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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사 설교_F/마주보기_삼상~왕상

마주보기04. 마음에 걸리는 것

by 우루사야 2022. 9. 30.

본문 : 삼상 25장 30-31절 제목 : 마음에 걸리는 것

서론
지진이야기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보통 지진강도가 5이상이면 약한건물이 파손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2017년 포항에서 5.4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래저래 많은 피해들이 있었는데, 포항의 한 산후조리원 cctv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말씀드린대로 5.4지진이면 건물이 흔들려서 약한 건물들이 무너질 정도이니, 강한 건물이라 하더라도 흔들리는 것은 마찬가지지요. 그렇게 이 산후조리원 건물도 흔들렸는데, 문제는 신생아실이었습니다. 이 신생아실 cctv에 찍힌 장면은 간호조무사 선생님들이 지진이 일어나 엎드리는 장면이 아니라 아기들을 태우고 있는 카트를 한 사람이 3-4씩 붙잡으며 아기들을 보호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장면을 보며 인류애와 사랑을 느끼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들이 이런 사명감을 가졌는지 한번 이 산후조리원을 찾아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습니다. 일단 이 조리원은 법적으로 규정해놓은 최소한의 공간보다 더 넓은 공간을 산모들에게 제공합니다. 그리고 건물자체에 내진설계 1등급을 받도록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설립자체부터 산모와 아기의 건강과 안전을 가장 중점에 두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좀 더 알아보니 지진의 조짐이 보이자마자 조리원은 체계적인 메뉴얼을 바로 전달했고, 지진이 일어나자마자 바로 아기들을 지키기 위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가장 중심에 두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던 조리원이었습니다.

2) 주제
사람은 위기나 갈림길, 선택의 기로 앞에서 마음의 중심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마음에 있는 것이 생각으로 커지고, 그 생각이 우리의 말과 행동이 되고, 마침내 우리의 삶이 되며 우리의 가정과 공동체의 색깔 또는 문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가 아니라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고 성경에서 여러번 말씀하셨고, 그래서 다윗을 택했다고 사무엘 선지자에게까지 말씀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사람 마음중심이 곧 나입니다. 그래서 마음중심을 항상 살펴봐야 합니다. 마음중심에 무엇을 둬야 할지 항상 분별해야 합니다. 마음중심이 혹시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더럽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봐야 합니다. 그것이 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두고 판단하실 때 그 마음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 더 나아가 우리는 마침내 우주의 왕으로 섬겨야 할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 땅 지구에서 다스리는 훈련을 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닮아야 할 왕의 모습으로 성경은 예수님과 다윗왕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마음중심을 가지고 살았는지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배우며 우리의 마음을 청결하고 선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3) 본론잇기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다윗이 마음중심이 흔들리던 때가 있었나 봅니다. 그렇습니다. 완벽한 왕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닮아간다면, 불완전한 왕으로서의 다윗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어떻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지도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지난 주에는 우리 마음 양심에서의 분별을 살펴보았다면, 이번 주는 우리 외부로부터 분별하게끔 돕는 것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이시간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이 세우시는 왕의 모습으로 한 주간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2. 본론
1) 바로 앞만 봄
오늘 우리는 다윗의 부족한 면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중심의 분별력을 잃었을 때가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사무엘상25장입니다. 사무엘서 저자는 다윗이 사울을 죽일 2번의 기회가 있었고 모두 "하나님이 선택한 사울이니 왕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일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 한번 그 마음을 잃을 때가 있었다고 말해주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왜 다윗은 여호와 중심의 분별력을 잃게 되었을까요? 지금도 다윗상황이 너무 안좋은데, 2가지 안좋은 일이 설상가상으로 닥칩니다.
첫번째 설상 1절입니다. "1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다윗이 왕이 될 때 옆에서 가장 많이 도와줘야 할 사람 한 사람을 꼽으라면 사무엘입니다. 하나님의 대선지자로서 또 이스라엘 전체에게 선언해줄 사람으로써 사무엘이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사무엘을 하필 가장 힘들 때 데려가십니다. 두번째 가상 2-3절을 보겠습니다. "2마온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생업이 갈멜에 있고 심히 부하여 양이 삼천 마리요 염소가 천 마리이므로 그가 갈멜에서 그의 양 털을 깎고 있었으니3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의 아내의 이름은 아비가일이라 그 여자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우나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사무엘이 죽고나서 성경은 두 사람을 더 소개해주는데 한 사람은 다윗과 같은 지파사람이며 가장 유명했던 갈렙의 후손 나발이었고, 또 한 사람은 그의 아내 아비가일인데 두 사람은 대놓고 비교를 합니다. 나발은 완고, 악함이라고 말하고 아비가일은 총명, 용모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이것만 봐도 누가 다윗의 분별력을 잃게 만들고, 누가 분별력을 되찾게 돕는지 아시겠지요?! 먼저 나발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본문 2절에서 보니 나발은 부자 중 심히 부자입니다. 그런데 양털을 깎고 있었을 때 시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대에 양을 기르는 사람들에게 추수계절은 곧 "양털 깎을 때"입니다. 그래서 이 때 잔치를 벌입니다. 심히 부자이고, 지금 풍성해 마음이 좋을 때입니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 나발의 목동들이 멀리 양떼들에게 풀을 먹일 때 다윗의 군사들이 많이 도움을 줬나 봅니다. 그래서 광야 도망자 생활을 하던 다윗이 나발에게 가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 때 놀부심보로 나발이 이렇게 말합니다. "10나발이 이르되 다윗은 누구냐 요즘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다 내가 어찌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10-11) 지금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자입니다. 게다가 같은 유다지파로서 나발이 다윗을 모를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목동들이 나발에게 도움을 받았었다고 증언까지 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성경은 이 사람이 본래 "완고하고 행실이 악"한 사람으로서 이런 일을 할만한 사람이라고 먼저 말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서 "38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는 결말로 이 이야기는 어느정도 마무리를 짓게 됩니다. 바로 앞만 보고 사는 사람들의 결말입니다. 미래를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나발의 근시안적인 관점이 다윗에게도 동일하게 오늘 본문에서 보이는 것입니다. 분명 다윗은 생명을 사랑하고, 지킬 줄 알며, 하나님의 권위를 세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을 돕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발의 집을 어떻게 대하려고 합니까? "너희는 각기 칼을 차라"(13)고 말하며 피흘리는 전쟁으로 복수를 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누군가를 짓누르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지요. 

 


2) 눈 앞에 상황에 매몰
여기서 우리는 조금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나발과 다윗은 왜 분별력을 잃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보인 두 사람의 공통점은 마음이 청결한 자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두 사람의 마음청결의 정도차이는 있습니다. 나발은 본래 심성이 악하고 완고한 자였습니다. 다윗은 본래 심성이 맑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눈 앞에 상황과 환경에만 치중하고 매몰되니 그 다음 상황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발은 다윗에 대해서 충분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사람들이 몰렸다는 것도 충분히 알았습니다. 목동들이 봤을테니까요. 그런데 자신 앞에 있는 수많은 양떼와 목동들을 보며 자신의 권세와 풍요로 마치 뭐라도 된듯한 자기체면에 휩쌓였고, 그 때 위기가 닥친 것이지요. 다윗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평소 선의로 동족 동지파 사람들을 도우며, 마치 로빈후드처럼 살아가던 다윗이었습니다. 억울하게 사울에게 쫓겨다니면서도 사울의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리지 않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모욕감을 준 자 앞에서 이성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 두 사람 다 지금 바로 앞에 있는 상황에 매몰되어 다음 스텝을 보지 못할만큼 이성을 잃었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또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성을 되찾게끔 주변에서 돕는 이가 있었다는 것인데, 여기서 두 사람이 구분이 됩니다. 나발은 종들의 증언에도 결국 이성을 되찾지 못하고 다윗의 사환들에게 모욕감을 주었고 스스로 매를 버는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되돌아오게 됩니다. 여기서 나발과 다윗의 평소의 마음청결, 마음중심을 관리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차이점을 보게 됩니다.

특히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했던 조언을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30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31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복하셨다든지 함으로 말미암아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다만 여호와께서 내 주를 후대하실 때에 원하건대 내 주의 여종을 생각하소서 하니라" 앞으로 왕이 될 사람으로, 왕이 될 때 후환이 될 만한 일을 만들지 말라! 라는 내용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면 첫째, 복수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다리십시오. 둘째, 전쟁을 통해서 동족중에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마십시오! 라는 충고아닌 충고였지요. "현재 말고 미래를 보세요!"

여기서 다윗은 분별력을 되찾게 됩니다. 여호와 중심으로 살던 자이니, 여호와가 하시는 일 중심으로 돌아가라는 조언에 수용성을 보이는 다윗입니다. "33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그리고서 다윗은 그 이후에 사울왕을 다시 죽일 수 있는 기회에 되찾은 분별력으로 사울을 죽이지 않고 물병과 창만 가지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분별력으로 미래를 준비할 줄 아는 자가 되었고, 다시 사울왕을 죽일 기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여호와 중심으로 살아가게 되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깨어있으라, 생각하지 못할 날에 오리라"(마25:42,44) 그러니까 생각하며 분별하며 준비하며 미래를 앞을 보며 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상황, 감정, 생각, 느낌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실지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어떻게 그 다음 스텝과 관계, 절차를 가져 갈 수 있을지 고민하며 묵상할 수 있는 우리의 분별력있는 영성이 필요하겠습니다.


3) 지속성
그럼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여호와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현실문제만 바라보고, 현실상황에 매몰되지 않는 것입니다. 즉 그 문제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며, 그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고, 그 하나님을 믿고 내 앞에 있는 현실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오늘 제목을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마음에 걸릴만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쉽지가 않다는 겁니다. 어떻게 내 바로 앞에 있는 문제를 뛰어넘어 하나님께 시선을 향하게 할 수 있을까요?

혹시 여러분 배우자를 사랑하십니까? 제가 그 사랑을 알 수 있도록 증명해보시겠어요? 아니면 수치로 말씀해보시겠어요? 사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이렇게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에 빠진 날도 정확하게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지속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자가 여러분을 사랑하게 된 것은 큰 이벤트 멋진 선물때문이 아닙니다. 저희 아내가 잘 표현하지 않는데, 한번은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구나"라고 느낀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언제냐 하면 자려고 침대에 누웠을 때 물 좀 가져다 달라고 하면 갖다 주더라는 겁니다. 그래요. 사랑은 "사소한 지속성"에서 생겨나는 겁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사람관계와 동일하게 하나님과 관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고 싶으세요? 사소한 것 하나부터 지속적으로 하나님이 무얼 좋아하시고 어떤 걸 사랑하시는가 살펴보세요. 하나님은 큰 이벤트나 헌금, 큰 헌신을 바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양심에 하시는 말에 귀기울이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며, 하나님을 대체할 수 있는 우상들에 대해서 멀리하는 "지속성"에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에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매일큐티, 매일기도, 매일선행, 매일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분별력은 어느날 기도하면 떡하니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사람이 그 분별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오늘 내 안에 시기, 질투, 음란, 정욕, 탐심, 분노는 한 순간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조금 조금씩 하나하나 내 삶 속에서 없애가는 것입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하나님과 지속성 있는 관계는 우리에게 분별력을 줍니다. 이런 지속성을 통해서 우리는 문제와 현실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경은 믿음이라고 말해주는 것이구요. 우리 양심 속에서 "성부 하나님이 널 창조하셨다, 성자 하나님이 널 구해주셨다, 성령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려 연합해 계신다"는 사실을 매일 기억하며, 하나님이 하신 일을 성경에서 배워가며 그 동일한 하나님이 지금 내 안에 계심을 기억함으로써 우리가 분별해갈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결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중심이 곧 여러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무엇을 두느냐가 여러분의 인생을 결정짓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분별하셔야 합니다. 이리저리 흔들려고 하는 세상 앞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안에서,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여러 사람과 환경을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아니 여러분은 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리고 여러분과 함께 하는 곁에 있는 지체들과 함께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개인화되어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로 소망과 기쁨으로 가득찬 이번 한주를 살아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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