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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야고보서_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약 2:14-26

by 우루사야 2021. 12. 21.

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8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어제 본문에서 야고보는 예수의 긍휼을 가진 자로서 차별한다는 것은 모순임을 가르쳐줬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비슷한 가르침을 줍니다. 믿음이 있는데 행함, 그러니까 실천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것이죠. 즉 행함이 없다면 올바른 믿음이 없는 것이기에,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14절로 시작하겠습니다. 

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신앙인은 자신의 삶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와 사랑의 풍성함을 보고 목격하며 그것을 구원의 증거품으로 삼고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미워할 수 밖에 없는 이를 용서하게 되고, 방탕한 인생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되며, 역경을 기도와 소망으로 이겨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삶에 없다면, 이런 증거품이 없다면, 그의 신앙은 대체 무어란 말입니까? 자신이 신앙인이라고 믿었지만 내실이 없는 속 빈 강정일 수 밖에 없다고 야고보는 말합니다. 그런 속 빈 신앙은 유익이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매주일 신앙고백으로 예배를 드리지만, 삶에서 증거품이 없는 그러니까 실천이 없는 신앙은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15-18절입니다. 

15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16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는 속 빈 믿음을 가지고 "죽은 믿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무런 생명력이 없기에 어떤 유익도 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도 또 그 이웃형제들에게도 어떠한 유익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15-16절과 같이 타인을 향해 말만 할 뿐입니다. 마치 자신의 믿음이 말뿐인 것처럼, 실천에 있어서도 말뿐입니다. 진짜 신앙은 자신의 영혼에 유익이 됩니다. 그리고 그 신앙은 타인에게도 유익이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14,16절에서 두 번에 걸쳐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물으며 질타를 합니다. 나누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신앙, 예수의 긍휼이 몸에서 나타나지 않는 신앙은 결코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말이죠. 야고보는 18절에서 예화를 듭니다. 진짜 신앙인과 가짜 신앙인의 대화입니다. 

 

18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이 구절을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나는 나의 믿음에 대해 말로 자랑하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믿음에 대해 말할 것이 없습니다. 다만 행동으로 옮겨 순종하고 따를 뿐입니다. 말로만 믿음에 대해서 말하는 이여, 나는 당신의 믿음을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까? 어떤 것으로 당신이 참신앙인 인지를 알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우리를 향한 질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예수가 우리를 향해 베푸신 긍휼이 내 안에서 감격과 감동으로 있다면, 나는 그 긍휼을 타인에게 자랑하고 또 베풀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이 질문 속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질문에 대해 답하지 못하는 거짓신앙인을 앞에 두고 19-20절과 같이 질타합니다. 

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20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귀신도 하나님이 한 분임을 고백하며 그 분 앞에서 떱니다. 자신의 명예와 욕심으로 하나님을 수종들지 않고 타락한 영적존재, 죄악으로 가득찬 그 존재도 하나님을 고백하고 그 분의 존재에 대해서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강한 힘 앞에서 살아나가 보려는 쥐새끼같은 생존본능일 뿐입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참 신앙인의 삶입니다. 귀신과 같이 말뿐일 수가 없습니다. 말뿐인 것은 헛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마치 믿음과 행함 두가지 요소를 합쳐야 구원이 되는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믿는 자는 자연스럽게 그 믿음이 저절로 삶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은 자는 자신의 마음에서 아직 하나님을 믿지 않고, 구원보다 세속과 자신의 성공, 고집, 우상을 더 의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가짜 믿음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자는 행함과 실천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실천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참 신앙은 어떤 유익으로 나타납니까?  야고보는 2명을 예로 들어줍니다.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이었습니다. 21-25절입니다. 

21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22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23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24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25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위에서도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의롭다고 해주신 것은 아브라함의 행함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의 행실로 완성이 된 것입니다. 믿음과 행실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1단계, 행실이 2단계로 합쳐져서 의롭다고 받는게 아닙니다. 믿음은 행실과 함께 하면서 점점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은 의롭다고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에서 야고보는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점점 성숙해지니 하나님은 그를 친구라 부르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이것은 라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라합은 여리고로 오는 이스라엘 정탐꾼을 향해서 두려워 벌벌떨기만 하지 않았습니다. 말로만 여호와가 두렵다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발각될 위험에도 무릅서고 정탐꾼들을 구해주었습니다. 믿음의 결단이 실천과 삶의 용기로 나타났을 때, 그것은 우리 안에서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야고보는 26절로 이 논지를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26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위에서 야고보가 "행함이 없는 믿음이 어떤 유익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영혼이 없는 몸을 향해 너의 인생에 어떤 가치가 있느냐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죽은 몸은 아무런 일을 할 수 없듯이, 죽은 믿음은 어떤 유익도 어떤 영향력도 어떤 하나님의 역사도 옮길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믿음,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사는 삶,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삶에서 살아내는 용기,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믿고 함께 물으며 기도하며 살아내는 하루가 나의 영혼에 유익함이 되며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됩니다. 오늘 하루도  살아있는 믿음으로 여러분의 삶을 통해 사랑과 은혜가 펼쳐지길 소망합니다. 

 

* 기도문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2:26)

오늘 하루도 나의 생명을 이끌어주신
여호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내 영혼에 안식을 주시어 평온히 잠들게 하소서. 
내일도 서로 사랑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루 살게 하소서. 

오늘 하루를 돌아봅니다. 
내 안에 있는 주님의 사랑이
삶과 행동으로 흘러나갔는지, 
혹여나 욕심과 탐욕이 통로를 막아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내 믿음이 막힌 믿음, 죽은 믿음이
되지 않길 소망합니다. 
내일 만날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는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내가 되게 하소서. 

죽은 믿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주님의 사랑은 나를 변화시키고, 
내 이웃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나와 내 이웃을 변화시킬 줄 믿습니다. 
오늘 못다한 사랑, 내일을 통해 역사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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