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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_E/신학

눅 19:8 삭개오 사건의 시제에 관하여

by 우루사야 2021. 10. 30.

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1) 대럴 벅은 이 구절을 주해하는데 있어서 "주다"(디도미)와 "갚다"(아포디도미)에 주목한다.

2) 누가는 이 동사들의 시제를 현재형으로 표현했다.

3) 2번을 근거로 몇 학자들은 삭개오의 그간의 생활, 즉 자신의 재산을 나누며 살아오고 있었다고 삭개오는 말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즉 삭개오는 사람들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부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삭개오는 자신의 관대하고 공평한 행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피츠마이어 : 삭개오의 믿음에 대한 언급이 없음, 방금 회개하고서 앞으로 착취할 것에 대해 앞으로 네배로 갚겠다는 발언의 논리적 모순)

4) 대럴 벅은 이 견해를 반대한다.

5) 플러머 : 삭개오가 예수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말하는 것이 됨, 빼앗은 일은 과거의 일을 지칭하는 것임 

6) 댕커 : 뭇사람들이 삭개오를 죄인으로 이해하고 있었음. 

7) 그러므로 "주다"와 "갚다"는 현재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곧 삭개오가 예쑤를 만남으로 말미암아, 그는 회개하고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것에 근거해서 삭개오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또하 ㄴ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8) 여기서 삭개오의 믿음이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행위가 그의 믿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해줌을 넌지시 알려 주기 때문이다. 

9) 송태근 목사 설교

30분 즈음부터 그는 8절의 시제를 습관적 현재시제라고 소개를 한다. 즉 문맥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문법적으로 더 정확하게 해석해야 함을 말한다. 그에 의하면 누가의 습관적 현재시제에 따라 해석을 한다면 삭개오는 이미 복음을 직간접적으로 접했고 그에 따라서 나누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근거로 눅3장에 자주 등장하는 세리, 중간기사의 쿰란문헌 등을 근거로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이미 복음을 접했다고 말한다. 

10) 그렇다면 예수는 왜 삭개오를 찾아오셨는가? 그리고 왜 "오늘" 이 집에 구원이 임했다고 굳이 시제를 말씀하시는가? 삭개오의 구원은 오늘이 아니라 결단하고 나누는 삶이 시작했을 때가 아닌가? 

11) 송태근 목사는 10절의 현재시제에 대해서는 주해해주지 않는다. 결론으로 "잃은 자를 찾으러 오시는 자"라고 말하면서, 사회적으로 고립된 이를 찾으러 오는 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면서 신자는 구분짓는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즉 누가는 구원사를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편견으로 가득찬 신자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했다고 주장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MEx_8Va34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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