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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히브리서_예수의 자리매김

히 13:7-17

by 우루사야 2023. 11. 28.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신약성경에는 많은 편지들이 있지요. 대부분의 구조가 전반부는 복음에 대한 해설을 해줍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 것인가에 대한 설명이지요. 그리고 후반부에 들어서서 믿는 바에 따른 행동실천에 대해서 설명해줍니다. 그런 점에서 히브리서 또한 그런 구조로 말해주고 있는데, 우리가 보통 아는 바울서신과는 다른화법으로 말해줍니다. 명료하게 말하기보다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7-9절을 보시죠. 

7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8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9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

바울의 경우 "~~하라"라고 말한다면, 히브리서 사도는 생각하게 만드는듯 합니다. 7절을 보니 "인도자들의 믿음을 본받으라"라고 말합니다. 그 인도자들의 인도자는 누구였습니까? 8절을 보니 항상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네, 이들의 인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었던 것이죠. 그렇습니다. 지금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본 자들보다는 보지 못한 자들이 대다수일 겁니다. 역사적 시간차라던지, 지역적 차이 등의 연유때문에라도 대부분 사람들은 이스라엘 내에서만 활동한 예수를 접해볼 기회가 없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의 정신을 전달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 중심이 되는 종교는 교주에게 가까운 자가 신임을 받습니다. 교주와 혈족관계라던지 수제자라던지해서 말이죠. 그런 점에서 로마카톨릭과 개신교의 차이는 교황의 유무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체계에서도 결코 목사가 평신도보다 신과 가깝다는 인식은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가 하늘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영으로 우리 심령 가운데 계십니다.  "믿음으로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의 피뿌린 보혈로만"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런 점에서 예수의 제자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예수의 보혈로 단번에 열렸음을 믿고 영적세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이겠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9절에서 다른 교훈에 끌려다니지 말것을, 오로지 마음에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굳건하게 지키라고 말합니다. 유대교가 자꾸 강조하는 율법에 근거하여 부정한 음식과 정한 음식을 구분하는 것에 있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로 살아가는 인생이 다른 교훈으로 대체되어서는 안됨을 10-13절에서 말합니다. 

10절에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라는 표현은 그간 살펴본 예수를 믿어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예수는 인간대제사장을 대체했습니다. 인간이 드리는 제사도 십자가에 직접 자신이 제사를 주관함으로써 대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물제사를 신인 자신이 인간이 되어 인간의 몸으로 제사를 드림으로써 대체했습니다. 우리 신자에게는 "예수"라는 완벽한 제사 아니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완벽한 예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는 완결되었습니다. 그 제단이 이미 있기에, 아직도 모세의 장막을 섬기는 자들은 예수의 예배에서 "먹을 권한" 그러니까 유익을 도저히 얻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아직도 믿으면서 예수를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이죠. 반면에 신자는 예수를 먹습니다. 즉 예수제사를 통해 유익을 얻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교훈, 그러니까 유대교로 돌아오라는 교훈으로 흔들리지 말고, 영원히 동일하신 예수를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구약제사에서 죄를 사하기 위해 제물의 가죽과 살코기, 배설물들은 모두 밖에서 처리가 되고 피만을 가지고 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이처럼 예수는 예루살렘 밖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피의 희생과 섬김만이 예루살렘에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예수가 죽은 십자가, 그 때 입었던 옷, 그 때 박혔던 못들이 아닙니다. 카톨릭에서 성물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로지 12절처럼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 당하심"만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13절과 같이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예수가 죄를 감당하기 위해서 성문 밖으로 나아갔다면, 우리는 그 예수에게로 나아가 성문 밖에서 내가 죄인이고, 내가 죄를 해결할 유일한 길이 예수뿐이고, 그렇게 예수와 함께 성문 밖, 사람들이 욕하고 부정하다고 말하는 그 밖에서, 무릎꿇고 죄를 용서받는 그곳으로 가야하겠습니다. 이렇게 죄의 용서를 받는 자는 기뻐 뛰며 찬양의 제사, 완결이 된 제사로써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14-17절입니다. 

10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11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12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13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14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15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6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장차 다가올 영원한 도성,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찬송의 제사를 드리며 예수를 증거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당연히 이웃을 향해 선을 행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처럼 말이죠. 17절에서 다시 한번 "너희 인도하는 자"가 나옵니다. 예수를 따르는 선배, 그 예수의 정신으로 질서를 따라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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