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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설교_F/골로새서_사랑의 아들의 나라

골 2:16-23

by 우루사야 2021. 12. 7.

16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20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어제는 "어떤 밭에서 어떤 영양분을 얻으며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예수 안에서"로 답하는 바울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몸"을 가지고 말하고자 합니다. 이해를 위해서 19절 하반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19b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온 몸이 어디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말합니까? "머리"입니다. 몸통이 크기 때문에 머리가 붙어있는 겁니까 아니면 머리에 몸통이 붙어있는 겁니까? 우리는 뇌가 죽으면 식물인간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몸통 쪽에 이상이 있어도 사람은 여전히 움직이고 생활합니다.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하는데 그 어떤 가치도 잃지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머리라는 것을 바울은 말하는 겁니다. 온 몸이 머리에 연합되어 있기에 머리를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시어 인류에게 신성한 은혜와 지혜를 주시기로 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19절 상반절을 볼까요? "19a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골로새교인 중에 누군가가 이 머리를 붙들지 않고 자신이 머리인양, 다른 머리로부터 다른 가르침, 다른 지혜, 다른 은혜를 구하려 한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3가지 잘못된 가르침을 실재적인 예시로 듭니다. 첫번째 16-17절입니다. 

16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로새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들도 다들 겪는 혼란이 "유대교적 전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바울은 명확했습니다. 그것은 그림자라는 겁니다. 실체, 진짜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림자를 쫓아가냐는 겁니다. 유대교 전통까지도 바울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장래일, 그러니까 구원자가 이 땅에 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말해주는 약속의 징표 같은 것이었지 실체가 아닙니다. 게다가 그 약속이 이뤄졌습니다. 구원자가 왔습니다. 유대교 전통은 그림자인데, 근데 몸통이 왔습니다.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 그림자가 아니라 몸통을 보면 됩니다. 게다가 그 몸통은 우리 심령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우리 안에 예수가 있고, 예수가 우리를 십자가로 품어내고 계시는데, 우리가 무엇을 더 따르고 더 행해야 한단말입니까? 무엇을 더 행해야 한다면 그리스도가 모자란 존재, 부족한 구원자라는 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 참된 구원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그 어떤 가르침도 "너희는 부족하다, 이것을 더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이정도까지는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겠느냐"라고 묻지 않게 또 그 질문들과 공격으로 흔들리지 않게 "우리 자신을 스스로 돌보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천사숭배입니다. 18-19절입니다. 

18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19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골로새 교회에 이렇게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직접 예배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그 거룩한 분을 직접 예배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전달해줘야 합니다. 그게 바로 천사입니다. 천사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통탄하실 일이지요. 18절에 "그가 본 것에 의지하여"라고 말하는데, 이는 신비한 체험 또는 환상적 체험, 신비한 직관과 같은 것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려 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기도원에 가시면 영서를 쓴다던지, 환상을 본다던지, 음성을 듣는 체험들에 대해서 많이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제가 이것을 부인하거나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만약 주객이 전도된 것이라면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직접 계시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직접 오셨고, 성령 하나님이 오순절 이후로 믿는 성도들의 심령 모두에게 직접 임재해 계십니다. 엄마가 가장 좋은 밥상을 차려주었는데, 배고프다고 길가 수돗가에서 물마시는 처지를 자처하는 행동이 바로 이런 신비주의를 의지하는 행태입니다. 우리에게 이미 가장 확실한 것들이 있는데 말이죠.

왜 이런 행태가 나타나는 것일까요? 바울은 18절에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려는 성향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무언가 더 특별하고 성스러워 보이는 행동, 예배법, 기도법 등은 역사적으로 계속 있어 왔습니다. 그 이유를 바울은 "과장하려는 육신의 생각"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꾸며낸 겸손, 그러니까 꾸며낸 신비한 사역"이라고까지 표현했습니다. 

가장 성스럽고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성령의 임재가 지금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전통, 다른 신앙행위로부터 우리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계심고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더 확고히 믿고 의지할 수록 우리는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과정된 주장과 가르침에 대해서 바울은 16절에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8절에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20-23절입니다. 

20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21(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22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23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바울은 영원하고 신비하면서도 거룩한 하나님의 방법,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아갈 것을 강력히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규례, 사람의 명령, 가르침을 따르지 말 것을 말합니다. 21절에서와 같이 골로새교인들은 세번째 잘못된 가르침으로 "금욕"을 강요받기도 했습니다. 23절에 보니 이런 것들은 자의적, 그러니까 하나님이 명하시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자신을 괴롭게만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시지 않고, 또한 우리가 신앙을 위해 육신의 정욕을 절제하고 컨트롤 하는데 있어서도 조금도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때때로 우리의 욕구를 컨트롤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먹는 것, 자는 것, 가지고자 하는 것, 바라는 것, 추구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고심하고 고민해야 할때가 옵니다. 그런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메뉴얼화 된 기도법이나 규정,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바울은 선을 긋습니다. 내 안에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무릎 꿇고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 그래서 그 속에서 깨닫게 해주시고 양심에 찔리게 하시고 죄책감을 느끼게 해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함으로 저절로 그것들을 금하게 되고 절제하게 되고 욕심을 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관계입니다. 

우리 안에 이미 진짜가 있습니다. 정답이 있습니다. 생명샘이 있습니다. 구원이 있습니다. 다른 것을 추구하느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만큼 미련한 것이 있을까요? 아무리 복음을 깨닫게 하셔도 자신이 원하는 신앙생활로 채우고자 함이 가장 큰 교만일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보시고 또 감사하시고 감격하시며, 여러분의 삶의 한걸음 한걸음을 걸어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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