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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설교_F/우리행전_사도행전

우리행전(13) 충만의 영성 2

by 우루사야 2023. 10. 6.

본문. 사도행전 20장 22-25절

제목. 충만의 영성(2)

 

1. 서론
1) 예화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무슨무슨족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취업이나 구직의사가 전혀 없는 이들을 뜻하는 니트족,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영위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부부를 뜻하는 딩크족,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만 바쁜 업무로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를 지칭하는 딘트족 등이 있을 겁니다. 간단하게는 소비를 거의 하지 않는 미니멀라이프,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있겠죠. 23년에 가장 트렌디했던 것으로 매일경제는 아웃도어로 캠핑과 골프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하더군요. 이들을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기준은 아마도 이들의 생활양식, 즉 라이프스타일에 있을 겁니다. 각자가 어떤 삶을 추구하느냐에 따라서 붙일 수 있는 이름들이 있겠죠. 

 

2) 주제
그런 점에서 종교라는 것은 가장 대표적이고 역사가 깊으며 종교를 가진이는 가지지 않는 이와 많은 차이를 두게 만드는 라이프스타일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인라는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특징을 가지게 하는지 생각해봄직 해집니다. 과연 기독교인의 공통적인 라이프스타일로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신자나 비신자들은 공통적으로 일요일에 예배드리거나 헌금하는 것 좀 더 들어가면 성경을 읽거나 기도하는 것으로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 살펴본 바와 같이 이것들에서 "신"을 빼놓는다면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님을,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님을 유념해야하겠습니다. 신은 우리에게 빠져서는 안되는 존재로,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에 깊숙히 들어와야 합니다. 만약 신이 없는 기독교라이프스타일은 사실 기독교가 아닌 것이 되버리죠. 성경자체가 소개하는 신은 나에게 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시고, 독생자 예수를 희생시키셨으며, 마침내 마지막 날에 다시 옴으로써 "세상의 완성"이 된다고 말하기까지 하기 때문이죠. 그만큼 지금 나와 함께하는 신의 존재는 기독교 라이프스타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추구하고 강조해야 마땅하겠지요.

3) 본론잇기
그런 점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받은 말씀, 바울의 고백을 통해서 기독교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 고백이 위엄스럽고 거창하기까지 들립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신자라면 사실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살고 계심을 오늘 알게 되실 겁니다. 함께 이 고백을 살펴보며 지금 나의 기독교인으로서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서 살펴보시죠.
2. 본론
1) 이미 나와 계신 성령하나님
먼저 24절부터 보겠습니다.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구절은 아마도 많은 분들이 암송하시거나 한번정도는 들어보셨을 법한 바울의 고백일 것입니다. 바울은 당시 자신의 사역의 말미를 예상하며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 교인들 앞에서 안녕을 고하며 말하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용하는 표현들을 좀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면 이제 잡힐 것이라는 것을 알고 말하는 고백입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가야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여기서 사용하는 단어들을 볼까요? 길, 사명, 일. 이 세가지 단어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무언가 이뤄내거나 성취하는 것, 얻어내려고 발버둥쳐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생활 또는 생활양식으로 주어진 것들을 의미하는 단어들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누워있다가 뒤짚고, 기어다니다, 일어서서, 걷다가, 뛰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길입니다. 결코 물로 헤엄을 치러 가거나 날개를 피듯 팔을 벌려 공중을 날려고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뛰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어게는 주어진 길이라는 것이 있겠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기독교인이 됨으로써 얻어지는 길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는 이미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바울은 이것에 대해서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26성령님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 모를 때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27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은 성령님의 생각을 아십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을 따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 즉 중생(거듭남)한다는 것은 아기가 된다는 뜻입니다. 아기가 본능적으로 누웠다가 점점 일어나 뛰듯이, 기독교인은 새로 태어나 영적으로 누워있다가 점점 일어나 어느샌가 뛰게 된다는 겁니다. 우리의 심령에서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과의 다리역할을 하시며 우리를 지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의지를 발휘하지 않으면서 주어진 길, 사명, 일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부모님이라는 가족구성원과 형제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여러분의 국적, 성별, 외모일 겁니다. 하나님은 이것들을 우리에게 길, 사명, 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들을 얻으려고 노력하거나 쟁취하려 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자신의 인생길, 일, 사명이 자신이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기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이미 주어진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 괴롭지만 성령충만할 수 있는가?

22-23절을 보실까요? "22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이 고백에서 계속 등장하는 단어가 "성령"이십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길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길로 "성령이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어도 주어지는 길, 일, 사명이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이런 경험이 있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고백하셨죠. "39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26:39) 우리 인생에는 내가 원하지 원하지 않든 주어지는 길과 일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성령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길과 일, 사명으로 인도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령충만은 결코 여러분의 선의나 착한 생각, 죄짓지 않음으로써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성령은 우리에게 충만히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 성령님께 순종하고 있느냐가 관건이 되는 것이지요. 성령충만은 얻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령충만은 여러분이 예수를 주님으로 모실 때에 이미 여러분 안에 이뤄지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입니다. 그리고 그 라이프스타일은 "내가 원하지 않는 길도 가게끔 하는 것"임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바울은 25절과 같이 말합니다. "25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내가 원하는 시간, 공간, 교제, 사람이 있음에도 더 중요한 것은 "성령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그 길"을 걷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마치 성령충만을 극단적인 황홀경이거나 자의식을 잃을 정도의 무아지경에 빠지는 것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분명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이 길에 환란과 고난이 닥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은 이 길을 걸어야 함을 성령님께서 충분히 자신에게 알려주셨음을 말해줍니다. 이 발언을 통해서 우리는 성령충만은 라이프스타일이지, 어떤 특정한 공간과 시간 더 나아가 특정한 교역자를 통해서 전달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이 주어지는 자, 오늘 본문과 연결시켜보자면 성령충만한 자로써 어떤 이들을 소개해주십니까? 가장 첫번째가 심령이 가난해질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자였습니다. 두 번째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필요해서 울고 애통하는 자였습니다. 세번째로 복음을 가짐으로써 세상의 환란과 고난 앞에서도 미련이 없기에 온유할 수 있는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성령충만은 우리의 고되고 아프고 번뇌로 가득찬 그 현장 속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결코 특정한 이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로 성령 하나님이 오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생명과 바꾸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24절을 다시 한번 보시죠. "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성령에 매여서 힘든 길을 걷고 있는 이 길, 일, 사명에 대해서 생명과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지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나 생활양식, 루틴 중에서 중단할 것과 결코 중단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누라면 가장 먼저 "예배와 섬김"일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 어디서든 어떤 환경에서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가장 먼저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건물"입니다. 교회의 라이프스타일은 공간과 시간에 제약받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완성하심으로써 교회는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신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모이든 그 교회는 둘 셋이 모이기만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심으로써 예배하고 교회로 모일 수 있는 것입니다.
"19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

이제 23년 가을이 시작되면서 한해를 마무리지어가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11월에 추수감사절을 맞이해서 우리는 우리의 가족, 이웃, 지인들을 초대해서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자리로써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성령을 모시는 우리"일 것입니다. 결코 아름다운 음악가, 넓은 예배당과 주차장, 맛있는 음식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해에 모셨던 김신호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번에 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하실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전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3. 결론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장수프로그램 또는 영화를 생각해보자면, 한국에서는 전원일기, 해외영화에서는 해리포터 시리즈나 프렌즈 시리즈가 있을 겁니다. 그 배우들이 나중에 서로 만나는 계기를 만들어준 프로그램들을 보면 이런 대화들을 나눕니다. 먼저 김수미씨는 김혜자씨를 보자마자 우시더군요. 그러면서 가족보다 더 가족같다며 피붙이라는 표현을 나누더군요. 해리포터 주연 엠마왓슨과 루퍼트 그린트는 10년동안 함께 이 영화를 찍으면서 서로가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함께한 시간이 있었기에, 함께 생활을 나누고 라이프스타일을 함께 했기에 이런 고백이 나오는 것이겠죠.
라이프스타일은 양으로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겠지요. 노래를 좋아하는 분 중에 어떤 분은 대학을 가거나 업으로 삼기도 하시고, 어떤 분들은 노래방을 자주 가거나 어떤 분은 좋은 음질의 스피커를 구매해서 노래를 즐기시기도 하실 겁니다. 라이프스타일은 양이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독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목사가 될 필요도, 성경학자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여러분의 생각, 의지, 감정, 이성 속에서 하나님과 소통하시고 교제하십시오. 그렇게 점점 하나님을 닮아가시고, 하나님을 소개하는 성경을 점점 알아가시며, 점점 하나님과 소통하는 묵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그러면 어느샌가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여러분의 삶이 바뀌고 풍성해질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바울처럼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2424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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