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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YAMEMORY
강해설교_F/예레미야_넘어지는 인생, 세우시는 하나님

렘 52:24-34

by 우루사야 2021. 11. 29.

24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25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26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27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리블라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28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29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30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31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32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33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오늘은 예레미야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내일부터는 골로새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길었던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와 역사가 마쳐집니다. 예레미야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그 눈물은 자신의 민족의 멸망을 선포해야 함의 눈물이었으며, 또 진리를 전함으로써 받는 핍박으로 인한 고통의 눈물이었으며,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 유다민족을 향한 답답함에 대한 눈물이었을 겁니다. 그렁메도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면 순종하며 그 자리로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했음을 우리는 살펴보았습니다. 그의 선함과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진중함과 믿음"을 볼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마지막 본문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24-27절입니다. 

24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25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26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27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리블라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유다자손은 하나님이 베푸신 선의와 은혜를 져버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피상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재물만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세계의 은혜의 통로의 자리에서 그들은 오늘 본문과 같이 "사로잡힌 자 그리고 쳐죽임을 당하는 자"가 되고야 말았습니다. 특히 24-27절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리더들이 당하는 수난을 말해줍니다. 성전을 관리했던 자들, 군사를 다스렸던 자들, 왕을 보필했던 자들, 그리고 성안에서 만난 평민 60명은 일반인 중에 리더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로잡혀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시드기야 왕과 같은 지역 하맛 땅 리블라에서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유다자손을 세계 인류의 대표로 삼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표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하여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권세와 왕국, 자신들의 뜻을 펼칠 것에 대한 관심만 높았을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과 가치, 문화는 져버리고야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임하신 권위에 합당한 책임을 물으십니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인간은 세상을 다스리는 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게다가 "신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온 우주의 대표자이며, 대표자들 중에 더 중심에 속하는 대표자입니다. 그 대표자들의 대표자 그룹은 예수님이라는 가장 마지막의 대표자, 신이자 인류의 대표자와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라는 책무는 막중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향한 심판처럼 우리에게도 그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 성령님의 내주하심 안에서 책임을 다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그 책무를 물으실 때에도 하나님은 할 수 있는 힘과 사랑, 동기를 주십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교회는 그 책무를 다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유다처럼 자신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고 자신을 낮출 때 하나님은 우리가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우리를 마침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불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했고 자만하고 고집스러우며 교만했던 유다의 결말이 이어집니다. 포로로 끌려간 목록입니다. 28-30절입니다. 

28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29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30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성경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이 포로의 수가 다르게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포로로 끌려갔다는 것에 대한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바벨론으로의 피신"을 명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유다 안에서의 자만과 교만이 더 악하였기 때문이었죠. 성전 앞, 하나님과의 약속과 관계 앞에서 온갖 우상숭배와 부정부패, 비인격적인 행태를 일삼았던 그들은 차라리 바벨론으로 피신가는 것이 훨씬 나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패악적인 문화와 세계관, 가치를 뒤엎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포로됨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에게서 이스라엘을 구해내셨고, 멸망당할 예루살렘에서 유다자손을 구해내셨고, 나중에는 바벨론에서 포로2세대를 구해내실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행하심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죄에서 구해내고 계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악의 권세와 공중권세 잡은 자, 죄의 문화 속에서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구출하고 구해내고 계십니다. 우리를 보호하시고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알려주고 계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회복의 복음은 예레미야서 마지막에도 기록이 됩니다. 31-34절입니다. 

31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32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33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34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느부갓네살 왕이 죽고 그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왕이 된 해에 그는 가장 오래 감옥에 갇힌 왕이었던 여호야긴을 향해 자비를 베풉니다. 감옥에서 풀어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그의 자리를 높여줍니다. 왕앞에서 먹을 수 있도록 잔치를 베풀어주었고, 평생 쓸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인의 왕을 통해서 "탕자의 아버지"의 마음을 유다자손에게 전하십니다. 포로로 끌려온 유다자손은 여호야긴 왕이 이렇게 대접을 받는 다는 사실을 통해 위로를 받으면서도,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던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기럭하며 하나님을 향해 다시금 간절한 마음과 신앙으로 겸비하며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기 때의 시편 중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6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

그들은 포로에서 풀려났을 때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포로기 동안 눈물을 흘리며 기다리고 고대하며 기도하며 겸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바라며 인내하며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 눈물은 하나님의 언약을 신뢰하기에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 눈물은 마침내 기쁨이 되었습니다.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포로에서 기적적으로 풀려너 고국으로 돌아가 하나님과 관계회복을 할 수 있도록 성전을 지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라는 자리도 회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교회라는 놀라운 자리, 위치, 권한. 예수와 한몸이 되어 세상의 중심중의 중심이 되어 있는 우리의 이 자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지금 너무나도 타락하고 변질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해서 자비와 인자와 사랑으로 기다려주고 계십니다. 자신을 낮추고 세상을 섬기라. 너 자신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라. 세상 짐을 지고 가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낮아져 하나님의 뜻을 높이고, 예수의 복음을 전하며, 성령의 내주하심과 함께 살아간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영광과 부흥을 보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도 그런 하루를 보내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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