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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설교_F/예수따라_마가복음

예수따라(5)_미리하는 장례

by 우루사야 2021. 12. 23.

1. 서론
1) 예화
유비무환하면 준비가 있으면 근심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유비무환으로 많은 해전에서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런데 만약 무비유환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네. 말 그대로 준비가 없었다면 많은 환란을 당했을 겁니다. 

2) 주제
예수님을 따라가다 보면 많은 장소와 길들이 있어왔습니다. 좋을 때도, 힘들 때도, 내려놔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오늘은 5번째 시간인데 지난 시간에 우리는 예루살렘 초입에서 "입성식을 하는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의 그런 입성은 "죽기 위한 입성"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죽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오신 것이었죠. 그래서 예수님은 그 전에도 3번이나 제자들에게 "수난예고"를 하시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문둥병자 시몬의 집에 들어오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은 옥합을 바친 여인의 행동에 대해서 "내게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해 바치는 것보다 더 잘한 것이라고 평가해주신 것이죠. 왜냐하면 "내게 좋은 일"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제 죽음이라는 것을 받으셔야 하는데, 그래야 인류가 구원을 얻기에 그 죽음을 바라보며 장례를 준비한 것이야말로 인류를 향한 구속사의 재료가 될 것이기에 잘한 일이라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따라가는 우리에게 명확하게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이 땅에 오신 왕은 "죽음"이라는 것을 상대하러 오셨다고 말이죠. 이 왕은 다른 국가, 부국강병, 문화부흥, 경제적 소득을 이루러 오지 않았습니다. 목적은 분명합니다. 인류가 가지고 있는 "죄"를 해결하고, 복음으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5번째 자리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예수 따라 가는 길에 우리도 "죽음"을 준비하는 자리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나의 죽음 이후에 있을 영원", "예수가 만들어 놓은 영원으로 가는 길"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여인은 자신의 행동이 거기까지 다다를지는 알지 못했을 겁니다. 다만 예수님이 죽어야 자신이 산다는 것만 알았고, 그래서 죽으러 가시는 그 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습니다.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복음의 실현, 체현"이라 불리울 만큼, 복음이 전해지는 모든 곳에서 함께 전해져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4) 본문잇기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한해를 마무리 짓는 시점에, 우리의 인생의 한 부분을 마감짓는 시점에, 언젠가 우리가 전체 인생을 마감짓는데 있어서 일부분이라는 측면에서 유익하고도 시점에 알맞다고 생각이 듭니다. 한해를 어떻게 마무리짓고 계신가요? 이번 주는 어떻게 마무리지으셨나요? 그 다음길을 보고 계신가요? 우리는 매일 죽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영원과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항상 죽음 너머 영원의 길이 있음을 기억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여인의 신앙고백, 예수의 죽음 너머에 있을 영원을 바라보는 그 믿음고백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어 내년에 영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한해를 보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안티에이징 - 죽음을 피하려 하는 자들
화장품에서 요즘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를 꼽으라면 "안티에이징"일 것입니다. 항노화작용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죠. 쉽게 말해 나이들지 않는 피부세포를 만드는 것이죠. 사실 이것은 불가능하고, 나이들어 보이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 겁니다. 어쨌든 이것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제 8-9년전 사진에 민재를 어깨에 매고 찍힌 사진이 있었습니다. 장시간 운전한 후에 찍은 사진이라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내가 "젊다" 감탄했습니다. 젊음은 아무리 치장을 해도 따라갈 수 없는 가장 좋은 화장품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위인들이 에이징, 나이듦을 막아서는 안티에이징에 시도했습니다. 진시황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불로장생"을 꿈꿔왔죠. 지금도 구글의 자회사 캘리코나 특정 대학이 이 분야를 위해 연구하고 있기도 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우리는 나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요? 사실 동물이라면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 육체적으로 본능적으로 반작용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생명이 줄어드는 것을 원하는 생명체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우리는 오늘 지금 생명을 잃고 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단지 시간이 흘러가고 있고, 좀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내가 나이들어가고 있구나, 나이가 많이 들어서야 내가 죽어가고 있구나 느낄 뿐입니다. 그럼 육체적으로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는 나이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과거에 내가 젊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를 꿈꿉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자꾸 과거로 돌아가고 싶고,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지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결코 미래보다 과거 내가 좋았던 그 시간에서 확신을 얻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자신의 앞일을 준비하지 못하고, 자신의 처지와 안위만을 바라보는 자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자신이 대하고 있는 사람, 그러니까 흉계로 잡아 죽이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분별을 하지 못합니다. 바로 예루살렘에 종교계의 기득권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로마로부터 얻은 자리로 현재의 안정을 이루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미래에 생길 불안요소에 대해서 항상 초조해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의지해 현재를 살아가는 자들이지, 미래를 통해 현재에 안정을 꾀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이틀이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일 방도를 구하며2이르되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마가는 유교절이라고 특히 언급합니다. 유교절은 출애굽 성도들이 하나님이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셨고, 그 잡은 양을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해놓고 먹게끔 하신 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제정된 절기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그래서 항상 기억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새로운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실 것을 유월절을 지키며 기억하며 기다리는 것이지요. 이것 자체가 "미래지향적 신앙"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며 그 때 일하셨던 하나님이 지금 동일하게 계시고, 그 분이 약속하시길 미래에 새로운 나라의 도래로 메시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을 기억하는 겁니다. 그렇게 미래에 대해 확신케 하고자 유월절을 제정하셨죠.

그러나 기득권자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민란을 두려워했고, 그 민란으로 로마수뇌부에게 미운털이 박혀 자리를 빼앗길까 그것이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고 서로 대화를 합니다. 10-11절을 볼까요?

10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11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그들의 흉측한 계략은 12제자 중 한 사람을 배반케 했고 그들의 밀회를 통해 그들은 돈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유익으로 예수를 잡을 기회를 찾고자 합니다. 여기서 12제자 중 한 사람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고자 옥합을 깨뜨렸던 여인의 행동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4-5절입니다.

4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5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님이 3번이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그에게는 미래는 없습니다. 오로지 현재 준비해야 하는 현실의 문제만 가득했습니다. 돈이 있어야 오늘을 살 수 있고, 내일과 미래를 준비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그의 반응은 무어라 마가는 말합니까? 화와 책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평가와는 전혀 반대로 말하고 있죠.
예수를 죽이려 드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나, 예수님의 미래를 생각하지 못하는 가룟유다나 모두 미래에 대해서 "돈"에 매여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의 죽음 앞에서 돈으로 매여있는 그들과 그당시 1년치 연봉을 바쳐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여인의 모습이 대비되는 대목입니다. 사람이 두려워 민란이 날까 두려워 로마에게 대제사장임명권이 철회될까 두려워 결국 예수를 잡고자 하는 그들은 자신의 현재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밖에 볼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미래를 지혜롭게 구할 수 없었습니다.
심리학의 대가인 프로이트는 우리 인간에게 "에너지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말하면서 카텍시스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사람이 100만큼 에너지가 있다면, 젊었을 때에는 종족번식을 위한 외모와 체형에 에너지를 많이 쓴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종족번식의 시기가 지나면 그 에너지가 내면으로 향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가지지 못한 내면의 아름다움, 절제미, 성숙한 품성 등으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런데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에너지를 내면이 아니라 아직도 외면에 쏟아붓는 이들이 있는데, 그런 이들을 향해 "애어른"이라고 우리는 부르지요. 나이와 상관 없는 행동과 처신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말할 겁니다. 이것을 어떤 목사님께서는 "허영을 기반으로 하는 삶"이라고 평가하기도 하더군요. 자기 과시로 살아가는 애어른의 삶의 결과는 결국 허영이고, 그 빈자리는 질서없고 근간이 없으므로 "아이가 가장 잘하는 충동적 분노나 일탈"로 마무리 짓기도 합니다. 미래를 내다볼 줄 모르는 아이는 지금 당장의 분에 집중 할 따름입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고 어디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과거 내가 잘 나갔던 그 시절만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가십니까, 현재 닥친 문제와 현실적인 역경에 둘러쌓여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는 매일 죽음 너머의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매일 죽어가는 나의 인생이 점점 영원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2) 죽음을 준비하는 자
반면에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겼던 이 여인은 예수님의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온전한 신앙고백은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복음전파 되는 곳 모두에서 언급되어야 할 신앙고백"이라고까지 예수님은 평가해주십니다.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절입니다.

3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죽으러 오셨습니다. 예루살렘 안에 숙소를 잡지는 않으시고 근처 3km 근방에 있는 도시 베다니에 머무르셨습니다. 여기는 예수님이 입성식에서 나귀를 준비하신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마가는 베다니 숙소가 아닌 다른 곳에 가셨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곳은 충격적이게도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었습니다. 특히 유월절 절기에는 "율법을 범하지 않아야" 절기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조심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시기에 시몬의 집, 특히 부정적 인식이 강했던 문둥병자의 집으로 가셔서 식사를 하십니다. 1-2절에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사람들 몰래 흉계를 짜 예수를 잡고자"했다면, 예수님은 오히려 반대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선을 베풀고 가르침을 주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나아가십니다. 마가는 계속해서 이들과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죠.


이런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 여인이 옥합병을 깨뜨립니다. 베다니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던 예수님이었습니다. 베다니는 그야말로 축제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기쁨을 나누시는 잔치에 참여하신 것이죠. 그런데 그 분위기를 깬 자가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향수병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 안에는 매우 값지고 비싼 퓨어한, 이물질이 없이 순도가 높은 '나드'향수가 들어 있었습니다. 뒷부분에 나오지만 이 향수 한 병은 요즘 시세로 하면 2-3천만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여인은 이 향수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요한은 기록하기를 그 순간 "그 안이 향기로 가득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순전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12)


그리고 보니 그 여인은 흐느끼면서 자신의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닦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머리에 부었다고 말하며, 요한은 발에 부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을 통해 예수님의 온 몸이 이 향수로 다 발라졌으며, 이 여인은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습니다. 시각적으로 후각적으로도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제자들의 비판도 있었으니 청각적으로도 잔치집은 순간 흥이 깨졌습니다.


4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5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6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제자들의 비판에 예수님은 "괴롭게 하지 말라고 그녀는 좋은 일을 했다"고 변호해주십니다. 그러면서 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가난한 자를 돕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예수님이 더이상 함께 있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죽으실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서 이렇게 한 행동은 좋은 것이라고 말씀해주시는 것이죠.


간단하게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예수님이 내다보시는 미래, 수난과 십자가,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그 자리로 예수님을 보내드릴 수 밖에 없는 여인의 심정"을 그들은 이해하고 있는지 예수님이 묻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8절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8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제자들은 그 이전에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은 그렇다쳐도 제자들도 매마찬가지 아니였습니까? 누가 더 큰지 싸우고, 예수님이 유다를 정복하시면 한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해서 어머니를 대동하여 따로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미래를 바라볼 줄 몰랐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수난과 죽음을 말하셔도 알지 못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 여인은 순전한 나드향을 가지고 섬겼습니다. 그녀의 순전한 마음이 보입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준비하였느니라" 게다가 온전히 드렸습니다. 희석하지 않고 전부 다 부어드렸습니다. 자신의 전적인 희생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예수님을 보내드리는 그녀의 신앙과 마음을 마가는 이렇게 향수를 표현해주며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래에 있을 예수님의 죽음과 수난에 대해서 준비한 그녀의 신앙고백을 두고 예수님은 9절과 같이 말씀해주십니다.


9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여인이 잘했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그냥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바로 "복음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준 삶"이었던 겁니다. 온전하고 순전하게 "죽음을 너머 영원을 보게 해주는 복음"을 여인은 살아냈던 겁니다.

예수는 죽을 것이지만, 복음은 살아움직여 더 퍼져나갈 것입니다. 새시대는 죽음에 이어 영원이 이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행동은 이 땅의 원리로 경제관점에서는 낭비이지만, 하나님의 관점 그러니까 영원과 종말의 관점에서 그녀의 행동은 가장 탁월한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의 생존의 연속성을 낳았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단순하게 구제의 효율로 비할 수 있단 말입니까?


3) 복음을 살아내라
하나님 - 미리 장례준비케 하는 자리 주심
예수님 - 그 장례로 여인을 모델로

3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복음을 살아낸자 - 예수와 함께하는 미래
0. 머리와 발 : 왕으로 믿는 자
1. 깨뜨림 : 옥합 두번 사용, 강조, 전부임
2. 순전함 : 순수한 신실한 희석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것
3. 연봉 : 미래를 맡김

성부가 되는 법. 많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난한 자를 돕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와 미래를 보아라. 그래서 너가 먼저 죽어야 한다. 깨뜨려라. 나와 순수한 관계가 되자. 그 다음이 이웃을 돕는것이다.

깨지지 않은 죽지 않은 부자는 참혹할 뿐이다.
오염된 돈 논쟁 록펠러 기독교재단 10만달러 사람 해치고 번 돈

그 당시 상황에 대한 결정은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과 당신 자신만.
예수따라가는 길은 분명 말한다.
죽음 다음의 생을 바라보며 결정하라고.

7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돈은 우리와 항상 가까이에 있음. 돈은 우리 삶의 태도를 말해주기도 함.

요한복음 12장 [개역개정]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우리는 매순간 예수와 함께 살아갈 죽음이후 영원을 바라보며 돈을 다뤄야 하는 것이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여인의 행동이 기준이 된다. 죽음 이후 천국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태도. 현실을 두려워하며 과거에 매여 죽음을 피하려는 자.


3. 결론
제가 본당과 3층 사이에서 성경도 보고 연구도 하고 설교도 씁니다. 그러다보면 위 센터에서 어르신들과 진행자가 함께 시간을 가지는 소리들을 듣게 됩니다. 기억에 남는 것이 진행자가 어르신들과 같이 말해보자고 하던 문구입니다. "친구야! 병원가지 말자! 건강하게 여기에 있자!" 얼핏 들으면 어린이들에게 하는 이야기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계속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이로 태어나 어른이 되지만, 다시 아이로 돌아가는구나." 우리의 미래는 이러합니다. 다시 힘이 없어집니다. 활동도 위축이 됩니다. 어린아이처럼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셨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천국에 가리라"고 말이죠. 우리는 세상에 잊혀질 것이 두려워 안티에이징으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 이후에 있을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나를 잊어도,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은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삽니다. 근심과 걱정, 잊혀질 죽음이 아닙니다. 죽음을 너머서서 있는 영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죽을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슬픕니다. 힘든일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온전하고 순수한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21년도를 보내시고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아직 미련이 남으십니까? 그것은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않으셨기 때문일 겁니다. 내년에는 가장 중요한 일, 예수 따라가는 것을 잊지마시고 예수 따라오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할일을 다 하신 것 같으십니까? 예수님을 잘 따라오셨기에 미련없이 이 자리에 계시는 것일 겁니다. 내년도 예수따라 한 해 잘 보내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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