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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설교_F/삼각관계 매듭짓기_요나, 사사

매듭짓기09. 끌고가는 사랑(3)

by 우루사야 2022. 8. 20.

본문. 요나서 4장 5-11절
제목. 끌고가는 사랑(3)

1. 서론
1) 예화
1년 전에 은평구에서 비극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유튜브나 개인방송채널을 많이 운영하는데, 그런 사람을 bj라고 합니다. 한 여성bj의 채널을 좋아하던 한 남성이 그 여성이 운영하는 인터넷방송에 들어갑니다. 그러더니 그 여성의 연락처를 알아내 연락해 결국 차단당합니다. 그리고서는 여성의 어머니 연락처를 알아내서 딸과 연락하게 해달라고까지 하고 그것을 거절한 어머니를 무참히 살해합니다. 그리고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생을 마감합니다.

2) 주제
온전하지 않은 사랑, 극단적인 애국심, 이성이나 연예인을 향한 스토킹, 자녀를 향한 과도한 집착, 생활을 잊은 취미생활, 자신의 소득수준을 과도하게 넘은 구매 등 인간적 사랑을 가장 최우선으로 하는 자의 말로는 결국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 그리고 사랑이라고 불리우는 모든 행동이 다 파멸되고 맙니다. 이것이 단지 극단적인 몇몇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극단적인 정치, 언어, 문화 등 점점 개인적인 기준으로 타인과 멀어지는 세대문화 속에서 우리는 이런 일이 얼마든지 소규모로 또는 간접적으로 우리 실생활 안에 있을 수 있는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숙한 사랑이 필요합니다. 서로 살리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알려주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배우라고 합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요나가 어떤 점에서 회개해야 선지자였는지 알아보았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제멋대로 생각해버리며 주인이 주었던 은혜를 무시했던 종을 향해 예수님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듯이, 요나는 하나님의 심정을 들어보려 하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묵상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요나는 지금 당장 죽어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어도 무방한 상태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요나를 계속 끌고 오셨습니다. 큰 폭풍으로, 큰 물고기로,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큰 부흥의 현장으로 그를 이끌고 가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현장으로 계속 이끌고 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해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지, 내 생각에는 전혀 사랑할 껀덕지가 없는 사람을 왜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시기 위해 그 현장으로 인도하십니다.

3) 본론잇기
우리가 그간 우상에 대해서 다뤄왔습니다. 우상 중에 최고의 우상이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나 자신이 아니었다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요나서에서 자기 자신을 최고의 우상으로 섬기며 하나님께 대항하는 요나의 모습이 꼭 우리의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더 나아가 가장 사랑할 수 없는 존재는 원수가 아니라 악하고 게으른 나 자신, 우상에 눈을 가리고 굳이 뜨려고 하지 않는 나라는 사실을 요나서를 통해 배우게 됩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시간입니다.

2. 본론
1) 내가 사랑의 범위, 기호 / 기호의 무서움
C S 루이스는 네가지 사랑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사랑은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생존에 관련된 필요의 사랑이 있고,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감상의 사랑이 있습니다. 감상의 사랑을 우리는 기호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그런데 문제는 기호가 중독이 되어 필요의 사랑의 자리를 차지했을 때입니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음을 인간적인 것에 바칠 수 있다. 그러면 그것은 당신에게 신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악마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파멸시킬 것이고, 그것 자체도 파멸될 것이다. 신의 자리를 허용받은 인간적인 사랑은 사랑 그 자체로 남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짜로 순종했습니다. "5요나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이 그에게 신이었던 것이지요.
요나에게 하나님은 필요의 사랑이 빠진, 감상의 사랑의 대상이 되버린 겁니다. 그래서 그는 가짜로 순종하는 척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로 니느웨는 3장에서 보니 3일길을 걸어야 하는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하루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서 언제 망하나 초막을 치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났습니다.

8-9절을 볼까요? "8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요나는 하나님보다 자신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박넝쿨을 더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기 보다는 니느웨가 망하기만을 바랬던 자신의 눈이 그 사건을 목격할 때까지 그늘이 되어줄 박넝쿨을 살리는게 더 중요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뭔일이 일어나도 일어났어야 했는데, 니느웨가 망하지 않습니다. 일교차가 50도에 육박하는 중동지역에서 뜨거운 아침에 그늘이 되어주었던 박넝쿨이 사라지니 요나는 불평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에게 하나님은 기호였습니다. 내가 좋으면 선택하고 싫으면 거절하는 존재인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성숙한 사랑이 아니라 파멸시키는 사랑으로 여로보암과 나라, 민족을 사랑했던 겁니다. 자기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말이죠.
나의 기호식품이 주식이 될 순 없습니다. 취미생활이 일상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친구를 매일.가족처럼 만날 수는 없는 겁니다. 요나는 하나님보다 자기자신을 통해 나라가 부흥되는 것을, 그렇게 자신의 입지를 세우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죠.


2) 원수를 사랑하는 하나님
이런 요나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본문 6-8절을 보실까요? "6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7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8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계속해서 나오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예비하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 폭풍을 준비하시고, 물고기를 준비하시고, 박넝쿨과 벌레, 뜨거운 동풍까지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니느웨에 있는 12만명을 위해서 하나님은 요나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났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요나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도록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의 도구로 요나를 사용하셔서, 요나가 사랑을 알아 요나가 살 수 있게 하시도록 하나님은 인도하시는 것이죠. 그러나 요나는 바다에 빠지고, 지금은 사는 것보다 죽는게 낫다고 말합니다.

마션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우주탐사를 떠난 팀이 있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모두 떠나버리고 한 사람만 화성에 남아 삶을 연명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오랜 시간 끝에 다행히도 다시 교신이 연락되어 생존되어있음을 알리고 지구로 무사귀환을 하게 됩니다. 그 영화 중간에 인공지능로봇이 화성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이 일을 왜 하는 건가요?" "Because, I can." 나는 할 수 있으니까. 어떤 영화평론가가 지금 이 시기에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영화를 소개하며 이 영화와 이 대사를 소개하더군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하며, 소망이 없어 보일 때 우리는 가장 근본적이고 근원적인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인공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하나님이 하나의 행동만 하실 수 있다면 성경은 하나님을 무어라고 말해줄까요?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다른 존재인 가장 큰 이유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살아갈 수 있는 이유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이죠.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배워야 하는 이유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거절하면 요나같이 죽는게 낫겠다는 생각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요나서는 이렇게 마무리짓게 됩니다.
10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11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Because, I love. 왜 이일을 하십니까? 사랑하니까.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을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독생자 아들을 보내시기까지 하셔서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살려내고자 하십니다. 함께 어우러져 확신과 기쁨이 가득찬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케 하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때때로 그것은 나의 생각과 상황과 반대되거나 뛰어넘어 내가 이해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잔인한 은혜라고도 표현하더군요. 내가 너무 하기 싫은 그 사랑을 배우고 알게 하십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을 배워감으로써 우리가 살아가게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우리를 끌고가시는.사랑의 현장입니다.

3) 사랑의 나라로
그간 매듭짓기라는 시리즈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인생은 사랑의 나라를 향해서 내 마음에 우상을 매듭을 짓고, 하나님과 매듭을 풀어가는 것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 아닌 것과 매듭짓고, 사랑으로 매듭을 풀어가는 인생인듯합니다.

사랑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습니다. 사랑하지 못할 존재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좋아할만한 사람을 사랑함은 좋아함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온갖것을 용서하고 함께하고 동행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나를 그 현장으로 인도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를 끌고가십니다. 사랑을 알아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아닌 것에 내 인생이 점점 사라지고 피폐해지는 것을 하나님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꾸 우리를 사랑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파멸시키는 앗수르를 위해 섬긴다니요. 매국노 중에 이런 매국노가 없지요. 그 매국노 짓을 한 교회가 있으니 온누리교회의 소나타 재팬이 그러합니다. 과거사를 뛰어넘어 사랑으로 선교를 해야함을 주창하신 하용조 목사님의 목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두 아들을 총살시킨 자를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님이라고 그 사랑이 이해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이끌어가시는 잔인한 사랑과 은혜의 현장에서 그 사랑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랑하는 의인 10명이 있는 이나라를 하나님은 결코 멸망하게 두지 않으실 겁니다.

제가 이번 주에 비신자 아이들 일곱명과 캠프를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어서 우리 행복한교회 아이들과 함께 레크레이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사진을 보실까요? 그렇게 아이들을 초대하다보니 저희 집이 어느샌가 사랑방이 되더군요. 그런데 그 중에는 저를 애봐주는 사람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애놓고 여행까지 가시는 분도 계시더군요. 또 어떤 아이는 사이비 이단 하나님의 교회에 부모님이 다니다보니 이 아이가 교회에 오지 못하도록 위치추적을 하시는 분도 계시더군요. 제가 이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으려면 수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려고하면 이유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희생케 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제 안에는 성령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연합해계셔서 제 안에 없는 용기, 지혜, 생명, 동기부여, 확신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좀 더 나아가 재정을 모으고 있습니다.

제가 교제하는 토스트가게, 세탁소, 슈퍼, 편의점, 카페 다섯군데가 있습니다. 50만원을 모아 10만원씩 넣어놓고 가난하여 그 가게 서비스를 잘 이용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사용해달라고 위탁하려고 합니다. 제가 돈이 많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제 안에 살아움직이니 제가 살아나게 됩니다. 사랑하면 여러분이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의 현장으로 끌고가십니다. 내가 세운 우상은 나를 죽입니다. 중독되게 합니다. 머물러 썩게 합니다. 사랑하러 나아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되길 소망합니다.


3. 결론
거기서 하나님은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한 사람 누구를 사랑하고 있다고 알려주십니까? 바로 나 아닙니까? 도저히 선한 생각이라고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나, 누군가를 도우면서도 내 모습이 괜찮은지 나를 더 높여주지는 않는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나. 그런 나를 보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알려주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사랑이시며,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알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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