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AYAMEMORY
강해설교_F/야고보서_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약 4:11-17

by 우루사야 2021. 12. 27.

11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13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17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지난 본문에서 야고보는 우리의 마음에서 왜 차별이나 싸우고자 하는 정욕이 나오는지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신자이면서도 이렇게 불경건한 행함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이중적인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순결할 것을 말했습니다. 오늘은 "형제비판"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11절입니다. 

11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자끼리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났을 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은 잠잠한 것"인데 자신이 판단하고 정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나 자신이 기준이 되어서 타인을 판단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두고 야고보는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재판관 노릇을 하려는구나"라고 비판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기준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기준은 무시하고, 자신이 기준이 되어서 다른 신자와 형제를 비판한다는 것은 교회의 기준과 주인노릇을 자신이 하려한다는 의미가 되어 버립니다. 12절입니다.

12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교회의 법을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그 행함에 대해서 정죄하고 심판하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잘못된 지체를 회개케 하시기도 하시고, 감동케도 하십니다. 교만하여 돌아오지 않는 형제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 영원한 심판에 보내시기도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고유권한입니다. 그런데 왜 그 권한을 침해하려 하냐는 것이죠. 왜 말씀에도 없는 것을 가지고 타인을 비판하고 비난하며 자신이 하나님 노릇을 하려고 드냐는 겁니다. 야고보는 이 지점에서 말씀을 무시하고 판단하려는 인생에 대해 스스로를 보라고 말해줍니다. 132-14절입니다. 

13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우리네 인생은 어떠합니까? 하나님 입장에서 잠깐 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어질 안개같은 존재입니다.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릅니다. 우리의 목숨이 우리에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리 목숨까지도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내일이라는 시간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마치 내가 계획한 대로 어디가서 얼마만큼 벌고, 그 다음에 이렇게 살것이며, 그 다음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확정짓는 것 만큼 미련한 자신감으로 왜 사냐는 것이죠. 자신의 미래도 알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타인의 미래에 대해서 비판하고 비난하면서 말할 수 있냐는 겁니다. 우리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에서 명확하게 말해주는 것 안에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과 질서 안에서만 행할 수 있을 뿐인, 우리는 무언가를 확정지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우리가 온전히 확정을 짓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주의 뜻"입니다. 주님이 뜻하시면 내가 이렇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신다면 내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이죠. 성경은 전체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인생에 생사화복은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 생사화복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고, 다시금 예수가 재림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확신 가운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내 힘과 눈으로는 나의 미래와 내일, 내 앞은 못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는 소망과 확신, 미래를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다른 것으로 자신의 미래와 내일을 보장받고자 합니다. 야고보는 그것을 "허탄한 자랑", 그러니까 허영에 가득차 빈 소리 뜬 구름같은 소리만 떠들어 댈 뿐입니다. 16절입니다. "
16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야고보는 그것을 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시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다른 것을 우상삼아 확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들이 자기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교만함이 있으니, 타인에 대해 아무렇게나 멋대로 말하고 비판하는 것이죠. 야고보는 분명한 "하나님의 기준과 복음, 예수 긍휼 중심"을 말했습니다. 그래서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않는 자들에게 경고합니다. 17절입니다. 

17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일일을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과거에 하나님 없이 넘어졌던 일과 하나님 붙들고 온전하게 걸어온 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뜻을 붙잡을 뿐입니다. 그런 우리가 누구의 미래에 대해서, 그 사람에 대해서 비난하고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로지 하나님 말씀안에서 서로 권면하고 격려하며 함께 독려하는 것일 뿐입니다. 더 나아가 야고보와 같이 신앙 안에 있으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알면서도 자기 스스로를 기준으로 삼아 멋대로 질서없고 덕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자들에 대해서,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재판관이 되지 말라"라고 말해야 하겠습니다. 공동체원의 미래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 간구하며 우리의 형제를 인도해주시길, 함께 해주시길, 은혜베풀어주시길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임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되시길 소망합니다. 

'강해설교_F > 야고보서_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약 5:7-11  (0) 2021.12.29
약 5:1-8  (0) 2021.12.28
약 4:1-10  (0) 2021.12.26
약 3:1-12  (0) 2021.12.22
약 2:14-26  (0) 2021.12.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