병법을 가지고 우리 인생의 교훈을 삼을 때가 많습니다. 산을 넘어도 또 나타나는 위기와 역경 때문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지피지기 백전백승"보다 "지피기지 백전불태"가 어른이 되어 갈 수록 더 와닿는듯 합니다. 이기는 것보다 "삶의 책임진 것들이 위태해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손자가 말하듯이 나와 내가 넘어야 할 산을 앎으로써 나의 삶을 위태하지 않게 하고 선하고 평온하게 만들어가는 한해를 만들길 소망하는 것이겠죠. 

 

2) 주제 
우리는 지난 주까지 "예수를 따라" 어떤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모세"를 따라가보고자 합니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탈출에 성공함과 동시에 나라로써의 헌법의 기초를 닦고 나라의 틀을 세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위대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리더십에 한계가 있었으니 같이 탈출한 세대와 함께 가나안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생을 마감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이 돋보였던 이유는 후세대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야 할 정신과 목적"을 잘 전달했다는 의미일껍니다. 그는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직전인 요단강 동편에서 후세대들을 모아놓고 "설교"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모세오경입니다. 그 중에 모세가 그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정신"을 잘 표현해주는 모세오경 중 한 구절을 말씀드려보겠습니다. 

22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신3)

모세는 너무나도 분명하고 클리어하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것만 기억하면 백전불태이다.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이 말에는 세 가지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첫번째는 두려워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겁니다. 즉 우리에게 피해를 끼치든 멸망을 주든 여튼 우리에게 해가 되는 대상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신"이 인간사에 개입하여 친히 싸우시겠다는 겁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는 겁니까? 이스라엘이 약하니까요. 여기서 세번째입니다. 이스라엘은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세 가지를 합해서 모세의 가르침을 다시 재구성해보면, "너희는 너희의 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해라. 하나님이 너희를 대신해 대적과 친히 싸워주시리라" 

우리는 이제 22년이라는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22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많은 것들을 감당할 것입니다. 가정, 직장, 나의 전문분야, 이웃, 관계, 교회, 사회 등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 영역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크고 작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나라, 첫에덴을 회복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렇듯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각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비추어 "에덴"이 되길 바라고 계십니다. 천국은 다른 곳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그곳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 천국이 각 성도들을 통해 계속 하나하나 모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 날에 예수님은 인류의 대표로서 각 천국을 모으실 것이고,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 각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의 나라 하나의 가족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가나안이 에덴이 되는 것이지요. 

3) 본문잇기
그래서 우리는 1-2월 동안 출애굽 2세대들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며 가나안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알려주고자 하는 모세의 가르침 속에서 "가나안을 에덴으로 만들어가는 법"을 배워보고자 합니다. 22년 우리의 삶의 각각의 영역, 가정, 교회, 직장, 사회, 국가, 나의 전문직, 관계 등 각 영역 속에서 "에덴이라는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만들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시길 소망합니다. 특히 오늘은 모세가 2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 중 첫 메시지 천지창조에 해당하는 창세기에서 중요한 한 대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저와 여러분의 삶이 에덴으로 바뀌어지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지피 
그럼 서론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지피지기 백전불태로 살펴보도곡 하겠습니다. 지피, 그러니까 모세가 말하는 "지피"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 오늘은 창세기 앞부분에서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세는 무어라고 말하면서 출애굽 2세대들에게 가르침을 시작했을까요? 바로 천지창조입니다. 1-2장에 걸쳐서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로 시작을 합니다. 1장은 온 만물을 만드는 것에 대해 모세는 말합니다. 그리고나서 모세는 "사람창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해보고자 하는데 그것의 시작이 바로 2:4-6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요즘 여러분 성경통독 잘하고 계십니까? 이게 하다보면 놓칠 때도 있고, 유튜브를 틀어놓고 딴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 개의치 마시고 넘어가십시오. 성경은 통으로 읽으며 맥을 잡아야 은혜가 됩니다. 한구절 한구절 은혜가 되기도 하지만 통독은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려면 힘듭니다. 어쨌든 요즘 여러분이 창세기를 읽고 계실텐데, 1장과 2장을 같이 읽으면서 비교가 되실 겁니다. 창세기 1장에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셋째날에 땅을 만드셨고 그 땅에 "풀, 채소, 나무"가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장에서는 "초목과 채소"가 나지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1장에서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한 창조를 하셨다면, 2장에서는 시간을 가지고 하시는 창조를 이어가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힌트가 4절에 나와있습니다. 

"4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모세는 먼저는 하늘과 땅이라고 말하더니 뒤에는 땅과 하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러니까 1장부터 설명해온 천지창조의 내용이 하늘이 먼저 나옴으로써 하나님 입장에서 창조한 내력이다. 그럼 이제는 땅과 하늘, 땅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내력을 살펴보도록 하겠다라고 말하는 겁니다. 여기서 모세가 중요한 두 가지 땅의 이야기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5절에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한 것, 땅을 갈 사람도 없다"였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모세는 "지피" 그러니까 우리가 알아야 하는 적, 피해야 하는 적의 모습을 말하는데 있어서 두 가지를 말해주는 겁니다. 잘 들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 "비"를 창조하지 않으시고 궁창을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모든 실과를 주셨기에 밭을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가 "어떤 한 기점"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사람이 밭을 갈아야만 하는 세상으로 바뀌었단 말입니다. 그 기점이 무엇일까요? "바로 죄"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 약속을 깨고 하나님을 멀리하기 시작한 선악과 죄를 짓고서 그는 이제 밭을 갈아야 먹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죄로 가득하여 결국 하나님이 "홍수심판"을 내리시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세상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죠. 

모세는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기 시작하면 고생시작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너희 선조는 하나님을 거절했던 경력이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는 겁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너희는 죄인이라는 것을 결코 잊지말라!"고 말하며, 지피, 너희의 적은 하나님이나 너희 형제가 아니다. 너희의 적은 가나안 사람이 아니다. 가나안의 죄악된 주체들이다! 가나안의 죄를 멸하러 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사람에게 연정을 갖거나, 또는 사람의 생명을 너희의 뜻대로 좌지우지 해서는 안된다. 너희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지고 심판하기도 하고 함께 하기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가 있을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지피" 우리가 상대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코로나입니까? 상대업체입니까? 나와 경쟁하고 있는 사람입니까? 나와 의견이 다른 갈등을 맺고 있는 자입니까? 우리의 인생의 "지피"가 무엇인지 여러분이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은 "죄"입니다. 출애굽 2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유념하고 주의해야 하는 것은 "죄의 문화와 가치, 세계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출애굽 2세대는 선조로부터 출애굽 1세대까지 모두 "불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죄의 문화로 들어가면 융화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너희가 죄인인 것을 기억하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금방 잊어버릴꺼다. 그럼 우리 다 망하는 것이다. 그러니 꼭 "나는 죄인이구나, 그래서 가나안의 죄에 현혹되기 쉽겠구나. 조심해야겠다. 아담이 쉽게 넘어간 것처럼 나는 그래서는 안되겠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지. 노아 홍수 때를 기억해보자.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셔도 사람들은 자신만을 바라보니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구나. 나는 그래서는 안되겠다. 하나님은 어떻게든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니, 하나님의 구원을 항상 바라며 살아가야겠다!" 이것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22년에 우리가 알아야 할 대적은 무엇입니까? 다른 무엇보다도 "죄"입니다. 그 죄가 내 안에도 있고 세상에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대적해야 할 죄가 어떤 이는 재물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자존감일 수도 있고, 어떤 이는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말해줄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밝혀야 할 것이고 또 다스려야 할 제목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전에 먼저 하셨던 그것, 광야에서 얻으신 사단마귀로부터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의 대적은 분명합니다. 내가 내 삶에 하나님을 초청해 천국을 만들어가는 것을 방해하려는 세력입니다. 

여러분이 가정 안에서 예수의 사랑으로 용서와 화해를 이끌어 가는데 있어서 사단마귀는 과거의 아픔과 고통으로 가정을 다시금 싸움과 상처의 파국으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싸워야 할 대상은 가족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를 긁으려는 사단의 공격임을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창조주로 주신 부모와 형제, 자녀를 예수의 사랑으로 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경제적 상황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지 못하게 하는 사단마귀의 공격이 또 있습니다. 그 때 여러분은 "나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사단이 공격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인식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고 생명력이 없게끔 합니다. 특히 경제적 상황이 어려울 수록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립니다. 나를 "돈의 가치"로 하락시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의 가치로 나를 증명하려는 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내가 다른 것으로 약한 것이 아닌 "죄"로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언제나 사단마귀는 내 안에 있는 죄라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소망이 없게 하고, 무기력하게 하며, 부정적으로 만들 수 있음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지기 
이렇게 모세는 출애굽 2세대들에게 지피, 상대해야 할 대적에 대해서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상대를 이기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즉 "지기"에 대해서도 말해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7-8절입니다. 


7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 거기 두시니라

출애굽한 2세대들이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죄에 대한 약함", 그리고 자신의 부모세대들로부터 경험한 불순종의 처참한 결과들. 그것에 대해서 자신들도 자유하지 못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나안 땅에서 그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서 "둔해진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죄는 우리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와 언제부턴가 하나인 것처럼 우리 곁에 존재하게 됩니다. 죄가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보다 더 나와 친밀하고, 죄보다 더 나와 연합되어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7-8절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만드셨는지에 대한 모세의 가르침입니다. 이 두 구절에서만 모세는 3가지를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이 네가지의 지기로 죄와 사단이라는 지피를 상대할 때 우리는 백전백태, 위태하지 않게 됨을 말합니다. 

(1) 흙으로 사람 - 여기서 흙이라는 표현에는 2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살아서 어떤 영화를 누렸어도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들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말하는 흙은 먼지라고도 쓰이기도 합니다. 즉 사라지는 존재인 것이지요. 우리의 시작은 이러합니다. 인생무상이라고들 하죠. 사람인 날생 없을무 영원할상. 사람의 생애에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야 할 무기는 "나"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게다가 1장에서는 사람을 향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즉 독특한 존재로 만드셨음을 말합니다. 영원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는 먼지로 가득한 우리의 생애인데, 하나님은 여기에 의미를 부여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독특함이 생겨났습니다. 

우린 22년도에 하나님의 역사로 내 인생에 하나님이 쓰시는 독특한 스토리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만의 간증"이 있어야 합니다. 역경이 있고 갈등, 아픔, 고뇌가 있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찬송으로 변하는 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흙처럼 아무쓸모 없는 존재임에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내 인생이 독특한 작품이 되는 그 시간을 모세는 출애굽2세대들에게 있다고 말하듯이, 우리는 그렇게 지어진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우리는 생령
그런데 다른 피조물도 독특합니다. 사자는 사자다움이, 강아지는 강아지다움이 있듯이 말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에게 특별히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과정"을 더하셨습니다. 즉 사람은 영원한 생령, 그러니까 "살아있는 존재"가 된 것이죠. 

넷플릭스에서 "더 굿플레이스"라는 드라마를 보면 천국에 대한 생각을 하게끔 합니다. 그 드라마 결론즈음 가면 영적존재는 영원한 영의 세계가 질려 인간이 되고 싶어 결국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지옥에 갈 뻔했던 주인공이 천국에 노력한 끝에 가게 되지만, 결국 현재의 삶에 큰 의미를 두지 말고 가볍게 생각해야 한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대사를 남기죠. "영원한 존재의 권태감을 끝내기를 오랫동안 꿈꿔왔었다."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천국의 모습입니다. 그들의 천국은 목적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사라지는 길"을 택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목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포스트모더니즘, 윤회, 몰아일체 등이 그러한 사조에 어느 정도 큰 흐름을 같이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고 모세는, 출애굽2세대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목적과 목표"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영원이라는 시간을 향해서 말이죠. 하나님의 생기를 받기 전에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같이 흙으로 지어진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에게만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십니다. "생령"이 되게끔 하십니다. 


(4) 동산지기
마지막으로 모세는 이 인간을 하나님께서 동방의 에덴동산의 지기로 세우셨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두심으로써 더 자세한 목적과 의도, 그러니까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일이 있다는 것이지요. 피조물로서 가장 명예로운 특권 아니겠습니까? 위에서 말씀드린 몰아일체, 천국에서의 무료함과 따분함, 목적의식의 부재는 인간으로 하여금 되묻게 합니다. 나는 왜 살아있는가? 천국에서 왜 영원히 살아야하는가라고 말이죠. 저는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를 굳이 무작정 비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에게 영원이라는 시간이 주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게끔 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성경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우주적 나라를 다스리는 왕으로 우리를 세우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나에게 맡겨진 것들을 "동산지기"로 잘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5) 이 4가지가 말해주는 것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의미부여'가 없다면 우리는 흙일뿐인 것이죠. 흙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 다른 흙으로 지어진 존재와 다르게 숨을 불어넣으사 생명력이 솟구치는 존재로 만들어주셨고, 하나님의 나라 에덴이란 곳의 청지기이자 주권자라는 역할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 빼면 시체인 것이죠. 하나님의 의미부여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세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흙이지만,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인 도덕, 이성과 지성, 감정, 의로움, 양심, 선함에 대한 추구, 영원함의 속성을 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형상에 하나님은 "직접 숨결을 넣어주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의 영역을 주셔서 동산지기로 삼아주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역할이 있는 것이죠. 

 


3) 백전불태

백전백승이든 백전불태이든 우리의 삶은 위태함을 이겨내는 승리의 삶입니다. 그렇게 천국을 하나하나 만들어갑니다. 내가 하나님의 의미부여로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또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은 "하나님을 떠나려는 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냐, 아니면 하나님께 멀어지느냐의 싸움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환경을 가나안으로 내버려 둘 것인지, 하나님이 에덴으로 만들라는 명령에 함께 하며 살아갈 것인지 말이죠. 

이번에 우리 교회가 4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여러 곳곳에서 성도님들의 결신과 헌신, 그리고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점점 활기를 띄어가는 우리교회의 상황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곳곳을 하나님의 나라, 에덴으로 만들어가는 공동체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의 삶의 가정, 직장, 이웃, 나의 전문 영역의 체계, 질서, 도덕성 들이 모두 에덴천국과 같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에덴천국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알 필요가 있겠습니다. 3절입니다.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천국은 "복이 있고 가장 독특한", 그러니까 세상에서는 느낄 수 없고 볼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차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속에서 "안식"이 이뤄질 것이라 말해줍니다. 이 안식은 이 땅에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시어 사단마귀를 최종적으로 이기시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에덴을 만들어가던 인생"과 함께 "최종적인 에덴"을 만드시어 안식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우리의 가치, 도덕, 질서, 문명, 문화, 세계관 안에서 "에덴"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출애굽2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으로 빛을 비춘 이유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3. 결론
유토피아라는 말을 들어보셨지요. 어원은 그리스어입니다. 부정을 뜻하는 우와 장소를 뜻하는 토포스가 합쳐져 유토피아,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뜻합니다. 이상향이죠. 이 땅에 없는 그러나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 우리는 모두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유토피아를 꿈꾸며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갈망합니다. 머리에만 있는 그 세계를 말이죠. 왜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꿀까요? 

그것은 영원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죽어서 갈 수 있는 세계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유토피야를 생각한다는 것이야말로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반증이 아닐런지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천국의 확신이 있다면, 이 땅에서 유토피아를 꿈꿀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좋은 환경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지만, 우리의 영혼의 대안이 되어줄 순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에덴"을 만들 때 가장 만족하고 평안을 누릴 수 있기에, 우리는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유토피아에 끌려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현실을 돌아볼까요. 여러분은 끌려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에덴으로 만들어가고 계십니까? 삶의 팍팍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 계속 스트레스라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헤엄치고 계십니까. 어쩔 수 없다는 굴레 속에서 묻혀계신 것은 아닐런지요. 하나님은 그것을 뚫고 여러분과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힘은 여러분의 삶을 에덴으로 변화시키실 수 있고, 또 그 자리로 여러분을 초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지옥을 가지고 가주심으로, 우리는 천국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우리는 결코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를 대신해 싸워주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그 예수가 열어놓은 십자가의 길을 걸으십시오. 믿음의 길을 걸으십시오. 십자가에서 문제가 들어가 역사로 변화되어지는 놀라운 섭리를 경험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이 어느샌가 함께 내 인생에 동참하시어 내 인생을 에덴으로 만들어 가고 계심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에덴으로 만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나아가는 이스라엘, 그들에게 친히 함께 하셔서 대신 싸워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 삶에 있습니다. 내 인생에 있습니다. 예수가 그 길을 열어놓으셨고, 성령 하나님이 이 사실들을 지금도 우리에게 깨닫게 하고 계십니다. 이번 한 주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여러분의 인생을 에덴으로 바꿔나아가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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