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설교/에베소서_사랑하시는 자 안에서22 엡 4:25-32 세상의 윤리와 교회의 윤리는 결이 다릅니다. 무엇이 더 우월하느냐의 것이라기보다는 "잣대"자체가 다릅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아내의 사랑이 여자의 사랑임에도 비교가 불가하듯이 말이죠. 그런 점에서 신자는 세상 비신자의 선함을 무턱대고 무시해서도 안되겠지만, 더 나아가 구원받은 자의 선함을 세상과 비교하며 교회의 선함을 추구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교회의 선함, 의로움, 용서는 "하나님의 구속사, 예수"라는 명확한 서사와 맥락 가운데서 다뤄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모두 하나와 같이 "복음의 원리"를 먼저 설명하고, 그 가운데서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말해왔습니다. 에베소교회에게는 '예수 안에서 누리는 풍성함'에 대해서 이야기했죠. 그 속에서 신자가 어떻게 살아.. 2025. 1. 16. 엡 4:17-24 예수 안에서 누리는 풍성함. 그것은 우리의 눈 앞에 예수가 없고, 성령이 만져지지 않아도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오늘도 살아내게 해줍니다. 하나님이 나를 만드셨다는 그 사실, 그리고 나를 권속으로 삼으사 오늘도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마침내 나를 기업으로 삼아 왕으로 세워주실 것이라는 그 사실을 믿으며 선택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신앙의 결실을 보게 됩니다. 예수가 주는 풍성함의 진가죠.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 풍성함을 모르는 이들과의 비교를 통해 가르침을 주고자 합니다. 17-18절입니다. 17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18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 2025. 1. 15. 엡 4:11-16 한때 한국기독교를 강타했던 기복신앙은 말 그대로 "복받기 위한 예배"로 전락시켰습니다. 헌금, 전도, 예배 모두 현세에 복을 받기 위한 것이었죠. 때문에 복을 받지 못한 자들은 정성이 부족해서 또는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어서라는 누명을 써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하나님의 용서는 정성에 달린 문제로 치부되기도 했죠. 성경이 말하는 바와 정반대에 있었던 잘못된 신앙이었습니다. 우리가 계속 살펴보고 있는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완성되어 풍성하다 못해 흘러넘치는 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제 본문에서는 특히 이 복을 각 사람이 나누어 가지게 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11절로 이어집니다. "11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12이.. 2025. 1. 14. 엡 4:7-10 바울은 감옥에서 풍성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도시에 있는 에베소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환경때문은 반드시 아니겠죠. 그럼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이 감옥에 갇히더라도, 대도시에서 풍요로운 삶을 향유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영혼의 풍성함"이겠죠. 바울은 하나님이 완성하신 복음을 가지고 감옥에서도 풍성함을 누립니다. 그 풍성함은 감옥의 곤비함을 이겨내게 합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군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10절부터 살펴봅니다.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바울은 에베소교회에게 성자 하나님을 주목하게끔 합니다. 네, 예수님이죠. 예수를 내리셨던 그라고 표현합니다. 이.. 2025. 1. 13. 엡 4:1-6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나의 힘으로 시작이 되면 금새 무미건조해집니다. 신앙은 관계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반드시 나의 삶의 영역에서 열매와 결과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1절을 보시죠. 1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바울은 "부르심"에 걸맞게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쉽게 말해 신자면 신자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죠. 그러면서도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힌 상태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네, 신자의 태도는 옥에 갇히든 대도시에 살든 동일합니다. 혼자 있든 다수가 보는 앞에서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지 하나님이 나를 신자로 부르셨고, 나를 성전 삼아 계심을 기억하며 "합당하게 행"할 줄 알아.. 2025. 1. 11. 엡 3:14-21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하는 것이고 같이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높이면 자연스레 내가 낮아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이 참 사랑이라고 부르시고, 그 증거로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내려보내셔서 사람을 높이게끔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셨습니다. 이런 영적원리는 사람 대 사람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교회가 세워져 나갈 때에는 누군가의 섬김으로 다른 이를 높이며 세우고 굳건하게 하는 것입니다. 15절에 보니 바울이 기도합니다.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네, 에베소교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바울입니다. 감옥에서 대접을 요구하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해도 모자랄판에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도제목은 무엇.. 2025. 1. 10. 엡 3:8-13 사랑함은 시소와 같습니다. 일방적인 벽에 공을 던져 주고 받는 것과는 다릅니다. 내가 올라가면 상대가 내려가고, 상대를 높이려면 내가 낮아져야 합니다. 8절에서 바울이 말을 들어보시죠. 8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9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바울은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자신을 보내셨다고 믿습니다. 이방인은 물론이거니와 기독교인을 잡으러 다녔던 자신, 유대교의 최상위층 엘리트인으로써 살았던 자신을 유대교인이 보기에 종교적으로 가장 하층민에 속하는 우상숭배로 가득한 이방인에게 자신을 보내셨음을 믿습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구원의 가족으로.. 2025. 1. 9. 엡 3:1-7 사랑은 자신 이외에 다른 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동족 유대인의 구원만 중요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사랑을 깨닫고서 동족의 구원에 그치지 않고 다른 이민족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민족들, 이방인들, 유대인이 멸시했던 이방인들.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예수 안에서 받는 사랑은 이렇게 더 넓은 곳을 바라보게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받은 사랑을 더 넓은 곳으로 전달하다가 "갇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1절을 보시죠. "예수의 일로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 바울은 자신이 지금 처한 현실이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죠. 2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3곧 계시로 내.. 2025. 1. 7. 엡 2:14-18 / 19-22 에베소라는 도시는 일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와 풍요의 신이라고 여겨졌던 아르테미의 신전이 있던 곳입니다. 그만큼 부와 풍요를 바랬던 이들이 몰렸고, 또 그에 걸맞게 이 도시는 로마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번성했던 도시였습니다. "부요"라는 키워드 하나로 인근각국의 사람들이 몰려왔던 곳이죠. 그곳에서 바울은 일전 사도행전 19장 때에 부요보다 더 풍성한 복음을 제시하여 "에베소교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네, 돈과 물질이 줄 수 없는 것, 영혼과 죽음 이후까지 바라보게 해주는 복음, 우리의 위치를 신의 후계자요 존재의 변화를 겪게 해주는 신의 계획을 바울은 제시하는 것이죠. 더 나아가 지난 본문에서 바울은 이것을 특정세력에 국한되지 않고 전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임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 2025. 1. 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