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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절기설교

막 14:66-72_고난주간 월요일

by 우루사야 2024. 3. 22.

고난주간 월요일입니다. 예수님의 고난받으심으로 우리가 승리했음을 기념하고 기억하며 부활절과 성찬식을 마음을 다해 준비 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한가지. 예수님이 고난받으신 이유가 될 것입니다. 본래 선하게 창조받았던 우리는 아담때로부터 죄를 들여왔고, 죄를 근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악을 구별하시는 세상이 아니라 내가 선악을 구별하고,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는 세상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배반하고, 죄가 낳은 것들이 하나님의 세계를 파괴하도록 주도하는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고자 하셨습니다. 그 첫번째는 우리의 죄를 드러내시고, 그 죄를 해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죄가 없는 자여야만 했기에, 하나님 그 자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으로부터의 모든 죄를 감당하기로 하십니다. 그렇게 예수는 인류의 대표가 되어 죄를 감당하시고, 예수 아래서 우리는 죄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불리우는 베드로였습니다. 예수님께 첫번째 그룹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또 가장 결정적인 사역 때 함께 동행했으며, 3년 동안 예수님과 가장 밀접한 관계로 양육받았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그의 죄를 사해주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죽음만이 그것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여실히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직면하게 됩니다. 먼저 66-70a절입니다. 

66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67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68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69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70또 부인하더라 

예수님이 종교지도자들에게 간밤에 붙잡히셔서 심문을 당하시고 모욕과 수치를 당하시고 계실 때였습니다. 그 뒤편에서 제자들 대부분은 도망가 숨어버렸습니다. 그나마 용기있던 베드로였지만 그도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멀찍이서 예수님의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 때 한 여인이 와서 베드로의 얼굴을 알아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이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 여인도 만만치 않습니다. 다시 한번 베드로가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하여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 사람은 예수의 도를 믿는 무리사람입니다!"라고 밝힙니다. 이번에 베드로는 또 부인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부인해야 하니 좀 더 공개적으로 부인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이 내 안에 살아계심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과거와 역사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가장 먼저 "죄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실 때에는 선했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우리는 "아담의 자손, 인류"로써 죄의 자녀요, 죄의 본성을 가지고, 죄의 습성을 배운 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의 가장 윗대 선조 아담은 죄를 들여온 자입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이미 이 지구는 여전히 죄로 가득한 상태였기에 죄를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마침내 그 근원을 살펴보면, 그 죄는 다른 곳도 아닌 "나의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오리지널 죄, 원죄가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 죄가 언제 표면위로 드러납니까? 우리의 존재가 위협받을 때입니다. 나의 존재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위기에 처할 때 우리는 실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내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베드로는 예수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자신이 세우고자 했던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70b-72절입니다. 

70b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71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72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이번에는 여인이 말을 들었던 주변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일제히 묻기 시작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이제 그의 실체가 드러나게 됩니다. 베드로가 저주하여 맹세하면서까지 말합니다. "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그런데 이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때에 베드로에게 먼저 주셨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나를 부인 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때당시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서 "29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막14)라고 확신에 찬 고백을 할 때였습니다. 그 공허한 고백을 이어 예수님은 "너는 위기 속에서 너의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라고 깨닫게 해주신 것이죠. 네, 예수님은 이 순간까지도, 자신이 대제사장들 앞에서 수치와 고난을 당하시는 순간에서도 베드로가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셨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실수, 오류, 거절, 배반 모든 것들을 다 감당해내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쏟아낸 말조차도 주어담지 못하는 존재가 어떻게 평생 살아온 죄와 오류들을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나의 죄를 고백하고, 나의 구원이 되시는 예수를 주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은 "완성된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겠습니다. 내가 육신의 절제를 통해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기념하고 예수를 더 찬양하는 한주를 보냄으로써 주님이 기뻐하시는 한주를 보내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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