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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설교_F/우리행전_사도행전

우리행전(8) 초대받을 줄 아는 신앙

by 우루사야 2023. 8. 13.

본문 : 사도행전 10장 9-16절

제목 : 초대받을 줄 아는 신앙

서론
예화
라디오를 듣다가 한교수의 연구를 듣게 되었습니다. 절정대미법칙이라고 하네요. 사람이 과거의 한 사건을 기억할 때에 어떤 이미지로 기억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소년이 놀이동산을 갔다고 봅시다. 그 아이가 장차 후에 놀이동산을 갔을 때의 이미지를 기억창고에 넣을 때에는 첫번째, 가장 신났을 때의 절정이미지. 그리고 두번째는 마지막으로 놀이동산을 떠날 때의 대미이미지를 가지고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신나는 청룡열차를 탔을 때와 놀이동산을 떠나면서 스텝누나가 안녕 인사를 해주는 모습으로 그 때의 기억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겠죠.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기준은 키나 몸무게와 같은 육체적인 것으로, 또는 어떤 한 기술에 대한 전문성, 또는 다른 이를 위한 인격적인 태도나 책임감과 같은 것들로 나타낼 수 있겠습니다만, 오늘 서두의 말을 빌려서 생각해보자면 어떤 것을 가장 절정과 대미로 생각할 줄 아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는 자기자신이 기뻤을 때를 절정과 대미로 기억하겠지만, 어른이라면 아이가 가장 기뻐했을 때를 절정과 대미로 생각하겠지요. 저도 아직 기억나는 것이 제주도 협제해수욕장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얕은 해변가에서 마음껏 뛰놀며 놀 때입니다. 나의 감정의 만족이 아니라 내가 책임지고 있는 이들의 감정을 통해 기억하게 되는 것이 제가 가장이자 아비가 되었다는 의미겠지요.

주제
성숙한 자가 된다는 것은 나의 감정, 나의 성취, 나의 주장이 아니라 타인의 것을 바라볼 줄 아는 자라고 정리해볼 수 있겠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러한 원리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그 위대한 산상설교를 마무리 지으셨지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먼저 구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될 때 우린 진정으로 성숙한 신앙인이 된 것이며, 이런 자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준비했다고 약속하시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잇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고자 하십니다. 특히 베드로를 예루살렘에서 계속 북쪽 이방땅으로 데리고 오셨고, 마침내 오늘 본문에서와 같이 무언가를 보여주시며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계속 많아지고 있는 교회의 등대역할로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게끔 하시는 것이지요. 이 시간을 통해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에 우리를 맞출 수 있길 소망합니다. 

 

본론

1) 결국에는 또 나입니다.
베드로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전 배경이야기부터 잠시 드려보지요. 9절에서 보니 베드로가 기도하는 가운데였습니다. 히브리식으로 6시, 우리식으로는 12시 정오, 점심즈음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배고파할 때즈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언가를 내려보내주십니다. 12절에 보니 "각종짐승"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제 상상인데, 하나님께서 산것으로 보여주시기보다는 아마 요리된 것들로 보여주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침 배고플 때였으니 베드로의 식욕으로는 충분히 먹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베드로의 대답이 가관입니다. 14절에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먹으라고 하시는 것을 먹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으라고 하면 먹을 것이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베드로의 입장에서 이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지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선수단에게 요구한 것 중 하나가 의사소통의 간결화였습니다. 그래서 이천수 선수에게 대선배 홍명보 선수에게 "명보"라고 부르게 시킨 적이 있었지요. 외국 특히 영어권에선 이름부르는 것이 그렇게 큰 격식을 차려야 하는 것은 아니기에 일상화되어 있지만, 우리입장에서는 어른이나 윗선배에게 이름만 부른다는 것은 엄청난 결례죠. 최진철, 송종국 선수가 말하길 "이걸 하는 이천수 선수는 미친놈이다, 우리 시켰으면 절대 못했을 것이고, 그걸 알았던 히딩크 감독이 이천수에게 시킨 것 같다"라고 하더군요.

이것보다 더 한 것이 레위기 율법에서 금하는 낙타, 돼지, 토끼고기를 먹으라고 하셨던 하나님의 요구였던 겁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그것을 먹을 수 없다고 했던 것이죠. 그런데 베드로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 것인지 좀 생각해봐야 합니다. 14절을 좀 더 볼까요?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베드로는 그냥 거절한 것이 아니라 "그간 결코 먹어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먹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쭉 먹지 않았던 것이기에 먹을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율법전통에 의해 결코 먹을 수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는 하나님보다 율법전통을 더 우위에 두고 있는 것이죠. 아니 좀 더 살펴보자면 내가 믿어왔던 것에 변화를 받아들이기보다는, 내가 믿어왔던 신앙생활을 더 우위에 두고 있는 것이죠. 좀 더 들어가보자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자 지금 자기자신의 과거로부터의 경험, 나 자신의 주장,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생각대로의 계획을 하나님보다 더 우위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보다 "나"라는 것이지요. 율법이라고, 전통이라고, 그간 쭉 지켜온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베드로 자기자신, 나 자신"이라는 견고하게 뿌리박힌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거절하고야 만 것입니다.

2) 결국 또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바울의 회심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회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비신자에서 신자로 대대적으로 방향이 전환되는 마음의 돌이킴이 있습니다. 그것이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울의 회심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신자이면서 겪게되는 회심입니다. 바울의 회심이 180도 회심이라면, 지금 베드로의 회심은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하나님께로 가는 방향은 맞긴 맞는데 어긋나 직진하고 있는 방향인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정방향으로 올 수 있게끔 하나님이 조율해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화라고 부릅니다. 베드로는 지금 성화의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가 그간 가지고 있어왔던 자기중심적 율법중심적 전통중심적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영성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먹으라는 명령을 거절했던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무어라 말씀하십니까? 15절입니다. "15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하지 말라 하더라" 이 말씀이 율법을 잘 지키던 베드로에게 어떤 방향조율이 되는 것인지 좀 더 살펴보죠. 


(1) 자유인 베드로 :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류에게 주신 유익 중 하나가 "의무와 책임"을 맡아주셨다는 겁니다. 선악과, 할례, 율법.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만 인류가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예수가 인간으로써 모든 아픔, 고통, 수치, 모멸을 인내하시며 이뤄내셨습니다. 완수해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더이상 이것들을 지키지 않고, 예수이름 안으로 들어가 혜택을 누리는 겁니다. 대의정치로 정치인들을 통해 혜택을 누리듯 말이죠. 이때까지 베드로는 아직도 율법에 매여 자유하지 못했던 것을 하나님은 알려주셨던 겁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주일성수, 십일조, 일천번제, 새벽기도에 매여 계신 분이 계시다면 예수님의 공로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이시간을 통해 예수의 공로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2) 복음의 자유 : 그런데 이런 예수의 공로의지는 유대인에게만 허용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큐티하신 분은 잘 아시지요. 지금 이 사건은 유대인이 짐승으로 취급했던 이방인을 두고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방인이 구원을 얻어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는, 복음과 말씀이 예루살렘을 벗어나 사마리아와 땅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베드로에게 말씀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적용되어서 우리가 지금 예수의 이름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여러분이 짐승처럼 생각하는 그 사람, 그 원수에게도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여러분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가르침이 무엇을 말해줍니까?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배워야 하는 사람임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읽고, 기도로 그 말씀을 내 것으로 삼으며, 이를 통해 삶에서 살아내심으로써 하나님께로 방향을 맞춰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배우셔야지 내가 하던 방식으로 똑같은 것을 계속 쌓는 것은 결국 내 공로이지 결코 성화가 아닙니다.

3) 하나님의 초대장
오늘 제목을 "초대받을 줄 아는 영성"이라고 드렸습니다. 제가 이번 여름성경학교 사역을 하면서나 앞으로 11월에 있을 추수감사절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계속 주시는 마음은 '하나님의 잔치로의 초대’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환상으로 고넬료에게 나타나 베드로를 초대하라고 하셨고, 또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주셔서 본문처럼 짐승을 먹으라고 하셨지요. 베드로가 고넬료를 구원시키러 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잔치에 베드로와 고넬료를 초대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두 세팅하시고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네, 우리의 초청잔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역사하고 계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구원해낼 도구로써 우리의 마음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지금 내 마음에 '에이, 작년처럼 맛있는 거 먹는 추수감사절로 보내지 뭐' '에이, 그 사람이 어디 교회에 나올 사람이야?' '저 사람은 절대 교회나올 사람이 안돼' '내가 뭐라고, 그냥 조용히 예배드리자, 누군가 하겠지’라는 마음과 생각은 없으십니까? 네. 그 초대를 거절하는 것도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그 초대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죠.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마22:8) 이 잔치에 나는 확신이 있고, 또 기대가 있다면 나는 누군가와 함께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 나의 영혼은 무언가로 너무나도 피폐해져있다는 반증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 혼인잔치 비유에서 "자기밭, 자기사업"때문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이 있다고 분명히 짚어내셨습니다. 네, 결국 "나 자신"입니다. 나에게 매몰된 나머지 하나님의 마음, 타인의 현재를 바라보지 못하고 오로지 나에게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이 비유에서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2) 하나님은 예수의 사랑으로 교회에 영혼의 잔치를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이 천국입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고 나에게 갇혀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하는 베드로가 되지 않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지인에게, 여러분의 영혼과 마음에, 행복한교회에 은혜와 사랑의 잔치를 준비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초대장에 응답하며, 하나님께로 회심하여 방향을 맞춰나갈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서두에서 절정대미법칙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은 아니시지만, 하나님께 이 법칙이 적용해보면, 그것이 바로 성경일 겁니다. 성경에서 절정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대미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정과 대미를 말해주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느껴집니다. 그 사랑으로 나를 맞춰나가는 이번 한주가 되길, 그 사랑으로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일상이웃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처럼 타인에게서 절정과 대미를 가져가 나 자신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잔치에 참여시킬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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