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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절기설교

막 15:1-5_고난주간 화요일

by 우루사야 2024. 3. 25.

고난주간 두번째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사역하시는 내내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혀 넘겨질 것이라고 예언해오셨습니다. 로마군에게 잡혀 사형대에 오르시는 것이 아니라 굳이 "유대인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말이죠. 말씀을 가장 먼저 받고, 약속을 확인받았으며, 선지자들이 계속해서 파송되어진 민족,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넘김으로써,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고 폄하하였는지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확증하는 시간이 되어 핑계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1절을 보시죠. 

1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지난 시간에 베드로가 닭이 울 때 예수님은 유대인 종교재판장에 있었습니다. 새벽 1-3시 사이였지요. 오늘 본문 1절에서 새벽은 3-6시 사이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들은 종교재판에서 자신들이 확증한 논거를 가지고 로마법정에 예수를 세우기로 합니다. 총독 빌라도에게 넘기기로 한 것이죠. 우리가 성경을 살펴보면, 유대인들은 종종 사형을 집행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게 했죠. 그럼에도 예수는 로마법정에 세웠습니다. 차이점은 스데반은 신성모독이라는 유대율법 안에서의 확정된 판결이었고, 예수는 자신이 "메시야, 곧 왕"이라고 함으로써 로마황제를 향한 반역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손에서 끝내지 못하고, 로마법정으로 넘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빌라도도 예수님을 보자마자 묻는 질문이 "왕이라는 발언을 했느냐"였죠. 2절입니다. 

2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여기서 예수님이 왕이라고 하신 것은 빌라도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차원 밖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써 온 우주와 창조 전체세계를 다스리는 왕입니다. 게다가 이 왕은 시간까지 거스르니 태초로부터 시작된 인류와 앞으로 태어날 인류 모두를 포함하기까지 하며, 영적세계의 천군천사까지도 다스리는 왕입니다. 네, 예수가 말하는 왕은 이 세상의 근원이요 시작과 끝이라는 의미였습니다. 한순간 있었던 로마제국은 이 왕국에 비하면 백악관 앞마당에서 땅따먹기 놀이로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꼴입니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으니 예수는 이 대답만큼은 "네 말이 옳다"라고 긍정을 하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표자가 되기로 작정하시고 또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하여 하나님 본체이심에도 피조물이 되시어, 모든 영광과 지위를 내려놓고 오셨습니다. 우주의 대표자가 인류가 사는 지구, 그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국가 이스라엘 유대민족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박당하고 끌려가 물건 오가듯 넘겨지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인류의 대표로써 죄를 모두 감당하여야만 했기"때문입니다. 그 죄는 어떤 방도로도 사라지는 법이 없습니다. 상응하는 댓가를 당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인류의 대표자 아담이 들여온 그 죄, 그 죄를 삼키고 끌어안고 책임지는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댓가, 하나님과 멀어진 댓가, 생명을 잃고 존재가 죽는 것. 그것을 누군가는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죄가 없었던 하나님이자 인간인 예수만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게에, 예수는 대표자가 되러, 왕이 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유대인의 왕일 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왕이 되러 오셨던 것입니다. 그것을 알리 없는 종교지도자들은 여기에 덕지덕지 여러가지로 고발을 이어갑니다. 3-5절입니다. 

3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4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5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 곧 왕이라는 사실을 말한 뒤로는 그 어떤 것에도 항변하지 않으십니다. 죽으셔야 하는데 다른 변론들은 이 사명길 좁은길을 가는데 장애물이 될 뿐, 시간만 끌 뿐입니다. 예수는 침묵으로써 그 어떤 항변보다도 강력한 변론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죽음에 대하여, 내가 다 감당하겠노라는 뜻을 밝히고 계셨던 것이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큰 소리의 항변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인내함이 가장 큰 사랑이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끌어안음이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설적이게도 받아들이고 침묵하시고 수용하심으로써, 죄와 사단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승리를 나타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고난의 의미를 내 삶에도 녹여내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심령이 가난해지며, 애통하며, 온유로 대하며, 정의를 구하고, 긍휼을 베풀며, 마음을 정결케 하고, 서로 화평케 하기 위해 애쓰며, 박해를 받는 자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 고난의 의미를 삶에서 구현해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곳곳에서 왕되신 예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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