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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절기설교

막 15:6-15_고난주간 수요일

by 우루사야 2024. 3. 26.

고난주간 수요일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베드로의 입장에서, 그리고 어제와 오늘은 대제사장과 빌라도의 입장에서 보고 있습니다. 이 본문들을 통해서 우리는 때때로 비겁한 도망자 베드로의 입장이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눈 앞에 있음에도 나의 아집으로 거절해온 것은 아닌지 고민해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빌라도의 입장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6-8절입니다. 

6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7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8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우리 사법체계에 사면이 있지요. 광복절 특별사면처럼 유대인들에게도 유월절이라는 가장 큰 절기에 사면을 해주는 사법체계가 있었습니다. 누구를 사면해 줄 것인가, 누구의 죄를 없는 것으로 동의할 것인가는 매우 정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죄 사면은 그만큼 민감하고 특수한 혜택이기 때문입니다.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하는 것만큼 독특한 것이 있을까요. 그래서인지 오늘 본문에서 이 사면권을 가지고 여러 갈등이 생겨납니다. 특히 8절에서 보니 유대인 무리들이 사면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라고 요구합니다. 대상은 민란을 일으킨 바라바라는 자였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 마가는 7절에 "살인을 저지른 자"로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로마군 입장에서 난을 일으키고 게다가 사람까지 죽인 자이니 결코 가벼운 죄를 저지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로마입장에서만 버거운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바라바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닌 것이죠. 그럼에도 이 자를 요구한 것은 민란이 독립전쟁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두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왕으로 지칭하며 로마황제를 향한 반역을 일으킨 것으로 보이는 예수라는 자였습니다. 바라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도 로마의 압제 속에서 벗어나고자 난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차이는 현격하게 납니다. 예수는 사람을 살리면서 예루살렘으로 왔다면, 바라바는 사람을 죽이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 두 사람이 향하는 나라는 본질적으로 다른 나라였습니다. 바라바의 나라는 주후70년에 철저하게 망할 나라였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겨자씨가 새가 깃들만큼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파격적으로 확장될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종잡을 수 없는 이 무리들은 충동된 마음만을 가지고서 바라바를 사면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빌라도의 반응을 보시죠. 9-11절입니다. 

9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10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11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빌라도의 반응은 이 무리와 달랐나 봅니다. 9절에서 보니 그는 바라바가 아니라 예수가 사면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10절에서와 같이 빌라도는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심때문에, 그래서 정치적 힘으로 예수를 짓누르려고 한다는 것을 그는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11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종교지도자들은 일반 백성무리들을 뒤에서 충동질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봐도 불의한 사법절차입니다. 빌라도는 그것을 알고 있었고, 이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사법권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비겁했습니다. 이 재판권한을 가진 자로써 시시비비를 가리고 또 그것을 청중 앞에서 선언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겁하게도 무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내가 유대인의 왕을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물을 것이 아니라 "바라바가 아니라 예수를 놓아주는 것이 정의롭다"라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무리 뒤에 숨기로 합니다. 12-15절입니다. 

12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13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14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15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번에도 빌라도는 무리에게 묻습니다.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구형을 얼마나 할 것인지, 범죄인 인도를 어떤 절차로 진행시킬 것인지 자신이 결정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리들에게 묻습니다. 결국 무리들은 고대근동사회에서 가장 죄질이 나쁜 이들에게 주어지던 "십자가 처형"을 요구합니다. 사형에도 많은 종류가 있음에도, 십자가 사형은 고통을 일부러 느끼면서 죽게 만드는 가장 처참한 사형제도였습니다. 무리들이 그런 요구를 하니 빌리도는 이것이 악한 결정임을 알기에 "예수가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묻기까지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전면에 나서지 않습니다. 더욱 소리지르는 무리가 그에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죠. 15절에 마가는 빌라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그는 자신의 안정을 위해 죄없는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 앞에서 똑바로 봐야 합니다. 예수가 과연 무엇때문에 이 고통을 당했었는지. 그것은 나의 죄요, 내가 속한 민족의 죄요, 내가 태어난 인류의 배반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아담 뒤에 숨을 수 없습니다. 나의 선행으로 죄를 덮을 수 없습니다. 나의 죄는, 내가 가장 위협을 느낄 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은 빌라도처럼, 우리의 무책임하고 뻔뻔함은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의 밑바닥을 인정하고 죄사함을 구하며 그 십자가 아래서 의로움을 얻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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