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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히브리서_예수의 자리매김

히 11:30-40

by 우루사야 2023. 11. 23.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계속해서 "믿음을 보여준 신앙선배"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오경 다음으로 여러이야기를 우리에게 소개해줍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동일하게 "믿음으로"라는 표현은 계속 등장합니다. 네,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믿음으로 주어지는 힘과 능력, 지혜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믿어야지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며 그 하나님과 관계를 쌓아가야 합니다. 그 속에서 쌓인 신뢰는 우리 마음에서 용기로 발전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실생활에서 믿음의 판단과 결정을 실천으로 옮기게 되는 것이죠. 본문 속에서 한번 살펴보시죠. 먼저 30-31절입니다. 

30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받은 전쟁전략은 눈에 보이는 무기를 어떻게 쓰느냐 또는 눈에 보이는 군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가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힘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한번, 그리고 마지막 7일째에 7바퀴를 돌았습니다. 그것은 세상에 있었던 전략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머리속에서 나올 수 있는 전략 또는 지혜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어찌보면 믿음으로 생겨나는 힘은 바보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100세 노인이 아이를 낳는다던지, 타국 출신 노예가 초강대국의 총리가 되는 꿈이라던지처럼 말이죠. 이렇게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원리를 통해 주어지는 약속은 그 어떤 과대광고보다도 허무맹랑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안에 계신 하나님과 관계하고 신뢰를 쌓다보면 이렇게도 허무맹랑한 약속에 대해서 믿어지고 순종하게 된다는 겁니다. 확신이 들고 증거요, 실체로 나타나게 되기까지 합니다. 그 결과 여리고성은 무너졌고 그 결과는 지금 현대에도 이스라엘 여리고 땅에 고고학적 자료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사도는 그 다음에 31절에서 기생 라합을 등장시킵니다. "
31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여기서 두 부류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평안히 영접한 라합과 순종하지 아니하고 멸망한 자로 말이죠. 여러분. 성경은 줄기차게 인류를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하나님 곁으로 갈 자와 심판받아 멸망할 자로 말이죠. 하나님께는 평안과 생명이 있고 멸망에는 후회와 고통, 공허가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일관되도록 말해왔습니다. 그 원리는 지금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신앙의 기준은 외형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양심에서, 이성과 정신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어떤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까? 누군가에게는 이웃을 향한 인내를 요구하시기도 하십니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을 향한 이해를 바라기도 하십니다. 누군가에게는 조직에서의 정직을, 옆집과 윗집에게로의 친절을 요구하시기도 하십니다. 나의 내면에서 순종을 요구하실 때, 세상이 보기에 그것이 하찮고 쓸모 없으며 별 소득없어 보이는 일일찌라도 하나님이 요구하신다면 순종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32-37까지 그렇게 살아온 선배들의 삶을 소개합니다. 

32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34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35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36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37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 이야기들은 모두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생입니다. 다니엘 선지자도 보이고, 엘리야와 엘리사 선지자가 살려주었던 여인들의 아들들 이야기도 보입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수세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승리케 해주신 전쟁도 있습니다.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기 위해 배교의 유혹을 내쳐버린 위인들도 있었습니다. 마치 일제시대때 우리의 선조들의 이야기를 보는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약한 민족이었음에도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이나 우리 한국이나, 외세의 강한 압박 속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같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과연 교회가 세상의 힘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맞는가? 그것이 교회를 순수하게 지켜주는가에 대해서 우리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34절에서 히브리서 사도는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는" 교회와 신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스스로 높은 자리에 올라 스스로 강하고자 하는 삶이 아닙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힘으로 강하기 위해서 나의 힘을 빼는 존재입니다. 그리할 때 생각지도 못한 힘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강하게 해주심을 목격하게 됩니다. 38절입니다. 

38(이런 사람은 세상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그런 신자를 결코 세상은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가장 잘나가는 중심가가 아니라 광야, 산, 동굴, 토굴과 같은 낮은 자리로, 세상권력자들이 신경쓰지 않는 곳에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자꾸 세상처럼 마케팅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 위해 낮아진 자들이 오는 곳입니다. 임금의 아들결혼잔치 비유에서 예수님은 초대받아놓고 자신의 일로 초대에 응하지 않은 자들을 버려두시고, 초대에 응하고자 하는 누구나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때 필요했던 것은 단 하나 "예복", 즉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마음의 자세, 순종하고자 하는 그 믿음으로 11장이 마무리되어집니다. 39-40절입니다. 

39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40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생활에서 용기와 소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천국이 이뤄지는 것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예수가 오신 이후의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예수가 오셨었고, 성령이 임했습니다.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신자들의 삶과 선언을 통해 귀신이 떠나가고 죄가 사해지고 병이 낫고 사람이 살아납니다. 우리가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길이 열린 시대, 그 길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 성도들의 삶을 보면서 무엇이 예고편이고 무엇이 본편인지, 그래서 우리의 삶이 본편의 삶으로써 위대한 삶인지를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완전한 결론부에 구약성도들과 함께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종말을 향해서, 완전한 천국으로 말이죠. 그 때까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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