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AYAMEMORY
구속사 설교_F/마주보기_삼상~왕상

마주보기 13. 자격을 받은 자

by 우루사야 2022. 12. 17.

본문 : 요한복음 1장 9-13절
제목 : 자격을 받은 자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 서론
1) 예화
탈무드에 등장하는 한 이야기로 시작해보겠습니다. 어느 마을에 삼 형제가 살았는데 각각 진귀한 물건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먼 이웃 나라까지도 볼 수 있는 요술 망원경, 둘째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양탄자, 셋째는 먹기만 하면 어떤 병이라도 낫게 하는 신기한 사과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첫째가 망원경을 통해 이웃나라 왕의 담화문을 보았는데, 불치병에 걸린 공주를 낫게 해주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삼 형제는 둘째의 양탄자를 타고 왕궁으로 향했고 셋째가 공주에게 하나뿐인 사과를 먹이자 공주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왕은 삼형제 중 공주와 결혼시킬 한 명을 셋째로 정하면서 말했습니다. “첫째의 망원경과 둘째의 양탄자는 그대로 남아있으나 셋째의 사과는 공주가 먹어버렸기 때문에 없지 않은가? 셋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었기에 셋째를 사위로 삼겠네.”

2) 주제
누구나 힘을 가지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로 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인지 누구든지 자신이 그 힘과 자리를 가질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 오르면 성취와 자유를 가지게 된듯 하기에 그럴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대학, 어떤 이에게는 연봉, 어떤 이에게는 명예와 인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로 우리는 주어진 자유를 누리며, 나라는 사람이 무언가를 성취했고,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세상의 원리는 힘은 획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많이 경험하기로 그렇게 힘을 얻은 자는 힘을 나눠주지 않는 다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로 이야기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탈무드의 이야기와 같이 "아낌없이 주는 자"에게 힘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성탄절의 주인공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낌없이 내어줄 주 아는 자라면, 힘을 부릴 수 있는 그 자리에서도 그 힘을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에 충성된 자에게 큰 것도 충성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아낌없이 내어주면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영적원리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3)본문잇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의 막내제자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 쓴 요한복음의 첫장 중 일부입니다. 거기서 요한은 예수님이 세상이 거절함에도 불구하고, 힘을 나눠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신 분이고, 하나님은 그 예수님을 높여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순리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님의 이땅에 오심에 대해서,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삶의 태도로 살아갈 것인지 고민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본론
1) 소유하는 자리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을 주지 않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함으로써 얻은 우위라는 자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위해 물을 주기 위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이 단순한 생각을 우리는 그대로 살아내지 못하는듯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나누기 위한 자리에 오르지 않습니다. 소유함으로써 다른 이의 우위에 서는 자리에 오르려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특권층들에게서 자주 목격합니다. 고위공직자들이나 경제계의 거대한 부를 가지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우위적 위치를 통해서 일으키는 사건사고들을 뉴스에서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기보다, 소유함으로써 우위를 점하려 하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특권층이 아닐지라도 과연 우리는 누군가에게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리를 소유하려고 또 그 자리를 지키려하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나라의 왕좌에 누가 오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순리대로라면 이 자리는 "섬기는 자"에게 주어져야 하겠습니다. 소유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 자입니다. 섬기기 위해 내려놓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고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자에게 하나님은 "다스리는 자리"를 허락해주십니다. 12절입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서 권세는 자격 또는 특권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구절입니다. 13절입니다.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은 우리의 본능을 잘 알았던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자리를 얻어내던 방법으로는 천국에서 자신의 자리를 얻어낼 수 없다고 말하기 위해서 3가지의 예시를 들어줍니다.

첫번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는 자가 천국을 혈통으로 얻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유대인을 중심으로 교회를 만드셨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유대인이면 구원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교회에 다니기깨문에 나에게 구원이 있다고 믿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두번째는 육정, 나의 속성으로 자리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나의 지식, 선한마음, 능력, 기질 등으로는 결코 천국에서 다스리는 자가 될 수 없거니와 천국에도 입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천사의 말을 할 수 있는 놀라운 은사가 있다 하더라도 결코 그것은 여러분에게 천국의 자리를 허용해주지 않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로 요한은 사람의 뜻, 그러니까 치밀한 계획으로도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해줍니다. 교회교육부서나 신앙교육의 유혹이 여기에 있습니다. 마치 성경을 잘 가르치거나, 단계별 연령별로 가르치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기독교교육에 대해 생각하곤 합니다. 여러분, 신앙은 영혼의 말입니다. 말은 학원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부모와 함께 주고받으며 사용하며 쓰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결코 사람의 커리큘럼과 계획으로 얻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사람의 환경, 노력, 의지로는 결코 다스리는 자리에 오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우리의 힘을모 오르고 싶어합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영으로 우리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다스리는 자의 자리를 얻게 하고자 하시지만, 우리의 잘못된 방법과 의도는 그 예수를 거절하고 거부합니다. 9-11절입니다.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우리는 예수라는 꽃을 사랑한다 말하지만 시간도 물도 관심도 주지 않은채, 예수라는 꽃을 소유하며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려고 합니다.


2) 발견하는 자리
우리는 이 지구에서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확신하고 또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살펴보면 우리는 너무나도 극히 일부만 알고 있고, 그 일부를 전부라고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구의 70%가 바다로 되어 있기에 나머지 30% 육지에서만 살고 있습니다. 그 육지도 대부분 산지, 사막, 극한 기온의 땅들이 많습니다. 이 지구에는 적외선과 자외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제외하고 우리는 가시광선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지구는 돌면서 엄청난 소리를 낸다고 하지요. 그 소리를 듣게 된다면 우리의 귀는 터지고 만답니다. 우리는 일부만 보고, 듣고, 느낄 뿐입니다.
그런 우리가 "지구를 다스리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멀리 보는 독수리를 다스리며, 우리보다 더 잘 듣는 강아지를 애완동물로 키우며, 우리보다 더 잘 느끼는 쥐를 박멸하며, 우리보다 더 높은주파를 사용하는 돌고래를 수족관에 키우며 살아갑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는 존재로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한은 우리의 환경, 힘, 의지로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것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미 받았으니 믿으라고 말합니다. 이미 주어졌대요. 본문 9-11절입니다. "9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첫번째, 우리에게 빛이 왔답니다. 우리가 이미 자리를 가진 자라고 알려주는 빛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온 빛이라고 합니다. 즉 세상에 본래 있지 않았던 것,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지구상의 것으로는 답을 얻을 수 없고, 이 세상 밖에서 우리를 향하는 초월적 존재로부터 알려주는 빛이 있었는데 그 빛이 예수라는 겁니다. 예수를 보면 나에게 자리가 이미 있음을 알게 됩니다.
두번째, 그 빛이 세상에 왔을 때 세상은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빛을 인정하고 비춰지는 자신의 자리를 알아보게 된 자는 자신의 자리를 예수가 만들고 계시는 주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세상은 예수를 무시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나 예수라는 빛을 인정하는 자는 자신의 출발점과 종점을 알게 됩니다.
세번째, 그리고 그 분이 지구에 오실 때 이 지구가 그 분의 땅이요 이 지구에 살아가는 자들이 그 분의 백성임을 말하게 될 것입니다. 진짜 다스리는 자가 있고, 그 다스리는 자에게 권세, 힘, 자리를 받아 우리가 다스리는 자가 된다는 이 원리를 믿게 되므로, 다양한 것들을 처리하고 소화해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피지컬적인 능력으로 보나, 멘탈적인 능력으로보나 이 지구에 더 뛰어난 존재들이 많다는 것을 압니다. 외계인을 굳이 찾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약한 존재이고 우리를 능가하는 외계인같은 동식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빛을 우리에게 주시니, 우리는 처음과 끝을 아는 존재, 그리고 무엇이든 예수의 이름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자리에 앉은 자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찾아와주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주인 중에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상속자가 됩니다. 유업을 이을 자가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다스리는 자가 됩니다.



3) 다스리는 자가 될 준비

시험은 자격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수학능력검정시험이 그러합니다. 그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보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부해왔던 시간과 과정이 중요합니다. 무엇을 알고 또 모르는지, 그래서 모르는 것들을 채워나가며 점점 자격을 갖춰 나가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시험을 보기 전이라도 우리는 점점 자격을 갖춰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시험을 당할 것입니다. 그 시험은 한번에 패스할 수 있는, 벼락치기가 절대 불가한 시험입니다. "인생"이라는 시험공부를 하나님은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어떻게 살았는가가 시험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지막날 시험은 평가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이 매일이 시험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에서 내가 무엇을 모르고 또 아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모르는 것을 알아가야 합니다. 그 과정의 반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점점 알아가고 획득하고 그에 걸맞는 다스리는 자가 되어갑니다.

이번 주에 몇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로 금모레 공원이 완공을 앞두어서 우리교회에서 머무시던 10여분의 어르신들이 경로당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재입주를 축하해드리려 쌍화차와 생강차를 들고 갔더니 너무나도 반겨주시며 너무 고마웠었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저는 동네를 다니며 많은 어르신들을 인사할 수 있게된 인싸가 되었습니다. 그 소식이 주민센터에 전해졌습니다. 자양2동장님이 교회에 오셔서 감사를 표해주셨고, 때마침 기부행사가 있어 초대를 받고 담임목사님과 함께 그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광진구청장님을 만나 서로 인사하는 자리까지 가지게되었습니다.
제가 몇번 소개해드린 교회 주변 이웃들과의 일화들도 있습니다. 주차장 앞집주인분께서는 감을 따서 저희에게 주셨고, 지난 주에 드셨던 감이 그 감이었습니다. 그리고 옆건물 1,2층 빵집과 학원이 좋은 관계로 주차장을 이용하게 되었고, 특히 1층 빵집에서는 저희 성탄절 케익을 맡아주시기로 하였습니다. 섬겼더니 넓어지는 영역이 느껴지십니까? 이 영역들이 넓어져 복음이 흐르고, 생명이 흐르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달아지는 분들이 많아질 줄 믿습니다. 마지막날에 받을 시험을 위해 오늘도  섬기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물론 저도 때때로 존중받지 못했거나 무시당할 때 순간적으로 우위를 점하려는 부끄러운 마음과 생각, 행태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마음의 흔들림을 잘 생각해보면, 내가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으로부터 시작하더군요. 처음부터 낮아지고자 한다면 내가 높임을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기분 상할 일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39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40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43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

복이 있는 사람은 이런 삶을 사는 자임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산상수훈이라는 설교에서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리를 이미 받았기에,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거절했다면, 그 마음에 남아있는 것이 없기에 결코 이렇게 섬기고 나누며 낮아지는 삶은 살 수가 없지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잘를 차지하기 위한 삶의 전쟁터에 가게 될 뿐입니다.


3. 결론
정부 예산안이 이슈가 될 때마다 이런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대기업을 돕기 위한 돈은 투자이지만,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한 것은 비용이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교회의 예산도 이런 기준으로 적용할 수 있을까요? 지난 주에 제직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한해를 결산했습니다. 그리고 내년사역들을 함께 고민했습니다. 우리제직들의 계산은 감사하게도 가난한 자를 돕기 위한 것을 투자라고 생각하는듯 합니다. 하나님이 그때마다 부어주시는 것으로 모자르지 않는 한해였다고 결선하면서, 더 많은 사업들을 하는데 있어서 반대하시는 분들이 없으시더군요. 네, 그렇습니다. 섬길 때 하나님이 높여주십니다. 아니 좀 더 직접적으로 원래 우리교회에게 맡겨주세기로 하신 자리들을 되찾게 해주실 것입니가. 그렇게 높아집니다. 여러분의 가정, 직장, 일상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자리들이 있습니다. 섬기세요. 보일 겁니다. 세상관점으로 보기보다 예수따라 섬김의 관점으로 보세요. 자리가 보일 겁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한주를 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