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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주일설교

우주를 다스리는 자

by 우루사야 2024. 4. 14.

본문 : 누가복음 17장 20-21절
제목 : 우주를 다스리는 자
 
1. 서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를 볼 때 본래 제 키보다 더 크게 봅니다. 아무래도 몸이 크다보니까 키도 더 크게 느끼시는듯 합니다. 보통 적게는 3센치 많게는 5센치도 더 크게 보십니다. 이렇게 우리의 실생활에서 우리는 자주 착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시각적인 현상을 착시현상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지 학자들이 연구해보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 사람은 몸이 옆으로 커보이니 키도 클 것이라고 생각하고, 저 사람은 좋은 차를 타고 다니니 배움도 길고 아는 것도 많으니 인격도 훌륭할 것이라고 판단을 하는 것이죠. 네, 우리는 보이는 것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렇게 믿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알고, 보이는 것과 함께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함께 고려할 줄 아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입니다.
내 눈 앞에 현금이 있을지라도 미국에서 금리를 올리면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의 가치는 쉴새 없이 바뀌고 있습니다. 내 자녀가 내 눈 앞에 100점짜리 성적표를 가지고 왔다 할찌라도 내 자녀의 마음은 썩어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내 배우자가 오늘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함께 이불을 덮고 자고 있어도 그 마음에 어떤 염려를 가지고 오늘 밤도 지새울런지 우리는 모를 수도 있습니다. 네, 우리는 어찌보면 눈에 보이는 것에 매몰된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을 너무나 쉽게 판단하고 결정하고 내 멋대로 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여기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되어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참으로 천국에 갈 자신이 있으신지요? 여러분의 신앙은 과연 오늘도 안녕합니까? 그것이 혹시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되어지고 있다면 다시금 우리의 신앙과 구원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수년째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과거에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헌신하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구원을 주셔야만 하는 조건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행 구원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남에게 인정받는 것으로 신앙의 기준을 삼아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나라 또한 볼 수 없다고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네, 나의 신앙은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판단되어져야 합니다. 나의 구원의 확신은 보이지 않는 영역을 해석하고 판단하고 느낄 줄 알아야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 나의 신앙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고 더 성숙하게 이끌고 나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바리새인의 질문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는 예수님은 지금 수 많은 무리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시는 중입니다. 가는 도중에 수많은 병든 자를 치유해주시고 귀신을 무찌르시며 더 나아가 제자들에게 그런 능력을 주시어 제자들이 곳곳 마을들에서 그런 기적을 일으키며 나아가고 계십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이 예수님이 참으로 구약에서 예언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소문이 급속도로 퍼져갔습니다. 예수님 한번 보려고 나아옵니다. 예수님 손 한번 잡아보려고 합니다. 주변에서 예수님을 연호하기도 합니다. 어떠세요? 이번에 유세현장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라면 나의 인생에 기대를 가져도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요. 하물며 지금 예수님이 지나가시는데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께 지탄을 받았던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20절 상반절을 보니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20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여러분. 바리새인들이 누구입니까? 말씀 전문가죠.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서 평생을 몸바쳐 연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금 눈 앞에 놀라운 광경들이 펼쳐지니 무슨 생각이 들겠어요? '저 예수가 진짜 하나님의 사람일 수도 있겠다!' 네,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저도 예전에 행복한교회 중고등부에서 간 연합캠프를 따라 도우러 갔습니다. 장로님 아들도 함께 했지요. 천명정도 모인 집회였습니다. 한 외국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는데, 엄청나게 부를 이룬 목사님이었어요. 그러니 사람들이 설교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저렇게 부자목사가 된다니! 싶었지요. 그러고나서 그 목사님의 기도회 시간이 되었습니다. 천명이 모두 강단 근처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다 쓰러져요. 저도 그 줄에 섰습니다. 그런데 딱 제 앞에서 멈추더군요. 아직도 그 때가 궁금합니다. 과연 어떤 느낌일지 말이죠. 지금은 그 집회도 그 목사님도 안보입니다. 네.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눈에 보이는 것들로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이것들 모두 저는 결코 신앙에 도움이 될 수 없는 것들이라고 판단합니다. 

여러분 21절 상반절 예수님의 대답을 보세요. "또 여기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합니까 물으니 예수님은 때와 장소 모두 말할 수가 없는 차원의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죠. 지금 질문을 던지는 바리새인은 자신의 물리적 차원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착각과 착시를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내내 말씀을 연구했지만,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기적을 받은 사람들을 보며 착각하는 것이죠. 말씀을 듣고 담아두지만, 내 안에 "영적세계"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서 쟁취할 수 없습니다. 그 나라로 침노해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열렸지만 눈가리고 아웅하는 자에게는 결코 그 나라가 주어질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무어라 답을 주시나요?
 
2)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의 대답에서 우리는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첫번째 20절 하반절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에요. 사실 세포나 세균도 고도의 현미경으로 관찰이 가능합니다. 그 세균도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면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단위까지 나뉘고 과학자들은 그것을 관찰하지요. 정말 미세한 수준의 크기이지만 그것은 관찰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는 관찰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볼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우리는 "시각 또는 관찰의 형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다른 감각이 필요합니다. 만져지는 물질, 냄새를 내는 것, 맛을 내는 것, 귀로 들리는 소리의 주파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모두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이기에 다른 경로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답을 주고자 하십니다. 21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여기서 너희 안이라고 말하는 공간은 물론 눈에 보이는 공간이 아니겠죠. 그러니 요장육부나 뇌, 호르몬, 유전자 등이 아니겠죠. 관찰이 불가능하며 실험으로 증명이 불가한 영역. 바로 우리의 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실 때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주셨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역을 중심으로 보이는 신체가 움직이게끔 연결시키셨죠. 그래서 우린 마음에 무엇을 다짐하느냐에 따라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마음에 임하며,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행동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요16:7)고 하셨어요. 보이는 육신을 가지신 예수가 떠나가고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에 임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죠.
성령 하나님이 임재하실 때를 보세요.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었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였"(행2:2,3)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현상이에요. 성령 하나님이 임재하셨다는 표시죠.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바람처럼, 그리고 우리의 악한 것들을 불태워 거룩하게 하시는 분이 각 사람 각 사람에게 임하셨다는 성령 하나님의 특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에 임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우리의 구원은 이와 같습니다. 내가 무얼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에요. 어느 순간에 알 수 없는 영향으로 내 마음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에요. 내 마음을 가장 잘 알고, 내 과거를 다 끄집어내시며, 내 가장 취약한 부분까지도 사랑하시고 안아주시고 끌어 당겨서 괜찮다고 책임져주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기독교의 하나님의 나라, 기독교의 신의 임재는 가장 인격적이고 가장 따뜻하며 가장 개인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원, 여러분의 하나님, 여러분의 신의 임재는 과연 그렇습니까? 혹시 하나님의 다른 모습, 다른 경험, 다른 체험이라면 필히 다시 고민하셔야 합니다.
 

3) 우주를 다스리는 자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들지요.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처럼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수호천사처럼 한 사람 한 사람 곁에 와주셨다면 모두가 다 편하게 믿음생활 할 수 있지 않겠는지 말이죠. 여러분, 성경은 대표적으로 두가지를 크게 가르쳐주십니다. 첫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둘째 우리는 절대 안믿는다. 네, 성경에 수 많은 케이스들을 보시면, 아무리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역사하셔도 믿지 않는 것이 인간이더군요. 하나님이야 말로 심장을 갈라 "진심"을 보이고 싶으신 분이실 겁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은 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자신의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시며, 모욕과 치욕을 스스로 받으시면서까지 우리에게 진심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놀라운 존재로 세우고 싶으신지에 대한 진심을 말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극적인 기적을 요구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이 세대는 악한 세대표적을 구하되 요나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눅11:29) 예수가 죽어서 다시 부활하는 것말고는 이들에게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부활하시어 영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양심과 이성, 감정으로 들어오셔서 거기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솔루션이셨던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를 기념하라"(눅22:19)고 하시며 주신 것이 "먹을 음식"이었어요. 눈에 보이는 음식이 우리 안에 들어와 소화가 되고 분해가 되어 마지막에는 영양분이 우리와 하나가 되지요.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흘리심으로 얻으신 무죄와 의로움이 우리에게 어떻게 임하는지 말씀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빵과 포도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와 하나가 되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눈에 보이셨던 예수님이 나와 하나가 되기 위해 죽으셨고 승천하시어 영으로써 우리 안에 임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내 안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 충성될 수 있습니다. 작은 우주라고 불리우는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가 저 마지막 날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었을 때 다스리는 자로 신적존재로 우리를 하나님께서 세워 다스리게끔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우리를 "다스리는 자"로 작정하고 만드셨고, 그 계획을 반드시 성취하실 것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누가 우리 앞길을 막아서도, 여러분은 "우주를 다스리는 자"가 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오늘 하루라는 이 시간을 "다스리는 자"로 명예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화나게 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근심케 헙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진짜 염려입니까? 작은 것 지나갈 것 썩어질 것 없어질 것이 아니라 영혼을 하나님의 나라를 명예로운 다스림때문에 사는 내가 되길 소망합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며, 내 마음에 임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인식하며,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가 지금 이 땅 곳곳에서 운영되고 있음을 분별하길 소망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쫓겨다니는 불명예스러운 인생이 되기를 단호하게 거절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자녀요 상속자요 다스리는 자로써 이번 한주도 가정, 직장, 일상에서 명예롭게 사랑하며 섬기며 영혼을 구하러 가는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요 성령의 전으로 세워져가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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