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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주일설교

창 17:9-11 주일설교

by 우루사야 2021. 11. 7.

제목 : 보이는 은혜 / 이미 주신 은혜

본문 : 17 9-11

 

1. 서론 

할렐루야, 오늘도 이자리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 이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가득하길 소망합니다. 

 

이제 2 후면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가 해를 돌아보며 감사할 있는 이번 추수감사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주와 다음주는 감사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특히 이번주는 "받은 것에 대한 감사"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음주는 "받을 것에 대한 감사"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이렇게 감사의 제목으로 보름을 보내고, 이번 추수감사절에 "우리의 영혼에 넘치는 감사" 주일에 함께 모였으면 합니다. 

 

인도에 이런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신이 호랑이를 만들었는지를 묻지 말고, 신이 호랑이에게 날개를 주지 않음에 감사하라." 우리의 추수감사절에 한해 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이 이해가 되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었음을 깨닫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들에는 모든지 계획과 뜻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섣부르게 판단해서도 안되고, 아무런 뜻이 없다고 치부하고 묻어두어서도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하늘에서 오는 지혜를 가지고 하나하나 깨달아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욱 성숙해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주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환경"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을 주심으로써 내가 어떤 환경을 가지고 살아가게끔 하셨습니다. 그것은 나의 국적이 수도 있고, 나의 가정환경이 수도 있고, 나의 기질, 성향, 이름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모든 인간은 선택하지도 않은 것을 가지고 태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을 있습니다.  "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것들을 주셨는가?"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좀처럼 생각하지 않고 언제나 없는 것만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허락하셨음에도 인간은 결국 가지지 않은 것을 향합니다. 대표적 예가 창세기 3장에서 하와가 에덴동산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하나님이 접근하지 말라고 했던 선악과를 바라보며 이렇게 표현을 하는 모습입니다. 

 

"여자가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만큼 탐스럽기도 나무인지라 여자가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3:6)

 

우리가 하와가 저질럿던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내가 가지지 않은 것보다 가지고 있는 것을 바라보며 그것에 감사하는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중에 가장 귀한 것을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영혼의 구원"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이미 받았다는 것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사단의 꼬임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것을 기억하게끔 특별하게 유일하게 가지를 제정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성만찬"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성만찬 이야기의 근간이 되어주는 "아브람의 할례"사건입니다. 두가지의 공통점은 "징표 또는 표시"라고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고 계시다는 "증거"라고도 말할 있겠네요. 그런 점에서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구약성도에게는 할례를 주셨고, 신약성도에게는 성만찬을 주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이 은혜의 표시를 어떻게 다루길 원하시는지를 통해 우리도 은혜의 표시를 어떻게 다루길 바라시는지 있게 것입니다. 오늘 시간을 통해 2주후에 있을 성찬식을 준비할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기억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을 주셨고, 피부를 주셨으며, 손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통해서 무언가를 알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는데, 그것을 보고 만짐으로서 깨닫게끔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이미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 기억하라" 이유에서지요. 본문 11절을 살펴보겠습니다.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7:11)

 

여러분이 아시는 아브라함의 인생을 잠시 살펴볼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아비 집을 떠나 타향살이를 명하십니다. 하나님이 봐두신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아브람은 계획과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들" 없었다는 겁니다. 고대사회에서 "아들의 유무" 족속의 유지 또는 멸절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하나님의 이뤄지지 않는 계획으로 불안에 떨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 했지만 하나님은 " 몸에서 자가 상속자가 되리라"(15:4)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서도 아들이 생기지 않은지 10년이 지나자, 아내 사래는 자신의 몸종 하갈을 남편에게 들여 아들을 낳게 하고자 합니다. 아브람 몸에서 자이니 그가 상속자가 있다는 판단이었죠. 그의 나이 86세였습니다. 그러고나서도 99세가 때까지 아브람과 사래 사이에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99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더니 약속을 다시 상기시켜 주십니다. 

 

보라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17:4)

 

그리고 언약을 위에서 먼저 말한 바대로 포피를 베어냄으로써 몸에 새기는 약속의 표시를 가지게끔 하셨고, 이것은 아브람뿐만 아니라 여러민족이 생기게 될테니 이제 아브람 족속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남자, 그리고 함께 살게되는 이방인 남자 모두가 포피를 베어내게끔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생명력이 없는 아브람을 통해 나라를 만드시는 전능한 하나님"되심을 밝히십니다. 표시를 생명의 시작이 되는 남성의 생식기에 새김으로써 생명의 근원자가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밝히십니다. 

 

그들이 기억해야 것은 "할례" 받아야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체결된 계약과 약속"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 너희의 인생에 놀라운 섭리가 흐르도록 하고 계시니 그것을 기억하며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표시를 거절하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17:14) 

 

표현을 영어성경 NIV "약속을 부수었다, 깨뜨렸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니까 체결되었던 약속을 믿지 못하는 , 그래서 스스로 약속을 거절하려는 , 하나님과의 관계를 부수려 하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것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배반"이라고 여기셨고,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백성에서의 퇴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공동체라는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결코 함께 없다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여기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공동체" 

 

우리는 여기서 가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미 주신 은혜" 기억하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미래에 은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은혜" 기억하라는 것이지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재산의 수준을 높이기보다는 욕망의 수준을 낮추도록 애쓰는 편이 오히려 낫다" 성경도 이미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한 감사로 살아가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고 유념하며 살아가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2)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잠시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미 주어진 은혜" 믿고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징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결혼을 결혼식을 하고 반지를 나눴기 때문에 사랑이 때부터 시작하는 건가요? 아니죠. 이미 사랑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 확증하고 여타 타인들에게 공표하기 위해서 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이미 사랑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세례식을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이미 하나님에 대한 믿음,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있는 자가 있다면, 교회 출석 6개월 후에는 "간단한 하나님과의 관계" 대한 정리를 교역자를 통해 확인을 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사랑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지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확인절차를 마치면 교인 모두가 모인 예배당에서 "셰레식" 거행하게 됩니다.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이미 믿음이 있는 상태에서 그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성찬식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있습니다. 성찬식을 함으로써 내가 없던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는데, 예수님을 다시 한번 기념하고 피와 살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우리의 믿음의 정진을 확인하고 성도와 함께 예수의 피와 살을 함께 누리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할례, 세례, 성찬 모두 "이미 주신 은혜"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내어 하나님과 교우들 앞에서 사랑을 표하는 것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찬, 세례를 진중하고 공적인 것으로 이해해야지, 간단하고 사적인 것으로 치부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특히 우리가 2주간의 시간 동안 "이미 주신 은혜" 표시하는 "성찬" 준비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생식기에 약속의 징표를 주시며 "절대 잊지 " 말씀해주셨습니다. 나이가 들어 자손이 안생길 같고, 아내를 보아서도 자식이 들어 같지 않아 보여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표징을 통해서 "생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기억했을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신 은혜" "마음" 통해서 항상 기억하게 됩니다. 

 

우리는 육신에 새기지 않고 마음을 통해서 알게끔 하셨을까요? 오히려 육신에 새긴다면 있을 같은데 말이죠. 그것은 아브라함의 약속보다 진중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약속은 나라의 개국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주를 대상으로 하는 하나님 나라의 개국"이며, 거기서 우리는 왕노릇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확실하고 궁극적인 약속의 표시가 필요했습니다. 로마서 2:29입니다. 

오히려 마음에 참된 변화를 받은 사람이라야 유대인이며 기록된 율법이 아닌 성령님에 의한 마음의 할례가 진정한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칭찬을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받습니다.(현대인의성경)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약속이 새겨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새기는 분으로 "성령 하나님" 우리 마음에 보내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우리에게 들여다 보라고 말합니다.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약속을 말이죠. 예수는 다시 왕으로 오실 것이다. 이전에는 종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왕으로 오신다. 때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는 자는 '함께 왕노릇 ' 것이다. 그렇게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진중하게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마음에서 성령 하나님이 증거해주시고, 교회는 눈에 보이는 포도주와 빵을 함께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함께 모여 부활하신 예수와 종말의 때에 안식하게 천지창조의 7일째를 함께 우리는 누립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행복한교회가 가지 사역의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선은 식사에 대한 성도의 참여입니다. 그간 우리 사모님께서 홀로 수고를 많이 해주신 것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성도들의 참여로 함께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식탁교제는 식당에서 먹는 교제와 다르다는 것을 아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의 희생으로 이뤄진 교제입니다. 우리가 서로 애쓰며 나누는 음식들로 우리는 함께 교제의 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간단한 점심시간이 아니라 함께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누는 교제의 장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두번째는 식사 후에 있을 대화의 교제입니다. 오늘 예배 후에 남녀로 나뉘어져서 장로님과 권사님을 필두로 하여 나눔의 시간을 가지게 것입니다. 안에서 삶을 나누게 것입니다. 우리의 안식은 성도의 교제 안에서 완성됩니다. 예배시간에 하나님과의 나눔, 먹고 마시는 식사를 통해 예수의 희생됨을, 그리고 성도간의 교제를 통해 '성령을 믿사오며라고 고백했던 나눔의 현장을 가지게 것입니다. 우리는 세가지를 통해 우리 안에 부활하여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마침내 종말의 때에 우리가 누리게 안식의 맛을 보게 것입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작하며 발걸음씩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주일에 참된 안식으로 넘치는 우리 행복한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성도님들께서는 예배만큼이나 식탁교제, 소그룹나눔에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구약시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과 비교해 우리는 정말 풍성하고 다양한 통로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할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다시 오심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매주일을 보낼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3. 결론

여러분 문구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무릇 가진 것을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고, 병에 걸린 다음에야 건강의 중요함을 깨닫는 법이다" 누가 말인지 저도 정확하게 몰랐는데, 알고보니 헬렌켈러가 말이더군요. 그녀는 태어나서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아 시력과 청력을 모두 잃게 됩니다. 그러다 7 때에 설리반 선생님을 만나는데 선생님을 통해 사물에 이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면서 정신적으로 지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하게 되어 비장인도 힘든 명문대를 졸업하고 사회운동가가 되었으며, 대통령메달과 수많은 명예학위를 받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그녀가 53세에 "사흘만 있다면"이라는 에세이집을 쓰게 되는데 문구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사흘만 세상을 있다면 

첫째 날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겠다. 

둘째 날은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기적을 보리라. 

셋째 날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 싶다. 

단언컨데, 본다는 것은 가장 축복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특히 "우리가 가진 구원과 은혜"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교회공동체도, 예배당도, 나의 신앙도. 

 

이제 코로나 일상회복단계를 시작했습니다. 11-12 두달간 토요일에 주일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탁구-축구교실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통로를 통해 주일학교가 세워지길 소망합니다. 이번 주부터 성인은 소그룹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도간의 풍성한 교제가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성도 여러분 사람 사람의 "하나님과의 성숙한 관계" 반드시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2주간 나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인가라는 질문 속에서, 내가 받은 은혜를 나는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묵상 속에서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귀한 것임을 기억하며 깊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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