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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룻기_하나님의 날개아래

룻 2:1-13

by 우루사야 2023. 2. 3.

1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2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1장에서 룻과 나오미의 영적시야를 계속 살펴보았습니다. 이방민족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알았던 룻, 유대민족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볼 줄 몰랐던 나오미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두 사람이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땅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룻기 저자는 1장 마지막절에 나오미라는 사람에 대해서 "추수 때"라는 시기에 돌아왔다는 것과 함께 "룻"이라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추수 때라는 것은 하나님은 고난을 주시다가도 언제든지 다시 복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단지 나오미와 같이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의 복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제 갈곳이 없는 나오미는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녀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눈을 뜰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추수와 함께 "룻"도 그녀에게 주셨습니다. 이제 나오미는 룻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이 2장부터 시작이 됩니다. 1-3절입니다. 

 

1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2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3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룻이 시어머니와 시어머니의 고향땅에 돌아오긴 했지만 어디에서 자리를 잡고 또 오늘 먹을 양식을 어떻게 구할지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것은 나오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에 룻은 확신이 없는 길을 출발합니다. 율법에서는 "9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10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레19장)라고 말해줍니다. 하지만 사사시대는 율법을 잘 지키지 않던 때라서 나오미도 룻에게 어떤 확신도 줄 수 없었을 겁니다. 유대인이면서 친족들이 있는 땅에서 길을 안내해주지 못하는 나오미와 다르게 이방인이면서 과부, 낯선 땅에서 룻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향해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다"라고 말하며 나아갑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과 무모한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얼핏보면 비슷하거나 같아보입니다. 여기서 영적시야의 유무가 갈라집니다. 근거 없이 나의 욕망과 욕심으로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과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은혜를 내려주고 계시기 때문에 가서 찾아 발견하여 따와야겠다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내려지고 있음을 믿기 때문에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손을 내밀고 붙잡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상, 가정, 사업, 직장, 학업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내가 나아가고 있느냐입니다. 멈추던, 서있던, 움직이던 무엇이든 좋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려지고 있음을 믿으시면서 계십시오. 그렇다면 그 때와 장소, 시기, 정황에 꼭 알맞는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누구에게 은혜를 입을지, 어디서 은혜를 입을지" 알지못하더라도 하나님이 주고 계심을 믿으시며,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결국 룻은 내려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1절에서 먼저 소개되었던 "유력한 자 보아스", 그러니까 "그 마을에서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혈통적으로나 힘을 가지고 있었던 보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4-7절입니다. 

4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5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6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7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보아스는 추수밭을 관리하는 자들과 대화를 이어나갑니다. 그러다가 한 여인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고대에 결혼적령기가 일렀던 것을 감안한다면 보아스 눈에는 사별한 여인보다는 소녀로 보였던 것이 더 어울리겠습니다. 그녀에 대해서 일꾼은 모압에서 온 이방여인임을 말하면서, 이삭을 주울 정도로 궁핍한 사정을 말했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사시대는 율법을 많이 잊었던, 아니 알면서도 지키지도 않았던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보아스 일꾼들은 이방여인일지라도 궁핍한 자들이 이삭줍기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고 인자입니다. 지금 일꾼들은 룻을 이방여인으로 보지 않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도 굶주린 자들과 성막에 다다랐을 때 제사장으로부터 성막에 있는 떡을 받아 먹었고, 그 근거를 가지고 예수님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이삭을 따서 먹을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율법을 뛰어넘고 완성하는 것이 이웃사랑인 것입니다. 이 일꾼들이 이방인이면서도 굶주린 과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과부 룻이라는 사실을 알고 얼마든지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가난한 자를 위한 율법을 허용하는데 있어서 유대인 이방인 가릴 것이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그냥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주인 보아스가 이런 문화자체를 만들어주지 못했다면 결코 일꾼들이 이런 허락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보아스는 한 발 더 나아가 룻에게 더한 호의를 베풉니다. 8-10절입니다. 

8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9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10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는 룻이 이방인으로서 혹시나 당할지 모르는 불친절에 대해서 미연에 방지하고자 보아스의 하녀들 안에서 일할 수 있게 합니다. 하루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추수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이삭줍기를 할 수 있도록 보아스의 하녀들과 얼굴을 틀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쉴 수 있는 환경도 제공받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룻은 이렇게 말합니다. "왜 내게 은혜를 베푸십니까?" 룻은 시어머니에게 "내가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는다면 이삭을 줍겠습니다"라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내려지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는 그녀를 이삭을 주울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주셨고, 더 나아가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나 안정적으로 이삭줍기를 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에 룻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보아스에게 "왜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돌보십니까?" 룻은 드디어 내려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시작하고, 거기서 은혜가 어떻게 내려지는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은혜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룻이 알아가기 시작하는 순간이지요. 이에 보아스는 11-12절과 같이 대답해줍니다. 

11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12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서 룻과 나오미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먼저는 11절과 같이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보아스는 룻이 시어머니를 어떻게 봉양했는지, 고향을 떠나 이스라엘까지 오게 된 결심 등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세상과 같지 않게 살기 위한 몸부림과 결단, 신앙을 향한 열정을 하나님은 모두 알고계십니다. 두 번째로 보아스는 하나님이 그런 룻의 결단과 의지에 대해서 상주시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독특한 표현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 여러분. 룻기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표현이 이 날개아래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37b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마23)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탕자이든 효자이든, 잘난 모습이든 못난 모습이든 상관없습니다. 날개로 덮어주십니다. 예수의 피로 옷입혀주십니다. 성령의 임재로 감싸안아주십니다. 우리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주시고 씻어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 룻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나오미로부터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서야 보아스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어떤 것인지 그의 말을 통해서 그리고 그의 실천 호의를 통해서 룻은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 룻의 대답입니다. 

13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고난과 절망 속에서도 마음의 위로, 기쁨, 소망, 용기를 얻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부터 변화를 얻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룻기는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과 속성에 대해서 우리에게 소개해주며, 이 은혜가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지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서 쓰여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살펴보겠지만, 보아스와 룻을 통해서 태어난 혈통을 통해 예수가 태어납니다. 하나님의 날개아래 은혜, 덮어주시는 은혜로 예수가 오셨고, 그 덮는 은혜로 예수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에게 덮는 은혜가 있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소망과 용기를 항상 주고 있는 덮는 은혜가 오늘도 지금 이순간도 저와 여러분에게 있음을 믿으시며 오늘 하루도 힘차게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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