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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설교_F/마주보기_삼상~왕상

마주보기11. 주의 마음에 든지라

by 우루사야 2022. 12. 4.

본문 : 대상 1장 10-12절
제목 : 주의 마음에 든지라

1. 서론의
1) 예화
요즘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거기서 회장이자 아버지는 자녀4명에게 각자 사업체를 맡기지만, 자녀들은 그 뒤에 누가 과연 이 그룹의 대주주 상속자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 항상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드라마에서 항상 등장하는 것이 "의중"입니다. 아버지이자 회장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그대로 실행함으로써 이 그룹을 맡을 만한 자가 되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이 말과 비슷한 말로 심중, 염두라는 말도 있겠죠. 말 그대로 의중은 마음 속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이번 주 의중의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우리나라축구대표팀의 이야기입니다. 조별리그 마지막경기, 대한민국 대 포르투갈 전에서, 벤투 감독의 빈자리를 대신할 세르지우 코스타 수석코치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세르지우 코치는 2007년부터 벤투 감독의 오른팔로서, 여러팀에 함께 했으며 마침내 한국대표팀에 이르기까지 무려 15년을 함께 했습니다. 코스타 코치는 오랜 시간 벤투 감독의 그림자로 지내온만큼, 몸은 떨어져 있어도 벤투 감독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며 경기를 이끌었고 마침내 승리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2) 주제
그렇습니다. 오늘은 의중이라는 단어로 성경을 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한 사람들의 이야기이자 역사일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하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간 "왕이 되라는 하나님의 의중"을 잘 알고 그대로 살아온 다윗을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그 의중은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의중은 우리가 왕, 그러니까 "다스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에서부터 성경 끝까지 계속해서 다스리는 자의 모습에 대해서 설명하지요.
하나님이 왕으로 이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을텐데 하나님은 보이는 세계에 인간을 왕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왕의 수업을 받을 인생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셨고, 그 인생을 다 산 후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세계로 와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아 진짜 왕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이야기이며, 성경의 인물들이 평가받는 기준입니다. 이 믿음이 있는 자는 신실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살 것이며, 이 믿음이 없는 자는 땅을 바라보며 썩어져 갈 것을 향해서만 살아가느라 허무한 인생을 살 것입니다.

3) 본문잇기
우리는 3주간 솔로몬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의중에 대해서 이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주의 마음에 든지라"(왕상3장)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대신해 다스릴 자로서 준비하고자 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옳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주제요, 예수의 인생이며, 우리가 살아내야 할 목표입니다.
여러분, 성탄절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착한일 하면 산타가 선물을 준다는 겁니까? 이 땅을 다스리러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그 예수와 같이 다스리는 자로 우리가 태어나야 겠습니다. 23년에 우리의 가정, 직장, 일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대신할 자로서 서있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2. 본론
오늘 본문을 보기 전에 영상 하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상) 여러분이 잘 아시는 솔로몬의 재판입니다. 이 명칭은 고유명사가 될만큼 전세계적으로도 지혜에 대해서 말하게 될 때 항상 등장하는 이야기죠. 성경은 더 자세하게 솔로몬의 지혜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우선 전세계적으로 솔로몬의 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 찾아오기도 했다고 말하고, 유대인들의 지혜문서에 해당하는 잠언과 아가서의 주요저자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지혜로우니 나라는 자연스럽게 부국강병해지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큰 땅을 차지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솔로몬은 이렇게 지혜로와질 수 있었을까요?
요즘 교육계에서는 하브루타 교육법이 유행을 합니다. 이것이 유대인 교육법으로 잘 알려져있는데, 이게 없는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는 밥상머리 교육이나 가정교육이라고도 불리우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교훈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솔로몬이 이런 것으로 지혜가 생긴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성경을 좀 더 보면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지혜를 얻은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에게 지혜를 주고 싶은데, 그래서 좀 더 똑똑하게 세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아이와 함께 하브루타 교육법을 배우러 가면 될까요 아니면 밥상머리에 앉아서 잔소리를 해대야 할까요, 아니면 일천번제 새벽제단을 쌓으면 될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이런 일화를 소개해줍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볼까요? "10그러므로 이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나에게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이처럼 많은 주의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1) 사명에 합당한 능력을 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솔로몬이 무언가 노력을 해서 지혜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닙니다. 그는 노력보다는 하나님의 의중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10절에서 그는 "이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것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지 않으시면 "다스릴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정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의중을 파악하고 있었고, 거기에 순종하였고, 따르기 위한 것들을 구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11-12절과 같이 말씀해주십니다. "11그러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대답하셨다. "너는 올바른 선택을 하였다. 네가 부나 재물이나 명예나 또 네 원수를 저주해 달라거나 장수할 것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내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지혜와 지식을 구했으니"

특히 11절상반절에서 주어는 "네(너)"입니다. 하나님은 "너를 위한 것"을 구하지 않고, 하반절에 "내백성"을 위한 것을 구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적원리를 알려주실 때 유명한 구절을 주셨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솔로몬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구할 것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본능은 자꾸 우리가 무엇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런 기회를 주셨다고 생각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생각하기 편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다고, 더 나아가 소천마리를 천번의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어합니다. 나의 노력을 소원성취로 바꿀 수 있는 약속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성경은 명확합니다. "내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지혜와 지식을 구했으니"
하나님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의중을 알고 있음을 옳게 여기셨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다스리고, 그 뜻대로 살아내며, 그 뜻을 전달하는 대리통치자로 살아낸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지혜의 고유대명사가 된 것이지요. 하나님의 사명에는 그에 합당한 능력을 주시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의 위치, 영역, 환경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대리통치자로, 또 그에 합당한 능력을 준비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창세기 1장에서부터 시작해 성경 내내 "다스리는 존재"로 우리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요즘 큐티가 베드로전서로 시작했지요? 그곳에서도 베드로는 명확하게 말합니다.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요!" 그 성경의 이야기는 마침내 성탄절을 앞둔 우리에게까지 와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 땅을 다스리러 오신 예수님"입니다. 그 다스림이라는 단어를 주목할 때 우리에게 실효적인 성탄절이 되는 것이지, 다른 것으로는 도저히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냥 예수일 뿐이에요.

2) 책임(사명)을 위한 선택(희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을 다스리러 왔듯이, 성경의 많은 위인들을 하나님이 다스리는 존재로 선택하셨듯이, 우리도 각자 우리의 영역을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스림을 위해서 우리는 포기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다스려야 하는 자들은 "책임을 위한 선택"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왕이라는 다스리는 자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 가져야 할 책임을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원할 것들을 구한 것이지요. "책임"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백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명을 바라본 것이지요. 그 사명을 위한 능력을 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11절입니다. "너는 올바른 선택을 하였다. 네가 부나 재물이나 명예나 또 네 원수를 저주해 달라거나 장수할 것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내 백성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지혜와 지식을 구했으니"
제가 부교역자로 있었던 곳 중 하나가 평신도소그룹 사역을 하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사역을 하는 교회끼리 모임을 자주 했는데, 유행하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그룹장을 하면 집이 생기더라! 입니다. 부동산 획득을 말씀드리는게 아닙니다. 소그룹이 모이려면 모임장소가 있어야하는데, 기도찬양하기 위한 공공장소는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모이는데 누구집에서 모이겠습니까? 소그룹장이죠. 그렇게 그 모임을 사모하는 소그룹장들은 그 사역을 중심으로 살다보니, 자연스레 집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연봉으로, 그 상황으로, 그 경제력으로는 도저히 안되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다스리는 사명에 집중하고, 그 다스림에 대해 진중하게 여기며, 그 다스림을 사모하는 자에게 합당한 능력을 주십니다. 왜 그 소그룹장들도 집을 오픈하는게 힘들지 않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 한명한명을 가정으로 초대해 함께 울고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기도하며 말씀을 나누며 영혼을 구원해내는 사역으로 나아가니 하나님이 돌보시는 것이지요.

계속해서 제가 다윗과 예수님을 비교해서 말씀드렸다시피, 솔로몬도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이기에 예수님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말했던 예수님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지요. 빌립보서 2장 6-8절입니다. "6그분은 원래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고 계셨지만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7오히려 자기의 모든 특권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어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이 땅을 다스리러 오시지만, 그냥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물주라는 위치를 내려놓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권력으로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섬김으로 다스리는 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원리 "섬김과 희생"으로 살아야 우리가 이 땅에서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왕이 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러 섬기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성탄절의 의미에요. 그런 예수를 하나님은 가장 높은 왕 중의 왕으로 세우셨죠.
솔로몬도, 예수님도, 다스림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그 다스림에 가장 합당한 능력들을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으로, 예수님은 온 우주의 왕으로 세우셔서 더 잘 다스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3) 다스렸는가 끌려왔는가
한해가 지나가고 성탄절을 맞이하며 한해를 마무리 하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길 소망합니다. 여러분의 가정, 직장, 일상, 사회를 보시며 여러분의 다스림에 대해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다스리셨습니까 아니면 끌려오셨습니까? 항상 어디든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섬김의 다스림이 있는지를 여쭤보는 것입니다. 예수는 이 땅에서 왕이 된 것도 아니고, 셀럽이 된 것도 아니고, 위대한 종교적 스승이 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섬겼습니다. 섬겼더니 높아졌습니다. 섬겼더니 다스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리더가 되지 않고, 섬기는 자가 되면 그 섬김 속에서 다스림이 나오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이죠.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섬기려는 솔로몬에게 다음과 같은 능력들을 주셨습니다.
"12네 요구대로 내가 너에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또 네 이전의 어떤 왕도 가져 보지 못한 부와 재물과 명예도 아울러 주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온 세상에 너와 같은 왕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빌립보서 2장입니다. "9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을 최고로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10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이 모두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11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너무나도 동일하지요? 왜 동일합니까?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이기 때문에 동일한 원리와 일관성있는 순리로 작동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다스리는 존재로 보내신 왕입니다. 여러분의 가정, 직장, 일상, 사회에서 "섬김의 왕"으로 보내어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섬김 속에서 다스리는 책임감과 순종, 헌신,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공통적으로 계속해서 이 원리를 알려주며, 우리에게 이 인생을 살라고 말해주며 증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제가 한 목사님의 일화를 기억합니다. 그 목사님께 배운 것 중 하나는 새벽기도회 때 성도 한 사람이 갈 때까지 함께 있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개인의 기도시간 일정 등이 있겠지만, 어쨌든 그 분의 기준은 기도하러 나온 성도였습니다. 담임목회자의 자리에 대해서 제게 지금까지도 기준이 되어주는 일화입니다. 담임목회자, 직장의 상사, 가정의 부모, 지역사회에서의 위치 등 우리에게는 많은 자리들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여러가지 색깔로 여러가지 위치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예수와 같이 "섬김의 종"이 되라고 말이죠. 그리할 때 높여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고 말이죠.
요즘 우리의 사고와 생각에는 "나의 만족"으로 가득차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느끼지 못하고, 내가 깨닫지 못하면 다른 것들은 틀린 것, 무의미한 것, 무가치한 것이 되어버리는 듯합니다. 만약 내가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면 어떨까요? 내가 다스려야 할 곳인데, 내가 방치해둔 곳이라면 어떨까요? 나에게 마땅히 주어진 곳인데 돈이 안되고 누가 알아봐주지 않으니 무시한 곳이 하나님이 나에게 다스리라고 한 곳이라면 어떨까요? 여러분의 가정에, 여러분의 교회에, 여러분의 일상과 이웃에 여러분의 손길을 기다리는 다스림의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시는 "섬김의 다스림"이 필요한 곳이 있습니다. 곳곳에 섬김의 다스림으로 나아가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들을 받을 수 있는, 그래서 왕이 될 여러분이 훈련을 잘 받으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품을 곳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끌려가는 자가 될 것이요. 하나님이 마음을 주시는 품을 곳을 바라본다면 왕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곳을 돈으로 다스리고자 한다면 돈은 나오겠지만, 영혼은 나오지 않습니다. 바라보는 곳에서 사람의 인정만을 보고 계시다면 인정은 받겠으나 영혼은 없습니다. 예수는 돈도 아니요, 명예도 아니요, 권세도 아닌 '영혼'을 바라보며 섬기러 이 땅에 태어나 왕이 되셨고, 마침내 온 우주의 왕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길을 따라오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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