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라는 도시는 일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부와 풍요의 신이라고 여겨졌던 아르테미의 신전이 있던 곳입니다. 그만큼 부와 풍요를 바랬던 이들이 몰렸고, 또 그에 걸맞게 이 도시는 로마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번성했던 도시였습니다. "부요"라는 키워드 하나로 인근각국의 사람들이 몰려왔던 곳이죠. 그곳에서 바울은 일전 사도행전 19장 때에 부요보다 더 풍성한 복음을 제시하여 "에베소교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네, 돈과 물질이 줄 수 없는 것, 영혼과 죽음 이후까지 바라보게 해주는 복음, 우리의 위치를 신의 후계자요 존재의 변화를 겪게 해주는 신의 계획을 바울은 제시하는 것이죠. 더 나아가 지난 본문에서 바울은 이것을 특정세력에 국한되지 않고 전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임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도 이런 신의 계획, 하나님 아버지의 섭리를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18절을 보시죠.
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8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인류를 향해 "선한 의도"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 분의 의도는 화평하게, 평화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둘을 하나로 만드시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아무리 원수지간이고 높은 벽과 담으로 막혀있는 사이여도 말이죠. 우리가 믿는 신은 이런 의도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럼 이 의도를 어떻게 실행에 옮기셨습니까?
성부 하나님의 계획에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하나로 순종하시고 따르시어 "화평한 한 분"으로써 이뤄내셨습니다. 14절 하반절에 보니 성자 하나님이 "자기 육체"로 허무셨다고, 그러니까 예수가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를 형벌받게 하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해소하셨음을 말합니다. 또 18절 하반절에 보면 "한 성령 안에서"라고 말하며, 성령이 믿음을 가진 신자의 심령 안에 하나하나 임하심으로써 같은 마음과 같은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하셨음을 설명해줍니다.
특히 19절에서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결과를 말해준 바와 같이 하나님이 이루신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화평은 같은 자격을 가진 자로 만드신 것이었습니다.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상향평준화였습니다. 비유대인을 유대인과 같이 만드셨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고아, 집이 없는 외인이나 나그네가 아니라 그 아버지의 자녀로, 그 왕의 시민으로, 그 분의 권속 그러니까 그 분이 책임지는 식구로 삼으셨습니다.
네, 성자와 성령 하나님은 각각 인간을 화평케 하기 위해서 성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셨습니다. 이렇게 삼위의 하나님이 화평케 하나가 되시어 인간과 화평을 이루고자 일하셨습니다. 더 세밀하게 하나님이 먼저 선택하셨던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화평케 하시는 일을 예수가 어떻게 행하셨는지 설명해줍니다.
15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17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첫번째, 문자로 된 율법을 폐기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버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계약을 하고자 하는데 공인중개사가 대리인으로 있었다가 그 후에 계약당사자가 나타난다면 누가 계약을 합니까? 네, 당사자죠. 대리인은 뒤로 빠지게 됩니다. 율법은 그런 역할입니다. 율법은 결코 구원의 계약당사자가 아니라 도구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리인이 하던 계약절차를 폐기하고, 대리인을 보냈던 당사자가 와서 인류와 구원계약을 맺는 다는 것이죠. 성자 하나님이라는 당사자가 직접 인류 가운데 오셔서 계약을 맺으셨고, 인류는 그 계약서의 혜택을 입어 죄사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먼데 있는 너희 이방인이나 가까운데 있는 유대인들 모두에게 같은 평안을 주셨고, 그래서 이제 누구라도 예수의 혜택을 입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되었다는 겁니다. 20절부터 마저 봅니다.
20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사도와 선지자는 모두 유대인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이라는 터 위에 선다는 것은 "혈통"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들이 설명하는 하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화평을 따르고 믿으면 그 위에서 충분히 세워질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가 모퉁잇돌", 즉 예수가 그렇게 기반을 다져주셔서 외인들을 초청해주셨다는 겁니다. 때문에 예수라는 분께 연결지어 우리는 함께 믿음의 연결고리를 갖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이방인일찌라도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어갈 수 있다고 바울은 적극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아르테미신전에서 에베소인들이 구하던 풍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바울은 더 큰 풍요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화평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타존재와의 화평. 무언가를 주어야만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채로 주어졌다는 선물을 주고받는 관계. 하나님의 풍요를 그렇게 바울은 설명해주었던 것이죠. 오늘 내가 선물받은 존재로써 넉넉하게 세상을 향해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합니다.
강해설교/에베소서_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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