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AYAMEMORY

연구_E43

바울과 함께 걸었네 서평_3, 4장 데린쿠유 지하도시, 비시디아 안디옥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눅9:23-24) R.C. 스프로울은 "모순과 신비"를 대비시키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다. 모순은 말 그대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거짓말일 뿐이다. 하지만 신비는 세상에 존재하지만 인간의 논리나 과학적 실험으로는 증명이 불가한 것을 뜻한다. 신비의 존재 하나님, 그 분의 말은 때때로 역설적이기도 하다. 신비한 존재의 역설적인 가르침은 물리적 제한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어떻게 초자연적인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되뇌이게 만든다. 그리고 함신주 목사도 그랬던.. 2021. 8. 4.
"바울과 함께 걸었네"서평_2장 성도의 얼굴이 있는 장소를 걸었네 "곳간들을 헐어내고 더 큰 것을 지으려 합니까? 더 커진 곳간이 또 차면 그 때는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그것들을 헐고 다시 더 큰 것을 짓지 않겠습니까? 곳간을 갖고 싶다면 가난한 이들의 뱃속에 곳간을 지으십시오. 천국에 여러분을 위한 보물을 쌓아두십시오." 2장에서 함신주 목사가 인용한 교부 바실레이오스의 말이다. 이 책에서 알게 된 것은 바실레이오스의 경제관념이 근래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 "로컬"이라는 개념와 많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의 이동과 교제, 만남, 교류가 끊어지자 세계 각 도시들은 각자도생해야만 하는 위기아닌 위기상황에 처해지게 되었다. 왜 이것이 위기같지 않은 위기일까? 세계화로 인해 각 도시들은 더 저렴한 소비를 위해 인접도시가 아닌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수.. 2021. 8. 3.
"바울과 함께 걸었네" 서평_1장 성도의 얼굴이 있는 장소를 걸었네 한 때 신학이나 인문학에 있어서 박학다식한 강사의 강연을 보면 그 사람과 같이 어려운 단어들을 쓰면서 지적 우월감을 누리고픈 갈망이 있었다. 허나 신학을 연구했다기보다는 몸을 담은지 1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때 생각했던 박학다식의 영역이나 지평이 얼마나 일차원적이었는지, 그래서 지금은 좀 더 깊고 정중한 신학과 인문학의 깊이를 드러내기보다는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욕망을 가지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 몇권을 들어 읽고자 하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이 심정을 들쑤시기 시작하고 몸은 비틀어지기 시작한다. 그렇다. 석학과 대화하려면 그만한 수준이 있든지, 아니면 석학의 친절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적에서 저자의 친절함을 찾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때론 그 친절함이 다시 보면 가벼움-요즘 서점가.. 2021. 8. 2.
미디어 자녀세대를 어떻게 양육할 것인가 https://www.youtube.com/watch?v=RsdGaeg_PzY&t=3s 청년 시절에 성적인 유혹에 대해서 어떻게 대항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독교 서적을 찾아보며 동생과 대화한 일이 생각이 난다. 결론은 "답이 없다"였다. 기독교 서적들은 단순한 1차원적인 방어적 태도만을 이야기 할 뿐이었다. 스킨쉽 자제, 야한 영상들 끄기, 야한 이미지들 쓰레기통에 버리기 등이 기억난다. 문제는 그 전에 이미 무너져있는게 문제라는 것이고, 이것은 20대 기독교 남성청년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저자들은 아마 상위 1%였나보다. 그래서 동생과 나는 기독교 서적에 대해 분노(?)하며 알아서 이겨내야 함으로 정리하게 되었다. 10여년이 흐른 후 지금 나는 청년들에게 해줄 말이 많다. 남녀 이성간의 관계, 결혼에.. 2021. 6. 23.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 카슨 박사는 사무엘하 7장 14절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거듭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다. 구원을 시스템적, 조직적으로 사고하다보면 결국은 "행위"에서 맹점을 가지게 된다. 난점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다윗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행동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그의 구원, 구속, 거듭남의 교리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 이것을 자격증으로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 행동할 것이라고 말할 순 없는 것이다. 그의 안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에 그가 행동하게 됨인데, 우리의 시야는 그의 자격이 아니라 그의 행위부터 보고 그의 자격을 추정하게 될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고와 시야를 가질 순 없다. 2021. 6. 11.
병렬독서 210422 1. 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스킵 2. 국화와 칼_일본문화의 틀 1장 3. 영광의 무게 1장 영광의 무게 1장 우리는 너무 쉽게 만족한다. 우리의 궁극적인 욕구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갈망한다는 것은 그 욕구에 대한 실체를 인식하는 것을 말하지만, 그것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있는 욕구 내지 갈망을 획득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천국에 대한 갈망은 "영광"이고, 이 영광은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명예를 말한다. 이것은 낮은 자리에 있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리고 이 영광을 누리는 자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하나님은 마침내 그를 우주의 권위자로 세우신다. 성찬으로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만큼 영광스러운 일은 없다. 국.. 2021. 4. 22.
최후심판에서 행위의 역할논쟁_로버트 N.윌킨 칼뱅주의와 알미니안주의 조차도 영원한 정죄를 피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수적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복음주의 진영의 신자들이 모두 최종적 구원을 얻으려면 인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인내와 무관한 약속들이 등장하는데, 요한복음은 "피스튜오"(나는 믿다) 동사를 많이 사용하는만큼, 믿음의 즉각성에 대한 결과를 많이 말한다. 하지만 이 약속들이 인내와 상의관계에 관해서 말하지도 않는다. 단지 요한복음에서 예수가 인내를 영생의 조건으로 삼지 않으셨다는 것만을 말해줄 뿐이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하게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 하반절에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2021.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