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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야고보서_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약 2:1-7

by 우루사야 2021. 12. 19.

1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2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3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4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5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6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7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이번 한 주도 야고보의 가르침으로 우리의 심령이 은혜로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1절로 시작합니다. 

1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야고보는 사람을 차별하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영광의 주를 믿으니"라는 말을 합니다. 영광은 쉽게 표현해 자랑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영광은 자랑할만한, 이라고 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신자끼리 자랑할 수 있는 꺼리가 무엇이 있단말입니까? 부의 자랑은 재계에 가서 하면 되지요. 지식의 자랑은 학계에 가서 하면 되겠습니다. 그럼 신앙 안에서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을 자랑하는 것, 주님을 더 세우는 것, 자신의 욕정보다 주님께 순종하는 심령. 그것이 우리가 자랑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신앙공동체 안에서 다른 것을 자랑하며, 또 다른 것을 자랑하는 자를 더 우대하고, 다른 것을 자랑하지 못하는 자를 하대 하고 차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야고보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우리가 모인 이상 우리는 "신앙으로 이야기하고, 신앙으로 판단하고, 신앙으로 서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던 겁니다. 2-3절로 이어집니다. 

2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3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예수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자랑거리이기에, 예수와 친밀한 믿음의 관계가 그 사람에 대한 평가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외의 것, 그 사람의 외모, 재력, 위신 등으로 차별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인생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행색이 남루한 사람을 향해, 행색이 화려한 사람이 오니  저리 비키라는 행태 자체가 얼마나 "예수를 자랑으로 삼는 이들"과 거리가 먼 것인지에 대해서 지탄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와 연결 될 때, 세상에서 멸시 당하는 가난한 자들조차도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그들은 결코 멸시를 당할 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믿음의 신자가 어떻게 그들을 멸시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오히려 그 믿음없으면서 교회 안에서 이렇게 저렇게 사람을 판단하고 자리를 정한다는 것 자체가 교회를 흔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4절과 같이 단정짓습니다. 

4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가 어떤 환경 속에서 하나님을 얼마나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그가 삶의 현장에서 인내하고 고뇌하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지하며, 성령님과 동행하기 위해 애쓰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높이실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신자는 이런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이렇게 신앙의 눈을 가지지 못하고 재물과 세상의 자랑으로 교인들을 서로 차별하고 판단하는 것을 "악한 생각"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신앙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인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신앙과 믿음 안에서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과 세속의 가치를 가지고 판단하고 결정하려 한다는 것자체가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삼위하나님이시지만, 그 분이 우리를 만드셨고, 그 분이 우리 공동체의 머리로써 모든 지체에게 연결되어 다스리고 또 명령하고 계시며, 그 분이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그 분이 그렇게 우리의 삶에 개입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그런데 보이는 것들로 신자끼리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것은 삼위하나님을 부정하는 꼴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운영하는 당회나 임직자들은 특별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유의하고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줄 아는 눈이 필요합니다. 

5절로 이어집니다. 

5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가난한 자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세상을 등지고 낙망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가난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있는 신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여전히 붙잡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오늘의 믿음과 은혜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그의 믿음의 부요를 우리는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믿음의 부요는 천국에서 "약속한 나라를 상속"하게끔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부자는 가난하면서도 믿음이 있던 그 였던 겁니다. 오히려 행색을 보고 판단하는 자가 "영적으로 눈먼자임을 드러내는 꼴"이 됩니다. 6-7절입니다. 

6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7그들은 너희에게 대하여 일컫는 바 그 아름다운 이름을 비방하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부자는 영적인 시야가 없는 세속적인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기독교 신자들을 미워했고 핍박했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이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비방하며,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까지 법정으로 끌고가 그들을 비판하고 모욕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영적인시야는 갇혀있었고 닫혀있다고 야고보는 고발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시야를 가지고 "믿는 신자"가 똑같이 행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도 믿음이 없다는 겁니다. 가난한 신자를 업신 여기는 것은 결국 예수를 비방하는 자들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신자가 가난한 신자를 바라볼 때에는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인내하며 하늘소망을 가짐으로써 그를 칭찬하고 기뻐하시고 유산을 상속하려고 준비해두고 계시는 주님을 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만약 우리의 시야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세속적인 잣대로 신자들을 판단하고 있다면 우리 안에 얼마나 믿음이 없고 세속으로 가득 차 있으며 오히려 신자를 핍박하는 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선한 하나님의 영적인 시야를 허락해주시길, 믿음의 눈을 가지는 우리가 되길 간구합시다. 

우리 주님은 영광의 주님이십니다. 자랑할 만한 이름을 가지고 계십니다. 나의 현실이 가난하거나 다른 신자의 환경이 가난해도, 우리는 영광의 주님때문에 이미 부요한 자들입니다. 보이는 것이 가난할지언정, 우리의 미래에는 상속될 유산, 나라, 왕권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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