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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절기설교

성탄절(5)히브리서_내가 부르는 이름, 하나님의 아들

by 우루사야 2023. 12. 31.

제목 : 내가 부르는 이름, 하나님의 아들

본문 : 1 30-35

 

1. 서론 

1) 예화 

경기도 안산시 선부동에는 임이골씨가 삽니다. 카레이스키라고 불리우는 사람입니다. ,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강제이주를 당한 이들의 후손으로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난 분이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살다가 소련이 해체되면서 살기가 너무 힘들어지니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의 첫느낌은반가움"이었다고 합니다. 마치 고향에 기분이었다고 하네요. 이들에게 한글을 알려주는 야학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분들 마음에는 "나는 한국인이다, 한국이 고향이다"라는 의식이 심겨져있다고 하더군요. 사실 이분들이 태어난 곳은 우즈벡키스탄임에도 불구하고, 뿌리에 대한 본능이자 갈망이 있는 이유는 자신과 생김새가 같은 샤람들, 내가 좋아하는 맛을 같이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대한 갈망인 것이죠. 


2) 주제 

우리가 영원히 행복하고픈 마음은 영원히 행복한 고향에 대한 영혼의 갈망입니다. 지금 살아가는 땅에서는 그것이 이뤄질 없으나, 우리가 본래 만들어진 영적세계에서는 그것이 가능했습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전쟁과 기근, 시기, 강탈이 난무하는 땅에서도 영원히 행복할 있는 땅을 바라보, 영원히 행복할 있다는 소망을 가진 자들이 교회로 모입니다. 우리 안에 영원한 행복에 대한 영적DNA 그렇게 땅에서도 표출되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12 들어서 예수를 정확히 알기 위해 영적세계와 멜기세덱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늘과 모두에서 왕과 제사장직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알려주시며, 옳은 길로 가는 길을 보호해주십니다. 성경은 분을 통해서 영원한 행복에 대한 갈망을 채울 있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분이 영원히 행복한 자리를 우리를 위해 마련하셨다고까지 말해줍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믿으며 갈망하며, 어둡고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영원한 행복을 간구하라고 말합니다.


3)
본론잇기

그래서 우리는 예수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점에서 오늘은 예수의 출신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유다지파로써의 왕이었고 멜기세덱파로써의 제사장이었던 예수를 살펴보았죠. 파를 알아봤으면 봐야 합니까? 부모와 호적을 따져봐야죠. 그래서 준비한 본문에서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주의 천사를 만나 예수출산에 대한 대화가 담겨져 있습니다. 대화 속에 담겨져있는 예수에 대한 출생의 신비를 알고, 예수를 알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유다지파에게서, 그리고 여인에게서

예수의 아버지는 요셉입니다. 유다지파지요. 어머니는 마리아입니다. 정확히 무슨 지파인지 기록이 없습니다. 약혼한 사이로 후면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 사이에 하나님이 일하고자 하십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라는 예언이었습니다. 문제는 마리아가 아직 남편이 없다는 겁니다. "34마리아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일이 있으리이까" 하나님의 타이밍이 애석하고도 당혹스럽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불임부부에게 아이를 주시겠다는 스토리도 아니고, 어린 처녀가 그것도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출산케 하신다, 그것도 약혼을 상태에서 일을 하시겠다니 여러모로 상황으로나 정황으로나 난처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방법과 타이밍이 아닐 없겠습니다. 멜기세덱만큼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그럼에도 예수에 대해 정확히 알기 위해서 우리는 "수태고지"라고 불리우는 교리에 대해 정확히 알고 예수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35천사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거룩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어떤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 말합니까? 하나님의 아들. 신의 인간. , 신이면서 인간인 . 신으로써 거룩하여 옳고 그름을 말할 있는 자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왕으로 오셔서 인류를 이끌 자인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출산이 아니라 비상합니다. 2가지의 표현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면,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덮히면, 이라고 천사가 말해줍니다.

여기서 임하다와 덮다는 모두 위에서 아래로의 의미를 가집니다. 주체가 되는 성령과 지극히 높으신 또한 위에 계신 분임을 말하죠. 땅에서의 일이 아니라 하늘에서 초월적인 일이 일어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굳이 두번이나 표현하실까요? 성령에서 성은 거룩함을 의미합니다. 거룩한 자가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죄인인 인간 요셉의 정자로부터가 아니라 마리아의 자궁 안에 난자에서 성령의 출발점이 되는 능력을 통해 거룩한 인간이 만들어집니다. 두번째로 지극히 높으신 , 왕입니다. 가장 초월적인 능력이 마리아에게 임해 자궁 안에서 아기가 만들어지는데 어려움이 없게 합니다. 이렇게 거룩한 인간이자 가장 강한 힘의 권세를 가진 아기가 만들어지기 위하여 천사는 이렇게 말해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신이자 인간, 거룩한 제사장이면서 강력한 왕인 자가 땅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 예수는 하나님의 이러한 작정과 계획으로 땅에 임하셨습니다. 

 

 

2) 굳이 약혼가정이어야 했을까?

예수님이 유다지파인 요셉에게서, 그리고 여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것은 알겠지만, 한가지 의문이 풀리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약혼가정에 이런 일이 있게 하시느냐였습니다. 굳이 결혼 직전 약혼상태에 마리아의 배가 부르게 하셔서 사람이 갈등과 오해를 받을 밖에 없는 타이밍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주의 천사는 요셉에게도 따로 나타나 마리아의 임신은 성령이 하신 일이라고까지 하시며, 마리아와 파혼하려고 하는 요셉을 굳이 말리시기까지 하십니다. 과연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일까요?

여러분, 신과 인간이 다른 가장 중요한 것이 "출발점"입니다. 인간은 부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은 스스로 존재한 자입니다. 자신이 존재하도록 상위에 누군가 있다면 존재는 결코 우월한 존재가 없죠. 원조를 이길 식당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예수의 출발은 원조격인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함께 계셨던 성령 하나님으로 출발하십니다. 마리아의 난자에 성령의 능력이 더해짐으로 예수의 첫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요셉의 정자로부터 출발했다면 예수는 요셉이라는 한계 안에 갇힌 인간이 되어버립니다. 원조가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출발한 후발주자가 되어버립니다. 후발주자로써 가장 리스크는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첫출발주자였던 아담으로부터의 계보는 죄인의 계보이기에, 예수님은 요셉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이 드실 있습니다. 요셉의 정자가 문제라면 마리아의 난자도 문제 아닙니까? 여기서 대표성의 원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달된 것은 혈통(피나 육신)으로도 아니고, 영혼으로도 아닙니다. 본래 우리는 선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의 소속으로 태어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면 한국인이 됩니다. 한국인이 미국땅에서 출산하면 아기는 미국인이 됩니다. 아담에게서 태어나면 아담의 후손이 되고, 아담의 죄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죄인이 되게끔 합니다.

그럼 정리해보죠. 예수님은 요셉에게서 태어나셔서 유다지파 소속원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정자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되심으로써 죄인소속이 되지 않으실 있었습니다. 마침내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셔서 육신을 가진 인간이면서 유다지파이면서 죄인이지 않으시면서, 멜기세덱 계통으로 제사장직까지 감당하실 있게 되셨습니다. 이런 연유에서 결혼 아직 성관계를 하지 않았지만 준결혼관계로 있는 관계에서 태어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3) 적용

제가 서두에서 소개해드린 고려인들을 다시 생각해보죠. 우즈벡키스탄에서 한국에 와서 그들이 기분이 좋았던 이유 하나가 "나와 같은 모양의 사람들과 나와 같은 식습관을 가진 사람들" 있어서라고 말씀드렸어요. 우리가 신자로써 정체성을 찾을 있는 , 뿌리를 보고 기쁠 있는 환경은 무엇일까요? 영원한 행복이라는 DNA 가진 사람을 아니겠습니까? 예수의 왕권과 제사장직을 통해서 보호를 받고 용서를 받고 옳고 그름을 깨달아가면서 살아가는 자를 보면 기쁜 것입니다. 예수로 사는 사람들을 보면 기쁘고, 천국을 확인하게 되고, 사람의 삶을 통해서 도전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간증은 결코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역사하시는 예수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가장 출발점은 "예수"여야 하겠습니다. 


예수처럼 자신의 손과 발에 못을 박는 필리핀 유사기독교단체의 행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몇번 뉴스에서 소개되곤 합니다. 그것은 예수를 닮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닮는다, 예수를 믿는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예수의 왕직과 제사장직" 믿으며 고백하며 따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말씀을 통해서, 그리고 말씀이 증거하는 예수의 실재모습을 정확히 믿고 따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영원의 세계, 영혼의 세계의 문제를 다루다보니 마리아를 숭상하게 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 말합니까? "19너희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전6) 예수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품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몸입니다. 예수가 마리아의 몸에 잉태할 있도록 하신 분이 우리 몸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지금 얼마나 위대한 분을 모시고 살아간다는 것입니까? 분이 우리 몸에, 지성에, 양심에, 감정에, 능력에 예수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처럼 살게 하시고, 예수를 따르게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생각이 꿈꾸지 못하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있음을 기억하라"(세익스피어) 한해를 돌아보면 왕이신 예수를 믿지 못했던 나의 판단이 있었습니다. 거룩한 제사장이신 예수를 잊어버리고 내가 제사장이 되어서 멋대로의 용서의 기도를 올리며 없던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왕이 되어서 예수를 마치 하수인으로 두고 기도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감정에 매몰되어서 예수를 제사장이 아니라 돈주고 상담받는 정신과의사처럼 대하기도 했습니다. 과연 여러분에게 예수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한해를 마무리짓는 . 나의 신앙을 돌아보면서, 내년에 예수를 깊이 생각함으로써 성숙해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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