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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설교_F/우리행전_사도행전

우리행전(14) 매듭짓는 영성

by 우루사야 2023. 10. 15.

제목 : 롱런영성, 매여야 합니다.                  
본문 : 행 28장 18-20절

1. 서론
롱런이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직장에서 정년까지 가는 것이라고들 생각하실 겁니다. 정년까지 버티기 위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보충하고 덧입힘으로써 겨우겨우 끝까지 도달하는 이미지죠. 알아보니 롱런이라는 말의 의미는 정반대더군요. 사용해보니 너무 좋아서 본래 생각했던 사용기간보다 더 길게 쓰고자 하는 시스템을 말합니다. 본래 브로드웨이에서 만들어진 단어인데, 한 극단이 작품을 하나 올리면 몇 달정도 유지하고서 그 다음 작품을 올리는데, 어떤 작품이 대히트를 칠 경우 그 다음작품을 미루고 계속해서 히트친 작품을 긴기간동안 무대에 올림으로써 많은 관객을 유치한다는 것이죠. 무대나 의상을 교체할 경우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롱런시스템이 적용되는 작품을 올릴 경우 극단에게 굉장히 큰 유익이 되니까요.


이 단어를 가지고 우리 신앙생활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과연 우리 신앙은 정년퇴임까지 버티는 롱런에 비슷할까, 아니면 브로드웨이에서 쓰는 롱런에 가까울까? 우리 기독교는 후자의 이미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계속해서 해내야 하는 버티는 신앙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영혼을 채우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을 이미 감내하셨고 완수하셨다고 말해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은 메마르지 않고 넘치는 우물입니다. 넘쳐나니 물을 흘려보내고, 그래서 주변에 수풀이 이루고 나무가 푸르릅니다. 사람들이 물을 얻으러 모입니다. 그것이 기독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을 보면 애쓰고 버티는 신앙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싫어하지 않으실까 고민합니다. 특별새벽기도회때나 수련회에서 받은 은혜를 가지고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결단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오면 어느샌가 사라져버리는 나의 영성을 보며 나 자신에게 낙심하곤 합니다. 내가 과연 옳은 신앙인인가, 천국은 갈 수 있겠는가 의심까지 듭니다. 매번 바닥까지 내려온 신앙게이지는 올라갈 낌새도 보이지 않습니다. 무언가 잘못된게 틀림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신앙의 출발점을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하는데, "나"에게서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항상 메말라 있습니다. 풍성함을 준비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찾으니 은혜받지를 못합니다. 서로 섬기며 성숙해지는 공동체로써의 교회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교회를 찾다보니 결국 이리저리 떠돌며 나만의 일인교회를 만들며 떠돌이생활을 합니다. 나를 위한 신앙으로 만들어놨기에 신앙생활이 항상 힘들고 지치고 여지가 남아있지 않는 것이죠. 결국 이교회 저교회 유명한 교회 유명한 목사님을 향해 떠돌아 다니거나, 영빨이 있다는 기도원에서 안수받으려 줄서있거나, 말씀 잘 전한다는 교회유튜브를 뒤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라 나로 가득한 영혼의 우물은 메마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결론부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누가는 바울이 환란을 당하면서도 그 길을 자원해서 가는 넘치는 영성있는 모습으로 마치고자 합니다. 성령충만으로 시작한 사도행전을, 사명을 위해 자원하여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고자 하는 바울의 모습으로 마침으로써 진짜 성령충만이 무엇인지, 어떻게 신앙생활을 롱런하는 것인지 말하고자 하는 것이죠. 내가 중심이 되는 메마르고 항상 지쳐있는 신앙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 아니 오히려 다른 종교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나의 신앙에 대해서 돌아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 본론
1) 어차피 매이였는 인생
사실 바울은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아이도 없었습니다. 다른교회들에게 편지를 쓸 때에는 사역자의 경우 가정생활을 하기보다는 독신에 대한 마음이 있다면 독신도 권할만한 것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바울은 자유로운 인생을 택한 것일까요? 사도행전은 바울이 전도여행을 다닐 때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22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행20) 여기서 "매이다"라는 단어는 누군가에게 강권하다, 강조하여 수행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성령에 매이기 위해서 다른 것에 매이지 않을 삶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유형의 라이프스타일은 성경 전반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본거지를 떠나 외국으로 왔을 때에도 경제적 자유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왔습니다. 기드온이나 요나단의 경우도 군사적으로 안전할 자유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영으로 가득하여 소수군사밖에 없었지만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도 하나님께 묶여서 쇠사슬에 결박되더라도 이 길을 걸었다고 20절에서 말합니다. "20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사실 어디에 매여있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숨이 막히게 하는 단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우리 주변에는 한 배우자에게 평생 매여있기 보다는 배우자가 있어도 남녀이성친구를 택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또한 한 가정을 중심으로 일과가 매여있다는 것에 너무나도 힘들어 합니다. 직장생활에 내 소득이 매여있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고 경제적 자유를 위해 불로소득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내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어딘가에 매여있지 않기 위해서 부단히도 자유하려고하는 우리 현대인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마침내는 신앙생활까지도 하나님께 매여있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나 중심의 자유한 신앙생활, 내가 원할 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교회생활을 원하는 많은 신자님들을 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부터 자유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무엇으로부턴가 우리는 항상 매여있을 수 밖에 없다는 현실에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우상숭배"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10가지 재앙을 통해 살펴보고, 홍해를 건너면서 보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본 이스라엘이 모세가 보이지 않아 불안해지니 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자신들이 생각하고 보기 좋아 보이는 형태로 "하나님을 금송아지로 만든 것"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 각자는 나의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만든 신, 내가 만든 기독교, 내가 만든 교회 안에서 말이죠. 우상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제멋대로의 신앙을 가지고 나 홀로 평안함을 만들어냅니다. 십일조를 함으로써 안도감을 느끼고, 주일성수와 큐티를 완료함으로써 내 안에 지식적 안정감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나 스스로 만든 우상에 나를 묶어버립니다.

 


2) 매이는 과정
우리는 올바른 것에 묶여있어야 합니다. 우상에 묶여있을 때 우상과 함께 공허하게 무너질 운명으로부터 우리는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것을 두고 바울은 "이스라엘의 소망을 위해 이 쇠사슬에 매였다"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바울이라고 해서 우상으로부터 빠져나와 성령님께 매이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본문 18-19절을 보실까요? "18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19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바울을 향해서 두 세력이 움직였습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유대인들은 바울을 묶어두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를 죽이려고 했지요. 반면에 로마인들은 바울을 향해서 석방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를 묶어두지 않고 풀어주려고 했지요. 바울이라고 해서 이 두 세력과 어찌 무관할까요? 바울은 처음에 유대교에 열심을 두고 유대교를 위해서 사람을 죽이러 다니는 킬러였습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로마시민이자 가말리엘 문하라는 고학력자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자로써 상류층에 해당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그것들에 자신을 꽁꽁 묶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빠져나오지 않으려 부단히도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무장해제가 되었고,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소망을 위해서 스스로 매여야겠다는 순종의 길을 걷는 자가 된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으면 하나님이 하나님께 매이는 바울을 가장 자유롭게 해주신 것을 보게 됩니다.

"3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행27)"바울은 로마군에게 잡힌 죄수의 모습으로 로마로 가고자 합니다. "16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28)"그런데 막상 그 길을 가니 그 로마군들은 바울에게 호의를 베풀다 못해 로마에 도착해서는 보디가드 역할까지 해줍니다. 유대인과 로마인 모두에게서 가장 안전할 수 있는 그 길로 성령 하나님은 인도해주고 계셨던 것이죠. 묶여있으면서도 가장 안전하고 풍성한 상태로 하나님은 바울을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매이기보다 "성령님께 매이는 길" 속에서 바울의 인생은 가장 풍성할 수 있었던, 소망이 있는 인생을 확인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3번째 변론장에서 유대인들의 분봉왕인 아그립바 앞에서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묶인 일 외에는 다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행26) 바울이 믿는 바에 따르면 "성령 하나님께 매여서 살아가는 인생은 가장 축복된 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는 분량을 보면 28장 중에 바울이 말씀을 전하면서 부흥하는 장이 8장, 굳이 성령에 매여서 고생하며 예루살렘에 잡혀 로마로 죄수가 되어 가는 장이 8장입니다. 이 책이 1장에서 데오빌로를 전도하기 위해서 쓰는 책이라고 본다면 너무나도 힘든 책 아닙니까? 누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까? 예수가 약속한 성령충만은 "하나님의 소망으로 가득차서 고생길을 굳이 걸어가는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3) 소망을 위해서 매입시다.
바울은 다른 교회들에게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21),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6:2),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  바울은 계속해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 자유해지는 인생과 정반대의 것을 말했습니다. 오히려 타인을 향해 종이 되어주고, 복종해주고, 짐을 서로 지라고 말이죠. 그것이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이라고 함께 말했습니다. 이런 바울의 권면들을 지지해주는 예수님의 놀라운 영적 원리를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11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 네, 기독교는 내 안에 가장 풍성하신 성령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면서, 낮아지는 자리로 나아가게 되는 종교입니다. 그것이 안되면 내가 믿음이 없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제가 이것저것 행사도 만들고 공간도 정돈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을 우리 교회로 데려옴으로써 우리교회가 롱런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제가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정년퇴직하지 않으려는 퇴직예정자의 모습입니다. 교회와 신자는 세상에서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이런 행사와 공간에 내가 과연 초대할 수 있는, 낮아질 수 있고, 섬길 수 있는 "영성"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그것을 놓치는 순간 교회는 타락하게 됩니다. 행사는 교회를 유지하기 위한 인원동원이 아니라, 우리의 섬김테스트지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확신이라는 말 그 자체가 롱런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롱런이 확정되어 있고, 그 끝에 가장 선하고 풍성한 인생의 결말이 있음을 믿으며 오늘 섬기러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확신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주 내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 매여 풍성한 한주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나의 생각 속에서 지혜를 주시는 성령 하나님, 나의 의지 속에서 용기를 주시는 성령 하나님, 나의 영혼 속에서 예수의 섬김과 사랑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확신을 주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심을 믿으며 한 주간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3. 결론
전설적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인터뷰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훈련이 무엇인가요? 밤 9시에 잠드는 것입니다. 무언가 더하기보다, 나 자신을 관리함으로써 그는 전설적인 복서가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매듭짓는 영성이라고 드렸습니다. 세상은 롱런하려면 끝없는 노력을, 계속되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매듭지어놓으셨다고, 그래서 성령님과 오늘 고민을 함께하고, 성령님과 천국을 만들어가며 살아가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하루를 불안과 초조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과 매듭지어보십시오. 매일 하루하루 내리는 결정과 판단, 방향을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믿음으로 매듭지어보십시오. 어느샌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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