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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주일설교

시107:1-9 추수감사절 주일설교

by 우루사야 2021. 11. 20.

 

 

본문 : 107 1-9

제목 : 기적을 보여주는 감사 

 

1. 서론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장님은 코를 만지며 코끼리는 뱀같은 동물이다라고 말합니다. 다른 장님은 다리를 만지면서 코끼리는 뱀처럼 가느다란 것이 아니라 기둥같은 동물이라고 다시 말합니다. 다른 장님은 펄럭이는 귀를 만지면서 코끼리는 날개가 있다고 말합니다. 누가 코끼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요? . 아무도 코끼리를 제대로 말해주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코끼리를 전체를 보셔서 알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장님들의 말이 틀린 것을 알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의 인생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인간의 일생은 우리는 장님처럼이 아니라 똑바로 전체를 보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한면만 보고 우리의 인생을 판단하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인생이 가지는 풍성함을 누리지 못하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본문은 우리네 인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8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여기서 말하는 기적은 "신비한 "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인생을 돌보실 눈에 단번에 없는 일들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눈에 보이는 것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분이 일하시는 "기적" 있다는 것을 알아야 우리인생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말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읽은 시편 107편은 몇가지 인생의 어려운 상황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기적에 대해서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광야같은 인생입니다. 번째는 감옥같은 인생입니다. 세번째는 무덤같은 인생입니다. 네번째는 바다와 같은 인생입니다. 오늘 시편은 이런 인생길에서 하나님은 광야를 풍성한 땅으로, 운명을 바꾸시는 분으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43지혜 있는 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지켜 보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가 2주간 살펴본 세례와 성찬,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복잡한 인생에서 주신 기적이었습니다. 우리의 죄많은 인생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죄로 가득해 돌파구가 없이 고민과 걱정으로 가득찬 인생이지만, 하나님은 살아나올 있는 길을, 무너진 하늘 속에 솟아난 구멍을 허락하셨습니다. 복잡한 인생 속에 "구원의 약속의 표시"들을 주시며 "반드시 행복한 인생으로 인도할 "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한해, 감사할 제목들, 고마운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음을 다시금 생각해 있습니다. 그것에 감사하며, 우리를 구원의 길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신 기적에 감사하며, 죄를 사해주시고 기적의 길로 인도해주신 예수의 피와 살과 희생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단번에 없는 인생 

우리 인생에 감사하려면 인생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데 단번에 수가 없습니다. 증거 3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역설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첫눈, 첫이미지로는 틀린 것처럼 보여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기 모순적이고 부조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것들이 있기 마련인 것이죠. 이런 것들은 시간과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되지요. 대표적인 역설은 "나누면 배가 됩니다"입니다. 얼마 전에 세바시강연에 이광기 배우가 출연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2010년에 신종플루로 7 아들을 잃고 세상을 산것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힘들게 했던 것이 아이티 대지진이 그때 일어났는데, 세상이 사건만 말하더라는 겁니다.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힘든 자신인데 뉴스, 매체, 인터넷 너나 없이 대지진으로 죽은 사람들 이야기를 하니까 너무 힘들더라 말하더군요. 그러다가 아들 사망보험금이 나왔는데 도저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들의 사망보험금을 아이티에 보내자라는 마음이 들어 후원하게 되었고, 소식을 들은 방송사에서 함께 아이티에 가자고 출연섭외가 와서 아이티로 가서 아들 사망보험금으로 아이티에 있는 아이들에게 후원물품을 전달하러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곳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데 울고 있는 아이가 있어 안아주려 팔을 벌렸는데, 아이가 너무나도 안기더라는 겁니다. 거기서 다시는 느낄 없다고 생각했던 아들의 체온을 느끼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티에 학교를 그리고 도울 것들을, 나눔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나눔이 배가 된다, 죽을 인생이 소망으로 바뀌는 인생은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라고 말하는 역설의 진리를 그는 말해주었습니다. 

번째로는 모순 또는 거짓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모순의 어원은 "반하여 말하다"입니다. 허위이고 실체가 없는 거짓이기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따라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쉽게 사기라고 부를 있을 겁니다. "중국 초나라에 창과 방패를 파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상인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여기 방패로 말할 같으면 너무나 단단해서 어떤 창으로도 뚫을 수가 없지요. 그리고 창을 보십시오. 창은 어찌나 끝이 날카로운지 어떤 물건이든 모두 뚫을 있답니다." 상인의 방패와 창을 동시에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 방패 () 사용해 '모순'이라고 합니다. 

세번째는 신비입니다. 역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해가 되지만, 신비는 마치 모순처럼 거짓인 것으로 생각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비는 " 세상에서는 이해될 없는 "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신의 영역, 영원의 영역에 가야만 이해될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순과 같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설명될 없지만, 언젠가는 설명되는 것이 신비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신앙이라고 말하며,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나면 설명이 되고 이해가 것을 믿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 오늘 인생을 살아냅니다. 

 

이렇게 우리네 인생은 도저히 우리의 눈으로, 일차원적 사고로, 단순한 원리로는 인식하고 해석할 없는 이들이 많습니다.장님이 코끼리의 코를 만지다가 조금 옆으로 가서 귀를 만지면 순간 엄청난 혼란에 빠지겠죠. 내가 아는 코끼리의 모습, 뱀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날개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조금만 뒤로 가서 앞다리를 만지면 크게 놀라게 됩니다. 가느다란 몸체에 날개가 달린 것인 알았는데 기둥같은 다리가 4개나 있으니 말이죠. 우리네 인생은 이렇게 하루하루, 일년일년이 놀랍고 충격적이고 혼란스럽고 갈등이 가득한 같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더군요. "인생은 겸손에 대한 오랜 수업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순간 우리의 지성과 이해로는 해석이 불가능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어찌보면 묻어두며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우리네 인생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4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우리네 인생길을 광야사막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거주할 안전한 처소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죠. 우리 뉴스를 한번 살펴볼까요? 항상 우리의 집값은 올라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는 항상 오르는듯 합니다. 일자리의 질은 낮아지는데 자리는 점점 없어지는 같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자녀들의 미래가 걱정되고, 걱정으로 자녀를 낳지 않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점점 사람 사이에는 사랑보다 벽이 생기는 같습니다. 이렇게 사람에게도, 직장에게도, 경제적으로도 평안히 있을 곳은 점점 사라지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같습니다. "거주할 성읍" 우린 결코 스스로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5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보험연구원에서 발행한 간행물은 최근 5 사이 '정신 행동장애'진료를 받은 환자 수가 매년 6.2% 증가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수치로 해석할 있는 시사점은, "코로나19 확산 기간 진료과목의 의료이용량 감소현상과는 대조적으로  정신질환 진료인원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입니다. "보고서는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정신과 진료인원의 증가 추세는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는 사회적 고립감(Social Isolation),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 경제상황 악화 등이 개인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있기 때문인 "으로 해석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부국강병해지는 것과 " 인생이 행복한 " 별개의 문제이고, 나아가 건강한 것과도 별개로 나의 인생문제로 내가 혼란을 겪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보 있는 지점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결코 스스로 거주할 성읍, 평안한 영혼을 가질 없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기적" 필요합니다. 

 

 

2) 하나님의 기적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렇게 복잡한 우리네 인생을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알아낼 없는 "기적"으로 인도하고 계신다고 말하십니다. 인생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 이성으로는 상식으로는 삶을 지속할 없다고 부르짖는 고통스러운 삶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른 길로 인도해주시고, 거주할 성읍" 주시겠다고 오늘 본문은 약속해주고 있습니다. 

 

6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7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6절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근심 중에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심에 관심을 쏟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필요를 종교적인 신념으로 이겨내라고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육신을 지으신 것은 오히려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주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할 바를 알려주실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옵시고"라는 기도문까지도 주셨습니다. 먹을 양식까지도 하나님께서는 관심을 가지시고 책임져주시고자 하십니다. 

오늘 시편 107편의 배경이 되는 것은 출애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광야사막길을 걸어갈 때에 가장 하나님과 부딪치고 믿음이 사라졌던 영역이 무엇입니까? 먹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애굽에서는 노예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되었지만, 광야 사막길에서는 문제가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만나"라는 하늘에서 주시는 양식으로 해결해주셨습니다. 기적이죠. 그리고 광야에 사는 출애굽 성도에게 내려진 만나는 육신을 채워주는 것이라면, 예수님은 스스로를 "하늘의 "이라 칭하시며 예수의 살과 피로 우리는 영원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48 내가 생명의 떡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먹으라고 하셨을까요? 자신을 기리고 기념하는 예식으로 "먹는 " 택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장 친밀한 관계를 설명하고 싶으셨습니다. 우리가 빵과 포도주를 먹었을 그것은 우리의 식도와 , 장을 거쳐서 영양소로 바뀌어 우리의 모세혈관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빵과 포도주는 우리와 하나가 것입니다. 누군가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선물로, 대화로, 함께하는 시간으로, 감정의 나눔으로도 말할 있겠습니다만, 이렇게 안에서 하나가 된다고는 말할 없습니다. 오로지 ""만이 이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땅에서 우리는 이것을 우리의 언어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이것이 기적이요 신비의 하나님의 섭리와 일하심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의 칼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성만찬을 통해 예수님의 빵과 포도주를 표시하는 이것을 먹음으로써, 예수님이 안에 계심을 믿고 믿음은 우리의 영혼을 풍성하게 하며,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가게 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을 키워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적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육적인 그리고 영적인 고통 모두에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의 근심과 걱정에 귀기울이고 계십니다.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기적은 여러분의 직장과 경제활동 가운데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나아가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관계, 상황, 갈등, 염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개입하시고 함께하시며 문제를 풀어가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의 세상에 오심을 우리는 가장 감사할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래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성경이나 교회사에서 찾기 힘듭니다. 칼빈과 루터도 "주의 날만이 우리에게 유일한 절기이다"라고까지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당시는 미신적 요소로 가득한 로마카톨릭에 대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자세로 추수감사주일을 보내야 할까요? 지금 우리상황에 맞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성경에 맞게 지키면 되는 것이지요. 한해를 보내는 시점에 있어서 우리가 한해 동안 추수하고 거둬들이고 얻은 것들에 감사해야 한다는 우리의 신앙과 마음을 하나님이 보시는 믿습니다. 

 

동안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기적적으로 인도해주셨습니까? 본문과 같이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셨나요?  혹여나 우리는 그것이 나의 탁월함과 지적인 능력이었다고 자부하고 있지는 않나요? 유튜브나 인터넷 포털에 "감사하는 "이라고 하면 많은 다양한 자료들이 나옵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졌을 얻을 있는 긍정적 마인드가 대표적이겠죠. 그러나 우리는 본질적으로 접근이 다릅니다. "감사할 것을 기억함으로써 감사를 드림" 됩니다. 하나님이 바른 길로 인도해주셨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으며, 우리의 고민과 부르짖음에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거주할 성읍, 그러니까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마음의 평안을 누릴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할 것을 굳이 찾아내야 하는 인생이 아니라 인생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고, 증거로 세례를 받았으며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성찬에 참여할 있는 신자인 것입니다. 

 

로마카톨릭은 성찬시에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가 되어서 우리가 먹음으로써 우리가 의롭게 된다고 설명해줍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이미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기에, 우리는 떡과 포도주를 먹을 우리의 믿음이 강력해지고 그만큼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긴밀하고 친밀하고 강력하게 깨닫고 느낄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세례받은 자만이 성찬에 참여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이것은 단순한 음료수와 빵일 뿐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를 신자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이 있어 빵과 포도주가 의미하는 예수의 살과 피가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주는지에 대해서 알려주심에 감사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감사는 이미 주어진 것에, 그리고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에 있는 믿습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 그리고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는 상속자요 유업을 이을 자로서 대해주심을 우리는 믿고 감사하게 되는 압니다. 

한강뷰, 바다뷰, 남산뷰 사람들은 무엇을 보며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실제적으로도 우리의 인지체계에서 시각이 가지는 지분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무엇을 보고 사는지는 우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22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눈이 성하면 몸이 밝을 것이요23눈이 나쁘면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6)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눈은 보이는 것만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 바라보아야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지금 우리에게 역사하고 계시는 "기적" 영혼의 눈으로 믿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3. 결론

여행가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여행지에 도착하면 가봐야 3가지를 꼽습니다. 첫번째는 도시 사람들의 현재를 있는 시장, 번째는 도시 사람들의 과거를 있는 박물관, 번째는 도시 사람들의 미래와 전망을 있는 높은 또는 전망대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도시의 것들을 이해하고 경험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만으로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오늘 본문처럼 하나님은 기적으로 우리네 인생에 개입하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지난 미국에서 뉴스가 우리나라까지 전해졌습니다. 5명을 태운 경비행기가 추락했는데 11 소녀만 살아남은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있었는지 보니 "베어허그", 그러니까 곰이 사냥하기 위해 끌어안는 모습인데 소녀의 아버지가 추락할 소녀를 끌어안고 추락했기에 충격을 아비가 끌어안고 소녀는 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모든 섭리와 기적으로 여러분을 끌어안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살과 피로 얻여러분의 죄를 끌어안으셨습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의 의지, 감정, 지성, 이성, 내면, 삶의 환경 모두에서 여러분을 끌어안고 계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장 사랑으로 가장 깊은 사랑으로 끌어안고 계십니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을 기억하시며 성만찬에 참여하시어 하나님께 감사하실 있는 저와 여러분되시길 소망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Z3X6IZ0GDM&t=393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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