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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히브리서_예수의 자리매김

히 11:8-19

by 우루사야 2023. 11. 20.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제에 이어서 믿음에 대해서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간 대제사장 예수를 중심으로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죠. 네, 예수에 대해서 살펴보았고 이제는 그 예수를 "믿는 행위"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이 내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실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과 확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성은 '믿음의 싸움'이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려는 나의 욕구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천국으로의 인도하시는 길을 믿어가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에서도 그 치열한 믿음의 인생을 살아간 신앙선배들이 등장합니다. 함께 보시죠. 8-12절입니다. 

8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9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10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11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12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아브라함과 사라가 등장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이죠. 이들의 인생을 보면 혈통으로 믿음을 가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전통이나 관례 등도 없었지요. 오로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약속을 주실 때 그것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갔죠. 8절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왜냐하면 10절과 같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나라와 성'을 기대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네, 나라가 있으려면 사람도 있어야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또한 노년에 자식을 낳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등장합니다. 11절에서 믿음으로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힘을 어떻게 얻었습니까? 그 뒤에 보니 '약속하신 하나님이 미쁘시다, 즉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성실하신 분인 줄 알았다, 즉 믿었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가 그 약속을 믿을 때 그 약속이 이뤄지는 힘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이뤄지게 되는 것이죠. 그 결과 죽은 자와 같은 노인 사라로 많은 후손이 생육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힘을 얻으며 살아가는 인생에 대해 사도는 13-16절에서 그들은 "가고자 하는 분명한 곳"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14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15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16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사도는 '본향'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네, 하나님이 계신 곳,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편 곁에 앉아계신 곳이죠. 믿음을 가진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약속이 이뤄지는 것을 경험하면서도 분명히 바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후손이 얼마나 많아질지 보지 못하고 단 한 사람 이삭만 낳고 죽었음에도 믿음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 본향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처럼, 당장이라도 떠날 채비를 하며 살아가는 자로써 생활했던 것입니다. 14절 '자기들이 본향을 찾는 자임을 나타냄' 네, 우리 신자의 모습이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사도가 의미심장한 경고를 합니다. 15절에 '그들이 나온 바 본향, 즉 떠나온 고향'을 생각했다면 아브라함이라도 돌아갔을 것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돌아가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때문이었다는 것이죠. 즉 지금 믿음을 저버리고 유대교라는 옛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시기 위해 일하고 계십니다. 다시는 죄의 종으로, 세상의 노예로 전락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명예로운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고자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자랑스러워하시고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처소로 우리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 17-19절입니다.  

17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18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19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라고 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본향으로 가는 그 믿음의 길에서 시험도 있었습니다. 낳은 아들로 자신의 가문을 세우고자 하지 않게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하나님께 내놓을 것을 명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가문을 세우려고 했다면 이삭이 필수적이었기에 하나님께 내어드리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바라보았던 것은 자신의 가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노년의 자기자신을 사용하셨던 것처럼 또 사용하실 수 있는, 죽은 자와 같은 자신을 다시 일으켜 사용하실 수 있음을 고백하며 이삭을 드렸습니다. 이삭이 죽더라도 이삭을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의 싸움, 그 내면에서의 고뇌와 고통, 번뇌,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영이 주시는 용기로 그는 이 인생을 살아가며 본향을 향하여 나아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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