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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설교_F/예수따라_마가복음

예수따라(2)_가깝고도 먼 고향

by 우루사야 2021. 12. 9.

본문 : 마가복음 3 31-35
제목 : 예수따라(2)_가깝고도 고향

1. 서론

우리나라 터널로 최대길이로 지금 양양고속도로가 뚫려있어서 자주 안가지만, 저희 가족은 가끔 찾게 되는 한계령 휴게소가 있습니다. 그곳에 일부러 들러 사진을 찍곤 합니다. 한계령을 넘으려 하면 자동차가 굽이굽이 가기 마련입니다. 차가 커브를 때마다 몸이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기울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다가도 커브를 돌고 나면 몸은 이내 원위치로 돌아오지만, 이내 찾아오는 커브에 다시금 몸이 휘청거립니다. 이내 멀미가 들면서 이런 생각을 하죠. "직진도로는 없을까?" 그러면서 만들어진것이 양양고속도로일 겁니다. 고속도로에는 멀미는 없겠지만, 하지만 추억도 함께 없어지겠지요. 

 

우리는 인생길이 직진이고 편한길이고 넓은 길이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저보다 아시겠지만, 인생길을 돌아보면 구비진 인생굴곡을 겪어냈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 자리에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나는 구비진 길보다는 편한 곧게 뻗은 꽃길을 걷고 싶습어합니다. 물론 항상 굴곡진 길만 걷는 것도 아니고 편한 길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다만 "다가오는 굽어진 " 피하지는 말아야 하겠지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한것처럼, 다가오는 굽어진 길이라면 뜻이 있기 마련이니 피하기보다 그 길을 겪어내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해를 돌아보시면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했을 역경에 부딪혔던 굽은 길을 걸으신 기억이 있으셨을 겁니다. 과연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고민이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니면 욕심인지 기도하며 묻게 됩니다. 그런데 기도의 시간 속에서 내가 원했던 대답보다 귀한 것들을 얻게 됩니다. 바로 " , 하나님의 "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문제는 여전하고, 역경은 그대로 있지만 우리는 속으로 들어갈 힘을 얻게 되는 겁니다. 누군가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용기와 , 확신"으로 우리는 속으로 들어가 시간을 살아내고, 환경을 바꿔나가며, 결국에는 결과를 도출해내게 됩니다. 굽어진 여러분의 인생에도 하나님은 뜻을 두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헛된 시간, 무의미한 시간은 없습니다. 

 

지난 주에는 예수님의 중요한 첫번째 장소 광야를 살펴봤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중심점으로 시작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세례로 하나님의 사랑을, 시험 속에서 사단마귀와 말씀대결에서 승리를 쟁취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예수님은 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은 고향땅에서 먼저 사역을 시작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유년시절을 아는 그들에게 먼저 사역을 시작하신 것일까요? 온갖 반대와 오해, 역경이 넘처날 있는 고향이었습니다. 차라리 기적을 행하더라도 예루살렘 근처에서, 또는 도시에서 하시는 것이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믿을 있게 있는 길이었을텐데 말이죠. 관계적으로 혈육적으로 가까운 그들이지만, 메시야로 다가서기에는 먼 그들에게 먼저 가신 것일까요?

 

우리는 조금 더 생각해보면, 하나님은 예수님이 사람들이 잘 믿을 수 있는 천사나 신비한 모습으로  땅에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아기로 태어나시게 하셨고,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공생애를 광야에서 시작하고, 사역지를 고향땅에서 시작하게끔 하셨습니다. 반대와 오해라는 역경에 부딪히게 하셨습니다. 어려운 구비진 길로 계속 보내셨습니다. 
왜 냐하면 그 낮아지는 길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또 구원의 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구유에서 태어나고, 태어나자마자 타국으로 피신을 떠나고, 자신을 죽이려 했던 왕이 죽자 예루살렘에서 가장 먼 북쪽 마을 이방인의 마을이라고 불리던 갈릴리 나사렛으로 보내셨습니다. 성공과는 너무나도 먼 구비진 인생길로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이 고난의 길.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에 예수님의 길이 있었던 것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는 곳, 그것이 고난의 길일지라도 그곳이 의미가 있는 우리의 인생길니다. 오늘 고생스런 고향땅을 걸으신 예수님을 묵상하시며, 내가 역경을 이겨낼 모습을 생각하시며 내년에도 굽어진 인생길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길을 내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반대하는 자들 

성령에 이끌리어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는 첫사역지로 고향땅에서 활동하시게 되었습니다. 20절에 보니 "집에 들어가시니", 고향 나사렛 부근에 있던 가버나움에서 독립해 집을 마련하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향땅에서 일반적이었던 청년이었던 예수였습니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가 당시 가장 일반적이고 평범한 이름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자신이 하나님이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그 때 살았다면 우리의 상식에서도 바로 받아들이지 않게 겁니다. 하나님은 나사렛, 가버나움과 같이 촌구석에서부터 사역을 하게 시작하셨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부터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게끔 하신 것입니다. 광야가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면, 예수님의 고향 갈릴리는 대대로 전쟁이 많은 상처가 많은 , 항상 핍박받는 , 예루살렘과 멀어 혜택이 적은 곳이기에 땅을 "이방의 갈릴리, 어둠의 "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낮은 곳에서부터 밝히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숨겨져 있었습니다사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오시기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지역에서부터 복음사역을 계획하셨습니다. "어둠 속에서 고통받던 백성에게서 어둠이 걷힐 날이 온다. 옛적에는 주님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받게 버려두셨으나, 뒤로는 주님께서 서쪽 지중해로부터 요단 동쪽지역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이방사람이 살고 있는 갈릴리 지역까지, 모든 지역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사9:1) 이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이뤄지게 됩니다.

우리가 마가복음을 1장부터 오늘 살필 3장까지 살펴보면 귀신을 내쫓는 사역이 주를 이루게 됩니다. 막3:14-15을 보면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고 까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목적이 인간을 하나님과 떨어뜨리려는 사단마귀권세를 내쫓는 사역이며, 동시에 하나님께 다시 오라는 복음과 회개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뜻을 확정하시고 이루시기 위해 어떤 역경도 이겨내시는 성취하시는 "임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 사역을 가장 어두웠던 곳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어두운 부분부터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더 나은 미래와 더 밝은 환경보다 먼저 보고 계신 곳이 있습니다. 바로 가장 은밀한 나의 탐욕과 자기우상, 죄를 보고 계십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 바로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것,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 그렇게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사단마귀 권세를 내쫓고, 내가 죄로부터 돌아오는 것, 이 사역에 하나님은 가장 많은 뜻을 두고 계십니다. 가장 어두운 그곳부터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사역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께 나의 가장 깊은 죄를 꺼내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복을 주시는 인생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가장 어두운 이스랑레 북부땅에서부터 빛을 밝히기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반대세력, 흑암의 세력이 나타납니다. 내가 나의 은밀한 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듯이 말이죠. 마가복음 3장에서는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 반대하는 3부류가 나타납니다.
21절에 보니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고 되어 있지요. 나사렛 동네에 있던 친족, 그러니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가까운 사이에 있는 이들이 근처마을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이 메시야 사역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붙잡고 정신병원이라도 보낼 기세로 찾아온 것이지요. 
두 번째 반대세력은 22절에 등장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그가 바알세불이 지폈다 하며 또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평양쪽에서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셨더니, 유대교 중심부가 있던 이스라엘의 서울 예루살렘에서 서기관들이 파견을 나온 것이죠. 그 이유는 "귀신들렸다, 사탄이 들어갔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세번째 반대세력은 결정적으로 가족이었습니다. 32절에서 가족들은 밖에 서서 예수님을 부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예수님 곁에 둘러 앉아있고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 하는 자들이 참가족"임을 밝히십니다. 즉 밖에 서 있는 자들이 예수님을 반대했던 자들이던 아니면 방관하는 자들이던, 아니면 걱정이 되서 찾아왔던 자들이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아래서 한 가족이 되는 하늘가족"에 대해서 밝히고자 하시면, 들어오려면 들어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해를 마무리 짓는데 있어서 "내가 과연 하나님의 뜻에 서있는 자인가 광야의 시간을 갖길 소망합니다." 모든 요소를 내려놓고, 내가 내년에 하나님의 뜻대로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질문을 말이죠. 만약 여러분이 내년에 하나님의 뜻대로 방향을 결정하고 새해를 시작하신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에게서와 같이 "성삼위일체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라는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단마귀권세와 죄의 세력을 이기신 예수님의 승리를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가 더 허락이 됩니다. 그것은 "반대세력"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여러분이 사업을 할 수도 있고, 학업을, 프로젝트를, 개인적 도전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반대하는 세력을 우리는 사랑과 승리로 이겨내야 하는 것이죠. 그것을 두고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가족이라 칭하고 계신 겁니다. 

 

2) 하나님의

본문 35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 향하여 "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전통적이고 혈육적인 것을 뛰어넘어 진정한 하나님의 뜻은 "회개하여 복음을 받아들이는 ",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사는 것이라 말하고 계십니다. 제가 성향이 소심한 지라 이리저리 팔랑귀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게 나이가 많아지고 책임져야 것들이 많아지니 "생각"이라는 것이 점점 늘어가더군요.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항상 마음에 새기는 문장을 만들어봤습니다. "깊은 고민은 후회를 낳지 않는다." 생각과 고민을 충분히 후에 내린 결정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결정에 반대되는 상황이 와도 결정을 후회하지 않고 처음에 내린 뜻대로 계속 일관성 있게 앞으로 나아가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좋은 결과를 얻게 되더군요. 다른 결정이 좋은 결정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없는 미래입니다. 안좋은 상황은 내린 결정을 계속 후회하며 중도 포기하는 것이지요. 결국에는 "내가 무엇으로 고민하여 결정을 내리는가"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떤 결정과 선택이 맞는가라는 깊은 고민은 결코 후회를 낳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위해 결정내린 것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결론으로 연결되어집니다. 그래서 우린 이런 고민을 하는 "묵상의 시간" 필요합니다. 현대인들이 내리는 직관적이고 즉각적인 반응과 행동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의 방향에 지대하게 결정짓는 것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 대해서 고민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고민에 근거한 삶과 실천을 향해 예수님은 "가족"이라고 불러주시기까지 합니다.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27절에 예수님은 이런 비유를 드십니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후에야 집을 강탈하리라" 여기서 강한 자는 "사단마귀" 말합니다. 그를 누르지 않고서 어떻게 광야에서 사단마귀 시험을 이겨내며, 이전 본문에서 귀신들린 자를 고쳐낼 있냐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 그러니까 귀신을 쫓아내고 그에게 붙들린 사람을 자유케 하는 사역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 인간의 궁극적 행복이라는 뜻은 섰습니다. 예수님은 뜻이 있는 곳에서 길을 내십니다. 그래서 사단마귀를 결박시키고, 그들로부터 인류를 자유케 하시고자 하십니다. 그중 가장 억압되었던 북쪽 이민족 침입이 심했고 성전과 가장 거리가 멀었던 낮은 곳에 있던 그들에게 가장 먼저 귀한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요즘에는 귀신하면 무당이나 점집 등만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귀신은 우리 민속신앙에서 등장하는 이들과 같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귀신은 영적존재입니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에 수종들기 위해 지어진 영적존재들이죠. 그런게 그들 중에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탐낸 배반한 자들이 사단과 귀신인 겁니다. 그들의 목적은 우리의 몸을 해하거나, 우리의 환경을 망쳐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오히려 "신앙을 더 견고하게" 해줍니다. 그들은 우리를 유혹합니다. 우리의 욕심, 탐욕, 정욕, 분노, 근심, 걱정 등을 자극하여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보이는 것들로 문제를 해결하게끔 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보이는 것을 전부로 살아가게끔 합니다. 무당이나 점집이미지의 귀신은 우리에게 멀어 보이게 합니다. 그러나 사단 마귀 귀신은 우리의 틈새를 공격하려고 항상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님이 받으신 하나님의 사랑과 승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을 의지해야 합니다. 

 

특히 현대인이 정신과적인 문제들을 많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입니까? 생각을 정리할 틈을 세상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더 혼자만의 시간, 은밀한 곳에 계시는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 묵상하고 생각하는 시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들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것이 우리를 붙들게 해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요즘 새벽강단영성에서 골로새서를 살펴보고 있는데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15그리스도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3) 그리스도의 평강, 평화가 우리 마음을 다스리게 "너희가 결단하라"는 겁니다. 그 권한이 우리에게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사단마귀를 결박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래서 행복하게 하고 사랑하겠다는 것이 뜻이었습니다. 그 뜻을 믿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뜻을 마음에 새길 마음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끔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인생길에 있어서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으로 추진한 그것을 "끝까지 완수케"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이루고 싶은 것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새해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3) 고난의 인생길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이런 부연설명을 해주십니다. 28-30절입니다. 


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30 이는 그들이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예수님이 공생애이라는 "복음 프로젝트" 시작하시는데 있어서 평가는 30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귀신의 "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반대의 평가였죠. 이에 있어서 예수님은 애둘러 가지 않으셨습니다. "직구대결" 가셨습니다. 자신의 일이 "하나님의 "이라는 동일의식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죠. 그래서 자신을 반대하는 것은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며 영원한 "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29절에 보니 이것은 "용서함을 도저히 얻을 없는 최후의 마지막 "입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을 반대하니, 인류 소속원인 서기관들은 당연히 구원의 혜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의 실천은 하나님의 일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대한 것으로서 엄청난 결과를 마딱드려야 하게 됩니다. 

부분이 우리의 구속사에 있어서 어떻게 적용이 있을까요? 우리를 반대하면 하나님을 반대한다는 말은 지나치겠죠. 그것은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이뤄내시는 것에 대해서 3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다만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과 확신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고 진행한다면 그것을 분명 하나님은 이뤄내실 것이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분명히 뜻을 가진 것은 이뤄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폄하하거나 훼손시키는 반대세력이나 거절하려는 이들이 나타날 지라도 말이죠. 그래서 여러분, 그런 역경이 올 수록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일을 시작한 것이 나인가 아니면 하나님이셨는가?"라는 광야에서 했던 그 질문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금 힘을 얻어 그 역경을 이겨내실 수 있는 겁니다. 
둘째, 분명히 반대와 거절, 역경 등이 나타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이 겪게 하시는 것이라는 것이죠. 하나님의 확신으로 시작한 일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훈련의 과정" 주시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순간 "하나님의 "이라는 것이 마음에서 어떻게 견고해지는지 보고 목격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셋째, 여러분의 지금의 판단, 결정, 선택, 업적, 추진하는 그것들이 하나님 나라의 재료가 됩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속사를 펼쳐내셨듯이, 여러분을 통해 이뤄내실 하나님의 나라, 종말의 새하늘과 새땅, 천국의 생김새를 이뤄가실 것입니다. 그것을 누군가는 귀신의 일이다, 망할 일이다, 쓸데없는 일이다, 가능성이 있느냐라고 폄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과 교제에서 시작하신 것이라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셔야 합니다. 그 분께 뜻이 있으면 길은 만들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3. 결론

여러분이 아시는 스팸이야기가 있습니다. 2 세계대전에서 보급품으로 엄청난 인기를 받고 있던 스팸 통조림은, 당시 싸면서도 고기를 즐길 있고 손쉽게 운반이 가능한 보급품이었습니다. 전쟁의 전환점은 핵폭탄이었지만, 전쟁기간 내내 연합군의 승리양상에 도움이 것은 미국의 보급품 수급이었고, 중에 단백질을 담당했던 스팸이었습니다. 당시 고기를 군인들에게 먹이는 일은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스팸 통조림이 그것을 해결해준 것이지요. 손자병법에서 "보급" 전쟁을 망하게도 승리하게도 하는 요인이라고 말할 정도였고, 삼국지에서도 보급로 차단, 보급부대 급습 등은 전쟁을 좌지우지하게 하는 이야기로도 자주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의 영적전쟁에서 "보급"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계속 확신하고 이어갈 있는 아니겠습니까? 내가 생활하는 상황과 환경 속에서 계속 하나님의 뜻을 이어가게 있는 , 은혜의 보급을 계속 받으며 이겨나가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시작하기 위해 고민하십시오. 고민은, 여러분이 흔들리고 멈추고 싶을 때마다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힘을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가는 길에 예수님이 우리를 가족으로 여기시니 당연히 귀한 결과가 나올 밖에 없습니다. 내년에 여러분이 계획하시는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으로 나아가시고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달려온 올해처럼, 내년에도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저와 여러분 인생이 채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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