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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_E/신학

불의한 청지기 비유(눅16:1-9)

by 우루사야 2021. 10. 15.

1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해석

대럴 벅은 이 비유에서 청지기가 주인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는 실제적 근거를 찾으려 한다. 
1) 주인이 높게 측정한 값을 내려받음으로써 호의를 얻고자 하는 종이라면, 주인이 불의한 자가 된다. 
2) 율법에 따라 빚에 대한 이자를 없애준 것이다. 하지만 감면한 두 번(50%와 20%)의 비율이 다르다. 
3) 청지기가 받아야 할 수수료를 감면한 것이다. 대럴 벅은 이 견해를 지지한다. 밀보다 올리브오일이 더 가치가 높았기에 더 높은 수수료가 책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감면비율이 달랐던 것이다. 

결론. 불성실하게 근무했던 종은 자신이 해고위기에 처했다는 미래의 일을 인식하자마자 바로 조치하기 위해 움직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몫을 미래에 투자한 것이다. 이를 안 주인은 그를 칭찬했다. 예수는 이 주인의 평가에 동의하면서, 빛의 아들들 그러니까 신자들도 미래에 대해 준비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다. 이것은 그 다음 구절들을 통해 더 확실해진다. 9절은 돈을 관대하게 사용할 것, 10-12절은 청지기 직분을 신실하게 감당할 것, 13절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길 것을 말씀하신다. 즉 신자는 현재 가진 재정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인생을 지키는 청지기로서 잘 사용함으로써 미래를 올바르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석. 불성실한 청지기는 곧 구원을 얻는 신자를 말한다. 신자는 언젠가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해고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있어서 많은 이들이 의인으로 살지 못했고 이 평가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이 청지기 처럼 삶을 맡은 모든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평가받을 때 옳다고 인정받을 수 없다. 그렇기에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삶에 대한 죽음(해고)을 피해갈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신자는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죽음 뒤에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에 대해서 청지기는 남은 자기 직분에서 행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다. 그래서 그 다음 삶을 준비하고자 한다. 자신의 몫을 포기해서라도 미래를 준비하고자 했다. 물론 주인의 것을 가지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의 청지기라는 직분 안에서만 행동하고 또 얻을 수 있는 유익이었다. 마치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죄사함을 얻어 불의한 자에서 의로운 자가 되어 미래에 대해 보장받듯이 말이다. 그렇게 청지기는 주인이 준 직분의 마지막 순간을 잘 사용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했고, 주인은 이에 대해서 칭찬한다. 신자는 구원받은 삶 이후에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청지기직과 재정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이다. 그리고 그 삶은 죽음 이후의 내세에 대한 삶을 보장해줄 것이다. 이에 대해서 그 다음 구절에서 예수는 해설해주신다. 

 

 

문맥. 

1. 미래를 올바르게 준비하지 않는 바리새인
1) 14절 : 바리새인을 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누가는 말한다. 그들은 예수의 재정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에크뮈크테리조는 '어떤 사람에게 코를 높이 들다'를 뜻한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매우 얕잡아 보았다. 이것은 동시에 15절과 연결되어지는 동사다. 
2) 15절 : 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얕잡아 볼 수 있는 근거는, 자신들이 베푸는 자선행위가 있었고, 그것으로 이미 사람들에게 인지도를 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런 마음에 근거한 행동이 이미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것이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평하신다. 브델뤼그마는 거부를 나타내는 매우 강력한 용어다. 하나님은 스스로 높이는 자를 혐오스럽게 여기신다. 이는 부자와 나사로에서 부자와 어울리는 표현이다. 


2.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 역사의 전환점
3) 16-17절 : 율법과 선지자라는 약속의 시대에서 이제 성취의 시대가 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이르렀고 또 이미 왔다. 즉 새로운 시대가 된 것이다. 새 시대는 새로운 현실이 전개되고 또 새로운 권위가 나타난다. 마태는 이를 천국이 강력히 오거나 또는 침략을 당하며 강력한 사람들이 천국을 힘으로 차지한다고 말한다. 이는 누가와 동일한 어조이다. 하지만 그 뒷부분은 서로 상이하다. 마태는 강력한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것을 누가는 모든 사람에게 부여한다. 그러나 이는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주제는 새시대의 도래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오라는 일관되며 지속적인 간청을 받는다는 이미지를 대럴 벅은 지지한다.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
"16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눅16)

율법과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해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역사하심을 가리킨다. 율법은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했다. 예수를 반대한다는 것은 율법과 하나님의 나라를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돈을 사랑함으로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를 부인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4) 18절 : 율법의 성취에 대한 예시로 예수는 결혼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는 것이기에 결혼한 자는 이혼에 대해 이리저리 궁리해서는 안된다. 약속의 성취를 바래야 한다. 바리새인은 율법의 성취를 바라며 돈에 대한 관점을 제대로 이행했어야 했다. 

5) 부자와 나사로 거지 비유 : 부자와 나사로 거지 비유는 구원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16장에서부터 이어온 예수의 설교의 마무리 예화에 해당한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에서 모세와 선지자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메시지나 죽은 자가 일어선다는 표현이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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