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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YAMEMORY
강해설교_F/사사기_다시 주시는 은혜

사사기 19:22-30

by 우루사야 2022. 11. 17.

22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
23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24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25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
26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
27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28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29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30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오늘도 다시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제 우리는 이스라엘의 총체적인 타락상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나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각 지파와 도시의 일상을 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드디어 사건이 일어나고야 맙니다. 지난 본문에서 미가는 레위인을 향해 왜곡된 사랑으로 집에 두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레위인도 자신의 첩을 왜곡된 사랑으로 집에 두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내 생각, 기준, 관점에서의 사랑은 온전하지 않습니다. 왜곡됩니다. 내 욕심과 탐욕이 그 안에 물들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필요하고, 모델링 되시는 예수님의 삶을 알아야 하며, 내 양심에서 일하시는 성령님의 안내를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럼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22-24절입니다.
22그들이 마음을 즐겁게 할 때에 그 성읍의 불량배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들기며 집 주인 노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하니23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이같은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어왔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24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너희 눈에 좋은 대로 행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하나
노인의 극진한 대접으로 레위인이 마음의 평안을 한창 얻을 때였습니다. 기브아 성읍의 불량한 자들이 노인의 집에 들이닥쳐 그 나그네를 내오라고 합니다. 특히 동성애를 뜻하는 "관계"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극명한 타락상을 보이죠. 계속되는 위협 속에서 노인은 노인의 딸과 레위인의 첩을 내어주고자 합니다. 여기서 우리의 해석이 단순해서는 안됩니다. 지금 노인은 남성우월주의로서 여성을 하대함으로 여성을 내놓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지 말자는 해석입니다. 즉 이 남성들이 여성을 취함으로써 관계를 하게 되면, 혼인이라는 "해결책"이 있으니, 동성관계라는 극악무도한 죄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노인은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노인의 이러한 고뇌에 비해서 레위인의 선택은 뜻밖입니다. 25-28a입니다.
25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밖으로 끌어내매 그들이 그 여자와 관계하였고 밤새도록 그 여자를 능욕하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26동틀 때에 여인이 자기의 주인이 있는 그 사람의 집 문에 이르러 엎드러져 밝기까지 거기 엎드러져 있더라27그의 주인이 일찍이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져 있고 그의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28a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레위인이 먼저 나서서 자신의 첩을 억지로 밖으로 내보냅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불량배들은 그 여인을 능욕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27절에 보니 레위인은 첩을 내놓고서 잘 잤나 봅니다. 게다가 얼른 일어나자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레위인의 극악무도한 심성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는 첩을 한 인격체로 보지 않은 상태에서 첩을 두었습니다. 그녀가 행음을 하며 다닐 때 레위인이 남편으로써 어떻게 그녀를 대했을지에 대해서 쉽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레위인은 첩을 사랑해서 집에 들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명예와 위신이 깍일 것에 대한 염려로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서 첩을 장인의 집에서 데려 오고자 했고, 얼른 첩의 행음을 수습하기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목적에만 주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자신에게 위협이 될 사건이 오니 쉽게 첩을 내어주고, 첩이 능욕을 당하고 있음에도 편히 잠을 자며, 능욕을 당해 엎드러져 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갈길을 가자고 말하는 것이지요.
사사기서는 이것이 심판의 징조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향해서 하나님의 선택된 지파라고 말할 수 있는 레위인이 이정도로 영적으로 무감각해졌다면, 과연 이 사회에는 의인이 있는가?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쉽게 심판받아 멸망할지 않겠는가? 라고 경고하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위신, 명예, 재물, 안위, 욕망을 위해서 타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다른 이를 어떻게 사랑하고 있나요? 그들의 영혼과 마음은 보입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28b-30절입니다.
28b이에 그의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29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가지고 자기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찍어 열두 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30그것을 보는 자가 다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레위인은 그 첩의 시신을 12마디로 나누어 각 지파에게 보냅니다. 그것을 받은 지파들은 처참한 시신을 보면서 이게 무슨일인지 적극적으로 알고자 했겠지요. 그리고 각 지파가 모여서 스스로를 돌아보고자 "회의를 소집"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소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 소망을 갖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사사기서는 계속해서 타락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레위인의 모순된 사랑, 모순적인 처신일 뿐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설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그는 자신의 첩을 통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약 레위인의 뜻이 선했다면 선한 결과로 나타나야 하지만, 그의 이러한 모순적인 의도는 결국 11지파와 베냐민지파간의 내전이 일어나게 하여 결국 베냐민지파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게끔 했습니다. 야곱은 베냐민 아들에게 "물어뜯는 이리"와 같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창49:27) 그들의 이런 극악무도함은 결국 스스로를 물어뜯어 멸망할뻔하게끔 한 것입니다.
레위인의 모순된 행동들, 베냐민의 극악무도함을 오늘 본문 속에서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런 타락으로부터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서 더 큰 은혜를 덮고 계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냐민 지파는 이후 다른 지파들의 호의로 가까스로 살아남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 12지파가 이어지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직면시키시지만, 우리를 결코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리지 않으십니다. 다시 살게 하시고, 다시 회복의 관계로 들어오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죄가 드러날 때 직면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회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 앞에서 무뎌진 나의 영혼을 깨워, 하나님과 승리하는 성숙한 영혼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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