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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YAMEMORY
강해설교_F/사사기_다시 주시는 은혜

사사기 19:10-21

by 우루사야 2022. 11. 17.

10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11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
12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
13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
14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15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
16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
17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
18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19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
20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
21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오늘도 다시 은혜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어제에 이어서 사사기서 결론사건을 계속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사기서는 마지막 두 사건에서 성전, 레위인, 에브라임과 베냐민지파 지방, 가정에서 생긴 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설명하고자 합니다. 모두 이스라엘의 근간과 중심을 의미하는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대해서 미리 말씀드리자면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로 심판을 받은 소돔과 고모라 사건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즉 사사기서는 "이스라엘의 중심부가 이렇게 타락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를 이렇게 심판하실 것이니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라고 경고하고자 이 사건을 언급하며 마무리 짓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럼 사건이 일어나기 전 타락한 배경이 과연 어떠한지 살펴보지요. 본문 10-14절입니다.

10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하지 아니하여 일어나서 떠나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두 마리와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11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이 갔을 때에 해가 지려 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십시다 하니12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돌이켜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하지 아니한 이방 사람의 성읍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니 기브아로 나아가리라 하고13또 그 종에게 이르되 우리가 기브아나 라마 중 한 곳에 가서 거기서 유숙하자 하고14모두 앞으로 나아가더니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가까이 이르러 해가 진지라
지금 레위인은 아내를 데리고 드디어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시면 정부인이 아니라 "첩"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 레위인이 첩을 둔다는 것으로 그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말하며 시작하고자 합니다. 어제 본문에서 이 레위인은 다정히 아내를 보살피고 데려오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넓게 보면 이 사람은 자신의 첩을 소유물로 여기고 자신의 소유물을 아까워하는 심성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모순의 영성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본문에서 미가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보이긴 했지만, 제멋대로였던 것처럼 말이죠. 지금 레위인은 제멋대로 첩을 들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 "이방인의 성읍"에 들어가지 말고 이스라엘 성읍으로 들어가자고 말합니다. 후에 나오겠지만, 그는 자신과 아내를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가는 길에 이방인의 성읍에 들어가서 불결해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첩을 데리고 살면서,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얼마나 모순적입니까? 출발이 늦어서 그런지 집에 도달하기도 전에 해가 졌고, 그래서 결국 베냐민지파에 속한 성읍 기브아에서 머물기로 합니다. 15-18절입니다.
15기브아에 가서 유숙하려고 그리로 돌아 들어가서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있으나 그를 집으로 영접하여 유숙하게 하는 자가 없었더라16저녁 때에 한 노인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오니 그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 산지 사람으로서 기브아에 거류하는 자요 그 곳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이더라17노인이 눈을 들어 성읍 넓은 거리에 나그네가 있는 것을 본지라 노인이 묻되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서 왔느냐 하니18그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유다 베들레헴에서 에브라임 산지 구석으로 가나이다 나는 그 곳 사람으로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이제 여호와의 집으로 가는 중인데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없나이다
이스라엘은 율법에서 나그네를 영접하고 대접하기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아브라함 때의 소돔과 고모라 사건과 이 사건이 비슷하다고 말씀드렸지요.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기꺼이 영접하였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삼위일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노년에 독자를 낳을 것이라고 약속까지 해주셨지요. 사사기서는 이 사건에 빗대어 지금 베냐민지파 기브아 사람들이 얼마나 믿음의 선배와 차이가 있는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이 레위인 부부가 성읍 넓은 거리에 앉아 하룻밤 지낼 곳을 찾지만, 아무도 나그네를 챙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노인이 이 부부를 보게 되지요. 그리고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노인에 대한 설명이 조금 의이합니다. 그 노인은 본래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사람은 에브라임 지파 사람인데 베냐민 지파 땅에서 빌어 먹고 있는 것이지요. 여호수아 시대에 각 지파 각 가문은 각자가 분배받은 땅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족속과 전쟁에서 실패하고 땅을 차지하지 못하니 땅이 부족합니다. 또는 가난한 상황에서 땅을 담보로 돈을 빌리다 땅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땅은 점점 인간의 이익으로 주고 받는 거래도구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니 노인이 자신의 땅이 아닌 다른지파 땅에서 빌어먹기 위해서 이주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런 하층민이 나그네를 돌볼 만큼 기브아 도시의 잘사는 사람이나 보통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선행에 무지할 정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19-21절입니다.
19우리에게는 나귀들에게 먹일 짚과 여물이 있고 나와 당신의 여종과 당신의 종인 우리들과 함께 한 청년에게 먹을 양식과 포도주가 있어 무엇이든지 부족함이 없나이다 하는지라20그 노인이 이르되 그대는 안심하라 그대의 쓸 것은 모두 내가 담당할 것이니 거리에서는 유숙하지 말라 하고21그를 데리고 자기 집에 들어가서 나귀에게 먹이니 그들이 발을 씻고 먹고 마시니라
레위인은 노인에게 물품은 얼마든지 소지하고 있으니 머무를 곳만 제공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노인은 나그네를 손님으로 접대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기브아 도시를 유지하는 것은 누구일까요? 창세기의 소돔과 고모라 성을 위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중보기도하는 장면을 보면 그 도시는 부자의 경제력, 막강한 군사력, 탁월한 통치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의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의인이 없어 그 땅은 망하고야 말았지요. 사사기 저자는 말해줍니다. 과연 기브아에 의인이 있었는가? 타지인이고 비루한 노인밖에는 없었다고 말이죠. 이 의로운 노인이 머무를 수 없어 쫓겨났던 에브라임 지파, 이 노인 말고는 나그네를 접대할 사람이 없는 베냐민 지파의 기브아, 첩을 두고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영적으로 타락한 레위인. 이스라엘의 총체적인 타락상을 말해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내일 살펴보겠지만, 이런 총체적인 타락 속에서 처참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고 전에 징조가 있다고 하지요. 오늘 본문이 바로 사고가 일어나기 전 징조들입니다. 예수님은 "시대의 표적"(마16:4)을 분별하라고 하셨습니다. "인자의 징조"(마24:30)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이 있는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복음의 증거가 있는지 나의 삶과 나의 일상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심판이 가까이 옴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만약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 자가 되었음을 기뻐하며, 그 마지막 날을 분별하며 고대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 심판자로 다시 오신다는 그 뜻, 그리고 오시기 전에 징조들이 있을 것이라는 그 뜻. 그것을 기억하며 오늘 내가 말하고 선택하고 행동하고 결정해야 하겠습니다. 내 눈 앞에 있는 것에 매몰되지 마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넓은 관점과 시야를 가지고 오늘도 하나님과 승리하시는 하루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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