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AYAMEMORY
강해설교_F/유다서

유 1:1-4

by 우루사야 2022. 12. 27.

1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2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4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오늘도 성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부터 유다서를 한주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4형제 중 한명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자로 알려져있습니다. 즉 초대교회의 지도자였지요. 교회들을 순회하면서 돌보는 자였습니다. 그 중 한 교회가 시급한 문제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좀 더 길고 방대한 글을 쓰려했지만, 시급한 문제해결을 위해 유다서를 보내고자 했습니다. 베드로후서에서 이단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듯이, 유다서도 이단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후서에서는 예수님 때에도 계속 싸우셨던 율법주의자 성격이 강했다면, 유다서가 말하는 거짓교사 이단은 더 하나님의 뜻과 정통 교리에서 떠난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고 직접적으로 권면합니다. 그럼 본문을 살펴보지요. 1-2절입니다. 

1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2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예수님의 4형제,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있습니다. 여기서 유다는 초대교회의 중심축이었던 자신의 형 야고보를 언급합니다. 함께 형제이면서도 함께 예수님의 제자, 예수님의 종이라고까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동급인 형제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놀라운 복음사역 안에서 예수의 마땅한 종이 됨을 밝히며,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대해서 결연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 태도는 저절로 생긴 것일까요? 예수와 형제였으니까? 예수와 생활한 기간이 누구보다도 기니까? 아닙니다. 복음서에서 예수의 가족들은 예수의 사역을 말리려고까지 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예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형제가족들이, 갑작스레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역을 시작하는 형 예수를 바라보며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요?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가족 모두가 신성모독으로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형 예수를 미워하고, 질타하며, 원망했을 동생들 일수도 있지요.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14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1)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이후의 기록입니다. 예수의 가족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12제자와 초대교회 공동체원들과 함께 기도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 유다서 본문을 보니 그들이 예수를 향한 신앙은 결연하기까지 합니다.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해줍니다. 그 부르심에 무엇이 있었는가? 1절에 보니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그러니까 보호를 받은 자"들에게 편지를 쓰고자 합니다. 자신도 하나님의 사랑을 얻고, 예수의 보호를 받아봄으로써, 진정한 신적인 부르심을 얻었기에 이렇게 인삿말을 쓰는 것이지요. 
여기서 유다서의 주제로 연결되어집니다. 유다가 말하는 예수의 주되심, 복음은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환상, 기적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들이 줄 수 있는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보호로서 신자로 부르심을 얻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긍휼, 평강, 사랑을 얻는 인생으로의 변화로 부르심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넉넉히 다른 이를 돕고자 하는 마음 긍휼, 형제와 이웃과 누리는 평강,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있습니까? 아니면 내 생활을 채우기 위해 급급함, 주변 이웃과의 마찰로 가득한 불편하다 못해 신경질적인 일상, 형제자매를 생각만하면 치가 떨려 기도조차 할 수 없는 인생이십니까? 여러분, 복음은 그리고 하나님은 결코 제한이 없습니다. 한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이른번씩 일곱번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하는 이유는 그럼으로써 나 자신이 긍휼, 평강, 사랑을 주고 계시는 하나님을 누리고 경험하며 진정한 구원을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3절로 이어서 살펴봅니다. 

3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다는 본래 지금 편지를 받을 교회에게 다른 류의 편지를 쓰려고 했습니다. 일반으로 받은 구원, 그러니까 구원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을 씀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에 대해서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한 교리를 쓰려고 했지요. 그런데 더 급한 사항이 생겼습니다.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믿음은 수정되고 추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왜 했을까요? 이렇게 말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절에 보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이 믿음을 수정하라고, 믿음을 좀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유다는 "단번에 받은 것"이라고, 즉 하나님이 한 번 주시고 끝인 완벽한 믿음을 지켜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과 믿음은 여러분이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 마음에 믿음의 씨앗, 거듭남의 씨앗을 심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믿을 수 있는 여러가지 환경과 기회들을 주셨고, 그것에 여러분이 반응하고 깨닫고 화답함으로써 믿음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키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믿음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온 자들, 그들은 이 믿음을 왜곡시키고 말았습니다. 4절입니다. 

4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그들에 대한 특징으로 유다는 몇가지를 말합니다. 첫번째, 경건하지 않습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세번째,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베드로후서에서 말하는 율법주의적 이단과는 너무나도 더 간극이 멀어진 이상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교회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세번째부터 역으로 보면, 예수를 주로 부인하지 않고 자신의 욕정을 주인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그 욕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용서를 방탕한 자유라고 왜곡합니다. 죄를 지어도 얼마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경건한 삶이 없음은 자명한 일이겠지요. 그들을 향해 유다는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결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공동체와 함께 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가 아니라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강해설교_F > 유다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 1:22-25  (0) 2022.12.30
유 1:17-21  (0) 2022.12.29
유 1:5-16  (1) 2022.12.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