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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설교_F/우리행전_사도행전

우리행전(10) 나침반을 볼 줄 아는 용기

by 우루사야 2023. 9. 3.

제목 : 나침반을 볼 줄 아는 용기
본문 : 행 16장 4-10절

1. 서론
1) 예화
포스트잇 이야기로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3M사에 재직중이던 스펜서는 강력접착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자꾸 실패하게 됩니다. 접착력이 약한 실패작을 우연찮게 같은 직원이 교회 성가대 활동 중에 쓰면서 지금의 포스트잇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니 위대한 성공과 처절한 실패는 종이 한장 차이인듯 합니다. 포스트잇 말고도 실험약을 냉장고에 넣지 않아 부패해버린 비커를 보며 만들어진 항생제, 연구실에 놓고간 초코바가 녹은 것을 보고 만들게 된 전자레인지, 황을 섞은 고무수액을 실수로 난로에 떨어뜨렸는데 녹지 않은 것을 보고 만들게 된 타이어와 구명보트 등의 재료가 되는 가황고무, 잉크통에 뜨거운 인두를 놓쳤더니 잉크의 양이 팽창하는 것을 보고 만들게 된 잉크젯 프린터기와 같이 실생활에 유용한 것들이 "우리의 실패와 같은 실수"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듯 합니다.

2) 주제
그런 점에서 성경에서는 우리의 실수에 대해서 무어라 말해줄까요? 바울은 "28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롬8)라고 말했습니다. 실수를 통해서도 놀라운 발명과 위대한 인류의 진보를 이뤄내는게 인생인데, 성경은 그런 인생에 하나님이 손을 대시면 "결국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된다"라고까지 말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실패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바에 따르면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될 것이기에 당장 마이너스난 후에라도 플러스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바울만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생 자체가 마이너스였던 요셉경우, 배다른 형들의 겁박과 인신매매라는 엄청난 마이너스사건을 두고 무어라고 말합니까? "20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날 내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창50) 게다가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10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11나 때문에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말로 온갖 악담을 할 때에 너희는 행복하다12하늘에서 큰 상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이전의 예언자들도 이런 핍박을 받았다."(마5)

3) 본론잇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1번째 전도여행과 다르게 실수투성이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이뤄내십니다. 과연 그의 인생을 통해 어떤 역사를 이뤄내시는지 함께 살펴보며, 우리의 인생에도 그렇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고백하는 이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실수투성이 인생, 바울
그렇다면 바울의 실수들이 무엇이 있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그의 실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이루시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4-5절을 보죠. "4바울과 그 일행은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결정한 규정을 신자들에게 전하여 지키게 하였다.5그래서 교회는 믿음이 강해지고 그 수가 날마다 늘어났다." 여기에서 실수가 보이지 않는듯 합니다. 그런데 주어를 보십시오. 바울과 그 일행, 네. 바나바가 없습니다. 바로 전에 바울은 바나바와 팀원을 꾸리는데 있어서 의견차이를 심하게 가져 결국 따로 떨어지게 됩니다. 바나바는 실수했던 마가 요한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자 데리고 가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마가요하늘 받아들이지 않고, 실라라는 다른 동역자를 데리고 떠나게 되었던 것이지요. 네, 지금 바울의 두 번째 전도여행 첫발걸음부터 그는 좋지 못했습니다. 첫단추부터 잘못 꿰어지니 엉망진창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습니다. 5절에 보니까 "믿음이 강해지고 그 수가 날마다 늘어났다"고 합니다. 바나바와 마가요한과 따로 오니 더 잘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더 넓게 살펴보면, 바울의 행동이 썩 그렇게 좋아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전에 바울과 바나바는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구원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도들의 모든 동의를 얻고서 다시금 교회로 돌아왔지요.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엄청난 장벽이 허물어지는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이 4절이지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교회 한 가족이 되었으니, 이제 서로 예민한 부분들을 조율하기 위해 "몇가지 결정한 규정"을 지키며 서로 하나됨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런 위대한 과업을 이뤄놓고선,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요한을 데리고 가느냐 안가느냐로 싸워 갈라져서 따로 사역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게다가 다음 본문을 보면 바울의 행로에서 많은 실책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6성령님이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막으시므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지나7무시아에 이른 후에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였으나 성령님이 그것을 허락하시지 않았다.8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다." 6절에서 보니 성령님이 바울이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기까지 하십니다. 7절에서는 가는 길까지도 막아 허락하지 않기까지 하십니다. 말씀을 못전하게 하시고, 또 가는 길까지 막아서시니 바울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바울의 실책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그릇"으로 세우셨기에 바울은 이방인을 향해 더 적극적으로 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교 랍비의 옷을 입고, 유대인 예배당을 골라서 갔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이방인에게 더 적극적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막고 다른 길로 인도하셨던 겁니다. 6절에 보니 바울의 활동무대인 소아시아(튀르키예)에서 말씀전하지 못하게 막으십니다. 그래서 큰도시가 있는 남쪽 에베소를 가려고 했으나 그것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이 아니었습니다. 그길이 막히니 바울은 7절과 같이 북쪽 비두니아로 가려했으나 그것도 막으십니다. 바울은 계속 실수투성이였던 겁니다.

2) 실수 사이사이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는 서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실수인생 사이사이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에도 그렇게 나타납니다. 한버 볼까요? 오늘 본문의 장 1절을 볼까요? "1바울더베에 들렀다가 루스드라로 갔다. 거기에 디모데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주님을 믿는 유대인이었고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었다." 바울이 바나바와 헤어지고서 따로 사역하기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은 귀한 인연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바로 바울이 장차 아들이라고 부르는 귀한 동역자이자 제자 디모데였습니다. 그리고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바울의 계속되는 실수투성이 진로가운데 드로아에 도착했을 때를 보시죠. 10절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나타납니다. 지금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는 사람은 누가죠. 누가가 드디어 "우리"라고 쓰기 시작했습니다. 네, 실수투성이 길을 걷다가 드로아에서 바울, 실라, 디모데 일행이 누가까지 만나게 되었던 겁니다. 실수투성이 행전 속에서도 하나님은 귀한 동역자들을 만나게끔 해주셨던 것이죠. 그리고 마침내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환상본문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9절을 보실까요? "9그 날 밤 바울이 환상을 보았는데 어떤 마케도니아 사람이 서서 그에게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바울은 방황하는 가운데 사람을 얻었고, 마침내 하나님이 인도해주신 드로아라는 곳에 다다르게 되어 그곳에서 명확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게도냐사람 특징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 도와달라는 환상이었습니다. 여러분, 성령충만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40일 작정기도 해서 응답받은 사람입니까? 일천번제 드려 자식 대학보낸 사람입니까? 아뇨. 성경은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실수투성이 인생일찌라도 순종하며 나아가다가 "누군가를 도우라"라는 사명을 받는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께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결코 이런 부르심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중요한 영적원리를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실수하지 않는 인생이 되길 바라실까요? 아니죠. 실수하더라도 하나님께 계속 발맞추고 방향 맞춰 가는 인생이 되길 원하십니다. 하여 마침내 하나님이 도우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자를 찾으십니다. 바울을 하나님께로 인도했던 다메섹의 아나니아를 생각해볼까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바울을 인도하라고 했을 때 처음에 순종하지 못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도우라고 하셨고, 이에 순종하며 나아가 바울에게 세례를 주며 한 교회의 식구로 맞이하게끔 했습니다. 베드로는 어땠습니까? 부정한 동물고기를 먹으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놓고 거절했지만, 계속되는 하나님의 가르침 속에서 마침내 이방인 고넬료를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지 않았습니까? 아나니아나 베드로나 순종하지 못하는 실수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임을 아셨고 설득하셨습니다. 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치빠른 순종이 아니라 몰라도 진득하게 하나님을 붙들며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순종을 원하시는 겁니다. 실수하더라도 모든 것이 연합되어 선을 이룰 것을 믿으며 순종해나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3) 연합되어 선을 이루는 인생
이렇게 하여 바울은 일행들을 모아 함께 드로아에 도착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곳에서 하나님은 어디로 가야 할지까지도 알려주셨습니다. 모든 요소들이 다 갖추어진듯 합니다. 이런 요소들이 어떻게 연합되어 선을 이루게 될까요? 지금 바울일행 앞에는 바다밖에 없는데 어떻게 놀라운 결과가 이뤄질까요? 10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10바울이 그 환상을 본 후에 우리는 하나님이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으로 판단하고 곧 떠날 준비를 하였다."

바다 땅끝마을 드로아에서 바울일행은 이 환상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다시 동쪽 바울일행의 근거지로, 익숙한 그곳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바다 건너편 마게도냐로 갈 것인지를 말이죠. 특히 10절 하반절에 "판단하다"라는 단어는 "다양한 근거를 통해 하나의 마음으로 모으다"라는 의미를 가진 심비자조라는 헬라어로 누가는 썼습니다. 당시 바울은 일행들과 함께 이 환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했다는 것이죠. 그 결과 "하나님은 이방땅으로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를 지금까지 계속해서 남쪽 대도시 에베소로도 못가게 하셨고, 북쪽 비두니아로도 못가게 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끝마을 드로아에 오게 하시어 이런 환상을 보여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다를 건너 더 이방인을 향해 나아오라는 말씀이다." 그렇게 이 일행들은 한 마음이 되어서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바울팀은 성령충만하여 당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던 빌립보, 데살로니가, 고린도를 차례로 방문하여 놀라운 부흥의 업적을 이루게 됩니다. 이 3도시가 모두 당시 수도급에 해당하는 도시들로써, 이 팀은 후에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서, 고린도전후서 등을 써서 보낼만큼 큰 부흥을 이뤄내게 되지요. 하나님이 원하셨던 사역의 방향이었습니다. 이렇게 유럽으로 흘러들어온 복음은 마침내 이곳에서 2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놀랍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복음체계를 이뤄내, 아시아의 첫성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에 잘못된 길은 없었습니다. 실패한 길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이죠. "28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결국 모든 일이 유익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롬8)



3. 결론
오늘 우리는 또 실수합니다. 그리고 내일 또 실수하게 될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내가 한 것이 아닐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대신 해주신 선택, 나 스스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 주변인을 통해서 하게 된 그 선택, 나는 분명히 실수로 한 선택인데 오히려 놀랍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준 선택. 우리네 인생길의 나침반, 북극성, 등대는 사실 나 스스로의 힘보다는 "나"의 밖에서 더 많이 찾은듯 합니다. 오늘 성경은 그 나침반으로 가장 큰 존재로써 "하나님"이 우리네 인생에서 일하고 계시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시고, 실패를 아까워하지 마시고, 모든 것을 연합하여 선을 이뤄내실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아는 결단을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오늘 이번한주도 하나님과 함께 이 인생길을 당차고 힘차게 걸어나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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